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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주 새누리당 서울시의원 2014.12.19/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
'서울시 공무원 출신에 박사 학위, 건축회사 CEO, 서울시의원'.
고생없이 순탄하게 인생길을 살아왔겠구나 싶은 이력이지만 이 길을 걸어온 이석주(새누리당·강남3) 서울시의원(62)의 인생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그는 1954년 전남 함평 나비고을의 한 농가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소설을 습작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가난한 농가에서 문학은 사치였다. 그는 취직이 잘 된다는 건축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유학, 누님 댁에 얹혀살며 서울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그는 용돈을 벌기위해 가족들 몰래 1년 정도 상도동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새벽 시간대 신문을 돌렸다. 고교 졸업 후에는 가정형편을 고려해 진학 대신 취직을 선택했다. 다른 형제들도 있는 데 더이상 부모님께 신세를 지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건축현장에서 어린나이로 무시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일한 그는 1년 후 서울산업대 야간반에 진학했고 건축을 전공했다. 군대를 가기 전까진 여름에는 서적판매원으로 일하고 겨울에는 용산시장에서 땅콩을 떼다 성남극장 앞에서 팔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육군 하사로 제대한 후에는 공무원 시험을 통과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결혼도 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는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시에서는 주택과와 건축과를 거치며 도시재생과 관련된 일을 했다.
21년 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한 그는 건축설계감리업에 뛰어들어 재개발·재건축 감리쪽 사업을 15년간 했다. 학업은 그 과정에도 계속됐고 58세 때인 2012년에는 박사 학위를 받았다.
회사를 운영하던 때도 그는 학업과 함께 지역활동에도 열성적으로 나섰다. 강남구 바르게살기운동의 수석부회장직을 10년간 맡았고 아파트 입주자대표 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강남에는 1982년 개포동 주공아파트로 이사오면서부터 30년 넘게 살고 있다. 오랜 거주로 지역에 대해 잘 아는데다 도시재생을 전공한 그는 '이제는 구의원도 전문가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했다. 그는 1975년부터 시작된 개발로 낙후된 강남 상황을 해결할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 재선까지 지냈다.
구의원으로 활동하며 그는 전라도에 대한 강남주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애썼다. 자신의 고향인 함평과 강남의 결연을 이뤄냈다. 주민들과 함평을 자주 찾으며 지역감정을 허물기위해 노력했다.
그는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그의 형님은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3선 함평군의회 의원을 지냈을 정도로 민주당과 관계가 깊다. 지금도 그는 호남향우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영호남, 수도권을 잇는 가교로 역할하고 있다.
초선의 이 의원은 19대 서울시의원으로서 서울의 도시개발과 재생계획에 함께 참여해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세계 도시들과의 경쟁에서 서울이 앞장설 수 있도록 혁신적인 노력과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며 "비즈니스와 관광, 주거가 함께 어우러지는 계획적인 도시재생으로 서울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석주 시의원(도시안전건설위원회)
▲생년월일(출생지)
1954. 08. 04 (전남함평)
▲학력
서울공고,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졸업(도시학박사)
▲주요경력
서울시공무원, 강남구의원, 인천대 겸임교수
▲저서, 역서, 논문
- 저서: 꿈꾸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다.(2009)
- 석사논문: 건축물 용도별 급수사용량에 관한 연구.(1991)
- 박사논문: 서울시 아파트 전세 및 매매가격 결정요인의 특성변화에 관한 연구.(2011)
▲상벌현황
국무총리 표창(2006)
▲병역사항
육군하사 만기제대
▲존경하는 인물과 이유
성웅 이순신 , 풍전등화 난국을 구하는 구국의 표본
▲감동받은 책과 이유
불의 날개 , 국내 이공학의 선도자요 낙후 조국 젊은이들의 꿈의 우상
▲의원회관 전화번호, 홈페이지, 이메일, SNS계정
02-3783-1866~8 . sjabc@hanmail.net
▲좌우명 및 의정활동 포부, 목표
진인사 대천명 , 견제와 균형 그리고 겸손과 솔선수범
▲내가 말하는 나 자신
스스로 이기며 푸른 창공을 힘차게 나는 새요. 황량한 사막에 버려져도 억척불굴의 의지로 싹을 피울 씨앗의 청춘이었다.
▲서울시민에게 한 마디
내 할 일 다한 후에 나무라고 불평하는 시민이 되시고 직접 말하기 어렵다면 저를 이용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