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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4구간 제3부
붉은재-북창-중말-소한말-파명당산-
팔봉수로-창포마을-팔봉산주차장
20260305
1.태안 굴포운하지와 서산 창포마을
-역사의 흔적을 상상하다
동서트레일 4구간 안내판에서는 동서트레일 4구간을 이렇게 개관한다. "동서트레일 4구간은 태안읍에서 백화산을 넘어 흥주사로 이어지는 숲길을 지나 오석산을 거쳐 태안과 서산의 경계인 어송리 및 팔봉산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구간입니다. 태안의 진산인 백화산을 비롯해 상옥리의 삼층석탑, 만세루 및 천연기념물 제156호 은행나무 등이 있는 고려시대 고찰 흥주사와 초가집 형태의 고택인 가영현 가옥, 도내리의 파명당산 등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구간입니다." 주요 경로와 거리는 태안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 - 1.8km - 백화산 정상 - 4.7km - 오석산 - 5.4km - 팔봉산주차장, 전체 거리 12.6km, 난도 3등급이라 한다. 동서트레일 4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3부(붉은재 - 팔봉산주차장) : 태안읍 어은리와 도내리의 경계를 이루는 붉은재에서 동서트레일 4구간을 이어간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팔봉산주차장까지 4.6km가 남아 있다. 동서트레일 4구간은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서 서산시 팔봉면으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태안읍 남문리 태안읍행정복지센터, 동문리 백화산, 산후리 백화산구름다리, 상옥리 흥주사와 가영현 가옥, 어은리 오석산, 도내리 북창과 파명당산,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창평마을을 통과한다. 태안읍 6개 리(里)와 서산시 팔봉면 한 개 리(里)를 탐방하는 4구간에서, 지금까지 태안읍 남문리, 동문리, 산후리, 상옥리, 어은리를 통과하였다. 이제 태안읍 도내리를 거쳐 태안읍과 작별하고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로 넘어간다.
붉은재에서 오얏길을 따라 도내리 지역을 지나간다. 왜 도로명이 오얏길일까? 자두나무가 많아서 오얏길일까? 李씨들 집성촌이 있어서 아니면 오얏골이라는 지명이 있기 때문일까? 오얏길은 태안읍 어은리 어은마을에서 도내리 북창마을까지 이어진다. 길 양쪽에 인삼밭이 넓게 펼쳐진 태안읍 도내리 오얏길을 따라가며 팔봉산과 창벌마을을 살피고 가로림만을 가늠한다. 오얏길 북쪽으로 팔봉산 능선이 이어지는 모습이 시원하게 보이는데, 그 서쪽에 가로림만이 굽이도는 모습이 그려진다. 서해랑길 탐방 때 남쪽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었다가 북쪽으로 돌아가는 가로림만 해안을 따라 팔봉산을 조망하고 솔감저수지 제방을 건너 구도항으로 올라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얏길 남쪽을 살피면 태안읍 도내1리 창벌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로림만 남쪽의 오석산 산줄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창벌(倉坪)마을은 세곡(稅穀)을 저장하던 창고가 있어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하며, 북창(北倉)마을은 창벌마을 북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창고와 관련된 지명이 이곳에 많은데 그것은 굴포운하와 관련되어 있다.
오얏길은 태안읍 상옥리와 도내리를 남북으로 잇는 상도로의 북창마을 입구에서 끝난다. 상도로는 북창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도내리 가로림만을 향해 달리고, 동서트레일은 상도로를 가로질러 이제부터 도내3길을 따라 남동진한다. 도내3길을 따라가다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오석산과 그 산줄기, 서남쪽으로 흥주산, 남쪽으로 무쇠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 멀리 천수만에 우뚝 솟은 도비산이 흐릿하게 가늠된다. 도비산은 천수만 북쪽에서 제방에 가로막힌 동쪽의 간월호와 서쪽의 부남호, 남쪽의 천수만과 안면도를 내려본다. 서해랑길 지선을 탐방할 때 서산시 부석면 창리포구에서 출발하여 부남호 호안을 따라 올라가서 부석사를 들르고 도비산을 가로질러 간월호 북쪽을 살피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때 태화산과 팔봉산을 조망하며 부남호 위쪽의 굴포운하와 가로림만을 가늠했는데, 지금은 도비산을 바라보면 부남호와 간월호, 천수만을 가늠한다. 아, 세월은 흐르고, 현재에서 과거를 추억하고, 과거에서 현재를 확인한다.
도내3길의 도내1리 소한말 버스정류소 앞에서 동서트레일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도내2길을 따라 팔봉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소한말은 솥안말이 변한 듯한데, 솥안말은 소나무가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소한말 마을 남쪽 태안읍 인평리와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 경계에 굴포운하지(掘浦運河址)가 있다. 굴포운하는 고려 인종 때부터 천수만(淺水灣)과 가로림만(加露林灣)을 연결하려던 계획이었으나 실패하였다. 이 계획은 조운선의 안전한 항로를 위해서였다.
