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나는 음력 섣달 스무 아흐렛날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하루 사이에 억울하게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었고, 그보다 더 섭섭한 것은 서른 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일 축하를 받아 본 사실이 없다는 점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집안 식구들 아무도 내 생일날을 기억하고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음력설을 대명절로 쇠던 어릴 때에 섣달 그믐이 가까워지면 온 식구가 차례를 지낼 준비에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였다. 가지 수를 헤아리기 위해 한참 손꼽아야 할만큼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였지만 그것들은 전혀 내 생일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열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해에도 맞게 될 생일을 기다리며 이번에야말로 나만을 위해 준비하는 축하를 받아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역시 스무 여드렛날이 되어도 "내일이 네 생일이야."하고 기억해주는 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은근히 화가 나고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내가 주워다 기르는 아이는 아닐까, 그러기에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는 날을 적당히 내 생일로 정해준 것은 아닐까. 나는 스스로 슬픈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며 어린 마음에 무척 속상했다. 그리고는 식구들 가운데 나를 제일 사랑해주시는 할머니의 치마폭을 붙잡고 이런 하소연을 하였다.
"할머니, 내일이 내 생일이야. 시루 구멍 좀 따로 막아 줘(생일 떡을 해 달라는 속어의 표현), 응?"
평소에 그처럼 사랑해 주시던 할머니마저도 바빠서 못 들은 체하시며, 차례 준비로 만들어 놓은 강정을 집어 주시면서,
"네 생일이 제일 좋은 날이야."
하실 뿐이었다.
해마다 그렇게 생일을 못 찾고 내 생일은 설날의 덤으로 그냥 넘어갔다. 결혼한 지 십 이 년이 되었지만 남편도 내 생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아기자기하거나 다정다감하지 못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생일을 빼먹는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게 서운했다. 요즈음 흔해 빠진 고무장갑이라도 한 켤레 사 들고 와서,
"오늘이 당신 생일이구려."
하고 한 마디만 해 주면 서른 여섯 해 동안 못 받아본 생일 축하를 한꺼번에 받은 듯 기쁠 것만 같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어쩌면 그다지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인색한 걸까. 사소한 작은 사랑에서도 여자들은 큰 감동을 받게 마련인 것을.
올해에도 섣달 스무 아흐렛날은 또다시 찾아왔다.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결혼 기념일이며 생일날 있었던 일들을 자랑삼아 털어놓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얘기가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이야기처럼 낯설게 들린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금년에 맞는 내 생일에 대한 섭섭한 느낌이 더했다. 내일이 바로 내 생일이다.
시장에 함께 가자고 친구가 나를 불러냈다. 설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사고 나서 정육점 앞에서 친구가 걸음을 멈추었다.
"율리 엄마 생일이 내일인데, 무엇을 선물할까 얼른 떠오르질 않네. 고기나 사줄까?"
하며 쇠고기 한 근을 내 시장 바구니 속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내 생일 선물이었다.
생일날 아침, 남편과 아이들이 서둘러 일터로 학교로 대문을 나간 뒤 혼자 남은 식탁에서 구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려니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목구멍에 와 닿고 있었다. 내 생일을 기억해 준 친구의 따뜻한 마음씨가 모정처럼 후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