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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 예수님에 대한 4대관
1982. 7. 11. 주일오전
본문: 요한복음 1장 1절∼18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어떤 일을 하신 분인가 하는 것을 첫째로 가르칩니다.
두 번째는 그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서 가르칩니다.
세 번째는, 그러면 그가 무엇을 하러 오셨는가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넷째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를 오늘 봉독한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대한 제1관
첫째로 그분은 어떠한 일을 하고 오신 분인가? 하는 데 대해서 증거 하겠습니다.
첫째: 영계와 물질계를 지으심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분이 하신 일 중에 하나는,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주님이 지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도 동양으로 말하면 공자나 석가모니 같은 이런 사람 중에 위대한 한 사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분이 지으셨습니다. 이분이 짓지 아니하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나, 일월성진이나, 이 우주나 영계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버러지, 뭐 바람, 비, 기후 이런 것 다 주님이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존재를 볼 때에 크든지 작든지 이것은 주님이 지으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석가모니도 주님이 지은 인간 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이 지으셨습니다. "지은 것이 그가 짓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15절에 보면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세상에 사람으로 나타나시기는 세례 요한보다 뒤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그러면 사람으로 나타나시기는 세례 요한보다 뒤에 나타나셨지만 그가 세상에 계시기는 먼저 계셨습니다. 이것을 혼돈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존재 중에 이분이 만들지 아니하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이분이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이분이 만드셨고, 모든 종교 창설자도 이분이 만드셨고, 해도, 달도, 별도, 영계도, 천군 천사도, 영물도, 마귀도 전부 이분이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존재를 대할 때에'아, 이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 만드셨으니 내가 이해 못 해서 필요 없다, 없었으면 좋을 뻔 하다.' 이렇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 만드셨기 때문에 이는 잘못됨이 없이 만드신 것입니다. 또 이 만드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만드셨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왜? 그 모든 것이 "주를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 말은 주님의 구원을 위해 지음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존재를 대하든지 거기에 대해서 원망이나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만드신 것이니 어떤 면으로 필요하고, 어떻게 이것을 요리하고, 어떻게 이것을 이용하고, 어떻게 이것을 상관해서 내 구원을 이루겠느냐 하는 이것을 연구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존재로 주님이 지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역사 세계를 지으심
그가 어떤 일을 하셨는가,
10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그러면 세상에 계셨다 말은, 세상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역사 세계를 가리켜 말합니다. 아담 하와가 있을 그때부터 있는 이 모든 자연, 또 사람, 거기에 지음받은 모든 것들이 서로 움직여 살면서 이루어진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알지 못하는 학자들이 '아메바균이 진화되어서 사람 됐다' 그렇게들 말하는데 그 잘못된 말하는 그 사람도 세상 속에 든 것입니다. 옳은 말 하는 사람들, 삐뚤어진 말 하는 사람들, 잘 해서 복을 받는 사람들, 잘못해서 망하는 사람들, 잘못된 것도 수가 없고 바로 된 것도 수가 없을 만치 이렇게 되어 있는 역사 세계에 창세로부터 오늘까지 움직여지고 있는 모든 피조물의 움직임, 햇볕이 돋는다, 별이 떨어졌다 모두 이런 것도 다 하나의 세상입니다. 자연과 인간과 모든 역사 이 모든 것을 총칭해서 세상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세상은 죄 안에 있다'고 한 말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아니하는 존재 같지만 우주 보다 큰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이 사람입니다. 또 영계는 우주보다 위대한 것 같지만 영계에 하나님 다음 제이 주인공도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천군 천사나 만물 중에 사람같이 지음받은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최귀의 것으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랬는데, 사람이 타락한 그 후에 만들어진 세상이 많기 때문에 "세상은 죄 안에 있는 세상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지었는가? 그가 세상을 짓기 전에 벌써 세상에 계셨고, 짓기 전에, 세상이 있는 전에 이 우주에 들어와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주를 만드시고 당신이 만든 우주 안에 들어와서 계셨습니다.
에덴동산 전에 창세기 1장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흑암 중에 걸어다니셨다" 하는 그 하나님이 곧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입고 인간되어 나타나신 그 인성이 있은 지 후 그 이름을 예수님이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이렇게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라 둘을 붙여야 됩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나타나셨기 때문에 둘을 붙여서 이름을 할 때에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신 일은 이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세상을 만드셨다 그 말은 세상에 이런 죄악, 저런 의, 이런 시비, 이런 전쟁, 저런 흉년, 풍년, 이런 비바람, 저런 변화, 이 역사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 앞에 지음을 받은 것들이 서로 이렇게 교제하고 이렇게 관계를 가지고 움직이고 하는 그것이 이제 세상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다 주님이 하셨다 그말이오.
