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자 핸드볼 최하위였던 부산시설관리공단이 확 달라졌다. 순위 맨 밑에 머물렀던 지난 시즌과 달리 2015 SK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 7승1무6패(승점 15)를 거두며 8개 팀 중 4위에 자리했다. 비록 아쉽게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2라운드에서 6승1패의 놀라운 성적을 내며 내년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강재원 부산시설관리공단 감독은 "젊고 재능 많은 선수들을 보면서 많은 희망을 볼 수 있었다"면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더 강한 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월드스타'에서 국내 리그로 돌아오기까지
강재원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꼽힌다. 1989년 축구로 따지면 FIFA-발롱도르와 맞먹는 '국제핸드볼연맹(IHF) 올해의 선수'에 이름을 올리는 등 '월드 스타'로 이름을 알렸다. 윤경신(42) 두산 감독이 2001년 이 상을 받기 전까지 강재원 감독이 IHF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던 유일한 아시아 선수였다.
강 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은메달 주역으로 이후 줄곧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뒤에도 스위스, 일본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그는 미국과 중국 여자대표팀 사령탑을 지냈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을 맡아 4위의 성적을 냈다.
강재원 감독은 지난해 2월 부산시설관리공단 지휘봉을 잡은 뒤 팀 체질 개선에 집중했다. 처음 팀에 왔을 때 부상자도 많고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선수가 10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지만 드래프트 등을 통해 선수들을 보강, 조금씩 큰 그림을 그려 나갔다. 부산시설관리공단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강 감독이 팀을 꾸리는 데 힘을 실어줬다.
그는 "해외에서 지도자를 하다 국내 실업팀으로 돌아올 때 모험이라는 주변 이야기도 많았고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다"면서 "두 시즌을 마쳤는데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느 정도 구상했던 방향으로 팀이 가고 있는 것 같다. 힘든 길이었기에 더욱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아직 걸음마 수준, 갈 길은 멀다
부산시설관리공단은 약체라는 우려와 달리 4위로 2015 시즌을 마쳤지만 강재원 감독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경험 부족으로 인해 1라운드에 첫 단추를 잘 꿰지 못했던 것 같다"며 "2라운드에서는 나름 부담을 떨치고 대등한 경기를 했다. 인천시청에 한번 진 것 빼고는 모든 팀들을 이겼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했다.
부산시설관리공단은 루키 박준희(19)를 비롯해 김은경(24), 이은비(25), 이세미(24), 김진실(21) 등 젊은 선수들이 많다. 부산시설관리공단은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공격 루트를 이용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강 감독은 "팀 스포츠인 핸드볼에서 한 선수가 15골씩 넣어서는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패턴 플레이 등을 통해 선수들이 고르게 골을 넣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대주인 루키 박준희에 대해서도 "타점이 좋고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다. '제2의 류은희'로 성장할 수 있겠지만 실업과 고교 무대는 다르다.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스스로 깨닫고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해외 지도자 경험을 통해 강 감독이 느꼈던 것은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피지컬을 좀 더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후반 라운드에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부상자가 적었기 때문이다"면서 "지난해부터 선수들에게 부상 방지를 위한 웨이트를 중점적으로 실시했던 것이 큰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선수들의 경우 체력적으로 향상이 되어야 그 이후에 기술적인 것들도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재원 감독은 경기 중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선수들에게 크게 호통 치지 않는다. 오히려 박수를 치며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강 감독의 이러한 지도 방식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는 단호하게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윽박지른다고 경기가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주눅이 들고 경기를 잘 풀어나가기 힘들다.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아무리 감독이 좋은 작전을 짜도 결국 경기를 하는 것은 선수들이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강재원 감독이 무조건 선수들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한 원칙과 룰을 정한 뒤 그것을 어길 경우 그에 맞는 제재를 가한다. 당근과 채찍을 확실히 하고 있다.
강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을 인정, 수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며 "중요한 것은 선수와의 믿음과 소통이다. 어느 정도 밀고 당기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올 초 대한핸드볼협회의 국제 이사로 선임되기도 한 강 감독은 '월드스타'답게 국제 무대에서 마당발로 꼽힌다. 여러 국가에서 부산시설관리공단과의 친선 경기 등에 대한 제의를 받기도 했다. 28일부터 10일 간 휴가를 갖는 부산시설관리공단은 내달 8일부터 다시 전국체전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
강 감독은 "여러 곳의 제안을 받았지만 일단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연습 경기와 전지 훈련을 통해 전국체전에서 최소 3위 이상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다음 시즌에는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올라 팀을 강팀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alex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