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빵의 유래
서양 사람들의 주식이며, 어원은 포르투갈어 팡(po)에서 왔다고 한다. 흔히 밀가루를 사용하지만, 보리·호밀·옥수수·메밀·쌀 등의 가루도 사용된다.
빵을 정확하게 언제부터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BC 3000년경 바빌로니아인들이 밀을 자연발효시켜 맥주를 만들면서 발효된 밀가루 반죽을 구우면 빵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추정이 있다.
이스트를 넣은 본격적인 빵이 만들어진 것은 BC 2000년경 이집트에서이다. 고대 이집트의 회화와 조각품 중에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굽는 그림이 있고, 당시의 사람들은 이집트인을 '빵을 먹는 사람'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오늘날의 오븐과 같은 돌과 벽돌로 만든 화덕이 있었고 여기에 빵을 구웠다. 로마시대에 제빵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것은 전리품(戰利品)으로 들여온 좋은 재료와 우수한 기술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는 말총으로 체를 만들어 고운 밀가루를 제조하고 설탕을 첨가하여 이스트의 작용을 상승시켜 잘 부푼 질 좋은 빵을 생산하였다. 따라서 빵 전문점(bakery)이 생기고 1세기경에는 제빵업자끼리의 조합이 결성되었다.
그후 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제빵기술도 한때 쇠퇴하였으나 르네상스를 맞으며 다시 기술이 부활되어 좋은 빵을 만들게 되었다. 1683년 네덜란드의 A.레벤후크가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최초로 이스트균의 존재를 확인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이스트균의 분리 배양이 가능해지고 이스트를 빵발효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2. 우리나라에 들어온것은 언제
빵의 전래는 구한말에 비밀리에 입국한 선교사들에게 의 해 이루어졌지만 확실한 연대는 알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빵과자는 우랑떡이라고 불리운 것인데 선교사들이 숫불을 피운후에 떡시루를 엎고 그위에 빵반죽을 올린다음 오이자배기로 뚜껑을 덮어 화로를 만들어 구운것이다. 당시의 빵은 면포라 불렸고,카스테라는 눈처럼 희다고 하여 설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러시아 공사의 처제 손탁이 정동구락부를 개설해 차와 양식을 판매했고, 민비에게 서양과자를 만들어 환심을 산 다음 서양요리 강습및 손수 요리를 바쳤다. 또한 고종의 양식시중으로 정동의 왕실 부속 건물을 기증받아 황실의 양물일체를 취급하는 어용계를 맡아보았고 그후 정동구락부를 '손탁호텔'로 개명해 2층은 외래객의 객포로 아래층은 상류 사교계및 궁중 의전관, 거부 등이 드나들며 '조니워커'를 마시고 양요리를 먹는 우리나라 최초 '레스토랑'이며 손탁은 첫 '웨이트리스'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 요리를 좋아한 고종의 환심을 사려한 일본이 일본 황궁의 요리사 요시무라를 고종에게 보냈고 그 밑에 고 이태운 옹, 이기풍 등이 고종의 입맛을 돋우었는데 양요리팀은 그 수준면에서 나무랄데 없는 진용이었다.
기록에 이태운은 '빵과 과자를 굽는데 당할 자가 없었다' 고 한다.
한일합방후 일본을 통해 화과자와 양과자가 들어왔고 알사탕 및 막과자를 진고개에 팔았으며, 인천등지에 찹쌀모찌가 판매되고 있었다. 양과자 중 건과는 삼영제과, 명치제과, 생과는 충무로2가 명치실에서 생산 판매했다고 한다. 또 의주로에 있는 길문이라는 사람은 찹쌀가루에 설탕을 넣어 만든 '조선이'를 선물용으로 판매했는데 한국의 토산품으로 인가가 좋았다.
