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시 강연시간에 맞춰 연수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30분 전 부터 연수원에 도착, 강연 내용을 점검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 다. 봄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연두색 투피스를 입은 채 사진을 찍으면 서 연신 ‘오늘 메이크업이 잘 안됐는데 사진이 잘 나오려나’ 하며 걱정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환한 웃음으로 거침없이 다가서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쉽게 파고드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그 녀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첫 느낌이다.
실제로 만나본 정덕희씨 역 시 분위기를 금세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무척이나 밝고 쾌활한 여자였다. 강연장에 들어서자 정덕희씨는 청중 앞에서 거의 30분 넘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오래 된 친구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허물 없이 힘들었던 과거를 얘기함으로써 어느새 강연장에 있던 40여명의 사람들의 마음을 가까이 끌어당긴다.
처음엔 호기심과 약간의 경계심으 로 바라보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녀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웃고 운다. 2시간 강연 내내 강연장은 청중들의 박장대소로 떠나갈 듯했다.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적절한 유머로 시종일관 청중의 귀와 눈을 자신에게 몰입시켰다. 극적인 말투, 특유의 제스처, 변화무쌍한 표정이 일품이었 던 정덕희씨의 강연을 정리해보았다.
남편 뒤에 숨지 말자
안녕하세요 ! 정덕희입니다. 전 처음부터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 야기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런 직업이 있는 것조차 몰랐어요. 79년 난 한 남자의 품에 안기면서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그 때 썼던 시를 낭송해보겠습니다.
“결혼 연가. 당신과의 만남,당신과의 기쁨, 당신은 나이어요. 당신 속의 나 당신을 지 켜보며 당신이 방황할 때 당신을 잡아주고 당신이 절망할 때 당신을 세 워주며 당신이 멈출 때 나 채찍 되어 당신의 아픔 나 나누어 아파하리오 . 나는 당신이어요.
내 속의 당신은 지주되어 나 모르는 것 당신이 알려주고 내 나쁜 것은 당신이 고쳐주며 내 약한 마음 당신이 잡아주어 내 기쁨 모두 당신에게 드리리오. 우린 하나이어요. 당신은 다리 되고 나는 손이 되어 당신 이 걷는대로 따라 걸으며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며 당신이 원하는 글을 쓰면 서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들을 나 당신되어 모두 하리오. 영원히 하나되어…” 여기 결혼 안 하신 분들 잠깐 손 좀 들어보실래요? 지금 적령기는 됐을 것 같은데. 맞아요?
/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든다)
그럼 오늘 제가 캠페인 송 하나 해드리고 갈게요. 요즘 초라한 더블보다 화 려한 싱글이 낮다고 버팅기시는 것 같은데, 마흔 네살된 여자의 체험으로 후 배들한테 알려드릴게요.
‘남 갈 때 가!’(웃음). 마흔만 넘어봐 초라해져.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아이들 때문이야. 나중에 돈 많이 벌어놔도 애들이 없어봐.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 하지, 초라한 더블보다 화 려한 싱글이 낫긴 뭐가 나! 그냥 남 사는데로 사는 게 최고여. 아무리 지지고 볶 고 그래도 그 남자와 사는 겨.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정덕희가 성공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뭐냐! 바로 나의 아이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난한 민족이 아닙니다. 잘 사는 민 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끼 밥을 먹더라도 라면으로 때우느냐 우아하게 스 테이크를 자르느냐의 차이입니다.
여름에 에버랜드 수영장 하나 가도 2만5천 원이래요. 한 가족이 가면 15만원 정도 들어. 그 때 비싼 돈 주고 그런데는 왜 가 는 겨, 3천원 하는 한강 시민공원이나 갈테여 하는 사람 있으면 한 번 손들어봐. 개천은 공짜여(웃음).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21세기 어머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란 말입니다. 이런 시대인데도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유 실 노동력이 많은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망하게 돼 있습니다. 망 하지 않고 되겠어요? 우리나라가 자원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몸뚱이 하나여 ! 근데 다 건달이잖아.