여게 지금 꽃 한 송이가 피어서 나왔습니다. 그것이 졌습니다. 그것을 자연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좁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세상 속에 포함됐습니다.
세상은 모든 하나님의 지으신 자연과, 또 모든 천연, 모든 피조물 이런 것들이 한데 우물거리는 것이, 우물거려 가지고 움직이니까 이런 게 되고 또 그게 변해서 이것 되고 또 변해서 이것 되고 이것 되어 가지고 변해서 되어지는 이것을 가리켜서 역사 건설이라, 또 다른 말로 말하면 문화 건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 났습니다. 났다가 병을 앓았습니다. 그러다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병들고 낫고 죽고, 잘살던 사람이 못살고 못살던 사람이 잘 살고,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 되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 되고, 없던 나라가 생겨지고 있던 나라가 없어지고, 그것이 세상입니까 세상 밖의 것입니까?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오. 유치하게 생각지 말고! 대대학에 가도 무신론을 꿰뚫지 못해. 죽은 길이야! 그것이 세상 안에 내포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내포됐습니다.
셋째: 주권하심
그러면 지극히 작은 것이 둘이 합해지고 나뉘어지고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이는 그 전부를 이분이 하셨고, 이분이 지으셨고, 지어놓은 것을 지금 운영하는 것도 이분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으로서, 양성일위로서는 우리의 구속일을 하고 그 이면에 신성으로서는 이런 것들을 직접 운영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은 복잡합니다. 지금도 세상을 운영하시는 분이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러면 너희 가정을 만든 이가 주님이시지만 그 가정이 모릅니다. 김일성이를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지만 그걸 모릅니다. 이북을 공산주의 나라로 탄탄 견고케 만드는 이가 주님이시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왜 만듭니까? 우리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만드십니다. 어떻게 필요한가? 성령의 사람들은 그 필요한 것을 때를 따라서 잘 이용해서 자기 구원에 소화를 시켜서 좋은 영양제를 취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우리가 알도록 표시한 것이라. 「자기 땅에 오매」그러면 미국 땅, 이북 땅, 소련 땅, 한국 땅 이것이 임자가 누구냐? 김일성이냐? 공산주의자들이냐? 미인들이냐? 아니오. 이 땅 임자는 있습니다. 누군가? 그분입니다. 그분이 누굽니까? 사람되어 오신 그분입니다. 땅 임자는 그분입니다. 지구 땅덩어리 임자는 그분이오.
화성, 수성, 목성, 항성, 항성만 해도 십억만 항성이나 된다고 천문학자들이 발표했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믿지는 않습니다. 않지만 그들이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 다 임자가 누군가? 그분의 것이라 말입니다. 땅만 그분의 것이 아니고 모든 존재는 그분의 것입니다. 대주재라 말은 모든 것의 주인이라 그말입니다.
주권자라 말은, 개미 한 마리가 나고 죽고 수염을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드는 그것도 제 맘대로 흔들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혼자 운영해서 흔들게 하시는, 그 전체를 당신 혼자 움직이시는 그것을 가리켜서 주권자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분을 믿어야 합니다.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 이분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요약
주님이 오시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이제 말을 했습니다.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이분이 지으셨고, 역사 세계도 이분이 지으셨고, 지금도 이분이 직접 혼자 운영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공은 이분이십니다.
이걸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선포한 말씀의 획 하나도 변동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 한 일이 무슨 일인가? 첫째 모든 걸 지은 것, 둘째 세상을 만든 것, 셋째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인공, 이걸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아무리 원수라도 그 사람의 주인은 주님이시오. 이러기 때문에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벌대로 취급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 보니까 꾸불떵 꾸불떵 얄궂은 지팡이가 있는데 '이까짓 걸 뭣 할려고 현관에 들여 놓았느냐?' 했는데 그 집에 대통령이 다니러 왔는데 대통령이 짚고 온 지팡이라면 그 지팡이는 대통령이 짚고 온 지팡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인해서 그 지팡이를 허술히 하지 못합니다. 더러워도 집어던지지를 못합니다. 던지면 그분에게 대해서 모욕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못나고 악하고 독한 인간이라도 그 인간의 주인이 주님이기 때문에 주인의 안면을 봐서 그걸 내가 홀대를 못하고 조심 있게 하는 것입니다. 내 물건 남의 물건 모든 것의 주인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만드셨는데 필요 있어서 만드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주님이 지은 것이라 하는 이 지식은 천하에 가득 찬 인간 머리에서 나온 지식보다도 뛰어납니다. 이 하나만 하면 그 지식을 뛰어넘습니다.