과자업자들은 차츰 남대문 시장에 모여 도매상을 열었고 소매상들은 주로 종로에 운집해 있었으며 당시 대표적인 과자로는 개당 1전 하는 접과자와 생과자, 알사탕 등이 있었고 도매상들이 이를 만들어 소규모 구멍가게나 지방업자들에게 공급하였는데 이것이 바로우리나라 제과업의 초창기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철도사업의 부대사업이었던 호텔에서는 빵과 아이스크림,푸딩,쿠키 등이 만들어져 식탁에 올랐으며,일반제과점은 1925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 기술자와 자영업자가 다소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집에서 알사탕, 센베과자 등을 손으로 구워 만들어냈으며 삼덕당은 한국인이 운영했던 최초의 제과점으로 업주의 창씨개명후 '밀촌성립'이라 전해진다.
이 시대 과자류 취급업소와 함께 주식회사도 다수 있었는데 과자류 취급업소는 건과, 양과, 빵을 제조하는 업소까지 모두 150여개를 헤아렸고 대표적으로 밀가루 제조업체인 조선제분과 제과회사로는 삼영 제과 주식회사, 조선 공장, 풍국 제과, 삼립 제과, 조선제과, 경남 기업, 동아 제과, 대성 제과 등이 있었다.
한편 한국인이 경영하는 업소는 30여개소 정도였으며, 이들은 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그래서 상호는 일본식이 많았으며 '당', '실', '옥', '상점', '상회'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종일 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궁중에서는 프랑스풍 궁중양식이 발전했고, 일반 부유층에서는 미국풍 양식이 유행했다고 한다.
서양식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윤치호 선생은 중국인 마노라 여사와 국제결혼까지하여 서양식 스토브를 장치하고 에그프라이며 토스트에 버터를 바른다, 오트밀을 끊인다 등 그의 요리에 대한 행적은 장안에 늘 화제꺼리였다고 한다.
이처럼 외국물에 젖은 사람들이 양식을 보급하기 시작했고, 외국 선교사들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또한 외국어 학교 교사들이 서양 요리 보급에 촉매 역할을 했고, 윤치호 선생 댁에서 소문난 양식이 처음으로 대중으로 흘러들어 간 것은 YMCA그릴이었다.
제과 제빵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빵의 종류
재료에 따라 밀가루빵 ·보리빵 ·옥수수빵 ·호밀빵 ·혼합빵 등이 있고, 빛깔에 따라 흰빵 ·흑빵으로 나눈다. 밀기울이 혼합된 빵과 전립분(全粒粉)만으로 된 그레이엄(graham)빵이 있다.
재료 배합에 따라 밀가루 ·이스트 ·식염만으로 만든 프랑스식 빵과 설탕 ·우유 ·유지 등을 배합한 미국식 빵이 있다. 겉쪽을 두껍게 구운 유럽식 빵과 겉을 얇고 부드럽게 구운 미국식 빵이 있다.
용도별로 식빵 ·테이블빵 ·과자빵 등이 있고, 과자빵은 빵반죽에 유지를 층 모양으로 속까지 깊이 넣은 파이 모양의 페이스트리로 만든다. 식빵은 빵의 뒷부분을 산 모양으로 부풀린 영국식과 눌러서 판판하게 구운 미국식이 있는데, 이 미국식을 샌드위치형이라고도 한다. 테이블빵에는 겉을 바삭하게 구운 것과 부드럽게 구운 롤형의 것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식사 코스에 곁들이도록 작은 모양으로 만든다.
그 밖에 특징 있는 빵으로 프랑스의 대표적 빵인 막대 모양의 바게트, 독일의 아침 식사용 빵인 둥근 브뢰첸, 스틱과 같이 긴 이탈리아의 그리시니, 달걀과 버터를 넣어 컵 모양으로 구운 브리오시, 간간한 소금맛이 있는 둥근 햄버거빵, 호밀 흑빵인 픈파니켈, 호밀가루에 신맛이 있는 야성(野性) 이스트를 사용한 사워 라이 브레드(sour rye bread)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