여자들은 만날 곗방 돌아다니고 쓸데 없는 얘기하고 아이고 한심해 죽겠어. 지금 절약운동이니 소비를 줄이자느니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지 금 우리의 정신 건강이 이래가지고는 안됩니다. 어머니가 변하지 않고는 그 사회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여성들 소비! 끝내줍니다. 앨빈 토플러가 얘기했습니다. 21세 기는 절단의 사회니 필요없는 부분은 잘라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죽습니다. 그래서 96년도에 명예퇴직이 그렇게 많았다는 겁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하고, 내년은 금년보다 더해요. 이걸 여성들이 알아야 합 니다. 요즘 남자들은 여자가 도와주길 은근히 바랍니다. 남편 명예퇴직 했을 때 그런 여자가 얼마나 됩니까? 여보 그동안 힘들었지 우리 이제 같이 김밥장 사라도 해 하고 말하는 여자가 어디 많습니까? 다들 이러죠. ‘왜 잘렸어!? 왜 잘 렸어!?’ 잘리고 싶어 잘린 남자가 워디 있어?
요즘 시민공원 헤메고 다니는 사람들 다 그런 사람들이여. 요즘 남자들은 목 매단 여자들 싫다고 혀. 부담스럽대. 매일 삐삐치면서 ‘지금 뭐해? 어디있어? 왜 전 화 안했어? 사랑한다고 얘기해!’ 이런 여자 싫대. 잘 들으시소. 일 안하고 남편 체크나 하고 있으니 그게 개목걸이지 뭐여(웃음).
일해봐. 삐삐칠 시간이 어디 있어! 왜 남자들한테 부담을 줘? 우리 남편 나 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알아요? 옛날 내가 집구석에 있을 땐 만날 재떨이 가져와! 그 러더니 요즘은 설거지는 기본이여. 난 여자들 바보같애. 남자들 하기 싫어하는 거 왜 시켜?
한국남자들 자존심 하나 갖고 사는 사람들이여. 그게 한국남자들의 특성이 야. 똑똑한 여자는 그 특성을 알아야 해. 나 우리 남편 차 바꿔주고 난 뒤부터 이 남자 가 바꿔진 거여(웃음). 지금 우리 여성들은 뭘 잘못 생각하고 있어. 지금 남자들은 은근 히 기다리고 있단 말야.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어야 문화 생활을 같이 할 수 있거든. 그 런데 우리 여성들 얼마나 웃기는 지 알아. 이러잖아 나 일해볼까? 우리가 언제적부터 남편 허락받고 살았어? 어디 한 번 얘기해봐! 어디 옷 살 때 남편 허락받고 샀어? ‘여보 당신이 준 월급으로 저축해가지고 요번에 옷샀어요. 고마워요 여보!’ 이런 여자가 어디 있어! 근데 유독 일할 때만은 남편 허락을 받습니다. 왠지 아세요? 눌러 앉아있으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집 구석에나 있어!’ 이런 소리를 듣고 싶은 거예요.
아무리 힘들더라도 죽지 못해 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소리 하시지 말고 일단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는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살 것인가?’ 를 생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눈이 째졌으면 어떻고, 얼굴이 크면 어떻고 키가 작으면 어때요? 나는 나일 뿐이에요. 고칠 수 없습니다. 먼저 나의 당당함,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인생의 주체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저와 같이 따라하세요. 이땐 턱이 좀 올라가도 됩니다(웃음).
‘ 나같은 여자 있으면 나와 봐. 나는 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멋진 인생을 만들리라.’ (정덕희 씨가 한마디씩 선창하면 청중들이 따라한다.)
왜 제가 이런 말을 하느냐, 제가 얘기했잖아요? 21세기엔 우리나라에서 현모양처란 말을 없애야 됩니다. 옛날 농경사회에나 있었던 말을 왜 지 금도 합니까? 요즘 양같은 아내가 어디 있어. 남자 한마디 하면 여자 열 마디 하는 세상인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현모지처(賢母知妻)나 현모능처(賢母能妻)가 되 라고 얘기합니다. 능력있는 여자가 최고예요. 그렇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사람의 능력이란 한계가 없습니다. 노력하다보면 자신 도 모르게 능력이 나옵니다.