남쪽 지방에서 고려의 개성과 조선의 한양으로 올라가던 세곡선이 안흥량 관장항(關丈項)의 암초에 난파되는 일이 빈번하자 고려 제17대 인종 12년(1134)부터 굴포를 개착하여 조선 중기 임진왜란 직전까지 500여 년간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암반과 조수에 밀리는 토사 등으로 인해 중단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후 세곡미 수송을 위하여 조선 현종(1668) 때에는 굴포개착지 주변에 많은 조창들을 설치하여 남쪽에서 올라오는 세곡미를 태안읍 평천리 남창(南倉)에 보관하다가 육로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북창(北倉)에 이송하고 이곳에서 선편으로 개성까지 운송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에 창고를 뜻하는 지명이 많다.
굴포운하와 관련된 신숙주의 칠언율시를 읽으면 굴포운하에 공들인 당대의 현실이 실감난다. 세조 7년(1461) 신숙주(申叔舟)의 건의로 굴포운하 굴착공사가 3년간 추진되었는데,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 1417~1475)는 1461년 7월 충청도(忠淸道)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제수 받아 태안(泰安)에 머물며 굴포(堀浦)운하 공사를 감독하였다고 한다. 이때 지은 칠언율시 '차태안동헌운(次泰安東軒韻, 태안 동헌의 운을 빌어 짓다)을 읽어본다.
"嶺上孤城落照邊(영상고성낙조변) 登臨只見海浮天(등림지견해부천) 風回島嶼迷驚浪(풍회도서미경랑) 地僻民居生澹煙(지벽민거생담연) 浦掘幾年功未效(포굴기년공미효) 山來一帶斷猶連(산래일대단유련) 誰能說我通漕策(수능설아통조책) 但向樽前醉惘然(단향준전취망연) 고개 위 외로운 성 낙조(落照) 가에 서 있는데/ 올라서니 보이는 건 바다와 뜬 하늘 뿐./ 바람 불어 섬을 돌아가니 섬은 놀란 물결에 희미하고/ 땅이 궁벽하니 민가에선 묽은 연기 오르네./ 몇 년 동안 파는 운하 공들인 보람 없는데/ 산은 한 줄기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구나./ 뉘 능히 나에게 조운(漕運)의 방책 말해 주려나?/ 다만 술통 앞에서 망연(惘然)히 취할 뿐이네." 고려 때부터 시작된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잇는 굴포운하 공사의 성공을 위한 고심과 공사의 진척 없음에 대한 슬픔이 밀려온다.
태안 지역이 소주 가씨(蘇州賈氏)의 집성촌으로 태안 지역의 명문가임을 이번 탐방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상옥리의 가영현 가옥, 태안군수 가세로씨를 이번에 알게 되었고, 태안읍 도내리 파명당산(破明堂山)으로 가는 도내리 중말 구릉지 언덕에 소주 가씨(蘇州賈氏)의 문중 묘지가 규모 있게 조성된 것을 보고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주 가씨(蘇州賈氏)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명나라 장수 가유약(賈維鑰)을 시조로, 가유약의 출신지인 장쑤성 쑤저우(소주, 蘇州)를 본관으로 삼는다. 가유약은 정유재란 때 다시 참전하여 부산포구 전투에서 아들 가상(賈祥)과 함께 전사하자 손자 가침(賈琛)이 이들의 시신을 경남 울산 서생진 도독동에 장사 지내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후 가성(賈晟), 가호(賈昊), 가병(賈昺), 가수(賈遂) 등 증손자들이 울산에서 충청도 태안으로 터를 옮겨 가씨들은 태안을 중심으로 가통을 이어왔다고 한다. 길손의 기억 속에는 프로야구 선수 가득염 투수가 생각난다.
구릉지의 소주 가씨(蘇州賈氏) 문중 묘지를 지나면 도내리 들녘 너머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들녘이 펼쳐지고 팔봉산의 최고봉 3봉에서 8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 일대는 가로림만을 막은 솔감저수지 제방에 의해 간척된 농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솔감저수지로 흘러드는 팔봉수로가 증거하는 것 같다. 동서트레일은 이 들녘을 가르는 직선 농로를 따라 이리 돌고 저리 돌아 팔봉수로로 이어간다.
팔봉수로 서쪽 태안읍 도내리 지역에 나즈막한 산이 있는데 이 산을 파명당산(破明堂山)이라 이르는데, 그 유래가 흥미롭다. 옛날 태안의 부자가 부친상을 당하여 이곳 명당에 묘자리를 잡았다. 일꾼들이 묘자리를 2자 정도 파니 암반이 나오자 큰상주는 지관이 알려준 대로 중지하라고 지시하였으나, 작은상주가 와서 더 파라고 재촉하였다. 일꾼들이 암반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 바위 밑에서 봉황 한쌍이 날아올라, 수컷은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 밑으로 날아가 앉았고, 암컷은 서산시 해미면 가야산 밑에 가서 앉았다. 그래서 수컷이 앉은 곳을 봉락리(鳳落里), 암컷이 앉은 곳을 황락리(凰落里)라 부른다고 한다. 결국 이곳 명당은 파괴된 파명당산(破明堂山)이 되고, 서산시 도비산과 가야산이 명당이 되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산 동쪽 자락에 안치하여 아들이 왕이 되었던 것일까? 우스운 일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태안군과 작별한다. 동서트레일 1~4구간은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여, 태안군 안면읍, 남면, 태안읍 지역을 통과하여 태안읍 도내리에서 팔봉수로를 건너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로 넘어간다. 서해랑길과 태안해변길을 탐방한 덕에 동서트레일 태안 탐방이 더욱 풍요했다. 태안, 아름답다. 더 머물고 싶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찾아야 한다. 팔봉수로 다리에서 남쪽의 굴포운하지와 천수만 방향 그리고 북쪽의 솔감저수지와 가로림만 방향을 살핀다. 지금은 천수만 제방에 의해 간월호와 부남호, 인공호수 2개가 생겨나 바닷물 유입이 끊겼고, 솔감저수지 제방에 의해 가로림만 바다는 막혀 있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팔봉수로 일대는 가로림만 바닷물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산시 팔봉면 어송3리 마을은 창포(倉浦)마을, 주민들은 창개(倉浦)라고 부른다.
