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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밀레니엄 시대의 종교와 문학
― 황석영 ・김원일 ・조성기 소설들을 중심으로
임 영 천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가 열리고, 이후 오륙(5, 6) 년의 햇수가 흘러가고 있다. 이 시대의 벽두에 문단의 중진 작가들에 의해 종교와 문학을 연결시켜 주는, 이른바 기독교소설이라 불릴 수 있는 작품들이 수 편 생산되었다. 황석영의 장편소설『손님』(2001)과 김원일의 중편소설「나는 두려워요」(2001), 그리고 조성기의 단편소설「예수도 꿈을 꾸었는가」(2002) 등의 작품들이다.
이 세 편의 소설들은 모두 2001년과 2002년 두 해에 걸쳐 생산된 작품들이다. 당연히 새 밀레니엄의 벽두에 쏟아져 나온 역량 있는 작가들에 의해 생산된 종교적 내용의 작품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제격일 성싶다. 그런데 이 소설들은 매우 특이한 종교 소설의 면모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제재가 참신하다고 할까, 또는 주제의식이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다르다고 할까, 달리 말하자면 무엇인가 독창적인 세계가 상당히 돋보이는 작품들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으리라. 이하에서 그 실상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화해와 구원 지향의, 기독교적 리얼리즘의 문학세계
작가 황석영의 근래의 장편소설『손님』(창비사, 2001)에 대하여 살펴볼 기회를 얻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2천 년대에 들어와 산출된 작품들 중 문자 그대로 문제작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에서 이 작품에 접근해 가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논란거리들이 논의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독자들에게 매우 충격적이라고 할 소설『손님』이 그만큼 다양한 문제점들을 자체 안에 내장하고 있는 실로 문제적인 작품인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하에서 이 작품을 기독교 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말은 이 작품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칭하는 이른바 기독교소설의 범주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접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을 소위 기독교소설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점은 비유컨대 작고 문인 김동리의「무녀도」나『을화』, 또는『사반의 십자가』가 기독교소설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만큼의 논의를 앞으로 기독교 문단에서 가능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기독교 문단이 아닌 편에서는 이 작품이 기독교소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에너지를 소비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기독교문학의 정의를 너무 경직되게, 또는 거의 교조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상기 김동리의 작품들이 기독교소설이 될 수 없다고 하던 옛날 식의 논란이 재연될 여지가 없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의 회의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김동리의 상기 작품들이 여전히 한국의 기독교문학사에서 그 자취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황석영의 이 작품도 앞으로 유사한 전철을 밟는 정도로 한국의 기독교소설사에서 그 흔적이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다소 엉뚱한 표현을 써 보기로 한다면, 유명 작가 이문열이 기독교소설인『사람의 아들』로 그의 문학의 첫 걸음을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기독교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먼 곳에 정착[안주?]했다고 할 수 있다면, 유력 작가 황석영은 지금껏 기독교 세계와는 거의 무관한 작품들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해 오다가, 생의 비교적 후년인 현금[최근]에 이르러 예상 외로 독자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기독교적인 내용의 소설을 내어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제 여담을 하나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황해도 송화(군) 사람이다. 그런데 작가 황석영은 그의 원적(原籍)이 황해도 신천(군)이라고 하였다. 즉 만주에서 살았던 그의 부친이 원래 황해도 신천 사람이라는 뜻이다.(참고로 말하면, 그의 모친은 평양 사람이란다.) 작가가 만주 태생이라는 것으로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그의 부친이 황해도 신천 사람이고 그 때문에 작가의 원적이 황해도 신천이란 사실은 이 소설의 후기[작가의 말]에 나타난 작가 자신의 술회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필자가 굳이 왜 이런 사실을 들추어내려고 하는 것인가.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감회가 깊었다. 내 고향 이야기가 이렇게 한 편의 훌륭한 장편소설이 될 수 있었다니, 하는 심정으로 나는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어나갔다. 나의 고향 송화(松禾) 근처에 있는 신천(信川)이니, 안악이니, 재령이니, 구월산이니……하는 지명과 산 이름 등을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서 지내면서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이제 그 지역들 중의 하나인 신천을 중심으로 한, 6 ・25 사변 전후(前後)의 이야기가 튼튼한 한 편의 장편소설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이 소설을 접하는 독자[필자]의 입장이 남달랐다는 것을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다음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하겠다.