이제는 여성의 르네상스 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원래 모계사회였다 부계사회였다가 이제 모계사회가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성들이 일을 해야 하고, 외 국의 노동력이 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노동력 을 끌어내면 됩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그 사회가 잘되려면 여성의 정신 문화가 바 뀌어야 합니다. (음미하듯) 여자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제가 써놓고도 괜찮은 글입니다(웃음). 그래서 저는 여성의 정신문화를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여자니까. 우리 손안에 달려있다! 남자여 소용 없다. 부정부패? 이부자리에 서 세 마디만 하면 헷갈려, 남자들은. (혀짧은 소리로) 있잖아 여보-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되려면 어머니 역할, 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자분들한테 물어보세요! 아버지 생각나냐, 어머니 생각나냐, 다 엄마야, 엄마!
남의 체질을 잘 받쳐주는 사람이 되자
21세기의 스타는 주제파악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해요. 근데 우리사회에는 망상가가 많습니다. 하루아침에 되 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10년 전에 미용실 하시던 분 어디 기 펴고 사셨습니까? 근데 지금은 어떤가요? 어디가도 헤어디자이너로 대접받죠? 이점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아하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얼마 전 꽃꽂이 강사를 만났는데 우거지 상입니다. 왜? 돈이 안 벌리니까. 나한테 뭐라 그러는 지 알아요? 똑같은 가위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꽃 안 만지고 머리나 만질 걸 그랬다 그럽니다.
미래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세요. 바로 21세기는 다양성의 사회입니다. 이젠 직 업에 귀천이 없어지는 사회가 옵니다. 여러분, 요즘 김밥집 가보면 명예퇴직해서 김밥장사하는 사람 많습니다. 가보면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자녀도 변호 사, 의사만 시키지 말라는 것이에요.
진짜 총명한 어머니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그걸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 로 현명한 어머니입니다. 띵까 띵까 좋아하는 아이는 음악 시켜야 합니다. 나같이 말 하기 좋아하는 여자는 이런 걸 해야 합니다. 그래야 즐거운 거예요.
저는 강의만 하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몸이 찌뿌드드하다가도 강의장만 갔다하면 개 운혀! 이게 다 팔자소관이여.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장 타고난 재질을 개발해주는 게 바로 어머니의 역할이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우리 아들은 이미 결정 났어. 우리 아들 은 자동차라면 뿅가. 난 우리 아들 전문대라도 자동차 쪽으로 밀어붙일거야. 21세기의 스타가 되려면 빨리 친해지는 기법도 알아야 합니다.
왠지 도와주고 싶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혼자 서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 잘났다고 크는 거 아니에요. 위에서 끌어주고 밑에서 받쳐주니까 내가 크는겨! 나 혼자 잘났으면 여기까지 왔간디?
길거리 지나갈 때 사람들이 정덕희 하면서 반가워하면 눈물이 핑 돕니다. 마음으로 얘 기하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냄새 나는 여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44살이 되도록 윤기 흐르는 여자가 되려고 무지 무지 노력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돌리면서 어디 가 서도 빛나는 여자, 향나는 여자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세상에 내 체질은 나 하나밖에 없습니다. 남의 체질을 잘 받쳐주는 사람, 까다로운 사람은 까다로운데로 받쳐주고 튀는 사람은 튀는 대로 받쳐주는 사람이 앞으로 성공합니다.
여러분! 요즘 병원도 고객 응대 안하면 망하는 거 알죠? 앞으론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21세기의 스타가 된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어휴 저 사 람은 내 체질이 아냐!’ 이 세상에 내 체질은 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긍정적인 사고 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모든 것들을 하기 위해선 기가 살아야 합니다. 기가 죽으면 모두 끝나요.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중요한 것은 뭐냐, 기 떨어지면 안돼요. 전 알아요.여러분! 영업처럼 힘든 게 어디 있 습니까? 안해본 사람이 어찌 그 마음을 압니까? 한 번 끝나면 또 마감이고 마감이야(웃음). 리더는 기가 살아야 돼요. 올라갈수록 고독하고 외로운 것입니다.
