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yor 에서 본 흑해의 풍경
이즈미르 izmir 에서 이스탄불 istanbul 행 국내선 터키항공을 탄다.
알렉스가 준 티켓에는 뚜렷하게 alex. HD 라고 쓰여져 있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무도 시비거는 사람은 없었다.
내 좌석은 12D.. 예정된 시간보다 오분 늦게 이륙 안내방송이 나온다.
스튜어드들은 제각기 다른 색의 와이셔츠와 쥐색 혹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다.
비행기안에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인들 처럼 보인다.
혼자 생각하기로는 터키인들이 터번을 쓰지는 않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아랍인들을 특징짓는 직감적인 표정을 하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터키인이라고 직감했던 사람은 한 두서넛 정도였다.
알란 파커 감독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에 나오는 교도관 간
수처럼 몸이 좋은 한 사람과 헤잡을 두른 다섯명 정도의 여
자들.....그 정도였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신문을 나눠줄때, 내 눈을 의심할만한
상황이 벌어진다. 영어로 된 신문을 집어드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아름다운 금발이었던 내 옆자리 여자도 마찬가지.....
터키어로 된 신문을 집어든다.
비행기는 50 분만에 아탁츄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어두운 로비를 통과하자
사람들이 유리창에 스파이더맨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통로로 나온다. -.-
검은 헤잡을 뒤집어 쓴 여자의 무리가 소리도 없이 휙 내 앞을
지나쳐 간다. 조명은 어두웠고, 창가로 부터의 빛은 아주 강렬했다.
팅가팅가 현이 강조된 아랍 음악이 귓가에 들렸다.
레코드 상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팅가 팅가 팅가. 솰라솰라.. -.-
상점 유리에는, 헤잡을 둘러쓴 여가수와 콧수염을
기른 검은눈을 한 남자 가수의 핀업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당장 몸에 지닌 터키 돈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쭈삣거리며 걸어가,
40달러를 환전했다.
백만 리라지폐가 다섯장, 십만 리라가 두장,
오만 리라 짜리가 한장, 만 리라주화가 두개.
붉은 기가 도는 지폐가 백만원 짜리였다.
한참 동그라미를 헤알려 보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사실상 환전은 필요하지 않았다.
인플레 때문에, 달러 지폐가 현금만큼이나 유통되고 있었으므로...
공항을 빠져 나오자 마자, 서너명 되는 택시 기사들이 손을
잡아 끌어서 당황스러웠다. 가까스로 멀찍이 달아나자,, 이번에는
애처로울 정도로 나이어린 여자아이가 땅에 엎드려 있다.....
그 소녀를 보고 잠시 마음이 아팠지만 곧 괜찮아졌다.
서울의 지하철에서도 닮고 닮도록 본 풍경이므로...-.-
목적은 술탄 아흐메드 지역으로 가는 것이었다.
알렉스가 준 론리플래닛에는 havas공항 버스를 타라고 적혀 있었다.
버스는 중형 마이크로 버스였고, 택시 승강장 바로 옆에서
20분 정도 후에 출발 했다.
비행장 입구에 기착했는데, 검표원이 표를 팔러 올라왔다.
검표원은 드리 헌드레드라고 반복해서 발음한다.
드리헌드레드라니..도무지 300원이라는 말인지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티켓의 빈 여백에다가 300,000이라는 숫자를 써서 내게 보
여 주는 것이었다..천단위 0 세개를 생략 시킨채.
천 단위를 셋 없앤 채, 말하는 것이 이 곳의 공식적인 화법이라
는 것을 나는 그 날이 채 가기도 전에 깨닫게 된다.....
버스는 이스탄불 시내를 향해 츨발한다.
버스 스피커에서는 남과 여, 태양은 외로워 같은 올드무비
주제곡들이 조용히 흘러 나왔다.
창밖으로는 코로나 스타일 혹은 폭스바겐 해치백같은 디자
인의 차들이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고 있었다.
오육십년대 차에 오육십년대 노래인 셈인데,
꼭 영화 속으로 들어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0층 정도로 된 아파트 군이었다.
아파트 창문에는 샤시가 되어있지 않다.
단지 어느 집이나 다 하얀 레이스 커튼이 일사불란하게 걸려 있었다.
한 10분즈음 달리자 아파트의 군단 너머로 무너진 성벽들이
보였다.
저게 아마 콘스탄티노플의 옛 성벽인가보다 싶어서 사진기
의 뷰파인더를 들이 대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라는 책에 의하면..
성벽은 모두 세겹...내벽의 두께만 10미터 높이가 20미터이고,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난공불락의 성채로 알려져 있었다고 했다..
과연 군데군데 푸른 이끼가 끼고 무너져 내렸지만 멀리서
보기에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묵중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졌다. 마르마라해일 것이다. 멀리
보스포러스 해협으로 부터 들어 온 듯한 거대한 유조선들이
위압적으로 떠있고, 방파제가 있고, 바로 맞닿은 부분에 잔
디밭이 있고 모두 그 주위로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다.
날짜 계산을 해보니, 오늘은 일요일..그리고 오후였다.