창개(倉浦) 지명은 이곳에 조세창고 영풍창(永豊倉)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곡(稅穀)을 운반하는 조운선이 안흥량(安興梁)의 험로를 피해서 천수만에서 육로를 통해 세곡미를 창개마을 영풍창에 적치하였다가 가로림만 창개(倉浦)에서 세곡선을 통해 개경으로 보냈다. 고려 정종 때에 세곡(稅穀)의 안전한 운반을 위하여 전국에 13창을 설치하였는데, 영풍창(永豊倉)도 그 중의 한 곳이다. 당시 군수급에 해당하는 판관(判官)이 세곡창을 관리하기 위하여 이곳에 주재하였고, 그 밑에 많은 아전과 뱃사람들이 배치되었던 곳으로, 조선 시대 이곳은 영풍창면이라 불렸다고 한다.
가로림만 바다 위를 걷고 있는 환상에 젖는다. 창개 주막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세곡선을 비롯하여 고깃배들이 출항을 기다린다. 가로림만 바닷물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도비산 봉수대에서 봉수가 오르자 세곡선은 개경을 향하여 돛을 올린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바다를 건너 산골짜기로 올라왔다. 금바양골에 선원들의 숙소가 있었을까? 팔봉산 남쪽에 창포마을이 자리하고 남평 문씨 문중 묘지 세장천이 있다. 이 지역에서는 문씨를 창개 문씨라 이른다고 한다.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대한민국 야구를 8강에 끌어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타점왕에 오른 문보경 선수의 혈통이 창개마을이라고 한다.
팔봉산주차장 출입로에 자리한 창포가든에서 돌솥밥을 먹었다. 걸어온 길들이 눈앞에 그려지며 거꾸로도 걸어보라고 한다. 걷지 못한 장군산과 물래산, 인평저수지와 굴포운하지를 가보라고도 한다. 내 마음의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간다. 천수만으로, 가로림만으로 먼 길을 날아 날아간다. 나비 날개에 피어나는 무지개꽃!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4.7km
전체 탐방 시간 : 5시간 32분
붉은재의 오석산 북쪽 나들목에서 걸어온 산길을 뒤돌아보았다. 오른쪽 옆에 동서트레일 오석산간이대피소가 있다.
붉은재에서 오얏길을 따라 태안읍 도내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태안읍 도내리 도일목장 출입구에서 팔봉산을 올려보았다. 중앙에 3봉, 맨 오른쪽에 8봉이 보인다.
도내리 들녘에 인삼밭이 넓게 펼쳐지고, 왼쪽 뒤에 팔봉산이 솟아 있다. 최고봉 3봉과 오른쪽의 8봉, 중앙 뒤에 금강산이 가늠된다.
인삼밭 앞에서 팔봉산을 줌으로 당겨보았다. 왼쪽에 1봉과 2봉, 우뚝 솟은 최고봉인 3봉, 그 오른쪽으로 4봉~8봉이 이어진다.
오얏길 남쪽에도 인삼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오얏길 북쪽 태안읍 도내리 들녘의 밭에서 트레킹 회원 아낙들이 냉이를 캐고 있다.
붉은재에서 오얏길을 따라 길 양쪽의 인삼밭을 거쳐왔다. 왼쪽 뒤에 오석산의 쌍동이봉 160.9m 산봉이 보인다.
태안읍 도내1리 창평(倉坪)들에 창들마을이 자리하며 왼쪽에 은혜교회가 보인다. 오른쪽에 오석산의 쌍동이봉 160.9m 산봉, 왼쪽 맨 뒤에 태안읍 상옥리 흥주산이 살짝 보인다. "창들마을 : 창벌, 창평倉坪. 붉은재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도리내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며 고려로부터 조선 때까지 나라의 조세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유래된 이름."(태안군지)
태안읍 도내1리 창평(倉坪)들에 창들마을이 자리하고, 왼쪽에 상도로가 달리고 맨 왼에 도내리보건진료소와 도내1리 경로당이 자리한다. 중앙 왼쪽 뒤에 태안읍 인평리의 무소산(무쇠산), 오른쪽 맨 뒤에 상옥리의 흥주산이 보인다.
