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음악으로 기억된다>
1 내 나이 마흔을 넘긴 어느 날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너무 놀랐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 온 목소리는 내 첫사랑 그 아이였다. 평생 다시는 만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2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고3 학력고사를 치고 난 후이다. 금곡에서 고3 학생 간부들 수련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한다고 고생한 수험생들을 위한 일종의 힐링 행사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우연히 간은 조에 배치되어 그는 사회자, 나는 총무를 맡게 되었다.
3 첫 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처음 본 순간 후광이 비치면서 세상이 환해졌다. 그 아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중, 여고를 다녀서 이성 간에 만남이 전무 했던 나는 이성에 대해 어떤 기준이 없었다. 그런데 그냥 끌렸고 그냥 좋았다.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나도 몰랐던 일이었다.
4 큰 키에 잘생긴 얼굴, 기타를 맨 그 뒷모습에 그만 마음을 빼앗겼고 중저음의 목소리에 가슴이 설렜다. 조 자랑 대회에서 그는 해바라기의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와 Harry Nilsson의 ‘without you’를 불렀다.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에 여학생들이 난리가 났다.
5 중학교 때부터 방송부 활동을 해서 노래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나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사실은 ‘without you’라는 노래를 몰라서 나중에 레코드 상점에 가서 들은 대로 직접 불러 알아낸 노래다. 여자 친구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고 자신도 없었다. 가슴은 터질 것만 같고 친한 사이가 되고 싶은데 내가 다가갈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우리 조의 지도를 맡은 동아대 학생의 대학교 축제 초대로 만남은 이어졌고 우리 조끼리 따로 만나기도 했다.
6 하지만 만남의 목적이 사라지면 만날 이유가 없어진다. 만남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편지를 썼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친구로서라도 가까이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7 그는 아는 노래들이 많았다. 형이 음악을 좋아해서 pop의 매니아였고 그도 형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들려준 음악 이야기는 너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음악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니 노래가 녹음된 테이프를 선물로 주었다. 거기에는 70~80년대의 팝의 명곡들이 잔뜩 수록되어 있었다.
8 너무 좋은 노래들이 많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가 특히 좋았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좋았고 오페라 같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금지곡이라고 하고 내용이 뭔가 섬뜩하긴 했지만, 멜로디 라인과 노래가 너무 좋으니 별 상관이 없었다. 남포동에 있는 음악감상실 무아에 자주 갔었다.
9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부산극장에서 상영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보답으로 선물을 주고 싶어서 문구류를 샀는데 예쁘게 포장해서 주려니 마음이 들킬 것 같았다. 애써 예쁘게 만든 포장을 뜯어버리고 다시 누런 종이봉투에 둘둘 말아 무심히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란히 앉아서 보겠거니 기대하고 갔는데 세상에 자리가 앞뒤가 아닌가? 앞뒤로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자니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기분이었다.
10 둘 다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는 단과반 위주로 공부했고 나는 종합반에 들어가서 만날 일은 없었다. 서면 근처 학원가에서 우연히 길을 걷다 그를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늘 생각하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나 싶었다. 그때 유행했던 해바라기의 사랑 노래와 이문세의 노래는 모두 나의 노래가 되었다.
11 언젠가 부산대 앞에서 만나서 헤어지던 날 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역에서 Black sabbath의 ‘she’s gone’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찌나 그때 내 마음과 비슷한 느낌이었던지. 늦은 밤 지하철에 쓸쓸하게 혼자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12 그는 여자 친구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늘 상담역할을 해주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 마음도 모르고 남자 이름이라서 전화가 와도 엄마가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좋아했다.
13 그렇게 시작된 짝사랑은 대학교 4학년까지 이어졌다. 그는 서울로 진학하고 나는 진주로 갔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고 편지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관계가 이어졌다. 대학 생활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변화에 대해서 응원해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도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단편소설을 한 편 서서 보내 준 기억이 있다. 그 편지들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 더 나이 들어 읽어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14 너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으나 친구로서의 그를 잃을 두려움이 너무 커서 말하지 못했다.
15 드디어 대학 4학년 여름. 군에서 마지막 휴가를 나오던 날, 포장마차에서 술을 함께 마셨다. 그땐 이미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다.
“ 내가 너 좋아한 것 알았나?”
“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어”
16 깜짝 놀랐다. 이미 알고 있었다니?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를 뗀 거였나 하는 배신감이 들었다. 그걸 모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도 참 어리석은 여자였다. 그도 친구로서의 나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17 그렇게 오랜 짝사랑은 끝이 났고 더이상 친구 사이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에 몇 번 연락은 했지만 잊고 살았다.
18 왜 전화를 한 것일까? 그는 피아노를 전공한 여자를 만나 서울에서 금융 일을 한다고 했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19 몇 년 후에 추석 명절에 부산 가는 길에 잠깐 들린다고 해서 만난 적이 있었다. 아! 청춘이란 얼마나 짧고 허무한 것인가? 살도 많이 찌고 변화된 삶에 날카로워진 얼굴이 보였다. 이혼을 했단다.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져서 놀랐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힘들어서 연락한 거였구나.
20 이제 그 옛날의 절절했던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흘러가는 세월에 나도 변했고 그도 달라졌다. 순수한 나이에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마음껏 느끼게 해준 사람이 되어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21 그 나이에만 할 수 있었던 사랑이었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은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짝사랑이였기에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 같다.
22 사랑은 잊혀지고 노래만 남았다. 나는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어 행복한 사람이다.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도 나지 않고, 이젠 느낄 수도 없지만, 그 노래들은 늘 그때의 나로 데려다 준다.
첫댓글 사랑과 음악으로 추억을 길게 잘 쓰셨네요.
올해도 열심히 써서 좋은 작품이 많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에 써 두었던 글인데 부끄럽기도 하고 혼자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못 올리다가 용기내어 올렸습니다.
첫사랑 얘기, 내용은 달라도 대부분이 가진 추억이라 공감하였습니다.
레코드 가게까지 가서 그가 부른 노래를 알아내고, 학원가에서 또는 밤늦은 지하철 역에서 듣는 노래를 '그의 노래' 내지
'그를 위한 나의 노래'로 승화시킨 소녀의 앳된 마음이 살갑습니다.
극장 자리가 앞뒤라면 옆에 말하고 나란히 앉을 일이지 내내 가슴만 태운 미련은 답답하면서도 풋풋했고요.
무엇보다 묻어둔 사연을 음악에 버무려 드러낸 용기가 부럽습니다.
남 선생님의 시원시원한 글, 늘 응원합니다.
멋쟁이 손철화님~ 늦은 밤. 글에 대한 상념때문에 잠 못 이루다가 글을 씁니다. 긴 글 읽어 주시고 감상평까지 적어 주시다니. 감사드립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