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존재 근거를 바꿔버린 예술가, 뒤샹
19세기 말, 서구 사회는 경제적 공황에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했다. 이에 그동안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줄만 알았던 서구의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해 많은 지성인과 예술인들이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반격을 시도했다. 그 시발점에 화장실 변기를 구입해 작품이라고 들고 나온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있었다.
뉴욕의 앙데팡당전(Independant), 전시대의 칸막이 뒤에 변기 하나가 방치되어 있었다. 이 변기에는 ‘R. Mutt(얼간이)’라는 서명이 있고, 제목은 ‘샘’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전시회의 운영위원이기도 했던 뒤샹이 시중에서 파는 남성용 소변기를 사다가 얼간이라는 익명의 이름으로 출품한 것을, 운영위원들이 묵살하고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놓은 것이다.
뒤샹의 〈샘〉.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미술 비평가들은 현대 미술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이 〈샘〉을 손꼽는다. 소변기라는 혐오스러운 소재는 예술작품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기존 통념을 뒤집은 것이며,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작품으로 내놓았다는 점은 예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창작행위’에 대한 개념을 전복하고, ‘선택’으로 대치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이러한 도전 자체를 익명으로 전개함으로써 ‘과연 예술은 무엇이며, 예술가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하나의 신화로 떠오르면서 현대 미술에 커다란 개념 변화를 몰고 왔다. 그는 ‘레디메이드(ready-made)’, 즉 기성품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놓음으로써 화가의 손을 붓으로부터 해방시키며 산업화 시대로 도래한 물질주의 대량생산 시대의 예술가로서 재탄생했으며, 그의 반회화적ㆍ반예술적인 도전은 기존의 사조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경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마르셀 뒤샹 이후 반예술의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누보레알리즘(Nouveau Realisme),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미니멀아트(minimal art), 개념미술(conceptual art) 등으로까지 이어졌으며, 바로 지금도 그 모험은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이다.
-주현성
누보레알리즘(Nouveau Realisme. 신사실주의) -
신사실주의 작가들은 신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당대의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오브제라는 용어로 일치시키며 이를 근거로 전통적 회화나 기존조각의 영역을 벗어난 예술의 또 다른 모습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게 된다. 이 시대의 실험적 예술가들은 화면위에 재현된 사물 또는 표현된 감성의 차원 위에 ‘제시된 사물’의 논리를 추가시킴으로써 대상물에 대한 관조자의 자유의지를 근대화시키는데 공헌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속에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창조활동에 내면적인 주관이나 형상적 개체성을 오브제의 모험이라는 공통분모위에 하나의 그룹운동으로 전개해 간다.
오브제 [프랑스어objet]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에서, 자연물이나 일상에서 쓰는 생활용품 따위를 원래의 기능이나 있어야 할 장소에서 분리하여 그대로 독립된 작품으로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