놀랍게도 군데군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고기를 굽고 있는 것같았다...........
술탄 아흐메드 지역으로 갈려면 아크사라이에서 버스를 내
려 트램으로 갈아 타야한다고 책에 써있다.
트램이 있을 만한 곳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장난아니게 쳐다봤다.
사람들은, 확연히 유럽의 사람들과 혹은 비행기 안에서 본 서구화된
터키인과는 달라 보였다.
눈동자는.. 검고 큰, 바닥모를 깊은 우물같은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와 마주치자,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트램에 오르자 또 수많은 눈동자가 일제히 내게로
쏠린다.
술탈 아흐메드역에 도착하자, 니가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너도나도 내리라는 시늉을 해보인다. 모스크 모스크 하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바로 눈 앞에는 거대한 모스크의 첨탑이 서있었다.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첨탑을 쳐다보고 있자
공포에 가까운 낯설음이 몰려왔다.
오리엔탈 유스 호스텔은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었다.
어두운 계단으로 구불구불 올라간 도미토리의 방에는
곰팡이 냄새가 난다.
샤워를 한 후,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다.
한국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지만, 상당히 긴장한
탓인지 금방 잠이 쏟아졌다..
잠이 깨어 보니 어느덧 창문 쪽은 밝아 오고 있었다.
그리고 격렬한 리듬으로 웅웅거리는 소리가 창너머로 부
터 들려왔다. 아....코란의 소리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너무나도 강렬해서 누구도 그 소리를 듣고서 계속 잠을 잘수
는 없을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5시였다. .
간단히 샤워를 한 후에 호텔 문을 나섰다.그냥 여기저기 걸
어다니지 뭐 잠도 안오는데...하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자연스레 눈 앞의 모스크 쪽으로 걸어 가게 되었다.
시계는 이제 6시즈음...
모스크의 회색 지붕이 아침의 부드러운 햇살에 반짝거린다..주변에는 벚꽃인지
사과나무인지 모를 하얀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블루 모스크라고 영어로 된 안내문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쌍둥이 모스크 처럼 소피아 대성당이
빛바랜 포도주색 지붕을 하고 서 있었다.
로마인이야기에 의하면..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날은
정확히 1453년 5월 29일...그 날 21세의 메메드 2세는
말을 타고 카시리우스 성문을 통해 콘스탄티노플에 입성
한다.....그리고 바로 이 소피아 대성당 앞에서 말을 내
려 칼끝으로 흙을 집어 자신의 터번위에다 뿌리며 알라
의 영광을 외쳤다고 한다........
소피아 대성당 안으로 들어갈려고 했으나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래서 이 번에는 메메드2세가 지은 블루 모스크
쪽으로 들어 간다.
내부 구조물로 통하는 출입문은 잠겨 잇었지만 중정으로
통하는 격자문은 열려 있었다.
중정안에서는 향 냄새가 났다. 한국의 절에 가면 맡을
수 있는 똑같은 향 냄새였다. 휘장이 쳐진 유리문 너머로
내부를 엿보았는데, 촛불이 켜진 제단이 보였다.
하지만 유명한 아라베스크 무늬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
았다.
낮에 이 들 모스크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새벽의 고요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블루모스크를 등지고 나오는데, 한글로 된 입간판이 보여
깜짝 놀란다. 블루모스크라고 쓰인 영어 안내문 바로 옆에
나무 판자에 굵직하게 한국 식당 200미터라고 쓰여져 있
었다.
그럼 200미터밖에 안되니까 어디 가서 라면이라도 먹어볼
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화살표 방향을 따라갔다.
하지만 문이 잠겨져 있다. 근커에는 터키 클림을 파는
집들과 작은 식료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라면 생각을
하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뭐라도 사먹을 생각으로 식당
은 없는지 기웃거렸다.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고 유리창문에 turkish breakfast
300,000 lire(300원) 라고 쓰여진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혹시 0을 하나 잘못 보지는 않았을까 두 번 더 0을 세어
본 후 식당안으로 들어 간다....-.-
식당안에는 메뉴를 적은 표가 우리 나라 분식집의 메뉴
판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있다. 극심한 인플레의 흔
적으로 아예 가격이 적혀 있은 듯한 부분은 매직으로 검
게 글이 지워져 있다.
터키식 아침 메뉴의 식단은 샐러드...., 커피, 달걀 하나, 무진
장 많이 주는 터키식 빵, 잼, 꿀. 그리고 하얀 두부....
처음엔 정말로 두부인줄 알았다. 간수가 빠져서 조그만
주름이 진 형태까지 그대로 두부를 빼닮았다.
실크로드의 종점 ..뭐 그런 식으로 두부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제멋대로 감동해서는 포크와 나이프를 대는 순간, 치즈
냄새가 난다....-.-
페타 치즈라고...염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였다. . . .
물을 마시면서, 온리 플래닛을 다시 들여다 보는데,
눈에 black sea 라는 단어가 들어온다. 트램을 타고 에미노쥬에서 내리면
흑해로 가는 배를 탈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에미노쥬로 향하는 트램을 타기로 한다. 낯설은 풍경에
한 눈을 팔다가 에미노쥬를 지나쳐 온거로 착각한 나는,
어떤 오르막의 길 위에서 후다닥 내리게 된다.