나의 고독을 그대에게 얘기할 필 요는 없습니다. 리더는 쪼께 우상화되어야 끌려오든가 말든가 하지. 힘들더라도 ‘얘들아 일이 얼 마나 잘됐는 줄 아니!’ 하는 거야. 약간의 쇼맨십도 필요한 거야. 그런게 살아가면서 아주 기본적인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주부들 사이에 때아닌 ‘빛나는 여자, 향 나는 여자’ 선풍이 불고 있다. 선풍을 일으킨 주인 공은 현대 여성교육원 원장 정덕희씨(43). 이미 수년 전부터 기업체 인기 강사로 주목을 끌어왔지만 얼마 전 TV에 출연함으로서 현재 명실상부한 스타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저는 강단에 설 때마다 매 순간 열정과 사랑을 갖고 임합니다. 이 순간이 나의 마지막 강연장이라 는 생각을 항상 하죠. 또 겉도는 현학적인 말보다는 제 체험에서 우러나온 살아있는 말을 하려고 노력해 요. 아마도 그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 아닐까요?”
요즘 그녀는 일주일에 10군데가 넘는 강연장에서 한달에 1백시간을 강연하느 라 잠시 쉴틈조차 없을 정도다. 이토록 많은 곳에서 그녀를 부르는 것은 물론 천부적 인 자질도 있었지만 그동안 그녀가 살아온 힘겨운 세월이야말로 인기 강사로 떠오르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충남 예산에서 12형제 중 11번째로 태어난 정덕희씨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했던 활달한 아이였다. 학교 행사에선 언제나 모습을 드러내는 ‘마당발’로, 총싸움 놀이에서도 대장이었다. 사람들을 사로잡는 특유의 통솔력, 흡인력이 그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좋아해야지 직성이 풀릴 정도로 ‘중앙 무대 체질’이기도 했던 정덕희씨. 그녀는 공부도 잘했다. 쌀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가 여러 형제 중에서 몇 안되게 과외 공부를 시켰을 정도다.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모범생의 정도를 걸었다. 집안 일을 도맡아함으로써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해 형제들의 시샘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운영하던 쌀가게에서 여느 형제들처럼 일을 하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했던 그녀는 학교 친구들이 가게에서 쌀포대 붙잡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녀의 표현으로는 그 때부터 나름대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정형편상 대학가기가 힘들었던 그녀는 고3 때 친척이 운영하는 서울의 출판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한국방송대학을 졸업했고 그 후 직장을 옮겨 한국 화장품에서 상담원으로 생활하였다. 입사 3년만에 팀장 자리까지 올랐던 정덕희씨는 사내에서 언제나 신선한 발상이 가득찬 ‘아이디어 뱅크’로 통했다.
당시 일은 똑부러지게 잘해 주위의 인정을 받고, 사람들을 통솔하였지만 지금처럼 친근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쉽게 다가서지는 못했다.
잡지사 판매업무로 사회활동 시작
“한마디로 그 때는 제 잘난 맛에 살았었죠. 일종의 공주병도 있었던 모양인데 결혼하면서부터 많이 겸손해지고 인간이 된 것 같아요. 결혼 후 일하면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사람들 역시 인간적으로 저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79년,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2백여평의 대지가 딸린 대저택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결혼 생활이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어오던 부잣집 맏며느리가 됐지만 결혼 생활은 힘들기만 했다. 주체적인 삶보다는 시부모의 뜻에 맞춰 살아야 하는 생활이었다.
선비처럼 대쪽같기만 한 남편은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고, 그때마다 시부모들은 경제적인 도움은 일절 주지 않은 채 정덕희씨의 친정이 가난한 것을 탓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난 87년, 비교적 부유했던 생활이 남편의 사업실패로 매우 어려워지자 다시 일을 시작 했다. 잡지사 여원에서 책을 파는 것을 비롯해 선물가게도 운영해 보았고 보험회사 일도 하였다.
