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심의 철폐 계기로 본 금지곡 80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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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 가수인생 40주년을 맞는 이미자는 이를 기념하는 음반 전집의 일환으로 과거 정부로부터 금지조치를 당했던 월북작가들의 노래 16곡을 종합한 '해금가요집' 을 낸다.
'꼬집힌 풋사랑' '다방에 푸른 꿈' '잘있거라 단발령' 등으로 해방이후 줄곧 금지됐다가 얼마전 해금된 곡들이다.
우리 가요 반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인 그녀가 자신의 음악인생을 정리하는 음반으로 '해금가요집' 을 만들만큼 금지곡은 한국 가요사에 깊숙한 상흔을 드려왔다.
96년 가요음반 사전 심의가 철폐된데 이어 최근 팝 음반 사전심의도 등급심의로 전환돼 국내 대중음악에서 '금지곡'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수십년간 계속된 '금지곡'으로 내면화된 한국 가요계의 피해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피해의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 가요인들, 특히 힙합계열 이나 언더그라운드 군단에서 자유스럽게 가사를 쓰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방송사의 자체심의에 걸리는 일이 흔해 아직도 '금지곡 마인드'가 지배적인 우리 가요환경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음반수록곡 9곡 중 7곡을 방송금지 당한 YG패밀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그룹 팬클럽은 창작의 자유와 들을 권리 침해라며 회원 및 일반인 1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KBS등 방송3사에 금지조치 철회를 요구 하고나서 금지곡을 둘러싼 세대간 문화논쟁을 일으켰다.
금지곡은 이 땅에 대중가요가 출현한 1920년대부터 함께 존재했다.
'봉선화' '아리랑' 등 민족감정을 고취하는 노래들이 금지곡 1호였다.
금지곡은 곧 일제의 민족문화 통제정책 산물이었던 것이다.
해방 후 민족정권이 들어섰지만 가요에 대한 통제정책은 계속됐다.
월북 작가들의 곡은 무조건 금지였고 정치.사회세태를 조금이라도 비 판적으로 풍자한 곡도 금지곡 철퇴를 당했다 조명암의 '고향설' ' 무정천리' '황포돛대' 박영호의 '물방아사랑' '마의 태자' 등이 전자, '물레방아 도는 내력' '비내리는 호남선' '유정천리' '섬마을 선생님' 등이 후자의 경우였다.
비약적 경제성장으로 문화의식이 높아진 유신시대에는 특히 금지곡 망령이 거셌다.
'패배, 자학적.퇴폐적인 가사, 국가안보.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주는 곡 ' 2백22곡을 금지시킨 75년 '가요대학살' 은 한국전쟁이후 처음 싹튼 청년문화의 싹을 잘라버린 폭거로 기록된다.
80년대에도 외교적인 이유로 '독도는 우리땅' 이 금지되는 등 정부의 통제정책은 계속됐다가 87년 시민항쟁과 96년 정태춘 등 가수들의 투쟁으로 마침내 관에 의한 가요사전심의와 금지조치가 사라지게 됐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금지곡은 그 자체보다는 많은 작가들이 미리 알아서 자신의 작품을 순화시키는 내적 검열 체계를 일반화시킨데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가요 발전이 크게 지체됐다" 고 말한다.
팝음반 역시 국내에서 숱한 금지조치에 시달렸다.
정부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금지를 당했다.
'화이트 래빗' (히피즘)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 (비탄) ' 블로잉 인 더 윈드' (반전) 등이 대표적 사례다.
비틀스의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나 핑크 플로이드의 '닥 사이드 오브 더 문' 등 팝사에 남는 명반들도 수록곡 한곡 씩이 문제가 돼 음반이 나오지 못했다.
특히 '서전 페퍼스…' 는 음반재킷에 손톱크기만큼 들어간 마르크스 사진조차 문제가 됐다.
이외에도 롤링 스톤스.블라인드 페이스등 록밴드들의 음반 역시 외설적인 자킷이 문제돼 금지됐다.
공산주의 국가 관련은 무조건 금기였다.
스팅의 솔로데뷔음반 '터틀 블랙' 에서는 '러시안스 (러시아인들) ' 란 곡이 제목때문에 금지됐다.
러시아인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긴 곡이었는데도 제목만 보고 금지시킨 것. 아마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금지곡 팝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였을 것이다.
'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그 사람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죠 ' 란 가사때문인데 이와는 너무나 다른 아름다운 멜로디와 오페라급 합창덕에 '백판 (불법복제음반)' 이 수만장씩 팔리는 사랑을 받았다.
이는 국내 팝팬들이 알아듣기 힘든 가사에 신경쓰지 않고 사운드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임을 보여준다.
가사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섹스' '드럭' '코크 (마약)' '퍽 ' '쉿' 같은 단어가 한번이라도 들어가면 금지처분을 각오해야했다 .
음반사들은 편법을 동원했다.
'퍽' (Fuck) 을 '톡' (Talk) 으로 고쳐 심의를 받는 것은 애교스런 수준이었다.
아예 가사를 변조해 통과시켰다가 들통나 철창행을 지기도했다.
97년 '악마주의' 를 표방한 그룹 캐니벌 콥스의 음반을 가사변조해 통과시킨 혐의로 모레코드사 직원 2명이 구속된 사건은 그 절정이었다.
팝 심의는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르네상스를 맞았다.
89년과 91년 두차례의 해금으로 적어도 반전.저항가요는 자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외설과 마약, 악마주의 등은 여전히 금기였다가 이번에 성인층에 국한해 해금됐다.
팝 평론가 임진모씨는 "욕설이 난무하는 갱스터랩, 외설적 표현이 판치는 하드코어를 전국민적 차원에서 보면 문제 투성이다. 그러나 이들 노래는 마니어들이 즐기는 하위문화로 존재한다. 성숙한 문화국가는 이들 하위문화를 포용하면서 개성과 다양성을 촉진하는 촉매로 쓴다. 이제 우리도 그런 단계에 진입한 것. " 이라고 팝 해금의 의의를 평가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ps:기자 아저씨가 퀸을 좋아하는듯함.... 보/랩에 대해 잘 써주었고... 이메일 주소도 우리카페 대문 노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