먼저, 앞서의 논의로 되돌아가 보기로 하련다. 이 소설이 과연 기독교문학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이 논의를 나는 이 소설이 기독교문학 작품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할 근거가 어디서 발생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評]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첫째,『손님』은 6 ・25 내란 전후의 우리 나라 좌우익 대립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문제는 하나의 단순 소재로 등장하고 있을 따름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둘째, 이 때문에 여기에는‘기독교적인 문제’1)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가 애초부터 빠져 있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이는, 위와 같은 논란이 혹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우려에서 필자 나름대로 제시해 본 물음일 뿐이다. 이런 물음이 언젠가 제기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가상적인 물음 앞에서 그 어떤 해답을 미리 얻어 놓아야만 할 것 같다. 그만큼『손님』과 관련된 기독교문학 논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 제시를 필자는 이 글의 결론 부분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시도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이 소설의 서사(스토리) 문제와 관련해서 몇 가지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손님』은 6 ・25 사변 때 황해도 신천을 중심으로 해 그곳의 좌우익 청년들의 대립의 실상을 그려 보여준 소설 작품이다. 좌익 청년들은 후기(작가의 말)에 의할 때‘마르크스주의’추종 세력이며, 우익 청년들은 대부분‘기독교'의 교회 신도들이다. 황해도는 ―평양과 함께― 우리 나라 기독교[개신교]의 요람지이므로 이곳에 개신교 신도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 속에는 이곳의 기독교 전래사 또는 수난사와 관련된 많은 교회사 자료들이 소개되어 있어, 바로 이 점이 한국 개신교와 이런저런 식으로 관련이 있는 분들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느껴지기도 한다.
필자 개인은 황해도 도민 출신, 또는 황해도 초기 개신교 신도 집안 출신이란 이유로 이 소설에 유다른 흥미를 느끼고 있음이 사실이지만,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세계 기독교회사, 또는 한국 기독교회사에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역사신학도이기도 하다는 이유로 이 소설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도 하겠다. 그만큼 이 소설은 재미 작가 김은국의『순교자』(1964)란 소설과도 다소의 관련을 맺고 있는 기독교 문제작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순교자』2)가 평양성을 중심으로 하여 6 ・25 전란 때 그곳의 개신교 목사들(12명)이 인민군 장교에게 당한 고난의 실상을 그려 준 작품이라면,『손님』은 비슷한 시기에 황해도 신천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진 좌우익 청년들의 대립, 아니 동족 상잔(相殘)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전자가‘목회자들'의 수난상을 보여 주었다면, 후자는‘평신도들'의, 부분적으로는 수난상, 그러나 더 많이는 좌익 청년들과 그 가족 식구들에 대한 참혹한 박해의 실상을 그려 주었다고 할 것이다.
즉 전자(<순교자>)에서는 목사와 인민군 장교와의 대결의 국면에서 목사 측에서 고난당한 결과를 그려 내었다면, 후자(<손님>)에서는 교회 평신도들과 좌익 청년들의 상호 대결 국면에서 교회 청년 신도들이 그 마을 좌익 청년들에게 더 많은 가혹행위를 가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순교자』가 평양을 중심으로 한 좌우익‘상부 계층 인사들'의 박해와 수난의 실상을 그렸다면,『손님』은 신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좌우익 양 세력의‘하부 계층 사람들'끼리의 상호 충돌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3)
전자에서는 기독교 목사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이지만, 후자에서는 기독교 평신도 청년들이 오히려 더 많이 좌익 청년들과 그 가솔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서슴없이 가하는 편이다. 마치『순교자』의 평양 목회자(목사)들이 인민군 장교에게 속절없이 당한 사실에 대해『손님』의 신천 지방 기독교 측 주요인물(평신도)들이 무슨 대리 보복이라도 가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은 다소 엉뚱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순교자』는 60년대의 세계적[기독교계의] 관심거리였던 세속화신학의 영향에 크게 지배된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신의 침묵, 또는 신의 부재, 나아가서는 신의 죽음 사상까지도 자연스럽게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손님』은 아무래도 90년대 이래 크게 불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PM)의 영향이 폭넓게 반영된 작품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비록 기본적으로는 리얼리즘적 기조를 튼튼히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특히 그것(PM)의 파생 현상인 판타지 문학적 특성이 자연스레 흘러들어온 면이 간취된다고 하겠으니, 그 때문에 작품 곳곳에서 꿈(몽환)의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이른바‘헛것’이라는 이름의 사자(死者)들의 영이 무시로 출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헛것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등장하는 가운데 그 어떤 자유분방한 예술적 효과를 내게 하는 데도 한 몫을 크게 담당하는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우리 독자들을 크게 놀라게 하는 사실은 아무리 꿈과 헛것과 판타지 성이 판치는 것 같은 가운데서도 이 소설 자체의 리얼리즘적 바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엄연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남북 분단 전후의 동족상잔의 참상을 묘사한 민족문학적 성격이 강한 리얼리즘의 소설이라는 말이다. 