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시스템" 사회주의국가( 소련)에서 본 받을수 있는 것 발견 사례●
[스로스로 간병인 제도와 자기병 치료사 제도]
==== 88서울 올림픽 때 매달순위를 살펴보면
1위 소련. 2위 동독. 3위 미국. 4위 한국, 일본과 중국은 10위 바깥 이었다.
소련 최고의 메달리스트 넬리 김이 체조 부분 감독이었고 고려인 출신 선수들 다수가 금. 은. 동메달을 10여개나 땄다.
당시 한국인에게 고려인 이라는 용어가 낯설었다.
여기에 소련수상 고르바쵸프 의 뻥 같은 한마디가
소련연방 전체 고려인들을 열광시켰다.
"내가 영상을 보니 유지노 까레이스키( 한국)가 야뽄스키( 일본)보다 휠씬 잘 사는 것 같다"
이후 소련 본토와 우즈베키스탄 과 카자흐스탄 사할린 등 여러곳에서 남조선 일가친척 찾는 붐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
88년 2월 당시 이름도 다소 생소한 " 월간: 상업농경영 " 이라는 잡지를 창간했고 국내는 동내 리장들에게, 해외에는 각국의 주재 한국대사관에 2권씩 , 특히 미국에는 뉴욕의 청과상조회 에는 1,300권씩을 보냈다.
이듬해인 89년 5월 청과상조회 로부터 스위스 브뤼셀의 [ Agro-Press] 에서 분기마다 발행하는 세계적 유명 농산물 무역잡지 "FRUIT-WORLD" 을 소개받고 책속에서 대통령이 된 고르바쵸프 는 소련전역 의 유리온실(농장당 평균 실내면적 2만3천평) 1,700여곳에 겨울철에 연료비 가장 적게 들고 수확량 많은 작부설계도 응모를 공고했고 나는 1등를 했다.
이유는 영어가 엉망이라서 작부체계 설계를 전부 사진과 그림으로 한 것이 호감을 얻은 것이라는 심사위원들 설명이였고 고르바쵸프 대통령도 만난다고 했다
정부는 북방 사회주의 국가 방문이라는 큼직한 도장을 여권에 찍어주었고 일본 니카타 경유~ 하바롭스크 ~ 노보시비르스크~ 경유하여 유명한 백색의 도시 비스크( 핵무기 제조와 연구단지) 외곽의 초 현대 유리온실에서 고르바쵸프 만났어나 눈도장 찍고 악수는 못했어나 때거리로 몰린 군중들과 같이 사진만 찍었다.
다음 방문지는 소련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은퇴 노인들 요양소 였다.
☆ 스로스로 간병인
통역으로 나온 사람은 소련 최고의 법학관 이라는 노보시비르스크 검찰청 차장인 오태석박사와 그의 부인 타치아나 오가이여사 다.
오박사 부부는 며칠전 남조선 유명 원예학자가 그린하우스방문 한다는 언론의 뉴스 보고 자청했다고 했다 1947년생 부부는 태어나서 남조선 사람 처음 보았다 면서 여권 보여 주었드니 신기해 하였다.
유리온실 이웃에 있는 64세 이상의 요양원에는 간호사와 의사만 있고 간병인으로 가족은 출입단속,
노인들 서로가 모자라는 부분을 체워주는 서로간병제도, 동병상린과 상호협조 특히 치매환자들은 팔 다리가 한쪽씩 없는 군인 출신들이 휠체어 타고 치매환자와 같이 유리온실 을 거닐면서 대화하는 것이 지금도 눈에 훤히 보인다.
다시말해 환자끼리 서로 보안하는 식의 '과부사정 홀애비가 안다' 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한국 의 요양병원 과 종교단체 그리고 무허가 요양원등 이 난무하고 간병인 100만명 시대에 중국출신 간병인이 무려 50만명에, 요양 노인들이 간병인 에게 폭행당한다는 뉴스보도를 보고 문득 늦게라도 이내용을 알려야 겠다는 심정으로 쓰고 있다.