당시 책판매를 하면서 당한 서러움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때마다 그녀는 글을 썼다. 힘들었던 일, 서러웠던 일들을 가슴 속에 담아두지 않고 시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일에서는 투철한 프로정신을 발휘하는 그녀였지만 마음 한구석엔 소녀처럼 여린 감성을 지녔기에 사람들 에게서 받은 상처를 시로 승화시켜 나갔다. 그런 짜투리 글이 모여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현재 현대 시인협회의 회원인 정덕희씨는 4년 전 한겨례문학지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시가 생활의 힘겨움을 덜어주던 일종의 매개체였을까? 눅눅한 지하실 단칸방에서 생활 했지만 그녀는 힘든 것을 사람들에게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던 그녀였기에 주위에서도 힘든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입사 두 달만에 관리직을 맡을 정도로 일을 잘해 인정을 받았고 그녀는 단순히 책을 파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정보도 전달해주고 교훈적인 내용의 강연도 자청해서 해주었다.
“자존심 때문에 무턱대고 세일즈하지는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각종 문화정보와 아이디어를 주고, 또 교 훈적인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어요. 한마디로 제 인품을 판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죠.” 당시 그녀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의 미풍양속 중 예의 범절과 효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였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유의 말솜씨와 매력으로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던 그녀에게 주위에서 강연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회교육을 하는 강연자라는 직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보험회사 일을 하면서 점차 강단에 대한 매력을 떨칠 수가 없어 자동응답 전화기 하나로 ‘현대 여성교육원’이라는 상징적인 회사를 만들었다. 사무실도 없이 혼자서 원장과 사원을 겸하는 영세한 수준이었다.
손수 만든 강연 팸플릿 5백장을 기업체에 돌렸고 그 후 세 군데 기업에서 강 연 요청이 들어왔다. 보험과 교육원 일을 병행하면서도 그녀는 밤에는 동국대 교육대학원에 나가 교육경영 석사과정을 수료할 정도로 억척스러움을 발휘했다. 서른 일곱의 만학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결과일까? 그녀는 어느새 이곳 저곳에 쉴새없이 불려 다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난 93년 엑스포 도우미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그녀는 요즘 수백개 기업 체의 인기 강사로, 경인여자전문대학의 교수로, 이미지 컨설팅회사의 대표로 종횡무진 뛰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SBS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정덕희의 신나는 세상’을 맡아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현재 연세대학교 교육문화 고위과정을 수료중이다. 고인 물은 언젠가는 썩게 마련이니 수시로 재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가 시쳇말로 ‘뜨고’ 있다고 하지만 결코 이 자리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요. 언제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이 화려한 옷을 벗을지 모르니까요. 다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해요. 그리고 제 능력만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기보단 주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곳까 지 올 수 있었던 것 같구요.
제가 항상 얘기하는 빛나는 여자 향나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 저 역시 돈부자 보다는 마음부자, 인간적인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사람으로 영원히 남고 싶어요. 이런 것들이 뒷받침 되 어 긍정적 사고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이야말로 진정 빛이 나고 향이 나는 여 자라고 생각해요.”
밖의 일만큼이나 집안에서도 프로 주부로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정덕희씨. 처음에 일하는 것을 못마 땅하게 여기던 남편도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된 지 오래고, 고2, 중3인 아들 딸도 이 세상에서 가장 존 경하는 인물로 엄마를 꼽을 정도로 정덕희씨를 자랑스러워 한다. 그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항상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니, 네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독립정신을 많이 길러주었죠. 저는 젊은 여자 후배들에게도 항상 말합니다. 항상 주체적으로 도전해보라고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너무 편안한 것만 좋아해서 도전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5월 초, 그녀는 그동안 일하면서 쌓아 올린 노하우와 지나온 삶의 빛깔이 묻어나는 인생 이야기가 어우러 진 수필집 한 권을 선보일 예정이다. ‘어제와 같은 내일은 없다, 정덕희 신나는 세상’이란 제목으로 출판될 책에서 지나온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삶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사랑이 식지 않는 한 그 녀가 서는 강단은 언제나 사람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구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