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레드벨벳의 노래, 'G선상의 아리아'에서 멜로디 따왔어요
입력 : 2022.07.11 03:30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만남
▲ ①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지난 1일 그룹 레드벨벳의 노래‘필 마이 리듬’을 관현악으로 편곡해 녹음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어요. 레드벨벳의 필 마이 리듬은 바흐의‘G선상의 아리아’를 토대로 만든 곡이에요. ②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③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요한 파헬벨(1653~1706). ④1982년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은‘파헬벨 캐논에 의한 변주곡’을 발표했어요. 이 곡이 담긴 앨범‘디셈버’. /서울시향·위키피디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지난 1일 인기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 노래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을 관현악으로 편곡해 녹음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어요. '필 마이 리듬'은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작곡한 'G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를 도입부에 빌려 쓰면서 만든 곡입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이 팝송이나 가요 같은 대중음악에 쓰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요한 파헬벨(1653~1706)의 작품 '캐논'도 그중 하나입니다. 두 곡 모두 친숙한 멜로디와 편안한 느낌을 주는 화성(和聲) 진행(화음의 진행 방법)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죠.
클래식에서 사랑받는 팝송으로
'G선상의 아리아'는 바흐가 1722년쯤 작곡한 관현악 모음곡 3번 D장조 BWV(바흐 작품 번호)1068 중 한 악장이에요. 원래 제목은 'Air(노래라는 뜻)'로, 현악기만으로 연주됩니다. 저음 부분을 맡는 악기(첼로나 베이스)들 위로 바이올린이 긴 호흡으로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곡이죠. G선상의 아리아라는 곡명은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트 빌헬미(1845~1908)가 1871년 이 곡을 바이올린의 'G선(네 줄 중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선)'만으로 연주하도록 편곡한 뒤 붙었습니다.
이 작품을 대중음악으로 편곡한 대표적인 사례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가 있어요.
1985년 영국 지휘자이자 편곡자인 루이스 클라크와 록 그룹 르네상스 보컬리스트였던 애니 해슬램이 함께 작업했죠. 바흐의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과거보다 아름다운 미래, 꿈보다 아름다운 현실을 살기 위해 노력하라"는 내용의 노랫말을 붙였어요.
루이스 클라크는 1980년대 초 클래식 명곡들과 춤곡을 결합한 '클래식 하이라이트 메들리(Hooked On Classics)' 시리즈를 녹음해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가 영국 런던의 관현악단인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애니 해슬램과 녹음한 앨범에는 바흐 외에도 차이콥스키, 프랑스 작곡가 포레와 사티 등의 명곡이 담겨 있습니다.
바흐의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진 않았지만, 바흐의 화성 진행에서 힌트를 얻은 곡도 있어요. 영국 록 그룹인 프로콜 하럼이 1967년 발표한 노래 '새하얗게 창백해진 모습(A Whiter Shade of Pale)'인데요. 노래 앞부분은 G선상의 아리아 화성 진행과 유사하고,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멜로디는 바흐의 칸타타 BWV156과 건반악기 협주곡 BWV1056 등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상징적인 노랫말 때문에 난해하기로 유명하지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바흐풍 멜로디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명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돌림노래 같은 진행으로 사랑받은 '캐논'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파헬벨은 오르간 연주자와 교육자로 많은 활동을 했는데요. 생전에 높은 인기를 누린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캐논 D장조는 바이올린 3대와 '통주저음(通奏低音·멜로디를 연주하는 솔로 악기를 화성적으로 돕는 악기들)'을 위해 만든 곡인데요. 원래 곡 뒷부분에는 지그(gigue·영국에서 기원한 빠른 춤곡)가 붙어있지만, 요즘은 거의 연주되지 않습니다. 캐논은 사실 정확한 작곡 연도가 알려져 있지 않은 채 작곡가 사후 200년이 훨씬 넘도록 잊혔다가 1919년에야 악보로 최초 출판되며 세상의 빛을 보았죠.
1968년 프랑스 장프랑수아 파야르가 지휘하는 실내악단이 곡을 녹음하며 널리 알려졌어요. 이후 1980년 미국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감독해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을 받은 작품 '보통 사람들'에 삽입되기도 했죠.
캐논은 학교에서 부르던 돌림노래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돌림노래는 단순한 화성 진행 위에 선율이 이어지고, 그 위로 비슷한 느낌의 선율이 뒤따라 나오면서 점차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진행이 이어지는 게 특징이지요. 파헬벨의 캐논 역시 이와 비슷한 구성입니다. 반복되는 베이스 진행 위로 선율이 차례로 포개지듯 제시돼 나중에는 매우 장대하고 화려한 음향을 만들어 내죠.
이 곡은 팝송뿐 아니라 가요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것으로 유명해요. 남성 그룹 god '어머님께'나 남매 싱어송라이터 악동뮤지션의 '오랜 날 오랜 밤'에 캐논 멜로디가 사용됐습니다.
파헬벨이 제시한 화성 진행을 바탕으로 즉흥 연주를 펼치듯 자유롭게 연주한 작품도 있어요. 1982년 뉴에이지(New Age·명상이나 영감을 자극하는 음악 장르)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이 '파헬벨 캐논에 의한 변주곡'을 발표했는데요.
기존 작품을 따르면서도 몽환적인 자기 스타일을 접목해 자유롭게 변형한 게 특징입니다. 조지 윈스턴 피아노곡은 파헬벨 이름이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지요.
바흐와 파헬벨을 다 사용한 팝그룹
G선상의 아리아와 캐논 모두를 리메이크한 팝 그룹도 있어요. 1995년 결성한 미국 팝 그룹 스위트박스는 친숙한 클래식 멜로디에 긍정적인 가사를 곁들여 데뷔 때부터 화제가 됐는데요. 1997년 발표한 '모든 게 잘될 거야(Everything's Gonna Be Alright)'는 G선상의 아리아를, 2004년 발표한 '인생은 멋져(Life is cool)'는 파헬벨 캐논을 사용해 클래식 팬들에게도 호응받았죠.
바흐나 파헬벨 외에 베토벤, 비발디, 쇼팽 등 곡들도 팝송이나 가요에 곧잘 쓰이는데요. 이런 곡들의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사후 70년까지 보호돼요. 이 기간이 지나면 따로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도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