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5일 ‘행8:1~25’ “복음이 전해지다”
1절~3절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 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스데반집사가 복음을 전하던 중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인 유대정파 사람들과 복음 논쟁이 시작되고 이일로 공회에 서게 되지요, 그리고 성난 유대인들에 의해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이일로 유대주의와 기독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충돌하며 예루살렘에는 공회에서 파견된 사울이라는 일행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시작됩니다. 교회를 잔멸하였다는 표현으로 말살하려했음을 봅니다. 사도 외에 많은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어떤 이는 다멕섹 등지로 흩어지게 되지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대로 오히려 흩어져야하는 고난 가운데 유대와 사마리아로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으며 복음전도의 놀라운 전기가 시작됩니다.
(히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사실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당해야 했고 이겨내야 했으며 오히려 이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4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을 통해 흩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사실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을 받아야 하는 단지 이유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자기들이 종교적인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음을 봅니다.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함으로 고난을 받게 하시고 이방나라의 포로로 구속을 당하게 하시지만 결국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하시는 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5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교회가 서둘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야했던 것을 상황을 바꾸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데반과 함께 일곱 집사의 한사람인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복음을 전파합니다.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자신들의 한 몸조차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사마리아성은 아시다 시피 유대인들이 회피하는 자들이고 이들의 성에는 들어가지 않으며 사마리아를 돌아서 지나갔을 정도로 적대적이며 이방인취급을 받았던 도시가 사마리아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할 때에 앗수르인들과 함께 거주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인 앗수르의 혼혈족이 많은 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기회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아합 왕 때에 바알종교의 우상의 본거지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도 성벽을 재건하는데 이들의 도움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예배하기를 원했으나 유대인들이 거부하자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우고 모세오경을 제외한 구약성경을 거부하면서 더욱 서로 담을 쌓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여인과 우물에서 대화하시기도 하셨지만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졌고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6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그러나 빌립이 행하는 표적도 보고 그의 말을 따르며 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음이 전해질 때,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이 떠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들이 걸으며 뛰었으니 이성에는 큰 기쁨이 있더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언제나 기쁨이 넘쳤으며 사마리아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 되어야합니다. 세상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하며 말씀에 순종하여 ‘모이는 교회’의 중요성도 있으나 ‘흩어져 전하는’ 선교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9절,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사마리아 성에는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백성을 놀라게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탓던 사람입니다. 마술은 지금의 점쟁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마법을 써서 신기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출애굽하려 할 때에 기적을 행하자 애굽의 마술사들이 방해하고 혼동하게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 만큼 신임을 받는 자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레20: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주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빌립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분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감당하신 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수 잇습니다. 복음의 핵심을 선포할 때, 시몬에게서 얻을 수 없었던 구원의 완전한 복음을 들었고 믿었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13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시몬도 세례를 받은 후에 빌립을 전심으로 따라다니며 빌립이 보여주는 표적과 능력으로 놀랐다고 성경은 기술합니다. 어쩌면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신앙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게 합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전심으로 따라다닌다’는 헬라어 원문의 원형 ‘프로스카르테레오’의 뜻은 ‘무엇에 집착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시몬이 빌립을 따라다니는 집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시몬의 열심은 순수한 신앙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21절의 베드로의 책망으로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빌립의 선교가 성공적이란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지게 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기쁨과 함께 환호하였을 것입니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이들은 박해를 피하여 이방인의 성으로 몸을 피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전하는 소식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독일의 바덴에서 2018년도 동계올림픽 도시로 평창을 호명하였을 때 모든 국민이 기뻐하고 감격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소식을 기대했던 모두가 그런 심정 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서둘러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합니다. 이들을 파견함으로 땅 끝까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마리아에 복음의 교두보로 전진기지를 설치하려 것과 사마리아 복음전도를 도우며 그들의 신앙을 더욱 돈독하게 하려는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들을 위해 기도했고 선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빌립에 의해 전도되었고 복음을 받았으며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아직까지 성령을 받지 못햇다고 성경은 밝힙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수납하고 세례를 받을 전 후에 모든 사람은 성령을 받게 됩니다. 저ㅘ 여러분은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세례를 주기 전에 이미 성령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이처럼 성령은 어느 계층, 어느 족속을 구별하지 않고 구원을 개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예외가 적용된 듯합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눈으로 직접 체험함으로 사마리아인들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과 동일한 공동체임을 보여주시기 위한 배려입니다. 지금까지 사마리아인들 무시하고 도외시했으며 반감을 가졌던 그들에게 우리와 하나 되는 연합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마음이 있었기 때문으로 우리는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와 요한이 이들에게 안수하매 저들은 성령을 받게 됩니다.
회개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육적인 도구로 이용하려는 자들은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으로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18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행해지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심을 가집니다. 어쩌면 시몬의 속에 감추었던 본심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행하는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고자 합니다. 당시 성령의 능력이 가시적으로 눈에 보였던 것 같고 오순절 때처럼 외적으로 능력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마술과 더불어 성령의 능력을 행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수지맞는 장사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마음에 이끌리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 따먹기에 이른 것이지요. 이런 모습은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를 팔고 했던 로마 카톨릭의 한 역사를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시몬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례는 받았으나 빌립을 따라다니며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은 있었으나 모든 것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결과는 베드로로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네 은과 네가 망할지어다”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베드로는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그 생각이 성령님을 모독하는 처사에 분개하였고 그럼으로 하나님의 용서는 죄악 된 마음을 네가 얼마나 깊은 속에서 나오는 회개로 용서를 구하느냐 달린 것이라 말합니다.
시몬은 회개하였을까요? (행8: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의 대답을 보면 자신의 입으로 마음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드로와 요한에게 대신 사죄의 기도를 드려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내가 너무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너무 큰 죄인이기에 대신 나의 용서를 구해달라는 요청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계속애서 여러 마을에 복음은 선포되고 증거되고있음을 봅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을 열게 하였습니다. 과거 적대적인 관계의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다가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의 수고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이제 땅 끝으로 전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