===김해 삼방동은 집성촌으로 뒷동산에서 시제 뫼실때 7촌이상 사람들은 수두룩했다.
9촌 아재뻘 되는 사람이 젊은 나이에 喪妻하고 1937년에 사할린 에 광부로 지원해 갔다는 소문은 들었다.
이사람은 그곳에서 결혼하여 이듬해 아들을 낳았고 아들 도 23세에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사할린에서 손자를 본 셈이다.
죽기전에 시멘트 푸대 종이에 집안 족보를 자세히 그려 손자에게 맏겼고 좋은 세상 오면 귀향하라고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88올림픽 이후 남조선 사람들이 간혹 극동러시아 방문 할때 일본에서 1주일에 한번 왕래하는 항공노선의 1차관문인 하바롭스크 를 경유하는 것과 외국인 은 반드시 아무르강 옆에 있는 외숙인 전용 인투어리스트 호텔에 머문다는 사실은 알아낸 손자는 매주 같은 시간에 호텔 담벽 계단에서 가로 세로 1미터가 족히 될 것같은 합판에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한국에서 온 손님을 찾는 다는 글귀를 들고 앉아 있어 호텔 종업인들에게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호텔측에서도 절대 괄시 못하는 극동러시아 지역에서 최고의 콩팥질환 명의로 명성이 자자했다.
( 훗날 최규하 대통령도 나에게 조카되는 이사람 초빙하여 치료받았다)
1990년 4월 한.소수교 5개월 전 그날도 일본 니가타 경유 하바롭스크 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야간열차로 블라디보스톡 갈려는 여정에 호텔앞에서 이사람을 만났다.
10미터 앞에서 이사람을 본 순간 전기감전 처럼 온몸이 떨리는 충격을 받았다.
조카되는 이사람은 풀쩍 주져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 이고 지금도 귀신이 있다 고 믿고있다.
나와는 겨우 11촌 밖에 되질 않는데 어찌 전기가 통한단 말인가?
핏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일까 무서웠다 .
☆.자기병 치료사 제도
조카되는 이 사람은 국립 하바롭스크 의과 대학 집도의 와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내 외곽의 북한 벌목공 본부인 임업대표부에 벌목 때 다친 환자들도 치료 해주고 있었다.
조카는 자신의 진료실 관람시켜 주었다.
그날도 늦게 발견한 유방암 4기 환자를 두고 양방과 한방이 협진하는 담당의사 여러명과 유방암 4기 진단에서 치료하여 완쾌한 환자 5명이 왔고, 치료 받을 환자와 완쾌한 사람끼리 대화를 유도하고 있었다.
예컨데 치료 받을 환자와 성별이 같고 나이도 비슷하고 체격도 비슷하고 성장환경도 같은 완치한 사람들 5명으로부터 어떻게 치료 했는가를 환자가 직접 물어보고 선택토록 하는 것이였다.
5명의 완치방법은 제각각 이었다.
수술후 매일 성모마리아에게 기도했드니 나았다는 사람,
차가버섯을 매일 하루 3회씩 우려 마셨다는 사람,
수술후 부록코리 중심의 식이요법을 했드니 완쾌했다는 사람,
수술후 좋다는 음식 모두 찾아 먹었더니 나았다는 사람,
수술후 매일 광천수를 마시고 죽을 만들어 먹고 온천욕 하면서 생활하니 나았다는 사람,
결국 환자는 수술후 광천수 마시고 온천마을 에서 요양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바로 자기가 완치한 사례를 들려주고 환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사람, 바로 이들을 "자기병 치료사" 라고 했다.
훗날 조카에 물어니 예산부족으로 제도를 없에버렸다 고 했다.
그날 의료 상식이 없는 내가 느낀 것은 한방과 양방이 협진하는 것과, 환자에게 같은 병으로 치료 성공한 환자가 완쾌 사례들려 주어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2026년 음력 설날 을 앞두고.이병화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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