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대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일컫는 T.S.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죽은
땅을 뚫고 부활을 일구어 내는 모든 생명의 상징으로 라일락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마도 꿈많은
청춘과 로맨틱한 회상을 상징하는 라일락꽃과 죽은땅을 극명하게 대비하고자 하는 작자의 의
도 일 듯 싶다.
라일락꽃은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가 만년에 완성한 역작 '부활'에서 여주인공 카추샤와 네
흘류도프백작사이에 연모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등장 하기도 한다. '황무지'가 1922년,
'부활'이 1899년에 발표 되었으니 당시 유럽에서 라일락의 위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문학작품
들이다.
모네의 '흐린날씨의 라일락(1872)'
라일락은 유럽의 르네상스시대이후 기록에서 서서히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하다가 19세기 중반
이후 '끌로드 모네' '반 고흐' '마르크샤갈'등 거장들의 그림속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라일락의 원산지는 발칸반도를 포함한 아랍지방으로 보인다. 이는 아랍어 'laylak'이 페르시아
에서 리락(Lilak)으로 프랑스에서는 리라(lilas)등으로 변해간 이름의 흔적으로도 유추할 수 있
으며 중세기(711년) 북아프리카를 지나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던 이슬람세
력의 역사도 그 전파경로를 뒷받침 한다. 실제로 독일에는 보통 라일락을 후리델(Flieder)이라
하는데 스페인후리델과 터키후리델로 구분해 부른다 하니 전파경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흥미로
운 예라고 하겠다.
라일락은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수수꽃다리속의 낙엽성 활엽 관목이다. 커봐야 4-5m
쯤인 중간키나무에 조밀하게 무더기를 이루어 피는 꽃과 강한 향으로 인해 서양에서는 15세기이
후 정원수로 많이 심어졌다. 동양에서는 꽃봉오리를 말려 방향제로 사용하거나 맛이 지독히 쓴
잎을 이질에 이용 하기도 했고 가지는 폭마자(暴馬子)라 하여 한방에서 가래, 종기등에 약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수수꽃다리속의 학명은 '시링가(Syringa)'로 시작 되는데 라틴어로 '관'을 의미한다. 단단한 라
일락나무의 줄기를 잘라 심을 빼내고 담배파이프를 만들었던 것에서 유래한것으로 추측한다.
라일락이 서양종의 본산인 아랍에서 시작된 이름이라면 동양종의 중국식 이름은 '정향나무' 우리
말 이름은 '수수꽃다리'인데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꽃개회나무등 넓은 의미의 수수꽃다리속은
30여종이 넘으며 전체적인 성상은 매우 비슷해 그 구분이 쉽지 않다.
"베사메 베사메무쵸 정열에 그날밤 리라꽃 지던 밤에..."
1941년 멕시코의 여류작곡가 콘수엘로 벨라스케스(Consuelo Velazquez)가 작곡한 볼레로곡
인 '베사메 무쵸'에 1950년대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현인이 직접 지은 가사
를 지어 불렀는데 이 곡에 처음 가사를 붙인 서니 스카일러(Sunny Skylar)의 원곡 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리라꽃이 등장한다. 곧이어 남인수의 '리라꽃 지는 밤(1955년)' 을 비롯해 백설희,
나애심등 당대 가수들의 앨범이 나올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리라꽃노래가 한 곡쯤 등장 했고
한하운시집 '보리피리'(1955년)'에서 '리라꽃 던지고' 서정주의 '리라꽃 그늘(1962)'등 문학작품
속에서도 고개를 내 밀고 있다. 라일락은 이렇게 전란후의 피폐한 사회상 속에서 희망을 찾아
가던 청춘들의 가슴에 로맨틱한 서구문명의 상징처럼 이 꽃의 프랑스어 발음인 리라꽃으로 우리
에게 다가왔다. 담장이나 화단등 지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라일락은 거의 개화기 무렵 유
럽에서 직접 들어왔거나 유럽종이 일본을 거쳐 유입 된 종들의 후손으로 보인다. 덕수궁 석조
전에 있는 마로니에를 1912년 네덜란드공사가 고종의 회갑선물로 심었다고 하고 동숭동 서울
문리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의 개교초기였던 1929년에 법문학부의 미학(美學)교수였던 일본
인 우에노가 대학의 정취를 풍기는 정원을 조성한다며 지중해로부터 마로니에 세 그루를 실어
오고 라일락과 개나리등을 심었다는 기록에서 당시 유럽과 수목류 교류의 단면을 유추 해 볼 수
있다.
라일락은 배재중학교를 비롯해 개화기 무렵의 신식 교육기관등에 조경수로 많이 심어졌다. 그후
일제의 패망과 해방에 이은 동족상잔의 전쟁등 긴 암흑기에서 벗어나던 격동기시절 첫사랑, 맹
세, 청춘의 추억등을 상징하는 그 꽃말처럼 주로 대학의 교정에서 깊어가는 봄과 함께 진한 향
기를 풍겨 대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 시대의 지식인이나 대중문화를 선도하던 계층의 우월감 내지
는 서양사대주의라는 신 사조의 상징처럼 우리앞에 등장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셈이다.
식물의 명칭도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역학구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까?
1960년대를 지나며 리라꽃은 영어명 라일락으로 바뀌어 불리며 여전히 로맨틱한 회상과 꿈 많
은 청춘의 상징으로 트윈폴리오와 김영애에 이어 이문세를 거쳐 이선희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속 주요 소재로서의 자리를 유지해 왔다.
미스킴라일락을 빼고 어찌 라일락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으랴.
해방직후인 1947년 미군정청소속의 식물학자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집해 간 털개회나무의 씨앗을 번식, 개량하여 한국에 있을 때 자신을 도와준 타이피스트의
성을 붙였다는 미스킴 라일락은 미국의 조경시장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라일락의 30%를
점유했고, 70년대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역수입 되기 시작 했다. 기존의 유럽종 라일락보다 작고
오밀조밀하며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해서 작은정원이나 분재용으로 적합한데다 향도 강하고
개화기간도 더 긴것이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꽃과 나무에 비해 잎이 큰
(8cm)것이 특징인 미스킴라일락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미스킴라일락이라고 판매되는 종의
대부분이 잎이 작은(4-5cm)만주종(滿洲種)에 러시아 식물학자인 팔리빈(Palibin)의 이름을
붙인 '팔리빈라일락'이거나 재 개량된 종이 대부분이라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라일락!
서구에서는 아랍문명의 흥망을 간직한 채 중세 이후 저택의 정원에서 선지자들의 예술혼을
일깨우던 꽃.
우리에겐 서양사대주의라는 신 사조와 함께 그 이름에 묻어 온 엘리엇에 톨스토이에 열광하며
서구종에 텃밭을 내 준 사이 우리산의 종자를 가져다 개량한것을 되 사 들이게 된 뻘쭘한 꽃이다.
가난통에 채 돌보지 못한 사이에 엘레나라는 이름의 양공주로 돌아온 딸 분이와 마주한 애비의
심정처럼 미안하고 착찹한 심정의 수수꽃다리.
물 건너 온 문화와 명품에 열광하는 사이에 잃어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
니고, 무지해서 지키지 못한것을 두고 훗날 또 남의 탓으로 떠 넘길 미스킴라일락의 변종 오류
는 지금도 진행중이니....
첫댓글 글 솜씨가 보통을 넘으시네요.
계속 쓰셔서 모았다가 책을 펴 내셔도 좋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나무가 민중이다'라는책으로 1집이 시중에 나와있으며
2집이'나무가 청춘이다'라는제목으로9월중 출판될 예정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바로 주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