태안읍 상옥리와 도내리를 이어주는 상도로가 달리고 그 동쪽에 도내리보건진료소와 도내1리 경로당이 자리한다.
상도로가 태안읍 도내2리 북창마을을 지나 북쪽 가로림만 방향으로 달리며 오른쪽 뒤에 서산의 팔봉산이 보인다. "북창(말)北倉[마을] : 창들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 세곡稅穀을 저장하던 창고가 있었는데, 북쪽에 있는 창고라 하여 붙여졌으며, 안민창의 남쪽(남창)은 평천3리에 있었고 창평의 북쪽이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다."(태안군지)
상도로를 가로질러 도내3길을 따라 벌석골 들녘을 지나간다. 남산골은 도내3길 북쪽에 있고, 중앙 오른쪽 뒤에 도비산이 가늠된다.
도내리島內里는 본래 태안군 동일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창리上倉里·북창리北倉里·창평리倉坪里의 일부를 도내리에 병합하여 그대로 서산군 태안면에 편입시켰다. 그 뒤 1973년 7월 1일부로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도내리는 다시 태안읍의 관할 지역이 되었는데,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써 도내리는 다시 태안군의 태안읍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봉면 호리의 구도(舊島) 안쪽이 되므로 도내島內라 하였다. - 태안군지
오얏길을 따라 창평들을 지나 상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도내3길로 들어왔다. 왼쪽 뒤에 오석산 쌍동이봉 160.9m 산봉이 보인다.
도내3길에서 중앙 오른쪽 맨 뒤 서산의 도비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도비산 양쪽에 천수만의 간월호(왼쪽)와 부남호가 있다.
전신주 뒤 왼쪽에 도내리보건진료소, 그 오른쪽 뒤에 창들마을, 맨 오른쪽에 오석산 쌍동이봉, 왼쪽 맨 뒤에 흥주산이 보인다.
도내1리 중말 버스정류장을 지나 창평 중앙에 있는 마을 '중말'을 지나간다.
앞쪽에 도내1리 소한말 버스정류장이 있고 소한말(마을)이 자리하며, 뒤쪽 인평저수지 북쪽에 굴포운하지(掘浦運河址)가 있다. 천수만(淺水灣)과 가로림만(加露林灣)을 연결하려던 굴포운하는 530여 년간 굴착하다가 미완공한 세계 최초의 운하 건설지라고 한다.
굴포(掘浦)의 유래(由來) : 굴포(掘浦)란 판개를 말하는 것으로 운하(運河)란 뜻이다. 그러나 굴포(掘浦)란 판개라거나 운하(運河)란 뜻보다는 지명(地名)이 되었으므로 굴포운하(掘浦運河)라 한다. 이 굴포운하(掘浦運河) 개착의 필요성은 고려(高麗) 재정의 기본이 되는 전체 세곡미(稅穀米) 40만석 중 개경(開京)으로 보내야 하는 약 30만석이 충청·전라·경상도 등 삼남에서 올라오는 안흥량 관장항(關丈項)의 암초(800m)로 번번이 조운선이 난파되는 절체절명의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고려 제17대 인종 12년(1134) 내시(內侍) 정습명(鄭襲明)을 보내어 군정(軍丁) 수천 명을 동원 약 17리(7Km) 정도의 인공수로를 만들어 조운(漕運)에 안전을 기하려 운하의 개착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4Km 정도는 수로를 만들었다가 3Km는 암반에 부딪쳐 실패했다. 그후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공양왕 3년(1391)에 당시 실권자였던 이성계는 조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종실(宗室) 왕강(王康)으로 당시 개착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다시 실패하였다.
조선조가 개국(開國)되면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다시 최유경(崔有慶), 남은(南誾) 등을 파견하여 타당성을 조사하였다. 제3대 태종 12년(1412) 하륜(河崙)의 발의로 개착공사는 다시 시작된다. 이는 태종 3년(1403) 34척, 태종 14년(1414)에 66척의 조운선(漕運船)이 안흥량에서 암초에 대파되는 일이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 같다. 태종 16년(1416) 2월에는 태종이 세자 충령대군(뒤에 세종)과 같이 태안에 강무장(講武場)을 설치, 이곳을 방문하는데 굴포운하 공사를 직접 살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도 암반의 어려움이 있자 하륜의 건의로 5개의 저수지를 만들어 일단은 개통시켰다. 그러나 옮기고 옮겨 싣는 어려움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세조 7년(1461) 신숙주(申叔舟)의 건의로 굴착공사가 추진되어 3년간 계속된 일이 있고, 제11대 중종 16년(1521)에 다시 타당성을 검토한 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중지되었으며, 제18대 현종(1660~1674) 때에도 굴포 개착이 건의된 일이 있었다. 이때 설창안(設倉案)이 채택되어 남쪽 태안읍 평천리 쪽과 북편 태안읍 도내리에 각각 20평씩 40평의 창고(倉庫)를 시설 안면창(安眠倉)이라 하고 삼남(三南)에서 올라오는 세곡을 일단 남쪽 창(南倉)에 내려서 육로로 북창에 옮기며 그곳에서 서울로 조운(漕運)하는 방법을 택하였으나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현재 뚜렷이 남아 있는 운하지(運河址)는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와 태안군 인평리 경계 지점에 남아 있는 약 1Km 정도의 옛 저수지식(갑문식) 운하지인데 이는 수에즈 운하(1869)와 파나마운하(1914)보다는 약 500년이 앞서는 것이며 우리나라 거대 토목공사(巨大土木工事)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적지이다. 굴포운하지(掘浦運河址)와 접한 팔봉면 진장리에 1416년대 굴포운하 개착 당시 태안군 관아지였던 순성지(蓴城址)가 있다. - 안내판
도내리 들녘 서쪽에 해발 169m 오석산과 그 오른쪽 오석산의 쌍동이 해발160.9m봉이 보인다.
