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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문정현 신부 서각전시회 | ||||||||||||||||||||||||||||||||||||||||||
서각 전시 25일 월요일까지..갤러리 품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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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 서각 전시회 '와서 보시오!'. 4월 23일 첫날이라 그런지 전시회가 열리는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길건너편에 자리한 <갤러리 품>은 비교적 한산했다. 은퇴하기도 한참 전에 본당사제로 있던 군산 오룡동 천주교회 신자들도 찾아와 서각작품을 구경하고, 문정현 신부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작품에는 가격도 매기지 않았다. '평화바람'에 후원을 겸해서 얼마간 형편이 닿는대로 내면 그로 족하다. 하느님께 모든 걸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문 신부는 "전시회를 하리란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잡은 계획이라 좀 쑥스럽다"고 말했다. 모두 72점이 전시되었는데, '껍데기는 가라'는 초기 작품부터 최근 명동에서 새긴 작품이 다 한 자리에 모였다.
문정현 신부가 서각을 하게 된 동기는 야릇하고 우연한 발상 때문이다.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 화가며 조각가며 많은 예술가들이 동참했다. 그들은 벽에다 그림을 그리고, 학교 운동장이나 공소 주변에 갖가지 작품을 전시했다. 떨어진 창문 쪼가리도 이들 손을 거치면 '그럴듯한' 예술작품이 되었다. 그때 문정현 신부는 "참 먹져 보였다"고 말한다. 마침 철거된 폐가에서 벼루 하나를 주웠다. 대추리 싸움을 끝내고 허망한 심경으로 군산 집에 돌아와 먹물을 사다가 벼루에 붓고 글씨를 써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붓글씨를 한번도 배워보지 못한 문 신부였다. 그래도 화가들을 흉내내어 처음 쓴 작품이 '껍데기는 가라'였다. 톱밥을 압착해 만든 MDF 판자에 글씨를 붙이고 문방구에서 커터칼을 사서 파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 뒤로 용산참사가 발생해 남일당에 살게 되고, 이윽고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하면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 붓글씨며 서각이었다. 처음엔 기도만 했는데,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서 오후엔 서각을 하면서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애초에 새겼던 서각들은 대개 글씨가 제 각각이다. 글씨에 틀이 잡히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만사는 훈련이 필요한 모양이다. 자꾸 쓰고 새기다 보니, 이젠 제법 글씨에 틀이 잡히고 서각 속도도 빨라지고 깊어졌다.
문 신부가 서각을 하게 되면서 묵상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아침녘 기도 중에 떠오른 글을 먹으로 쓰고, 붓글씨를 나무에 붙여 오후 내내 새긴다. 주말에 군산에 가서는 이 판자에 사포질을 하고 기름을 먹이고 장식을 달아놓는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들어진 작품을 내내 마음에 다시 새기는 시간이 바로 묵상이 되어 가슴에 차오른다.
문 신부는 게중에서도 특별히 '내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글귀에 시선이 간다고 전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예수의 갈망이 아로새겨진 한 마디다.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은 "이 불이 벌써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두고 한 말이다. 한국교회에 새로운 불을 지피러 한국교회의 상징인 명동성당에서 지낸 253일이다.
이번 전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갤러리 품에서 열리며, 24일(일)에는 "강, 원래"라는 제목의 4대강 살리기 옴니버스 프로젝트 작품을 상영하며, 25일에는 오후 5시부터 문정현 신부와 이야기 마당을 연다. (문의: 갤러리 품: 02-318-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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