만일 이 작품에 기독교문학이라는 평가와 이름이 덧붙여지는 게 허락된다면, 이 작품은 우리 문학계에 별로 그 사례가 흔하지 않은 이른바 기독교 리얼리즘 소설로 내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손님』속의 주요인물은 류요섭 목사와 그의 형 류요한 장로이다. 이 소설 속에서 기독교 장로로 등장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비기독교적인 삶을 산 대표적 인물이 류요한 장로라고 할 것이다. 그는 신천에서 좌우익 청년들이 린치와 살육과 보복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그 때, 수많은 좌익 측(?)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독자들은 그 죄가 단지 류요한 장로 그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익 측 기독교 신도라고 해서 그 와중에서 결코 천사(天使)로 남아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하는 정황도 잘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살육과 보복의 마지막 단계에서 비록 기독 청년들이라고 해도 좌익 청년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악랄할 수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좌익, 우익 어느 쪽이든 결국은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만이 좌우익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결책이란 점을 류요섭 목사의 언행을 통해 역설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후세들의 구원의 길일 수 있다는 점도 작가는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이 소설은 인간 구원의 문학이요, 동시에 화해의 문학인 것이다. 덧붙여 말한다면,『손님』은 오늘의 화해와 구원 지향의, 한국 기독교 리얼리즘 소설의 수준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님 만나기 매우 두려운, 운명 직전의 순결한 영혼
김원일의 새로운 형식의 중편소설「나는 두려워요」(작가세계, 2001. 봄)가 상기 황석영의 작품과 같은 해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는 그 전체가 한 문단만으로 되어 있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즉 한 행도 행갈이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줄글로만 써 내려간, 형식상으로는 다소 갑갑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라고도 하겠다. 이후 이런 형식의 소설이, 예하여 박정규의「에코르체, 혹은 보이지 않는 남자」4), 또는「안녕, 먼 곳의 친구들이여」5) 등에 이어서 나타나고 있음이 보인다.
전(全) 3장으로 되어 있는 중편소설「나는 두려워요」의 제1장은 김원일이 그의「믿음의 충돌」6)에서도 보여준 일종의 여로소설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제2장과 제3장 등에 이르면 그런 형식이 굳이 고수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전 3장의 규모 큰 이 중편소설이 1, 2, 3장 각각의 분량 안배에 있어서 일종의 용두사미 식[두괄 식?] 배치를 하고 있음이 보인다. 다시 말하면 앞쪽(제1장)이 분량 면에 있어서 가장 많고, 가운데 제2장은 그 다음의 분량이며, 마지막 쪽(제3장)은 가장 분량이 적게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작가 자신의 의도적인 안배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임종 장면의 어떤 스피디한 극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고안[장치]이 아닐까 여겨지는 것이다. 즉 주인공의 생명이 소진되어 가는 과정을 시간 개념을 개입시켜 속도감 있게 표현하려는 한 노력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상(以上)의 어떤 형식적 특징보다도 더 그 내용적인 면에 독자들이 강력히 이끌리게 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 내용이란 바로 기독교 정신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김원일이 이 작품보다 앞서 발표한 바 있는「마음의 감옥」7)과「믿음의 충돌」, 두 중편 기독교소설들과 관련시켜 논의해 본다면「나는 두려워요」가 앞의 것들보다도 훨씬 더 기독교적인 세계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기독교 신도인 주인공 윤여은 선생이 생의 말년에 이르러 극심한 육체적 고통[암 투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그 고통이 예수의 십자가 고난8)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음이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은 다음의, 이렇게 설명되고 있는 문장 가운데서 그 의미의 실마리가 다소 풀리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그 환상은 자신에게도 죽음의 때가 가까워진 탓인지 예수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이 자주 보였다."(p.144)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관련된 이런 환상의 장면이 아래와 같이 이어져 나타나고 있다.