태안읍 도내리 들녘 너머로 중앙 뒤에 태안읍 상옥리 흥주산이 보인다.
도내리 들녘 뒤쪽에 인평리 마을이 자리하고 중앙에 무소산(무쇠산)이 솟아 있고, 오른쪽 뒤에 흥주산이 보인다.
도내3길 소한말 버스정류소 앞에서 왼쪽 도내2길로 이어간다. 소한말은 솥안말이 변한 말 같다. "솥안말[마을] : 창평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소나무가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태안군지)
도내3길에서 도내2길로 진입하여 도내2길을 계속 따라간다. 중앙 오른쪽 전신주 뒤 금강산, 오른쪽 뒤 장군산울 어림한다.
동서트레일은 도내2길을 따라 마늘밭을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으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팔봉산 최고봉인 3봉이 솟아 있고, 그 오른쪽으로 4봉~8봉이 이어지며, 오른쪽 전신주 왼쪽 뒤 금강산과 전신주 오른쪽 뒤 장군산을 어림한다.
도내2길은 앞의 동서트레일 이정목에서 왼쪽으로 꺾어 이어진다. 중앙에 팔봉산의 3봉~8봉이 이어진다.
동서트레일은 도내2길을 따라 짚을 덮어놓은 밭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 뒤쪽 구릉지 능선 아래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팔봉산주차장 2.9km 지점, 도내2길을 따라 왼쪽으로 이어간다. 이정목 왼쪽 뒤에 금강산, 그 오른쪽 뒤에 장군산을 어림한다.
도내3길을 따라 도내리 들녘을 통과하여 도내3길에서 왼쪽 도내2길을 따라왔다. 왼쪽 뒤에 무소산, 중앙 뒤에 흥주산이 가늠된다.
오른쪽 도내2길을 따라 도내1리 중말을 지나간다. 중앙 왼쪽 뒤 오석산과 그 오른쪽 오석산 쌍동이봉이 가늠된다.
도내2길은 바로 앞쪽 구릉지 아래를 오른쪽으로 돌아 들녘으로 나가며, 구릉지의 묘지 몇 곳은 모두 소주 가씨(蘇州賈氏) 문중 묘이다. 중앙에 팔봉산 최고봉인 3봉에서 8봉까지 이어진다.
팔봉산주차장 2.7km, 중말을 돌아서 도내2길을 따라 구릉지 출입구와 그 옆 소주 가씨(蘇州賈氏) 묘지를 지나간다.
구릉지 아래 태안읍 도내리 도내2길을 따라 내려가 왼쪽으로 돌아 들녘으로 나간다.
소주 가씨(蘇州賈氏) 균파 제단이 있고, 가충민씨와 그의 부인 전주 이씨 합장묘 등의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난다.
언덕 위 팔봉산주차장 2.9km 지점의 동서트레일 이정목에서 오른쪽 중말을 통과해 구릉지 아래로 내려왔다.
도내2길을 따라 중말을 통과해 구릉지 아래로 내려와 소주 가씨(蘇州賈氏) 문중 묘지 2곳을 통과해 내려왔다.
구릉지 맨 끝 언덕에 규모가 가장 큰 소주 가씨(蘇州賈氏) 문중 묘지가 있다. 구릉지를 오른쪽으로 돌아 들녘으로 나간다.
구릉지 맨 끝 언덕의 소주 가씨(蘇州賈氏) 묘지에서 가주림(賈琳)씨와 부인 동래 정씨의 합장묘비를 당겨보았다.
