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해바라기는 유명하다. 그의 해바라기를 자세히 바라보노라면 그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그의 나머지 그림들에서 그를 느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들 모두 모두에는 그의 영혼과 더불어 함께하는 생명의 꿈틀거림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해바라기를 통해서 그를 더 쉽게 바라볼 수 있다. 아마도 그의 지독한 고독이 그 속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1. 꽃 병에 꽂힌 해바라기>
누군가가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하였다. 더불어 살면서 행복을 느끼지도 하지만 근본적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외로움을 더욱 심각하게 느끼는 이들 중의 한 부류가 예술가들이 아닐까 싶다. 예술가들 특히 화가들에게서 우리가 가지는 '괴팍함'이라고 하는 선입견은 실재로 그들의 외로움의 표출방식이라든가 또는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돌려 말한 것이다. 화가들에게 있어 그림 그리기는 숙명과도 같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순간 순간이 모두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순전한 거짓이다. 그림을 통해 자신이 보는 것을 표현하고 그 표현을 위해 기법을 발견하려 애쓰는 과정에서의 깊은 고뇌들을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고통이나 고뇌없이는 자신만의 그림들을 그릴 수 없다. 예술과 예술아닌 것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에 있는 것은 아닐지.
고흐는 글과 그림과 아이 낳는 일이 서로 비교될 수 있는 것이라면 같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글과 그림과 아이를 낳는 일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결고리들이다.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드러내며 미래를 내다보는 일들이 바로 그런 일들이다. 글도 그림도 탄생도. 그리고 그것은 모두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며, 누군가의 안내가 비록 필요할지라도 결국은 혼자서 해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그 고통의 정도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외로운지도 모르겠다. 고흐는 자신의 외로움을 사람으로부터 보상받으려 노력하는 듯했다. 사촌 케이를 사랑한 것도, 그리고 아이를 가진 시엔을 사랑한 것도 그리고 고갱에의 애정도 모두 외로움을 보상받기 위한 절실함에서 비롯된 것이지 싶다.
고흐는 사촌 케이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후에 괴로움의 시간을 보낸지 얼마되지 않아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그가 다시 사랑하게 된 여자는 보살핌이 필요한 여자였다. 아이를 가진 여자였고, 그 여자 역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경제적 궁핍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그러한 사랑마저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게 한다. 고흐는 그림을 팔고 싶어했지만,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을 사주지 않았다. 만일 고흐가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림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보는 눈으로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가 외로웠던 것은 자신이 보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은 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가 아무리 노력한 들, 그가 아무리 자신의 시선을 그린 세상을 보여주려 한들 세상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그의 작업실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다. 노란 바탕에 그린 해바라기 파란색 바탕에 그린 해바라기... 해바라기의 송이 수도 제각각이다. 그렇게 그는 해바라기를 그려댄다. 해바라기로 장식한 작업실에 고갱과 함께 지내기를 소망하면서. 해바라기의 꽃말을 염두에 두고 그리진 않았겠지만, 나는 해바라기의 꽃말이 '그리움'이며 그것이 고흐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간접적이면서도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고흐는 해바라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에게 주술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갱과 더불어 자신의 삶이 좀 더 활기차고 희망적일 수 있도록 거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갱이 떠난 후, 고흐에게 해바라기 두점을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했지만, 고흐는 거절하였다. 고갱을 위해 그린 것이지만 자신을 떠난 고갱에게 그 그림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해바라기는 그리움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고흐 자신이었다. 그리움의 방향과 희망을 잃어버린 듯, 고흐는 고갱과 헤어진 후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가 스스로 삶의 끈을 놓은 것은 더 이상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