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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에서 바라본 천왕봉)
지리산의 명칭과 그 의미
지리산 智異山의 명칭에 대해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보면, 참으로 다양한 설들이 많다.
그 중에 두류산이 우리말 구개음화에 의해 지리산이 되었다는 설이 많이 떠도는데, 이는 '두류산'이라는
명칭이 '백두산에서 흘러내려 온 산'이라는 뜻으로 표기한 한자어임을 무시하고, 순수한 우리말로
보는 왜곡된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확실한 근거 자료가 없다.
따라서 다양한 객관적 방법으로 추정해 볼 수밖에 없다.
우선 '지리산' 이라는 명칭에 대해 전통적으로 한자표기가 다른 데 착안해서,
우리 고전을 정리하고 번역하는 민족문화추진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래와 같은 한자어로 검색하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① 지리산智異山: 555건 (한국문집총간 291건, 국학원전 41건, 고전국역서 146건, 편년국역서 77건)
② 지리산智理山: 2건
● 황혁黃赫의 『기축록己丑錄』 하 『갑자하정종명홍명등상소甲子夏鄭宗猽等上疏』
●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
그리고............등등 이하 한문은 생략
---한문이 너무 많은고로 일일이 찾아 옮기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
더 알고자 하시는분들은 아래 책들을 찾아보시는것도 좋을듯 싶다
③ 지리산: 6건
● 유방선의 『태재집』권1 『청학동』
● 구봉령의 『백담집』권3 『송노공서부단성임』
● 채팽윤의 『희암집』권 24 「곤양지리산 영악사중건비」
● 조현명의 『귀록집』권 1 「지리산 천왕봉」
● 남효온의 『사우명행록』
● 허균의 『성소부부고』권24 「성옹지소록」하
④ 지리산 : 1권
● 이식의 『사우정집』상 「차서달성홍익 성운송설우상인귀지리산」
⑤ 지리산 : 3권
● 이호민의 『오봉집』권2 「영벽주인출재산음」
● 이호민의 『봉집』권2 「상원사」
● 남극관의 『몽예집』 곤 「사시자」
그 다음 지리산의 별칭에 해당하는 두류산頭流山, 두류산頭留山, 방장산, 방호산, 불복산 등의
표제어를 선정해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⑥ 두류산頭流山: 271건 (한국문집총간 173건, 국학원전 10건, 고전국역서 75건, 편년국역서 13건)
⑦ 두류산頭留山: 3건 (한국문집총간 3건)
⑧ 방장산: 150건 (한국문집총간 97건, 국학원전3건, 고전국역서 49건, 편년국역서 1건)
⑨ 방호산: 6건(한국문집청간1건, 국학원전1건, 고전국역서4건)
⑩ 불복산 : 0건
지리산, 두류산,방장산은 워낙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숫자만 표기하고 구체적인 작품의 철전은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두류산頭流山은 두류산頭留山과 같은 계열에서 나온 이름이고, 방호산은 방장산과 같은 계열에서
나온 이름이기때문에 그에 관한 철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지리산의 경우, '지리산智理山'으로 표기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표기는, '지리산'의 다양한
표기를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에 해당되기 때문에 전거를 모두 밝혀 놓았다.
지리산은 왜 이처럼 여러 가지 이름이 생긴 것일까?
우리는 지리산이라는 명칭에 대해 보다 객관적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그 의미에 따라 분류해 보면, 대체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앞에서 보이듯이, 우리말 '지리산'을 다양한 한자로 표기한 경우이고,
둘째는 '두류산頭流山' 또는 '류산頭留山'이라 호칭한 경우이고,
세째는 '방장산', 방호산'이라 부른 경이이고,
넷째는 '불복산'이라 이름 붙힌 경우이다.
이에 대해 차례대로 그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지리산'에 대해 살펴보자
'지리산'이라는 명칭은 한자어로 지리산智異山, 지리산智理山, 지리산知異山, 지리산地理山, 지리산地異山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외에도 어떤 설에는 지리산의 명칭이 대지문수사리보살의 '지智'자와 '리利'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민족문화추진회 홈페이지에서 '지리산'이라는 표제어로 검색하면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설은 예전에 없던 것을 현대인들이 억측한 것이다.
문헌상 '지리산'이라는 명칭은 한자어로 위아 같이 다섯 가지가 나온다.
왜 이처럼 다르게 표기된 것일까?
나는 이에 대해 '지리'라는 순수한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즉 뜻보다는 음에 따라 한자를 빌어 표기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이 여러 가지로 표기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위와 같이 다섯 가지로 표기되었다는 것은, 한자의 뜻에 따라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지리'라는 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달라진것임을 입증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섯 가지로 다르게 표현될 리가 없다.