또 역사 세계의 이 모든 세상은 그분이 지으셨고, 그분이 당신의 필요에 따라서 지금도 운영하시고 경영 유지하고 계신다 하는 이 사실을 세상을 대할 때에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모든 존재의 주인은 주님이라, 주님의 소유라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믿을 때에 인간에게 죽은 지식을 밟을 수 있고 산 지식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믿을 때에 타락한 인간에게서 머리를 들고 타락한 인간선 위에 머리를 꿰뚫고 올라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르는 자는 제 아무리 잘나고 세계 것을 거머쥐고 주물거린다 해도 너는 사람 수로 셀 것이 없어, 타락한 그거는 지저분하게 지옥 채울 것밖에는 안 됩니다.
이러면 권세를 가지고 '뭐, 뭐라 해?'그런다고 칼로 와서 찌르면 찌를수록 저는 영원히 나를 복되게 하지 나를 해할 권리는 절대 없어. '찔러서 죽였는데 해를 못 해?'찔러 죽여도 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위 있지. 영원히 너는 내것이야. 영원히 너는 나를 섬기는 자 되어졌어. 기독교의 투쟁 비밀과 승리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공연한 허풍 떨고 위안제 마시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신 일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대한 제2관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여게 태초라 말은 인간의 말로써 표현하려고 하니까, 인간에게 너무 거리 멀어서 따라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태초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만, 영원 전이라는 말씀과, 영원 전이라는 말씀과 이 구원에 자존하신 당신이 역사하기를 시작하신 그것을 합해서 표현하기를 태초라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 세계의 태초도 아니요 영원 전이신데, 자존하신 분이,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의 속성, 자존하신 분이 움직이기를 시작하신 첫 움직임이 무엇이냐? 목적입니다. 그 움직이기 시작한 그때에 그 일을 하셨다 그말이오. 함께 계셨다 말은 그 일을 하셨다 그 말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말한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당신이 자존하신 당신을 나타내시는 첫 움직임의 그 움직임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이렇게 표현해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인간이 알기에 '말'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발표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발표하는 것이 말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가장 이 하나님을 나타내기에 알기 쉬운 합당한 이름을 하나님이 나타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 자존하신 하나님을 이렇게 나타내시는 그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두 분 세 분 되는 것 아니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오. 한 분 하나님이, 자존하신 당신이 자존하신 당신을 나타낼려고 역사하실 그때의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그러기 전에는 하나님이라 이러는데, 그때에 나타내는 그 역사를 하실 때에 그 하나님을 나타내서 말씀이라.
그러면 나타내는 역사를 하시고 또 자존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자존하심을 그대로, 자존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나타낼 때에 성부라 아버지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나왔고 또 아들이 곧 아버지요. 아버지가 역사하실 때는 그 아버지를 가리켜서 아들이라 말씀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한 사람이 한 가정에 호주도 되고, 남편도 되고, 아버지도 되고, 오빠도 되고, 형도 되고 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지만 자기 그 위치에 있어서는 이런 위치 저런 위치, 이런 직책 저런 직책, 이런 책임 저런 책임을 갖고 있을 때에 여러 가지로 지위에 따라서 표현되는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또 말씀, 그리스도, 다 한 하나님이신데 그 직책과 지위를 가지신 그 지위의 하나님으로 나타낼 때에 이렇게 이름은 각각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 말씀이라 하는 것은-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이 일하실려고 처음에 하신 일이 뭐인고 하니 목적인데, 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시는데, 여기에 말씀이라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도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라 그말입니다. 역사하시는 역사라.
그러면 역사는 뭐이냐? 역사라는 그 역사를 하고 있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이라는 하나님이라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말씀이라 말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는 그것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제일 처음 역사인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와 하나님과 이렇게 둘이 한테 하나 돼 가지고 표시할 때에 말씀이라, 또 하나 되어 일하시는 그 도를 떼어 놓고 할 때에 하나님이라, 또 이분이 피조물이 되어 왔을 때에 예수라 이렇게 성경이 표현했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은 영원 자존하신 한 하나님이라 그말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당신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도를 시작하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서 말씀이라고 했는데 그분이 곧 하나님이라.