그 실재하지 않는 세계가 그녀에게는 마치 목격자로서 경험한 듯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성문을 향해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다른 죄수 둘과 함께 걷는 예수가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메고 가느라 탈진이 되어 허덕거리자 병사는 호통을 치며 채찍으로 매질을 했다. 예수는 허기와 피로에 지쳐 몇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연방 무릎을 꿇었다.(p.144)
이런 예수의 고난의 모습이 독자들에게는 윤 선생의 나날의 고통9)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나타난다. 어떻든 이렇게 오버랩 되어 나타나는 두 고통[고난]의 장면들이 우리 독자들에게 주는 인상은, 윤 선생이 그래도 참 기독교 신도였던가 보다 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오늘의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의 고난에 맞먹는 그런 고난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어떤 당위성에의 인식과, 실제로 윤 선생의 오늘의 고통의 삶이 사실은 예수의 고난의 삶의 한 상징적인 모습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윤 선생의 오늘의 고통의 나날이 예수의 고난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예수의 고난의 삶을 본받아서 살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녀가 오늘과 같은 고통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다음의 문장(인용문)을 더 보기로 하겠다.
언덕길을 오르자 한낮의 태양은 불타듯 내리쬐어 예수는 기진맥진이 된 채 비틀거렸다. 예수가 땀과 눈물에 찌든 얼굴을 들어 시몬 말고 누가 좀 도와달라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군중 속에 제자들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나라로 갈 그날까지 자기를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그들은 예수와 함께 자기도 형틀에 매일까 봐 겁먹어 성문 밖을 빠져나가고 없었다.(p.144)
예수를 따르겠다고 한 맹세가 얼마나 지켜지기 어려운 것인가를 웅변적으로 증거해 주는 장면이라고 할 만하다. 열두 제자들마저 이러할진대 그보다 못한 거개의 필부필부들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그런 이유 때문에서도 윤 선생의 일생의 삶의 자세는 거의 숭고하다고까지 할 만하다. 그녀는, 언젠가 예수를 받아들인 이후부터서는 결코 그(예수)에 대한 배신행위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누가 좀 도와 달라.”고 주위를 둘러보는 예수를 못 본 체하고 그냥 지나친다거나 도피해 버린 제자들처럼 경거망동을 한 적이 그녀에겐 없었다. 충성 맹세 후에도 상황의 불리함에 따라 겁먹고 성문 밖으로 도망친 제자들과 같이 비겁하게 굴었던 적도 결코 없었다. 이 소설은 그러한 그녀의 기독도로서의 돈독한 신앙생활을 한 오라기의 가감첨삭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윤여은 선생이 그러하다10)고 하는 것은 그녀의 개인사적인 궤적 가운데서도 사실상 증거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든든한‘윤기모'라는 단체가 있었다. 윤기모는‘윤여은 선생을 기리는 모임'의 약칭이다. 윤 선생이 가르친 제자들이 만년의 윤 선생을 돕기 위해 만든 개인봉사 단체이다. 윤 선생 한 분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인 것이다. 윤 선생이 없었더라면 아예 이 모임은 태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게 되면 이 모임은 자동적으로 해산될지도 모른다. 아니, 죽은 뒤에도 그녀의 숭고한 삶을 기리기 위해 무슨 추모 단체로 그 수명을 이어나갈지도 모른다. 전직 의사 허 환이 윤기모 회장을 맡고, 운영위원 심경수는 기로원(사설 양로원) 설립을 추진해 그 결실이 맺어졌다.11) 윤 선생 한 분 때문에 양로원인 기로원이 건립되고, 실은 아무 관련도 없는 다른 노인들이 그 혜택을 입게도 되었던 것이다.
많은 제자들이 기로원 건립에 찬동해 과다한 헌금을 쾌척했던 것은 그녀가 청빈한 삶을 살면서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 사회복지 시설 애린원(선교사 제임스 목사 창설)에 희사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 와서 제자들로부터 인간적 대우를 받게 된 것은 이를테면(우리 속담 식으로 표현한다면) 콩 심은 데 콩 난 격이라고나 할까, 심은 대로 거둔 결과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언제나‘예수 사랑'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에서 진실한‘예수 사랑'은 곧‘이웃 사랑'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이런 예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윤 선생의 일생을 대변해 주는 매우 간명한 표현이 될 것이다. 임종 시기에 제자들이 말한바,“평생을 육영과 선교에 바치며 성처녀로 사시다 돌아가시다.”12)는 표현이 제격인 그런 삶이었다. 그녀는 일생 동안 정갈한 독신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랬으면서도 생의 말년에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심정은 지금 이런 상태이다.
