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연속극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화면에서는 바둑알이 딱딱 소리 내며 왔다 갔다 할 때가 있다. 함께 보던 남편이 어느 새 채널을 돌린 것이다. 대개의 경우는 이렇게 바둑 방송이거나 스포츠 재방송이지만 가끔은 낚싯대에 고기가 걸려 나오는 화면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오늘도 화면이 낚시 채널로 바뀌어 비닐 옷을 입은 강태공이 쭈그리고 앉아 얼음 속의 물고기를 기다리는 화면이 나오고 있다. 남편도 눈이 빠지게 얼음 속에서 월척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잡아 본 물고기는 소풍가서 고무신으로 잡은 송사리가 전부이지만 물고기라면 수십 년간 애환을 같이했다. 낚시질 하는 것과 엿물 과자를 만들어 어린이에게 파는 사람이 제일 한심하다고 말 한 옛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있어 나도 낚시를 할일 없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알아 왔다. 그런데 시집을 와 보니 시아버님의 하나 뿐인 취미가 낚시였다. 아버님께 낚시는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일이 낚시였다.
아버님께서는 겨울에는 바둑으로 소일하시고 해동이 되기를 기다리시다가 우수 경칩만 지나면 낚싯대를 손질하시고 활기를 찾으신다. 그리고는 입동이 될 때 까지 낚시질이 계속 된다. 거의 낚시 광에 가까워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해도 출발 순간만 비가 오지 않으면 강행하시고 저녁때 쯤 비가 그친다고 예고하면 지금 비가 오더라도 강행하신다. 그러니 이 기간은 마당에 비린내가 나고 지렁이가 보이며 떡밥 가루가 보이는 아주 어설픈 기간이다. 어쩌다 낚시를 쉬는 날이면 빨래 줄에 낚싯대가 줄을 지어 기대어 서서 방울을 소리를 낸다.
돌아가신지 십년이 넘는데도 아침밥을 풀 때면 ‘어미야, 밥만 한술 싸 줄래?’하시던 음성이 아직도 들리는 것은 내가 오랜 세월 아버님 낚시 도시락을 싸 왔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출근하면서 도시락을 일곱 개씩 싸던 시절이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데 예고 없던 낚시 행이 생기면 도시락 부탁하시는 것이 미안해서 늘 겸연쩍어 하시며 반찬은 아무래도 좋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뜻으로 ‘밥만’ 싸 달라고 하셨던 것이다.
물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개선장군처럼 오시고 못 잡은 날은 “그 놈의 바람이.......”하시면서 들어오셨다. 잉어를 잡아 오신 날은 마당이 그득하게 목소리를 높여 나를 부르셨다.
“어미야, 잉어 봐라. 월척이다. 힘이 아주 장사다. 푹 고아서 먹어라.”
솔직히 나는 집안을 메우는 비린내와 잡다한 뒷일 때문에 붕어를 못 잡아오신 날이 더 고맙고 그러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아버님의 실력은 매번 손바닥 크기의 붕어를 한 양동이씩 채워 오신다.
이웃집에서 들락거리며 신기하게 구경을 하고 어머니는 퍼덕거리는 붕어를 들여다보며 벌써 나누어 줄 곳을 셈 하신다. 순서를 정해 나누어 주는 일은 어머니 몫이다. 다 줘도 좋으니 그냥 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그 많은 붕어를 일일이 배를 따서 손질하여 일부는 얼리기도 하고 나머지는 요리를 해서 손님을 부르기도 하고 집집마다 갖다 주시기도 하니 산더미 같은 빨랫감, 흙 묻은 도시락, 낚시 배낭 정리, 비늘 떨어진 바닥 씻기 등과 함께 뒷일이 보통 아니다.
아버님의 낚시 취미 때문에 여자로서는 붕어에 대해 꽤 많이 안다. 월척이란 30.3센티미터를 넘는 붕어를 말하며 붕어는 봄철이 산란기며 봄에 잡힌 붕어는 알이 많아 좋고 여름 철 낚시는 밤낚시가 제격이고 장마철 낚시는 물의 흐름에 따라 횡재를 할 수도 있고 반면 잡칠 수도 있다. 가을 붕어는 영양소 축적 기간이라 입질이 활발하여 미끼를 잘 물어 많이 잡히고 맛도 있다. 붕어는 잉어와 비슷하여 사는 곳이 같으나 잉어는 수염이 있다는 것이며 힘이 세다는 것이다.