2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영원 자존하신 분이 역사할 때에 그때 성부 성자 성령이 같이 역사하셨다. 그러면 이 직책을 한 분이 여러 직책을 맡을 그때. 맡을 그때. 그러니까 이는 영원전이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시공 세계, 역사 세계, 하나님의 의지 세계의 전이니까.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절에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사람 되어, 이 말씀은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이 말씀입니다. 내나 그 말씀이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입니다. 이치입니다. 무인격 존재입니다. 인격 존재가 아니고 이치입니다. 여기에 말씀은 이치가 아니고 인격 존재입니다. 신격을 가지신 존재입니다. 곧 하나님이십니다.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 육신이 되어 가지고 우리 가운데 계신다. 우리 가운데 계신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오셨는데 어떤 일 하러 오셨는고 하니 당신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이 목적이 이것이 완성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목적이 완성됐을 때에 이 목적을 봄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모든 피조물들이 알게 됩니다.
이래서 이 목적 완성된 이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목적 완성된 그것 보니까 바로 목적 완성된 그것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절대자이시다. 불변이시다. 그분은 시작하면은 완성이지 미완성이나 변동이 없으신 분이시다. 알파와 오메가시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거룩이시다. 그분은 참된 이시다. 그분은 화평이시다. 그분은 자비시다. 그분은 진실이시요 거룩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대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거는 비유가 잘 안 되는 것이지만... 어떤 농장을 하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농장을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그 농장이 지금 기술자 가지고는 동양 기술자 서양 기술자 다 달려들어서 만들어도 도무지 그와 같이 만들 수 없는 그런 농장 하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농장 만든 사람은 죽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지마는 그 농장을 인해서, 그 농장을 만든 사람이 '그분의 기술은 어떤 분이고 그분은 어떤 능한 분이다. 이십세기 과학보다도 뛰어난 분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미루어 알 수가 있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되어 있는 그 완성된 그것을 볼 때에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의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나님은 이렇게 긍휼의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나님은 이렇게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로구나. 모든 존재가 그분으로 인해서만 살 수 있구나. 모든 존재보다 그분은 내게 필요하구나' 모든 존재들이 다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되어지기 때문에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돌리고, '그분보다 더 필요한 것이 내게는 없다.' 하는 것이 되어지는 걸 가리켜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그러면 세례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서 우리에게 소개해 줄 분으로 하나님이 세우셔서 보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를 늙어서 수태하지 못하는 늙어 쪼그라진 할머니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가지고 육개월 될 때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임하셨습니다.
16절에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율법, '네가 이래야 산다. 저래 하면 죽는다. 이래 하면 죽는다. 네가 이러면 살고 저러면 죽는다. 이러면 복되고 저러면 망한다.' 하는 것을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율법은 죄를 모르는 인간에게, 무엇 때문에 죽는지를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 법이 이렇기 때문에, 죽고 망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하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으로 죽은 자가 죽은 것을 알고, 죽는 자가 죽는 것을 알게 하는 것뿐이지 살리는 권세는 율법은 없습니다.
없는데, 이렇게 율법을 죽은 것을 알고, 죽는 것을 알고, 죽을 것을 아는 자를 알리고 이 율법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도록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을 때에 예수님께서 은혜로, 율법으로 정죄 받아 죽는 것을 살리는 역사를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죽이는 것은 율법으로 죽였고 율법으로 인해서 죽이고 살리는 것은 대속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리게 된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니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은 영원히 보지 못합니다. 왜? 그는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면 죽습니다.
