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침형 인간인가, 저녁형 인간인가. 작년 말 일본에서 건너온 ‘아침형 인간’ 바람 이후 누구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건강과 성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 맞서, 한편에서는 저녁형 인간이 등장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을 잘 활용하자는 성공학으로, 주로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은 ‘샐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의 생활 패턴은 개개인의 수면 패턴이나 직업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리하게 수면 시간을 줄이거나 갑자기 취침 시간을 바꾸면, 오히려 건강과 업무 양쪽에 무리가 생길 수 있다.
아침형 인간이든 저녁형 인간이든, 중요한 것은 생활 패턴이 안정적이냐 하는 것이다. 변명거리는 많다. 야근, 접대, 친목모임, 그 밖에도 끊임없는 집안 대소사가 규칙적인 생활을 방해한다. 달리기도 생활 패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매주 3∼4회 이상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식사, 수면이 필수다. 생활 패턴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꾸준한 운동은 불가능하다. 운동을 위해 매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상당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샐러리맨인 마라톤 매니어들은 대체로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운동을 하느냐 저녁 운동을 하느냐의 여부는 큰 관계가 없다. 다만 대부분 낮에 일을 하고 운동까지 병행하므로, 체력이 충분히 소진돼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고, 자연스레 아침에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아침형 인간’ 되려면 달려라
중소기업 CEO이자 수원마라톤클럽 회장인 송병규(49)씨는 대표적인 ‘아침형 인간’. 그러나 운동 시간은 저녁 7시부터 8시경까지로 ‘저녁형 러너’이다. 송씨는 퇴근해서 곧바로 양재천으로 향한다. 저녁마다 그가 소화하는 운동량은 13km 정도. 하루 1시간 가량 소요된다. 이렇게 퇴근 이후 양재천을 이용하는 직장인 러너들이 많아, 새벽 시간엔 텅 비어 있는 양재천이 저녁 무렵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송씨는 회사일이 너무 바쁠 땐 헬스클럽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는 “전엔 일찍 잠드는 편이 아니었는데, 운동을 하면서 생체 리듬이 바뀐 것 같다”면서 “이젠 30분이라도 운동하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빼미 같은 저녁형 인간이 달리기를 통해 종달새 같은 아침형으로 바뀐 케이스다.
송씨의 출근 시간은 오전 7∼8시.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아침 시간의 집중도가 높아져, 저녁에 밀린 업무를 처리할 때보다 시간이 절약된다고.
뒤늦게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김은경(37)씨는, 새벽에 운동을 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임용고시 준비 때문에 운동을 쉬다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선택한 운동 시간은 새벽 5시. 1시간 동안 10km 정도 산길을 달리고 나서 딸을 유치원으로, 남편을 직장으로 출근시킨 후 도서관으로 직행한다.
“시험 준비며 집안일이며 머리가 아프다가도, 달리기를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오히려 공부가 더 잘 된다”는 김씨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기상 시간과 공부 시간이 관리돼 운동을 안 할 때보다 오히려 여유로워졌다”고 강조했다.
송씨와 김씨 모두 하루 1시간 규칙적으로 달리기 위해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생활 패턴이 안정돼 여유로워진 케이스다. 만약 이들처럼 아침형 인간으로의 변신을 꿈꾼다면, 처음부터 무리하게 수면 시간을 줄이기보다 하루 1시간 규칙적인 달리기로 서서히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하기에는 아침형 인간이 유리한 점이 많다. 그러나 IT 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류정혜(29)씨는 가벼운 저혈압 때문에 아침에는 도무지 힘을 내기 어렵다. 비교적 여유 있는 출근 시간인 10시도 겨우 맞추는 정도.
때문에 류씨는 업무 이외의 모든 일을 저녁 시간으로 미룬다. 취침 시간이 새벽 2∼3시 정도니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대신 밤늦게까지 활동하는 저녁형 인간인 셈. 저녁 7시쯤 회사에서 퇴근한 후 학원에서 영어회화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다 된 시각. 이때 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선다. 직장과 학원을 병행하면서 체력이 많이 소모됨을 느껴 더욱 달리기를 게을리 할 수 없게 됐다.
수원에 사는 류씨는 집 근처 만석공원을 애용한다. 만석공원을 세 바퀴 정도 돌면 거리로는 5km, 시간으로는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헬스클럽은 밤 10시 이후 문을 연 데가 드물어 포기했다”는 류씨는 “운동 후에도 한두 시간 독서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기 때문에 완전히 체력이 소진될 만큼 달리지는 않는다”고.
‘짬짬형’들의 필사적인 시간관리
소설가 권지예씨는 밤낮이나 휴일의 구분 없이 일을 하는, 자신과 같은 인간형을 ‘짬짬형 인간’이라 칭했다. 광진구육상연합회 부회장인 노원철(48·풀코스 최고기록 2시간42분20초)씨가, 이런 ‘짬짬형 인간’의 대표적 인물.
동대문에서 의류 도매상을 하는 노씨는, 밤낮이 따로 없는 생활을 한다. 저녁 9시에 가게 문을 열어 새벽 5시에나 문을 닫고, 오후 2시경엔 다시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살펴야 한다. 잠은 그 사이에 틈틈이 토막 잠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가게 문을 닫고 들어와 한숨 자고, 아침 8시쯤 일어나 중랑천 뚝방길을 1시간 정도 왕복으로 달린다”는 노씨는, “도매상 생활이 25년째인데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달리기를 통해 체력을 길러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침 토막 잠은 포기하고 달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투잡스족인 우봉철(33)씨의 생활은 더욱 놀랍다. 우씨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홍보팀장으로 일하면서, 친구와 공동으로 술집도 운영하고 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퇴근 후 술집까지 들르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2시.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을 1년 넘게 소화하고 있는 것.
원래부터 달리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던 우씨는, 투잡스족으로 변신 이후 결국 집에 트레드밀을 들여놨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무조건 달리기부터 한다. 혹 밤에 못 뛰고 잠들어 버리는 날이면, 다음날 아침에라도 반드시 벌충한다.
직업의 특성 때문에, 또는 너무 바빠서…. 규칙적으로 달리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하루 1시간 꾸준히 달리는 러너들을 보면, 그들 역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이를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규칙적인 운동을 위해, 필사적으로 시간을 확보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게까지 해서 하루 1시간씩 달리는 이유는 뭘까. 주부 김은경씨가 인터뷰 도중 털어놓은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사람에게는 하루 1시간만이라도 완전한 휴식이 필요하다. 때문에 내게 달리는 시간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 집안일과 공부, 양쪽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은 달릴 때뿐이다. 내게 달리기는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가 아니라 황금 같은 휴식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