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합니다》
제8화 「복사기의 반란」
오전 8시 50분.
기획팀 사무실.
윤하늘은 프린터에서 출력된 회의 자료를 들고 복사실로 뛰어갔다.
오늘은 전사 회의가 있는 날.
참석 인원만 100명.
필요한 자료도 정확히 100부였다.
하늘은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좋아."
"오늘은 실수 없이 끝내자."
복사기 앞에 선 그녀는 자신 있게 버튼을 눌렀다.
삐익!
복사가 시작됐다.
첫 장.
둘째 장.
셋째 장.
종이가 빠르게 쏟아져 나왔다.
하늘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쉬운데?"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복사기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멈춰 버렸다.
화면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떴다.
「용지 걸림」
"..."
하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하필 지금?"
설명서를 펼쳐 들고 종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됐다!"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삐익!
잠시 후.
끼이익!
또 멈췄다.
"...또?"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종이가 구겨져 있었다.
하늘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때 복사실 문이 열렸다.
최인턴이 들어왔다.
"선배님, 다 끝났어요?"
하늘이 힘없이 웃었다.
"복사기가 오늘 출근하기 싫은가 봐."
최인턴도 버튼을 눌러 봤다.
복사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가 한번 볼게요."
괜히 이 버튼 저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삐삐삐삐!
경고음이 더 크게 울렸다.
화면에는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토너 부족」
두 사람은 동시에 화면을 바라봤다.
"..."
"..."
최인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이건 제가 한 건 아닌 것 같죠?"
하늘은 한숨을 쉬었다.
"응."
"원래 없었던 거였어."
오전 9시 25분.
회의까지 5분.
자료는 겨우 38부.
아직 62부가 부족했다.
하늘은 거의 울상이었다.
"어떡하지..."
그때 오대리가 복사실로 뛰어들어왔다.
"아직도 안 끝났어?"
"복사기가 파업했어요."
"오늘 같은 날?"
김부장이 상황을 보고는 말했다.
"옆 층 총무팀 복사기!"
"그걸 쓰자."
오대리와 최인턴은 남은 자료를 들고 전력 질주했다.
"엘리베이터 기다릴 시간 없어!"
"계단이다!"
세 사람은 계단을 뛰어올랐다.
오전 9시 28분.
총무팀 복사실.
다행히 복사기는 멀쩡했다.
"됐다!"
오대리가 복사 버튼을 눌렀다.
종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인턴은 한 장씩 정리했다.
하늘은 순서를 맞췄다.
마치 공장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오전 9시 30분.
회의실.
참석자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헐떡이며 자료를 한 부씩 나눠 주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마지막 한 부를 대표 앞에 놓는 순간.
회의실 문이 닫혔다.
간신히 시간 안이었다.
하늘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살았다...'
회의가 끝난 뒤.
강서준이 하늘을 불렀다.
"윤하늘 사원."
"...네."
'이제 혼나겠지.'
하늘은 조심조심 다가갔다.
강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복사기가 고장 난 상황에서도 회의를 지연시키지 않았습니다."
"잘 대처했습니다."
하늘은 의외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네?"
"토너는 미리 확인했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나 배웠으면 됐습니다."
"좋은 기획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좋은 기획자는 복사기와도 친해야 합니다."
잠시 정적.
오대리가 뒤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팀장님."
"복사기랑 친한 사람은 총무팀 아닙니까?"
순간 사무실에 웃음이 번졌다.
강서준도 아주 작게 미소를 지었다.
"기획팀은."
"모든 것과 친해야 합니다."
김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언 하나 또 나왔네."
그날 이후 기획팀에는 새로운 불문율이 생겼다.
회의 하루 전에는 반드시 토너를 확인한다.
그리고 윤하늘은 수첩 첫 장에 큼지막하게 적었다.
'기획자의 적은 마감이 아니라 복사기다.'
― 제9화 「회식이라는 이름의 시험」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