그분의 은혜를 받고 점점 그분에게 가까이 가지고, 앞으로 영원 무궁의 끝에 그분을 보기까지 그렇게 성화가 되어질는지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소망은 항상 있다는 말씀에 의지하면 앞으로 소망은 영원히 있어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이런 데 나아가리라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역사를 접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답답해서 당신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볼 수 있는, 접할 수 있고 접해도 우리가 녹아지고 망해지지 아니할 수 있는 그런 신비한 형체를 가지고 당신이 나타나실 때에 천사로도 나타났고 사람으로도 나타났고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으로 나타난 그것이,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예수님의 인성이십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 되어 오시기 전에는 사람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요 가까이 갈 수 없는 하나님이었는데, 하나님이 사람 꺼풀을 입고 오신 그때부터 사람이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한 껍데기를 가리워 가지고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서 신비한 천사를 통해서 그렇게 나타나셔 가지고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말씀했지만은 실은 하나님은 본체가 나타나서 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했고, 또 하나님을 대접했고, 또 하나님에게 기도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은 간 곳 없고 천사만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접할 수 있도록 이런 피조물 저런 피조물을 그 사이에 둬서 피조물의 형체를 가지시고 나타나신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의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오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가? 또 오시기 전에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이 시간에 말씀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뿐입니까? 아니오. 예수님은 이제는 하나님뿐이라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시라 두 말을 붙여야 됩니다. 예수님은 참사람이시라 하면 틀렸습니다. 참하나님이시라고만 말하면 틀렸습니다. 참하나님이시오 참사람이시라 두 가지 이름을 붙여야 예수님을 바로 발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하신 일은 세 가지, 또 오시기 전에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영원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때 역사하신 하나님, 역사 시작할 때에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 역사하실 때에 그 역사를 하신 하나님, 그분이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대한 제3관
셋째, 그분이 무엇을 하러 오셨으며 그분은 오셔 가지고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주 이거 어려운 말입니다! 이게 어려운 말이오. 해석하기 어려운 말이라. 다 모르는 건 아니겠지만. 이러기 때문에 이 생명에 대해서 세계에 이단에 제일 많이 나와 있고 시비가 제일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왔다는 이 생명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홀로 계시면서 모든 것을 목적을 정하시고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운영하시는 이 힘, 이 능력,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의 본체가 가지고 있는 본체에게 있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능력을 가지고 왔다 하는 그 말입니다.
사람이 죽어 송장된 자에게 생명이 오면-제가 송장을 많이 좀 져다가 냈는데, 그때는 내가 체신은 작아도 장골 둘은 당한다 했습니다. 아주 힘이 셌습니다.
아주 젊은 사람 장정이 장티푸스로 죽었는데 짊어지고 좀 가다가 쉬고 쉬고 해 가지고 갖다 묻었습니다. 그 사람 예수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손 안 대고 이러니까 내가 묻을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지만 그 사람이 생명이 있을 때에는 뭐 쌀 두 가마니는 뻐뜩뻐뜩 지고 돌아다닙니다. 아마 포개서 일으키면 쌀 세 가마니도 포개서 짊어지고 일어날 것이오. 이렇츰 팔다리가 세지만 생명이 떠나놓으니까 무거운 짐더이가 되더라 그거요.
생명이 오니까 그렇습니다. 그 생명이 그 속에서 역사하니까 볼 수 도 있고, 들을 수도 있고, 말도 하고, 짊어지고 갈 수도, 비판도 있고 생명의 그 작용으로 되어지는 그것은 이 자연 생명인데,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가 계시고 그 본체에게 온갖 능력이 있었으니 사랑의 능력, 은혜의 능력, 창조의 능력, 주관의 능력, 심판의 능력, 통치의 능력, 오만 능력, 그 능력이 있었는데 그 능력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할 때 무엇으로 창조했습니까? 생명이 창조했습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힘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있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의 안에 있었다. 사람을 입고 왔지만 그 속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능력이 그분 속에 있다. 말이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을 뭐 할려고 가져왔는가? 이 생명이 사람들에게 접하게 되면은 그 사람들의 빛이 된다.
여기에 빛이라 말은 어두움과 빛 두 가지로 발표하기 위해서-뭐 전기 빛 같은 그런 빛이 아니라 그말이오. 여기 빛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알기 쉽게 하나의 표현 방편인데, 죽음은 어두움이요 사는 것은 빛이요, 슬픈 것은 어두움이요 기쁜 것은 빛이요, 실패는 어두움이요 성공은 빛이요, 바른 것은 빛이요 삐뚤어진 것은 어두움이요, 사랑은 빛이요 미움은 어두움이요, 파괴는 어두움이요 건설은 빛이요.