붕어는 요리도 다양하다. 얼큰한 매운탕, 바삭한 튀김, 구수한 곰, 짭짤한 조림, 미꾸라지 추어탕처럼 걸쭉한 붕어 탕, 한약재와 섞은 붕어 즙. 늙은 호박을 파내고 그 속에 넣어 고아 낸 붕어 소주. 붕어찜 등등. 그런데 이것이 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고추장도 헤프고 기름도 헤프고 양념도 가스도 수도세도 엄청나 집안 가계부를 쓰는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다 못해
“아버지, 물고기는요. 생명이 있잖아요. 많이 잡히면 먹을 만큼만 가져오시고 나머지는 살려 줘요.”하고 어렵게 말씀 드렸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방법이 틀린 것 같아 어머니를 통해서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를 써 보았다.
남들은 돈 들여 방생도 하는데 우리는 살생을 해서 되겠느냐 하고. 살생은 먹고 살기 위할 때만 용서되고 재미로 잡거나 죽이는 것은 죄라고 한 말을 영어 참고서에서 본 적이 있다. 물론 그 말도 해 드렸다. 그러니 정히 물고기가 잡수시고 싶으시면 시장에서 사서 해 드리겠다고 했다. 살생한 것을 먹어도 세 사람의 손을 거치면 괞찮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의 이 소망이 전달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버님의 반응이 없는 것은 나를 뺀 식구들이 모두 매운탕이나 붕어 튀김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낚시터에서 돌아오시는 시간에는 이웃으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운명하시고 우리 집에 붕어 매운탕은 없어졌고 몇 년을 더 보관하던 낚시 도구 유품을 결국 정리해 버리면서 매운탕 맛도 아련히 잊어버렸는데 어느 날 시동생이 형님 드리라고 냉동된 붕어를 몇 마리 가져 왔다. 매운탕 끓이던 기억을 되살려 순서대로 끓였으나 맛이 다르다. 어쩐지 해금 내가 나고 모래는 없는데 무언가 씹히는 것 같고 가시가 억세고 딱딱해서 맛이 영 아니었다.
붕어가 다른가? 그럴 수도 있다. 붕어는 잡은 때에 따라서 맛이 다르기도 하지만 잡은 곳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 넘쳐 나서 감당 못하게 많던 붕어도 매운탕도 아버님이 안 계시니 구경하기도 힘이 든다.
오늘 따라 여가만 있으면 낚싯대를 늘이고 조이고 손질하시던 아버님이 생각난다. 그 많은 세월 동안 해마다 오직 한 가지 취미만을 반복하신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유가 많으셨겠지만 그 중에서 한 가지 만은 짐작 가는 것이 있다.
어느 날 낚시에서 돌아오신 아버님이 늦은 저녁상을 드시며 이야기 하셨다. 그 날 낚시터에서 전직 교장들을 새 친구로 만났는데 낚시 법을 전혀 몰라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주셨단다. ‘낚시터에서는 내가 교장보다 낫다.’ 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다. 오랜 관록과 솜씨로 낚시터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어느 날, 낚시는 잔돈이 수월찮게 드는 활동이라 용돈이 궁하면 즐기기 어려운 취미인데 교장으로 퇴임해도 자식들이 받쳐 주지 않으면 힘이 든다며 ‘너희들이 참 고맙다.’고 하셨다. 새로 사귄 낚시 친구가 오래가지 못해 섭섭하셨나 보다. 그 날 저녁 처음으로 냄새나는 아버님의 낚시 도구를 못마땅해 했던 지난날이 죄송스러웠고, 급한 시간에 낚시 도시락을 번개같이 대충 싸며 싫어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았고, 내심 빈 망태로 돌아오시길 기다렸던 철없던 시절과 방생이니 살생이니 하면서 어른의 하나 뿐인 취미를 막으려 잔머리를 굴리던 때를 후회했었다.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며 얼음장 위로 구경꾼이 모이고 카메라가 돌면서 앵커와 낚시꾼이 대화를 나눈다. 월척이라고 한다. 낚시 바늘에 매달린 붕어 한 마리가 요동을 치며 커다랗게 화면을 메운다.
“야! 그 놈, 크다. 잘 생겼네.”
남편이 흥분한 목소리로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붕어도 인물이 있나. 잘 생겼다 하게.”
화면을 보면서 남편은 아버님의 물고기 망태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