저는 세상 사람들 앞에 교사로서의 품위를 보이려 위선이란 옷을 입고, 모범으로 꾸미며, 내 몸을 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멸시를 당했거나 수난과 박해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 정의와 자유와 사랑을 위해 비바람 맞으며 앞장서서 나서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 같은 죄인이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들 수 있을까요?(p.212)
그러나 독자의 처지에서 보자면, 그녀는 겸손의 신앙인이기 때문에 이러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마지막도 운명 직전의 그녀의 다음 신음소리로 끝나고 있다.“저는 주님을 만나기가 두려워요."(p.221)
기독교인으로서 종교들 중 자신의 기독교가 타 종교에 비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언젠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서 자신의 종전의 태도를 스스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타종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 시주승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정식 승적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이를테면 걸립패에서나 떨어져 나온 돌중 같아 보이는 그 승려의 행적을 그녀(윤 선생)의 양자 고경률과 함께 직접 확인하고 난 이후부터의 일이었다. 그 돌중[가짜 스님] 같은 이가 다리 밑 가마니로 둘러싼 거적집으로 들어가기에, 그 스님의 식구들이 그곳에 있는 줄로만 여겼던 윤 선생의 눈에 전혀 예기치 않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시주승의 식구가 아닌, 몸의 거동이 불편한 중늙은이들 예닐곱 명이 거기서 기거하고 있었고, 시주승은 그들에게 동냥밥을 얻어다가 그들을 부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기로 온 몸을 심하게 떠는 자, 두 다리가 없는 앉은뱅이, 한 쪽 눈이 애꾸인 곱사등이에, 누운 채 입가로 침을 흘리는 늙은이는 눈조차 못 뜨는 장님이었다.
다리 위로 올라선 윤 선생은 자신이 추측했던 짐작의 부끄러움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이십대 중반 성 프란체스코 전기를 읽었을 대의 감동이 눈앞에서 그대로 재현되어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눈물은 참회와 희열이 뒤범벅된 들끓음, 혼란 그 자체였다. 그 뒤부터 윤 선생은 수업 중에 종교가 일상생활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말은 해도 특별히 여러 종교 중 기독교가 가장 우월한 종교라고 전도하지는 않았다.(p.182 이하)
그녀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대단한 인격 성장의 실제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기독교의 우월성만 소리 높여 외쳤지, 기독교인들의 실제 잘못된 모습은 결코 말하지 않는 기독교도들의 편견과 오만이 얼마나 비(非)기독교도들에게 큰 거부반응으로 나타나는지를 생각해 볼 때, 윤 선생의 이런 인격 성장의 모습은 가찬할 만하다고 하겠다. 그녀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길이 저렇구나 하고 주위 사람들이 본받도록 조신했을 뿐, 제 스스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드름을 피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소작농의 넷째 딸, 선천성 언청이[째보] 신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恨)의 덩어리였었는데, 운 좋게 제임스 선교사를 만나 양녀로 받아들여지고 언청이 수술까지 받아 소원이던 학교에도 가고 나중에 선생도 되었지만, 그녀의 부친이 좌익운동가였기 때문에 민족상잔의 기간에는 서로 밀고 밀리는 속에서 예기치 않은 고초도 겪게 되고 또 교사직에서 물러나는 불운도 겪어야 했었다. 그녀가 예수를 믿었다고 하여 그 결과가 곧바로 가정의 평화나 행운으로 나타난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 송정댁이 부르짖은 다음의 푸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네 아비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는지 너가 말해 보라고! 정례와 네가 하도 간청해 나도 예수 믿었더니 예수 귀신이 네 아비를 잡아먹었어!"(p.188) 송정댁의 이런 넋두리처럼 그녀의 아버지는 좌우익 이념 싸움의 희생제물이 되어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정이 어떻게 풍지박산이 되어 버렸는지 그 실상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만산에 단풍이 지던 절기, 그네가 이십오 리 길을 지친거리며 걸어 집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아버지를 잃은 뒤 실성기를 보였던 엄마는 알몸으로 우물에 투신해 죽었고, 구산 포구 김밭일을 하다 국군에 입대한 첫째 오라버니는 전사했고, 아래 오라버니는 인민군 의용대로 끌려나간 뒤 소식이 묘연했다.(p.190 이하)
그러나 이럴 때마다 주님의 은총이 늘 그녀에게 함께 했었던 것 같다. 예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으로 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도움은 곧 이웃들의 도움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언제나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감싸곤 하여 그녀는 위기에서 구출되고 종국엔 좋은 결과가 나타나곤 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녀를 언제나 감싸고 있었던 셈이다. 그녀의 주님께 대한 사랑이 결국은 그녀에게 행복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게 됐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두려워요」는 인간의 죄와 속죄 문제, 그리고 인간 구원의 문제에 깊이 매달려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거기에다, 보다 현실적이라 할 기독교 윤리적인 과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은 자의 참 크리스천으로서의 실천적인 삶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드러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십자가, 생의 마지막 유혹, 그리고 기적적 대응
『라하트 하헤렙』을 위시로 한『야훼의 밤』시리즈로 한때 장안의 지가를 올리던 기독교소설 작가 조성기의, 비교적 신작이라 할 작품「예수도 꿈을 꾸었는가」(현대문학, 2002. 3)가 발표되었다. 조금 긴 분량의 단편소설인 이 작품을 대하고 나서, 필자는 이 작품이 역작에 속한다고 하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공력을 기울인 작품이라는 뜻이겠다.