소주 가씨(蘇州賈氏)는 한국의 성씨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명나라 장수 가유약(賈維鑰)을 시조로 삼는다. 시조 가유약(賈維鑰)은 명나라 병부상서 계요도찰사(薊遼都察使)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를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안주(安州) 등지에서 왜군과 싸워 공을 세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유격장군(遊擊將軍)인 아들 가상(賈祥)과 병부종사관(兵部從事官)인 손자 가침(賈琛)을 데리고 다시 조선에 와 소사(素沙), 남원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1600년 부산 포구 전투에서 아들 가상과 함께 전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손자 가침이 이들의 시신을 거두어 울산 서생진(西生鎭) 도독동(都督洞)에 묻었다. 이후 가침은 조선에서 안동 권씨 권순의 딸과 혼인하여 울산에서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렸다. 후손들이 가유약의 출신지인 장쑤성 쑤저우(소주, 蘇州)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가침이 1647년(인조24) 죽은 뒤 가성(賈晟), 가호(賈昊), 가병(賈昺), 가수(賈遂) 네 아들이 충청도 태안으로 터를 옮겨 정착했다고 한다. 1851년(철종2) 3대의 충효를 기리는 숭의사(崇義祠)와 정문이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에 세워졌는데, 가씨들은 이후 태안을 중심으로 충효의 가통을 이어왔다. 14세손 가행건(賈行健)은 조선 헌종 때 충청도 안흥양진의 수군병마첨절제사를 지냈고 그의 아들 가일영(賈日永)은 철종 때 울진현령에 올랐다. 가중영(賈中永)은 충량과에 장원급제하고 고종 때 가선대부를 역임했다. 가익건(賈翊健)은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점령 때 의병을 일으켰고, 가정로(賈廷魯)는 구한말의 청백리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일제시대 독립 운동가로는 가재창, 가재연이 있다. - 위키백과
구릉지를 돌아나가면 태안읍 도내리 들녘과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들녘이 펼쳐지고, 뒤쪽에 팔봉산의 3봉~8봉이 이어진다.
건너편에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들녘이 펼쳐지고, 왼쪽 뒤 장군산에서 중앙 뒤 물래산으로 금북정맥이 이어진다.
태안읍 도내리 들녘에서 농부들이 마늘 농사를 짓고 있으며, 건너편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지역이다. 중앙 뒤 금강산, 오른쪽 뒤 장군산, 왼쪽 팔봉산의 4봉~ 8봉을 가늠한다.
도내2길을 따라 왼쪽 농가들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간다. 농부들이 들녘에서 마늘 농사를 짓고, 오른쪽 뒤에 팔봉산이 최고봉인 3봉에서 8봉까지 이어진다.
팔봉산주차장 2.3km 지점, 태안읍 도내리 농가 앞에서 들녘의 농로인 도내2길을 따라 삼거리로 이어간다.
팔봉산주차장 2.2km 지점, 농가 앞 전신주에서 도내2길을 따라 삼거리로 와서 왼쪽으로 이어간다. 정면 뒤의 팔봉산이 최고봉인 3봉에서 8봉으로 이어지고, 맨 오른쪽 뒤에 금강산이 보인다.
왼쪽 뒤 구릉지를 돌아 들녘으로 나와 태안읍 도내리 들녘의 농로 도내2길을 따라 농가들을 지나 삼거리로 왔다.
팔봉산주차장 2.2km 지점의 삼거리에서 서쪽 폐농가가 있는 삼거리로 이어간다. 왼쪽 산은 파명당산이라 이르는 듯.
파명당破明堂[산] : 옛날 태안의 부자가 부친상을 당하여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명지관을 불러 잡은 묘자리인데, 일꾼들이 묘자리를 파는데, 깊이 2자 정도 들어가니 암반이 나와 상주에게 알리자 큰상주가 지관이 말하길 파다가 바위가 나오면 절대 더 이상 파지 말라고 말하였다고 그만 팔 것을 지시하였음. 그러나 작은상주가 와서 보고 너무 얕으니 더 파라고 재촉하여 일꾼들이 암반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 바위 밑에서 봉황 한쌍이 날아 올랐음. 수컷은 서산시 부석면의 도비산 밑으로 날아가 앉았고, 암컷은 서산시 해미면 가야산 밑에 가서 앉았다고 함. 지금도 수컷이 앉은 곳을 봉락리鳳落里라 부르고, 암컷이 앉은 곳을 황락리凰落里라 부름. - 태안군지
태안읍 도내리 파명당산 북쪽 자락에 폐농가 한 채가 있다.
태안읍 도내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 팔봉수로 둑방으로 나간다. 팔봉산의 3봉~8봉이 이어지고, 중앙 오른쪽 뒤 금강산, 오른쪽 뒤 장군산이 가늠된다. 건너편은 서산시 팔봉면 어송3리 지역으로 왼쪽에 레미콘 공장 서인산업 건물이 보인다.
농로에서 태안읍 도내리 들녘과 건너편 팔봉산 남쪽의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지역을 살폈다. 오른쪽 뒤에 팔봉산 3봉~6봉이 이어진다.
태안읍 도내리 들녘 오른쪽에 팔봉수로가 가로림만 솔감저수지로 이어지고 건너편은 서산시 팔봉면 어송1리 지역이다.
중앙 뒤 구릉지에서 들녘으로 나와 도내2길을 따라 오른쪽 뒤 농가와 맨 오른쪽 폐농가를 거쳐 팔봉수로 다리로 왔다.
팔봉수로는 솔감저수지와 교류하며 솔감저수지는 태안읍 도내리와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를 잇는 가로림만 둑방에 갇혀 있다.
팔봉수로 상류 방향을 올려본다. 왼쪽 뒤에 물래산, 그 오른쪽에 팔봉중학교와 그 서쪽에 굴포운하지가 있을 것이다.