바닷가까지 한 삼십분 걸었다.
에미노쥬의 거리에는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 왔다.
거리는 시내보다 상당히 지저분하다. 도로 위에서 모래가 상당히
버석거린다.
.....삶은 옥수수를 팔고 있는 리어카에서 옥수수 하나를
2만 5천리라(25원-.-)를 주고 샀다.
옥수수를 파는 방법은 약간 특이하다 . ,마분지를 자른
종이에다가 일단 소금을 마구 친다. 그리고 그위에 옥수수를
턱 얹는다. 그리고 다시 소금을 듬뿍 친다. -.-
너무 짰지만 배가 고파서... 겨우겨우 다먹었다.
선착장 근처에는 하얀 차양이 쳐진 굴을 파는
요트가 있다.
서양인 여자 둘이 선그라스를 끼고 귀족 처럼 앉아
있고, 늙은 흰수염이 펄럭이는 할아버지가 굴을 까서
여자들한테 공손하게 내밀면, 여자들은 어떻게든 옷을
버리지 않을려고 조심스레 입안에 넣어 훅 하고 들여 마시고
있었다.
어느 배든지 간에 모두들 초승달이 쳐진 터키 국기를
배꼬리에 달고 있다.
원래 해전에 약한 터키 역사에 대한 열등감일까... 베네치아
로 상징되는 서양세를 몰아 내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차지한
자긍심 때문일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선착장을 따라 쭉 걷다가 ,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소년을 보게 된다.
음악은 아마도 오래된 터키의 민요 같은 것인지.. 너무나 슬프게 들렸으며,
제법 많은 수의 서양인 관광객들이 동전을 던져 주고 있었다.
여기 좀 심하구나..하는 생각이 슬슬 들게된다.
영어로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 출발이라고 쓰여져 있는 팻말을
보게 된다.
배에 올랐다. 거의 삼사일을 배만 탔다가
다시 배에 오르니까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든다..
정말 조그만 보트였다.
일층과 이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에
배가 부서질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출발하자, 기분 좋은 정도의 바닷 바람이 불어 왔다.
배는 상당한 속도로 달렸다. 죄측은 유럽 대륙, 우측은 아시아...
배에는 터키인 한 가족이 타고 있었다.
사는 곳은 트라브존이라는 흑해 연안의 도시..이스탄불에 단체
로 관광을 온 모양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아..눈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그렇게 순진 무구
한 어른의 얼굴은 처음 보았다.
이름을 발음 나는 대로 한글로 써주었더니, 모두 신기한 선물이
라도 받은듯 기뻐한다.
답례로 그들은 내 이름을 자기 나라 글로 써준다고 볼펜과 수첩을
달란다. 하지만 비극인지 희극인지 몰라도 영어 알파벳이 터키어의
알파벳이 된지 100여년...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그 순수한 눈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나는 영어로 적힌 내 이름을 아주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한참을 쳐다 보는 시늉을 한다......-.-
보스포러스 대교를 통과할 때 까지만 해도 잠자코 있던 터키인
들은 산중에 걸쳐 있는 어떤 성채에 이르자 조잡한 자동카메라로 사진
을 찍느라고 난리였다.
바로 르메리 히사리(rumeli hisari)...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기 전에 , 이 성채를 지어 베네치아와 제노아 배들의 해상
봉쇄 전초기지로 만들었다는 그 성채였다....
날 쳐다보는 눈동자들은 더 한층 힘이 넘쳐 나고 빛이 났다.
지금은 열강의 힘에 눌려, 고유의 문자도 잊혀 졌으며, 수도에는
외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자국의 통화는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지만,
.....
우리에게도 이렇게 빛나던 한 때가 있었다는 자긍심에 가득찬 그 표정
을 , 그 순간 나 또한 가슴이 저릴 정도로 이해하고 공감할수 있었다.
제2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친 배는 점점 속도를 내어 sanyer를
거쳐 anadolu kavagi에 기착했다.
모두들 거기에 내려 작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셨는데, 어떻게 해서든
흑해를 보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강박관념이 들어서, 유니폼을 입은
카페 직원에게 흑해 black sea..가 어디있냐고 물었더니, 손을 끌고
카페 뒷편으로 데려다 주었다.
바로 뒷편으로 급경사가 진 고개가 있었다. 10분즈음 올라가자, 말한
대로 고개 중간에 작은 간판이 있었고, 거기에 작은 요쇄가 하나 있었다.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으며, 아름다웠다.
아시아 대륙 , 유럽 대륙 그리고 흑해... 흑해 너머로는 러시아일 것이다.
한참 멍하니 응시하다가 혹시 배가 떠나버렸으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졸려 뛰어내리듯 산을 내려온다..
다행히 배는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돌아오는 배에는 배 여행 특유의 나른한 감각이 돈다.
산을 오르느라고 너무 열을 낸 탓인지, 흑해를 본 탓인지 몰라도
몸도 마음도 허탈..그 자체여서 배 간판에 드러눕고 싶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