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금동 대향로
지금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국보 특별전으로 금동 대향로와 석조 사리감을 전시하고 있다 (96.6.3∼6.30)
다음과 같은 몇 줄의 글을 쓰는 것이 「금동 대향로」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국보에 대한 믿음에 큰 손상을 주는 일이 생긴 때인 만큼, 간략한 해명과 설명을 곁들여야겠다.
요즈음 말썽을 일으킨, 이른바 「귀함 별황자 총통(龜艦別黃字銃筒 ;거북선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총몸체)의 국보 지정경위는 이러하다.
귀함 별황자 총통은 골동품을 다루는 장사꾼이 구해 준 1992년 8월 통영시 한산도 앞바다에 빠드렸다가 건져내어, 마치 임진왜란 때 침몰된 것을 찾아낸 것처럼 꾸민 것이다.
당시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과 '이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장'이 짜고 꾸며낸 일로써, 그 해역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기에 철석 같이 믿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감히 그 사람들이 그런 거짓된 짓을 하리라고는 믿어 의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말을 믿고 15일만에 심사위원회에서 국보 제274호로 지정한 것이다.
여기에 비해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금동 대향로」와 288호로 지정된 「석조 사리감」은 출토지가 확실하고 발굴 경위가 분명하기 때문에 털끝만치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명백백한 백제 지역 절터에서 나온 유물이다.
충남 부여군 능산리에 있는 이 절터는 절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능산리 절터[陵山里寺址]」라고 부른다. 사적 제14호인 능산리 고분군(古墳群)과 도성(都城)을 방어하기 위한 부여 나성(扶餘羅城) 사이의 펑퍼짐한 골짜기에 있다. 이 유적에서는 예전부터 기와장이 발견된 곳으로 백제의 문화 유적을 중심으로 한 사적 공원 개발 계획에 따라 지난 1992년부터 국립 부여박물관이 연차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1993년 12월 12일 오후 5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 발굴하던 구덩이 안에서 향로의 뚜껑 일부, 용 다리, 구름 무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살얼음이 덮이는 상태라서 곧 들어내지 않을 수 없는 경우라, 차가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여나 다칠세라, 아기를 받아내듯이 조심스레 건져낸 것이 밤 12시. 그래서 국립부여박물관 김정완(金正完) 학예연구실장은
“ 12. 12. 12.는 잊지 못할 숫자가 됐다”
고 너털 웃음을 웃었다.
절 터의 구조는 남쪽에 중문과 회랑(비를 막고, 햇빛을 피하도록 본 채 옆으로 세운 긴 집채)을 세우고, 북으로 목탑, 금당, 강당이 차례로 세워진, 이른바 남북 일직선상의 단탑 일금당식(單塔一金堂式)으로, 백제 절의 일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당 동서에 마당을 띄어 두고, 남북으로 긴 회랑 터가 있는데, 서쪽 회랑 북편에 공방(工房) 터가 있다. 쇠붙이로 물건을 만들거나 유리 제품을 만들던 방인데, 3칸으로 된 중간 칸에서, 공방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던 구유 모양의 구덩이에 이 향로가 들어 있었다 한다.
김정완 학예연구실장은
“어떤 급박한 상황(백제의 멸망?)에 다달아 숨겨두기 위해 묻은 것으로 짐작된다.”
고 한다. 높이가 64cm나 되는데 대개의 향로가 20cm 안팎인 것과 비교해 유례가 없이 매우 크기 때문에 ‘대향로’이고, 청동으로 만든 뒤 수은 도말감법으로 도금을 했으므로 ‘금동’인지라, 국보 지정 명칭이 금동 대향로이다.
발굴 당시의 상태에서 보존 처리를 하여야 했으므로,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늦어졌고, 보다 정밀한 검사와 연구로 말미암아 1996년 5월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대향로는 뚜껑과 다리가 달린 몸체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로의 뚜껑 위에는 한 마리의 봉황새가 턱 밑에 여의주 구슬을 끼고 날개를 활짝 펴서 웅비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뚜껑에는 74 곳이나 되는 봉우리가 나타나 있다.
향불의 연기가 피어나오는 곳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산봉우리 뒤쪽에 구멍을 뚫어서 만들었는데, 처음 주조할 때 만든 것과 사용하다가 뚫은 것도 있었다.
산봉우리 가에는 겨울에 낙엽진 나무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산에는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 현실세계에 있는 호랑이, 사슴, 멧돼지, 코끼리, 원숭이 등 39 마리의 동물과 피리, 비파, 소, 현금, 북을 연주하는 다섯 사람[奏樂像], 산중의 신선 등 16 사람의 인물상이 표현되어 있다.
또 향로 몸체인 노신(爐身)을 싸고 있는 연꽃잎들에는 두 신선과 날개 달린 물고기를 비롯한 물속의 동물, 물 가의 생활과 관계 깊은 사슴과 학 등 26 마리의 동물이 표현되어 있어, 이 향로 전체에는 사람 모습이 18, 동물 65 마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 향로의 몸체를 이룬 박산(博山)은 중국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이상향인 삼신산(三神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한다.
또한 향로의 겉모양 꾸밈새는 연꽃이 만물을 상서로운 조화로서 탄생시킨다는 불교의 생성관인 연화화생(蓮華化生)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향로에 보이는 또 하나의 구성 원리는 음양의 원리다. 아래로부터 수중 동물, 즉 음(陰)의 대표격인 용을 등장시키고, 그 위 몸체에는 연꽃과 물 속의 생물, 물 가에 노니는 동물들을 나타냈고, 뚜껑에는 땅 위의 세상인 산과 짐승, 신선을 나타냈고, 하늘인 꼭대기 짬에는 봉황새와 원앙새를 배치했는데, 봉황은 양(陽)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 향로는 중국 향로의 형식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나, 조형성이 독특하고, 돋을 새김의 솜씨가 뛰어나, 오히려 중국 것을 뛰어넘는 탁월한 예술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백제가 도읍을 부여로 옮긴 뒤, 정치적 안정 속에서 문화를 꽃 피웠던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백제 사람들의 정신 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엉켜져 있는 백제 공예품의 알짜배기 알맹이인 것이다.
김성구 국립대구박물관장은
“우리 고장에 이런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이번 기회에 많은 사람들이 와 보시어, 마음에 즐거움을 느끼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라고 권고하는 바와 같이,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아닙니까? 백번 듣고 읽는 것보다 직접 한번 보시지요.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군요..스크랩해갈께요..^^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해주셔 감사합니다. 저희 세대는 친일사관에 의한 이병로라는 사람의 역사를 배운 것이 후회됩니다. 잘라는 아이들에게 바른 사관을 갖도록 힘쓰시는 선생님의 노고가 한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안스럽습니다만 자라는 아이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야 할 의무를 가지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