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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금서국민학교26회졸업생 원문보기 글쓴이: 김흥자
본래 강우량이 많은 신안은 일제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개펄을 막아 '구림염전'을 개척한 것이 시초이다. 그 이전까지 주을염전등지에서는 바닷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구림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림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방법은 주변 신안군 다른 섬까지 전해졌다. 비금도에서는 그 이듬해인 1948년 4백 50세대의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보리개떡과 나물죽을 먹으며 1백여 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해 냈다. 5.16쿠테타 직후에는 화폐개혁과 더불어 소금값이 한가마에 8백원까지 뛰어 염전 인부들까지 돈지갑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외국 소금이 수입되고 화학 소금이 쏟아져 나와 옛 경기는 다 잃었지만 한때는 "돈이 날아다닌다"라는 뜻의 [飛金島]라고 불릴 정도로 염전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비금의 민속으로는 밤달애놀이가 유명하다. 밤달애 놀이는 망자의 혼을 달래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레로 호상으로 당한 상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밤샘을 하며 치룬다.
원평해수욕장이 있는 명사십리는
붉은 해당화를 품고 섬기고 하얀 모래가 십리를 두고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하누넘 해수욕장 또한 주변의 기암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원평해수욕장의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의 낙조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지는
해를 보고 바다속으로 빨려가는 황홀감에 묻혀 버린다고 한다. 또한 비금의 용소와
몸섬 내부에 있는 기린봉, 떡메봉등도 볼만한 구경거리이다. 비금의 역사적인 유적지로는
광대리 뒷산 용굴을 넘는 고개마루에 성치산성이 있다.
고려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는 이 성은 주위가 130간 되는 돌성이다 1231년 몽고병이 침입하기 이전만 해도 성밑에 마련된 넓은 땅에서 군사훈련을 하느라고 함성과 말발굽소리가 요란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성치산성의 맨 꼭대기에는 봉화대가 뚜렷이 남아 옛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성치산성 봉화는 옛날 우리나라의 서남해 도서지방을 연결하는 곳으로 흑산 봉화를 받아 목포 유달산, 무안 삼향왕산, 함평 옹산, 개성, 강활로 이어졌으며 봉정이 주둔했다고 한다. 1996년 연육교가 개통되어 이웃한 도초도와 같은 생활권이 된 비금도는 민속과 역사유적, 휴양의 중심적인 관광지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섬으로 목포와의 거리는 54.5km의 지점이다. 동경
125도45" 북위 34도45"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동으로는 바다 건너 암태,
팔금, 안좌면과 그리고 서쪽은 바다 건너 흑산면과 마주하고 있다. 남으로는 연도교가
가설된 도초면과 북으로는 바다 건너 자은면과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4개와 무인도 76개로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선은 86.4km에 이르고 있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으로 성치산맥과 서로 선왕산맥이 뻗쳐있다. 그 사이에 동서부
평야가 펼쳐있고 북쪽은 황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명사십리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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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해수욕장이 있는 명사십리는 붉은 해당화를 품고 섬기고 하얀 모래가 십리를 두고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하누넘 해수욕장 또한 주변의 기암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원평해수욕장의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의 낙조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지는 해를 보고 바다속으로 빨려가는 황홀감에 묻혀 버린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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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평해수욕장
규모, 시설물 : L:4,300 , B:100, 샤워장1,
음수대1, 화장실4, 파고라1
■ 숙 박 안 내
■ 음식점 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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