이 소설은 조성기 소설의 대부분이(상당수가?) 그러하듯이 자전적인 요소가 짙게 배어 있는 것 같다. 그의 일인칭 시점의 소설들이 더 그러하듯이, 역시 일인칭 시점의 이 소설에서도 강한 자전적인 냄새가 전편을 압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소설이 종교적인 세계를 다루다 보니 신학대학(신대원) 출신인 작가의 기량이 한껏 발휘되었다고나 할까. 이런저런 이유로써도 이는 확실히 조성기 소설다운 면모를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문학론(소설론)에서‘작가'와‘화자'는 일반적으로 구별된다. 쉽게 말해, 어느 일인칭 시점의 소설 가운데서‘나'라는 일인칭 화자가 등장했을 경우, 그‘나'(화자)가‘작가’자신과 동일 인물일 수는 결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일인칭 시점 소설의 경우 의외로 그 화자가‘작가’자신으로 보일 수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이다. 이를테면 자전적인 내용의 소설일 때 자칫‘작가'와‘화자'가 일치될(동일인물이 될) 수도 없지 않다는 말이다. 아마도 조성기의 이 소설은 이와 같은- ―작가와 화자가 일치되는― 좋은 사례를 보여주지 않았나 여겨진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화자가‘예수'와‘성경', 그리고‘기독교'의 세계에 대해 매우 해박한 지식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소설의 제재를 충분히 숙지해 거기에 따른 원숙한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여러 에피소드들의 처리도 기독교와 그 관련 문제에 대한 지식의 수준이 높음으로 인해서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이가 화자로 설정되었다는 데서도 그 점은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다.
「예수도 꿈을 꾸었는가」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대본으로 해서 이를 영상화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관람하게 된 한 영화 애호가의‘관람기’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형식이 소설의 구성 형식으로는 약간 이색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수도 꿈을 꾸었는가」라는 이 소설의 제목 속에는‘예수도 한 인간'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배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김없이 인정하면서도 막상‘예수는 인간'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머뭇거리게 되는 경직된 사고에 강하게 맞서기라도 하듯이 작가는“예수도 꿈을 꾸었단 말인가”라는 강력한 반어적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카잔차키스의 소설『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3)은 작가로 하여금 희랍정교회로부터 출교 처분을 당하게 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했으며, 이를 원작으로 한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은 온 세계의 기독교 단체로부터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그 상영이 어려워지는 형편에 처해지기도 했었던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가 한국의 영화관에서 은밀하게 개봉되었을 때, 화자는 겨우 몇 십 명에 불과한 관객 속에 끼여 이를 관람한 것이다. 그 전후(前後) 과정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무슨‘행동'이란 것에는 별 흥미를 느끼게 하지 못한다. 화자가 영화 티켓을 구입해서 극장 안에 들어가 스콜세지의 그 영화를 본 뒤 그것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까지를 서술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자의‘행동'은 이처럼 단순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왜냐면, 카잔차키스의 예수에 대한 해석과 스콜세지의 예수에 대한 해석이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뒤엉켜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예수의 실상'이 제3의 인물인 화자(작가?)에 의해 더욱 철저히 규명되고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이 영화를 보고서 내리는 그 나름의 해석, 특히 예수가 겪는 생의 그‘마지막 유혹'과 관련해 시도한 해석, 즉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의 일 등 여러 육신의 시험[유혹]을 마지막까지 받았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영혼이 있음을 보여준 존재이며, 그 영혼이 존재하는 한 기적이란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그래서 예수는 그 마지막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 화자 나름의 종교적 해석이라고 하겠다.14)
이상을 다시 간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이 그 요점을 대강 요약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장편소설인 황석영의『손님』은 우리의 민족사적 비극, 곧 동족상잔의 불행에 대한 기독교계의 통렬한 자기비판을 촉구하는 교훈성이 강한 작품으로 그 특징적인 면을 지적해 볼 수 있겠다.