굴포운하지(掘浦運河址)는 가로림만 상류인 팔봉면 어송리(팔봉중학고 뒤편)와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흥인천(태안군 인평리, 현재 인평저수지) 사이의 좁은 목 약3km를 굴착하여 수로로 연결하고자 한 곳이다. 굴포운하를 개착하게 된 요인은 삼남지방의 세곡미를 개성으로 조운할 때 조운선단이 태안반도의 안흥량 관장항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안흥량은 서해안상에 돌출되어 있고 암초가 많으며, 급한 조류로 번번이 조운선이 전복되고 파선되어 재정손실이 컸다. 그로 인해 세곡미의 안전수송과 조운에 따른 지리적·시간적 거리(연안 약817km)를 단축시키려고 지금의 굴포운하 개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 운하는 고려 인종12년(1134년)부터 굴포를 개착하여 조선 중기 임진왜란 직전까지 400여 년간 수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암반과 조수에 밀리는 토사 등으로 인해 중단 실패하였다. 그후 세곡미 수송을 위하여 조선 현종(1668) 때에는 굴포개착지 주변에 많은 조창들을 설치하여 남쪽에서 올라오는 세곡미를 태안 평천 쪽에 창고(남창)을 지어 보관하다가 육로로 팔봉 어송리 창고(북창)에 이송하고 이곳에서 다시 선편으로 개성까지 운송하였다. 이 설창육송안(設倉陸送案)이 당분간 지속되면서 많은 촌락이 발생,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있는 흔적은 팔봉면 진장리와 태안군 도내리 경계 지점 약1km 정도이며 이 굴포운하가 성공했으면 서산과 태안의 역사가 지금과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였을 것으로 본다. - 안내판
태안읍 도내리 팔봉수로 남안(南岸)에서 수로의 다리를 건너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팔봉수로 북안(北岸)으로 넘어왔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들녘이 펼쳐지고, 맨 왼쪽 뒤에 팔봉산 7봉과 8봉, 중앙 뒤에 금강산, 오른쪽 뒤에 장군산이 보인다.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는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어은동(漁隱洞)의 ‘漁’자와 송치리의 ‘松’자를 따서 어송리(漁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어은동리(漁隱洞里), 정자리(亭子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어은동, 졍자동[亭子洞], 솔티[松峙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송치리, 어은동, 정자동을 합쳐 어송리라 하고 서산군 팔봉면에 속하게 하였다. 1995년 서산군과 서산시가 통합됨에 따라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가 되었다. 동쪽은 팔봉산 줄기가 남쪽과 북쪽으로 흐르며 이웃 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쪽으로는 서해의 가로림만이 내륙 깊숙이 만입하여 솔감저수지를 만들고 있다. 마을은 팔봉산 서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고, 그 앞으로 솔감저수지 물길을 따라 평야 지대가 북서쪽으로 전개되어 있다. 예전에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인공 운하를 굴착했던 굴포운하 터가 있는데, 이는 이곳의 입지 조건상 북쪽의 가로림만과 남쪽의 천수만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어송리는 팔봉면의 소재지로 어은·솔티·정자동·마루들·창개 등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공공 기관으로 팔봉파출소와 팔봉면 복지회관 등이 있으며, 교육 기관으로 팔봉중학교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팔봉산주차장 1.6km 지점, 팔봉수로 북쪽 둑방에서 어송수로 둑방을 따라 어송3리 마을로 올라간다.
어송수로가 팔봉수로와 교류하는 어송수로 다리를 건너 어송수로 남쪽 둑방으로 올라와 뒤돌아보았다.
어송수로 남쪽 둑방에서 수로의 다리를 건너 북쪽 둑방으로 넘어간다.
팔봉수로 북쪽 둑방에서 어송수로 남쪽 둑방으로 넘어와 남쪽 둑방을 따라 올라와 수로의 다리를 건너 북쪽 둑방으로 넘어왔다. 오른쪽 뒤에 태안읍 도내리 파명당산(破明堂山), 중앙 뒤에 태안읍 상옥리 흥주산이 보인다.
어송수로 북쪽 둑방 어송2길을 따라 어송3리 마을로 올라간다.
건너편 태안읍 도내리에서 팔봉수로를 건너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로 넘어와 어송수로 둑방 어송2길을 따라 올라왔다. 중앙 왼쪽 맨 뒤에 태안읍 인평리의 무소산, 중앙 오른쪽 맨 뒤에 태안읍 상옥리 흥주산이 확인된다.
어송수로 북쪽 둑방 어송2길을 따라 금바양골로 올라간다.
농가 출입구에 걸린 '보고싶은 미소네' 현판 한쪽 끝이 떨어져 있다. 미소네 위쪽 골짜기를 금바양골이라 이르는 듯.
어송2길 사거리에서 어송수로의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팔봉산은 팔봉면의 이름을 유래하였다.
팔봉산주차장 1.0km 지점, 어송2길 사거리에서 어송수로의 다리를 건너 어송2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어송수로의 북쪽 둑방 어송2길을 따라 '보고싶은 미소네' 농가 출입구 앞을 지나 수로의 다리를 건넌다.
수로의 다리를 건너 어송2길 언덕을 오르다가 북동쪽에 솟은 팔봉산 3봉~8봉 능선을 다시 바라본다.