이렇게, 도덕의 빛, 활동의 빛, 또 화복의, 그 모든 사람들의 그 화복에 대한 빛, 또 지능에 대한 빛, 모든 역사에 대한 빛, 이 빛이라 말한 것은 이거 전부 좋은 것, 사는 것, 지혜 있는 것, 능력 있는 것, 옳은 것, 기쁜 것, 즐거운 것, 평안한 것, 성공, 영광 있는 것, 존귀 있는 것, 모든 그 선한 것, 후한 것, 바른 것, 곧은 것 이 모든 것을 한 말로 말해서 빛이라 말씀했는데,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이 뭐 할려고 왔느냐? 이 생명을 가져온 것은 이 생명이 사람들에게 접선이 탁 되면은, 마치 죽은 송장에게 생명이 가면은 송장이 일어나서 모든 것을 다 역사하는 것처럼 생명에 접선이 되면 인간들이 빛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빛이라" 인간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후회할 것이 없는, 옳고 발라서 하나님 다음의 위치를 감당하고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다음으로 필요해서 하나님은 그에게 피조물들은 그에게, 하나님은 빛된 그에게 피조물들은 빛된 그에게, 이래 가지고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이런 존재로 되어지도록 이 일 하기 위해서 왔다 그말입니다.
뭣 가지고 왔느냐? 생명 가지고 왔고,
생명 가지고 온 것은 뭐 할려고? 생명 가지고 온 것은 사람들을 빛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영생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완전한 지혜, 지혜에 완전하고 능력에 완전하고, 도덕에 완전하고, 속성에 완전하고, 활동에 완전하고, 조성에 완전하고, 모든 가치에 완전하고, 영광에 완전한 이 완전자를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 그 말입니다.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에게 대한 제4관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할 일은, "이렇게 당신이 만든 것들에게 당신 땅에 오지만 사람들이 알아 주지 아니한다. 영접지 아니했다. 환영하지 않았다." 이는 환영하면 죽기 때문에 환영을 못 하지요. 하나님이 오지를 못하지요. 왜? 중보자의 대속의 사죄와 칭의가 없으면 멸망받기 때문에 올 수가 없지요. 사죄와 칭의와 대속을 통해서만 오지 대속을 통하지 않고는 오지 못합니다. 대속을 안 통하고는 오지 못해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접선하면 타 버립니다. 망해 버립니다. 사죄의 공로가 없이, 칭의의 공로가 없이, 화친의 공로가 없으면 타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어. 아담 하와도, 아담 하와도 여인의 후손으로 말미암은 것을 입었고 가죽옷을 입힌 그 짐승의 혜택을 입어 가지고 바라보는 미래의 구주의 혜택을 입어 가지고 아담도 구원 얻은 것입니다.
「영접지 아니하나 영접하는 자」 영접하는 자는 누가 영접하는 자인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라"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예수라는 '예수'하는 이 예수라는 두 글자를 표시하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을 믿는다" 그라 말한 것은 예수님이요, 그 이름을 믿는다 말은 예수님의 이 공로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설정한 공로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설정한 공로는 무엇입니까? 영원전 목적을 정했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셨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대로 창조하셨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 창조, 보존, 섭리, 섭리중에 대속, 부활, 승천, 오늘에 동행의 성화, 영화로 일으키는 이 모든, 하나님이 영원 전에,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목적하시고 예정하시고 경영하시고 섭리하시고 하는 이것을 믿는자, 이것을 믿는 자를 가리켜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라 말은 이 사실을 인정시키는 것이,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누가 말하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그 말을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의 반쪽입니다.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이가 누굽니까?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이 지금 말하고 있고, 성령이 말만 가지고 안 되니까 자연 계시 속에, 자연으로 알게 하고 자연 계시 속에 성령이 직접 말해서 알게 하셨는데...
타락 전에는 이 자연 만물만 가지고 알게 하셔 가지고 아담에게 이름 지으라 하니까 척척 지어 가지고 틀림이 없는데 타락이 됐기 때문에 그 때부터는 안 돼서 다시 문서 계시라는 이 계시를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지식을 알게 하는 지식이 영감이요, 영감 지식으로 타락 후에 감당을 못 하기 때문에 문서 계시 이 지식을 주었으니, 문서 계시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이 지식을 참되다 인정하고 이 문서 계시의 지식을 내가 인정할 때에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성신의 감화 감동의 역사가 있으니, 이 지식을 우리가 인정할 때에 이것이 영접하는 것이요 이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식대로 자기가 움직여 행동하는 이것이 믿음의 반쪽으로서,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인정하여 자기 지식을 삼고, 이 지식대로 자기가 살려고 해도 살 수 없으나 네가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이 생명의 면류관, 승리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승리케 해 주시기를 자기가 소망하는 데에서 자기 힘을 다 기울여 행동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는 것이니, 하나님의 지식을 끌어오고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는 이것이 뭐이냐? '믿는 자라'
그러면 그렇게 끌어오면 그게 영접하는 것이요 믿는 것인데, 그러면 무슨 일이 생겨지느냐? 곧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준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준다 말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는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본체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본체 외에 모든 것은 다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본체 외에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님의 소유도, 하나님의 그 모든 영광도 전부 하나님의 것을 유업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는 것과, 하나님은 아니지만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처럼 제이 하나님이 되어, 제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를 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지만 독생하신 하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냈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본체는 아니로되 본체의 모든 가진 것, 그 본체가 가지고 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요,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자로 성화되고 성장되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으로 점점 성장되어 나가는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요. 이것 위해서 우리가 지금 부르심을 입어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혈통으로 된 자녀 아니라 그말이오. 부정모혈로 상속된 자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진리와 영감에 연결되어, 진리와 영감에게 연결되어 이것이 성화되어, 성화되어 인간의 요소는 그 무한의 요소를 끌어올 수 있는, 접선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이 접선을 인해서, 접선을 인해서 무한한 요소가 인적 요소에게 접선되어 있는 이것이다 그말이오. 접선되어 있는 이것이 다 신적 요소다 그말이오. 신적 요소다.