둘째로, 중편소설인 김원일의「나는 두려워요」는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제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주인공의, 신 앞에서의 처절한 참회의식이 강하게 표출되며, 또한 살아있는 이들에게 그 의의를 부각시키려 하는 작품으로 그 특징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손님>)가 보다 역사적(사회-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라면, 후자(<나는…>)는 보다 개인적인 속죄와 구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편소설인 조성기의「예수도 꿈을 꾸었는가」는 문학과 영화가 서로 얽혀 구축(構築)해 내는, 제재와 형식 면의 참신성, 혹은 독창성을 충만히 드러낸 이색적인 작품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어떻든 상기 세 소설들은 새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와서 생산된 창의적인 기독교소설들이라는 평가가 충분히 가능한 작품들로 판단된다 할 것이다. (*)
# 본고는『월간문학』금년(2006) 2월호에 이미 발표된 문학평론으로, 최단 시인님의 요구(권유)로 이 카페에 다시 올리게 되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
첫댓글 임교수님의 고향이 황해도 송화이란곳인줄 처음 알았읍니다 작가 황석영씨의 작품 소님을 읽으신 감회가 깊었겟음니다 저는 6.25때 17살의 나이로 친구들도 이북 의용군으로 또는 우리한국군의 학도병으로 많이들 끌여가 죽었읍니다 동족 상잔의참상
을 체혐한 세대였읍니다 어찌 손님에 나오는 학살과 보복의 악순환이 그곳박에 이겠읍니까 밀리고 밀리는 곳에서는 다일어났든 현상이였고 우리 민족의 수난이였읍니다 악이 악을 낳고 보복이 보복의 극을 달이였든게 그때의 현실이였읍니다
어느 집안이고 간에 격지않는 집안이 없었고 가족들의 처참한 희생을 눈으로 보고도 보복하지 않은다는 것이야말로 당시로는 상상이 않될 일이였든게 사실이 였읍니다 그시대에 살었든 사람들은 서로 서로 깊은 앙금은 지금도 명명히 살아 있읍니다 그레서 작가가 제시하는 화해와 구원의 정신이야 말로
남북한의 통일에 앞서 풀어야할 문재가 아닐런지요 허나 가족을 죽인 원수 부모를 죽인 원수을 화해와 용서가 아무리 세월이 흘었어도 그리 쉬운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기독교 정신이야 말로 작가가 제시하는것일지 모릅니다 임교수님의 글 잘읽고 두서없이 썼읍니다 감사합니다
최 고문님의 인생경험이 저보다 수년 앞서기 때문에 <손님>에 대한 이해 면에 있어서도 훨씬 앞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열두(12) 살 때 1.4후퇴를 만나 황해도 송화(* 송천이 아니라)에서 남한으로 피난 나왔기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동족상잔의 아비규환에 직접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사실은 <손님>을 읽는 데 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체험 미달로 인한 작품이해의 부족 말입니다. / 최 시인님이, 용서와 화해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작가가 그것을 강조한 것은 결국 화해의 기독교 정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란 의미로 해석하신 것은 탁견이라 하겠습니다.
공자앞에서 저의 사견을 몇마디 한걸 갖이고 넘우 과찬을 하여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읍니다 두서없이 쓴글중에 송화을 갖이고 송천 이라고 했고 그 이외도 많은 오자가 나와 부끄럽습니다 바로 송화란곳이 북조선에서 미군의 만행을 언제나 북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선전하였든 그곳이 아닐런지요 ?