어송2길 언덕에서 뒤돌아본다. 어송수로의 다리 건너편 서산시 팔봉면 어송3리 골짜기를 금바양골이라 이르는 것 같다.
어송2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 전신주가 있는 어송2길 삼거리에서 왼쪽 어송2길을 따라간다.
팔봉산주차장 0.9km 지점, 어송2길 삼거리 마늘밭 전신주에 동서트레일 이정표가 붙어 있다.
어송2길에서 지나온 어송2길 삼거리를 뒤돌아보았다. 오른쪽 어송2길 언덕을 넘어 어송2길 삼거리에서 이곳으로 왔다.
어송2길을 따라 팔봉1로 나간다. 건너편에 어송3리 창포마을이 자리하며 맨 뒤에 팔봉산 3봉~8봉 능선이 이어진다.
팔봉1로가 지나고 건너편에 어송3리 창포마을 표석이 있다. 어송2길에서 나가 팔봉1로를 오른쪽으로 따라간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3리 창개(倉浦)마을은 동북쪽으로는 팔봉산을 등지고, 마을 앞으로는 가로림만의 가장 깊숙한 포구에 자리한다. ‘창개[倉浦]’라는 지명은 고려 전기[정종 때]에 세곡(稅穀)의 안전한 운반을 위하여 전국에 13창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에 영풍창(永豊倉)이 자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영풍창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안흥량(安興梁)[난행량(難行梁)]의 험로를 피하기 위하여 적치하였다가 개경으로 보냈는데, 당시 군수급에 해당하는 판관(判官)의 직위를 가진 벼슬아치가 창을 관리하기 위하여 이곳에 주재하였다. 따라서 그 밑에는 많은 아전과 뱃사람들이 배치되었던 곳으로, 조선 시대 영풍창면이라는 면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팔봉1로를 따라 어송3리 정류소를 지나 창포가든 삼거리로 이어간다.
팔봉1로 창포가든 삼거리에서 왼쪽 어송4길을 따라 팔봉산주차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삼거리에 창포가든이 자리한다.
팔봉산주차장 0.6km 지점, 창포가든 삼거리의 어송4길 출입구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중앙 뒤에 팔봉산 능선이 이어진다.
창포가든 삼거리의 창포가든에서 15,000원 돌솥밥을 먹었다. 14:25~14:57
어송3리 버스정류소에서 팔봉1로를 따라 창포가든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오른쪽 팔봉산주차장 방향 어송4길을 따라간다.
창포가든 삼거리에서 어송4길을 따라 팔봉산주차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팔봉산 남쪽 자락 대나무숲에 남평 문씨 가문의 묘역인 남평(南平) 문씨(文氏) 세장천(世葬阡)이 조성되어 있다.
어송4길의 남평 문씨 가문의 묘역 출입구에 남평(南平) 문씨(文氏) 세장천비(世葬阡碑)가 서 있다.
어송4길을 따라 팔봉산주차장으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금강산, 오른쪽 뒤에 장군산이 보인다.
어송4길 왼쪽에 빈티지 소품&커피를 판매하는 '시간줍기' 가게가 있고, 왼쪽 뒤에 팔봉산의 8봉이 보인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팔봉산주차장 서쪽 출입구 북쪽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어송리 팔봉산주차장 서쪽 출입구 남쪽에 동서트레일 4구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동서트레일 4구간은 태안읍에서 백화산을 넘어 흥주사로 이어지는 숲길을 지나 오석산을 거쳐 태안과 서산의 경계인 어송리 및 팔봉산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구간입니다. 태안의 진산인 백화산을 비롯해 상옥리의 삼층석탑, 만세루 및 천연기념물 제156호 은행나무 등이 있는 고려시대 고찰 흥주사와 초가집 형태의 고택인 가영현 가옥, 도내리의 파명당산 등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구간입니다."(안내판)
어송리 팔봉산주차장 서쪽 출입구 북쪽에 동서트레일 이정목, 남쪽에 동서트레일 4구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어송리 팔봉산주차장에서 중앙의 팔봉산 7봉과 그 오른쪽 8봉을 확인한다.
어송리 팔봉산주차장 동쪽 출입구 북쪽에 대성쉼터식당이 있고, 남쪽에 서산시 관광안내도와 팔봉산 등산로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동서트레일 5구간은 동쪽 출입구로 나가 북쪽 서태사와 팔봉산 8봉 방향으로 어송5길을 따라간다.
팔봉산주차장 동쪽 출입구 남쪽에 서산9경과 서산시 관광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서산 9경(1경 해미읍성 2경 마애여래삼존상 3경 간월암 4경 개심사 5경 팔봉산 6경 가야산 7경 황금산 8경 서산 한우목장 9경 삼길포항)을 사진과 간략한 설명글로 소개하였다.
서산9경과 서산시 관광안내도 오른쪽에 팔봉산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어송리 팔봉산주차장 화장실 옆 먼지털이기구 앞에 팔봉산 등산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앞쪽은 어송3리 함지골인 듯.
어송리 팔봉산주차장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본다. 서쪽 출입구 양쪽에 동서트레일 이정목과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