그러기 때문에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다. 혈육의 것이 아니다. 이 혈육의 것이 접선되어 무한히 접선되어 있는 무한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의 자녀 권세요 하나님의 자녀다.
「육정으로나」 육정, 인간의 그 모든 정실, 정기, 감정, 정성, 인간에게 있는 정기 그런 걸로 된 것이 아니다. 인적 요소가 아니다. 그러면 인간의 감정적인 무슨 정적 요소 그걸로 된 것이가? 그러면 고기덩어리 핏덩이 이걸로 된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말이오.
"사람의 뜻으로 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인간 생각을 가지고 그와같이 된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육적인 것도 아니요, 정서적인 것도 아니요, 인간들이 구상한 하나의 사상 상상의 것이냐? 그것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과 접선할 수 있어 피조물이 창조주와 접선됨으로 창조주의 무한한 것이 인간에게 접선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다, 자녀의 권세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인데, 권세라 말은 능력이라 그말이오. 모든 피조물을 만족케 할 수 있고, 피조물을 능히 살릴 수 있고, 먹일 수 있고, 다스릴 수 있고, 얼마든지 충만케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피조물인데 하나님의 역사를 다 할 수 있는 이런 존재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론: 전체 요약
그런고로, 이 말씀에서
첫째, 우리가 믿는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고 오셨는가? 세가지 일을 하고 오셨는데, 지금은 무슨 일 하시는가? 지금은 신인양성일위로서는 우리 구속의 일을 하시고, 배후에서 구속을 위해서 당신이 지금도 모든 존재를 혼자 운영하고 계신다는 것, 또 창조했다는 것, 모든 것이 이분의 소유라는 것, 이거 세 가지를 하고 왔고,
둘째, 그러면 오시기 전에 그분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의 본체시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데 한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실 때에는 성부라, 저 일을 하실 때에는 성자라, 또 그 일 하실 때는 성령이라, 또 이 일을 할 때는 말씀이라, 이 일을 할 때는 그리스도라,
내나 한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일을 하실 때 직책과-직책과 직위는 하나이기 때문에-그 직책을 맡아진 그 직위에 따라서 이름이 각각 표현됐으나 과연 그는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 이것을 여기서 말씀했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다.
셋째, 그러면 지금은 뭐 할려고 오셨는가? 생명 가지고 오셨다. 생명 가지고 뭐 할려고? 사람들을 빛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영계와 물질계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처럼 필요있는 존재 되고, 하나님처럼 만족케 해 줄 수 있고, 하나님과 꼭 같은 의무와 책임의, 본분의, 사랑의, 생명의 능력 역사를 할 수 있는 이런 자 되게 하기 위해서,
「참빛이 있었으니」 "참빛이 왔다.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다. 빛에 대해서 증거하러 왔다." 참빛이 있었으니 그 빛은 누구냐? 예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이라니까 그 생명이 뭐하러 왔는가? 우리를 빛 되도록 하기 위해서.
빛 되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니? 그 능력이 접해서, "참빛이 있었으니 예수님이라. 사람들에게 비취는 빛이라" 했는데, 그러면 그 생명이 온 이유는 예수님과 꼭 같은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과 같이 제이 예수를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첫 열매요 우리는 꼭 같은 그와 같은 그 다음 열매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되어지는 결실이다.