황석영씨의 소설 "손님"이 나온후 그들의 거짖이 폭로되여 망신살이 되였든 곳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읍니다 저는 소설이 던저준 그 파장에 관심을 갖이고 있읍니다 왜냐하면 저의 고향 영동군 에도 굴황리 사건이 잇읍니다 기차굴 15m 인곳에 피난민을 비행기에서 기총소사로 죽이였다고 하나
미군측 주장은 피난민을 가장한 인민군이 숨어있어 일어난 사건이라고 변명을 합니다 하나 제 사견으로는 전쟁중에는 흔이 있는 일로 좀 사상이 붉은 사람들이 미국을 흠집네기식 의 사건이라 생각하고 옛날에는 끽소리 없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스자 아우성을 하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월간문학' 2월호에 수록된 임영천 교수님의 평론 작품 입니다. 최단 고문님과 임영천 부회장님의 대화가 너무도 진지하고 보기가 좋습니다. 종종 좋은 말씀 나누시고 좋은 만남의 장이 되었습면 합니다.
최 단, 장은수, 두 분 시인님들의 고무로 제 글(평론)이 정도 이상으로 빛이 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최 시인님이 충북 영동 태생이신가 보죠? 충북 영동에 지금 거주하고 계신 소설가 이동희 씨(전 단국대 국문과 교수), 그리고 영동군 보건소장(간호사)인 소설가 민영이 씨 등을 혹시 개인적으로 알고 계신지요? 이분들 중 누군가가 그 영동 굴황리 사건을 소설 작품으로 준비하고 계시다는 풍문을 들은 것 같아서요. *
두분은 잘 모른나 이동희씨는 이름은 듣고 있는 처지입니다 저는 고향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여렸을때 아버님의 직장관계로 무려 국민학교를 7곱군데를 전전하였읍니다 심지여 평양에서 진남포에서 이남에서는 각 도청소제지를 두루두루 살어보왔고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대전
에서 마치였읍니다 대학은 피난시절 서울 대학이 부산에서 있어 그곳에서 다녔고 2학년 부터는 수복해서 서울에서 그러고 군의관 생활 5년 그러고 신당동에서 치과 개엽의로 43년 올시다 고향이라해서 학교 방학때 할머니할아버지 뵈올려 내려가 놀든것이 전부 였읍니다
장은수 시인이 우리 고향 엎 동내인 보은이라 서로 다정하게 호형 호재하며 지냄니다 문학은 고등하교 시절 문예반에있어 문학 소년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여왔고 어깨넘어 구걸하는 독학으로 체개없이 배운 돌팔이 문인이 올씨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기대합니다
세계여행 두루 다니시기 전에, 아예 국내의 모든 곳들에 대한 젊어서의 여행을 완전히 필해버리신 셈이군요. *
ㅎㅎㅎㅎㅎ 맞읍니다 그러나 수박 겉할기 이제부터는 기운없고 나이들어 국내 여행 착실이하여 글이나 써볼야합니다 좋은곳도 많던군요
최단 고문님, 임영천 부회장님 여기 찻상 가져다 놓았습니다. 두분이서 다정다감한 말씀 나누시며 오늘밤을 세워보시죠 저는 듣고 있을께요 ㅎㅎㅎ
일이 진행되다 보니, 사정(事情)이 묘하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죠?
맞어요 찻상이 아니라 아주 언제 적당한 날 정하여 우리 세사람이 맞나 저녁이나 하며 이야기 꽃 피워 봅시다 장시인이 주선 하여보십시요 내 저녁 한번 사고 싶읍니다
저는 평론을 열다가 댓글 수가 하도 많기에 들어와봤더니 최단 샘과 임영천 샘의 말씀에서 지난 세대의 아픔도 보이고 여러 정황들이 쓰였네요. 두 분께서는 여러 학교를 전학다녔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저도 월간문학에 실린 임영천 샘의 평론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적 소설 평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세 명에다 뒤늦게 가세하신 박 샘까지 합쳐 아예 넷이서 찻상이든 밥상이든 차려 보는 것도 새로운 광진문협 카페利用史를 쓰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도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事情]이 역시 묘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니까요. *
좋읍니다 좋고 말고요 이왕이면 정은미 총무도 넣읍시다 막동이 아우님도 끼여 아예 5명이 함게하여 광진 cafe 이용사를 만들어 보는것도 좋치요 날자는 장은 수 cafe 직이 에게 일림하여 우리들은 따러가지요
장 카페지기님의 긍정적 내용의 답신이 이미 e-메일 상(上)에 올라와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저도 보왔읍니다 그러면 그날 뵈옵기로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