넷째, 그러기에 우리를 생명을 주어서, 생명을 뭐 할려고 주느냐? 세상의 빛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왔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생명 받는 비결이 무엇이냐? 영접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과 내세와 무궁세계에 피조물들에게 가장 필요한 빛이 될려고 하면 뭐이냐? 빛이 된다 말은 생명이 일단 나와서 역사할 때에 가리켜서 빛이라 그렇게 표현했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빛이 되는 데는 어떻게 되느냐? 그 이름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 이름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 이름을 영접하는 것은 뭐이냐? 그것은 곧 믿는 것이다.
그 이름을 영접하는 것은 곧 믿는 자니 믿는자에게는, 믿는 것은 어떤 것이 믿는 것이냐? 그분의 지식과 그분의 능력을 내가 붙들도록, 내 지식으로 그분의 지식을 붙들고 내 능력으로 그분의 능력을 붙드는 것,
내 지식과 능력은 그분의 지식과 능력을 잡는 데에만 이용되지, 잡는 데에만 써야 되지 이 지식을 가지고, 이 지식을 가지고 저를 행복되게 할려고, 이 지식 가지고 저의 불행을 어떻게 면제해 볼려고, 이 능력 가지고 자기를 행복되게 해 볼려고, 이 능력 가지고 자기의 불행을 어떻게 감소시켜 볼려고 하는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다 오용이요 쓰여지지는 않고 그래 쓰면 망쳐지는 것뿐입니다. 망쳐지는 것뿐이오.
쥐약은 쥐를 잡아야 필요하게 요긴한 것이 되지 쥐약을 제가 먹으면 됩니까? 뭐이든지 용도를 바로 하지 아니하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힘은 용도가 무엇이냐? 이 용도는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는 여기에만 전용돼야 됩니다.
어떻게 지식으로,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끌어오느냐? 내 지식을 주장하면 내가 a아하고, 내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옳다 참되다 인정해서 내 지식 전부보다 당신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삼는, 내 지식은 당신의 지식을 환영하고 당신의 지식으로 인하고 당신의 지식을 내가 영접하는 그 지식과 연결되는 여기에만 써야 되고,
내 힘은, 내 힘 가지고 뭐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을 내가 영접하기 위해서 당신이 하라는 이 일을 하라 하는 것인 줄 알고 요 일이 옳고 바르니까 해야 되겠는데 내 힘으로 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도 내 힘으로 한다고 했으면 그는 불의요. 그는 죄를 범했습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내가 해야 될 일인데 내 힘으로 하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데 이 일을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도와 줘서 이를 영원 불변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하는 것이다 하여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는 거기에 전용하는 힘이 된 것입니다.그러기에 우리의 힘으로 보이는 것은 만들 수 있소. 보이는 것은 만들 수 있지만 그 만들어진 그것이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들은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신 일, 오시기 전 어떤 분이신 것, 지금은 무엇을 가지고 무엇하러 오셨는가 하는 것,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이 네 가지를 이 말씀에서 굳게 잡아야 됩니다. 이런 걸 잡아야 세상을 이깁니다. 그래야 참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것 잡지 아니하고 뭐 '도둑질 하지 말아라, 정직해라, 사람을 사랑해라,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줘라.' 그런 소리는 불교에도 있고 어디든지 있는 것입니다. 왜 그까짓 거라? 그까짓 거 암만 해 봤자 뿌리 끊긴 화초가 해돋으면 말라 버립니다.
이것 없는 모든 도덕 행위, 자선 행위는 다 시기를 따라서 말라져 버리고, 무신론 세계 되면 무신론 세계 되고, 또 민주주의 다 죽이라 하는 것 되면, 죽이고, 민주주의에 속해 가지고 또 이제 공산주의 다 죽이라 하면 죽이는 자 되고, 소용없어!
여게 뿌럭지가 있어야 됩니다. 이 뿌리를 박지 못한 기독교 도덕, 사회, 윤리 뭐 이거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제 네 가지를 굳게 잡읍시다.
듣는 데서 구원이 생깁니다. 아는 것은 힘입니다. 천하에 있는 다른 책에는 이것이 없어, 신구약 66권에만 있고, 66권에 있는 것은 껍데기로 강령만 말해 놨는데 이 말씀을 가지고 알려고 하면, 이 말씀으로 자기 마음을 깨끗게 하면 마음을 통하여 성령이 양심의 귀에 올려 줍니다. 그러면 들어 깨달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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