또한 다섯 가지 이름을 한자의 뜻으로 풀이할 경우, 근거로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예컨데 '지리산智異山'을 한자에 뜻에 따라 '지혜롭고 기이한 산' 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을 근거가 없다.
요즘 사람들이야 그냥 글자의 뜻에 따라 그렇게 지은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예전 사람들은 그처럼
단순하게 이름을 짓지 않았다.
중국 고전이나 우리나라 고전에서 '지이智異'라는 말을 찾아보면 특별한 의미로 쓰인 사례가 없다.
그렇다면 '지이智異'라는 말이 한자의 뜻에서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이라가 그러하니, 그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한자문화권은 서구의 라틴문화권과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민족국가'라는 개념도 없었다.
문화중심권에서 만들어진 선진문화가 주변에 널리 확산되어 그 문화를 공유하였고,
또 주변의 문화가 중심부의 문화에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이런 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해 볼 때, 순수한 토속어로서의 '지리'라는 말이 한자문화가 유입되면서
한자를 빌어 표기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다양하게 나타난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지리'라는 토속 우리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설을 모두 수집해 이 자리에서 번거롭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지리'는 '지리하다'에서 나왔다고 하는 설이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환(1690~1752)의 '택리시'에 "지리산의> 동네는 굽이굽이 깊고 크며, 토질은 흙이 두텁고
기름지다. 온 산이 모두 사람 살기에 적당한데, 안에는 백 리의 긴 골짜기가 많으며, 밖은 좁고
안은 넓어 넓직하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백 리의 긴 골짝기가 많다' 는 말은 '지리하다'와 무관하지 않다.
'지리하다'는 한자어로 우리말 '지루하다'와 유사하다.
백 리의 긴 계곡을 걸어가 본 사람은 그 길이 얼마나 지루한 지 실감할 것이다.
또 지리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지루봉'이라고 이름 붙인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므로 '골짜기가 길어 지리하다' 에서 '지리산 산' 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이라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태에서 바라본 천왕봉)
'지리산'이라는 명칭을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마도 이 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백 리의 긴 골짜기를 드나들면서 지리하게 여겨 붙였을 것이다.
둘째, '두류산'에 대해 살펴보자 두류산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 국토
남단에 웅거한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떠도는 설처럼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다.
이에 대한 주요 기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지리산은 처음 백두산으로부터 뻗어내려 꽃다운 봉우리와 골짜기가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대방군에 이르러서 두툼하게 수천 리에 맺혔다.
산을 빙 둘러 사람들이 사는 고을이 10여 주나 된다.
② 이첨의 시에 '나는 들었네, 백두산이 남쪽으로 내려와, 바닷가에 이르러
뿌리가 서리고 서렸다지. 높이 높이 연이은 봉우리가 삼천 리에 이르고,
험한 곳은 모두 동국의 관문이 되었다네" 라고 하였다
③ 산세가 높고 크며, 수백 리에 웅거하고 있다.
여진 백두산의 산맥이 흘러내려 이곳에 이르렀기 때문에 두류산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흑자는 말하기를 "그 산맥이 바다에 이르러 곤궁해져서 멈추어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류'자로 쓰는 것이 옳다" 고 한다
④ 지리산은 우리나라 남쪽 극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극히 높고 크다.
백두산의 신령스럽고 맑은 기운이 흘러 이곳에 쌓였기 때문에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⑤ '두류'라는 말은 백두산의 맥이 남쪽으로 흘러 이 산이 되었기 때문에 '두류'라고 이름한 것이다.
⑥ 지리산은 진주 서쪽 1백리 지점에 있다.
산세가 높고 크며, 수백 리에 웅거하고 있다.
여진 백두산의 산맥이 연이어 뻗어내려 이곳에 이르렀기 때문에 일명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⑦ 지리산은 남원부 동쪽 60리 지점에 있다.
산세가 높고도 크며, 수천 리에 웅거하고 있다.
여진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이곳에 이르렀기 때문에 또한
두류산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기록을 종합해 보면, 백두산의 산맥이 이곳까지 뻗어 내렸기 때문에
두류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③에서 보이는 것처럼, 백두대간이 흘러내리다 바닷가에 이르러 멈추었다는 의미에서
'두류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또한 ④의 경우처럼, 백두산의 신령스럽고 맑은 기운이 흘러와 쌓였다는 뜻에서
두류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설은 모두 백두산에서 그 맥이 뻗어 내렸다는 점에서 근원이 같다.
즉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왔다는 백두대간을 의식하고 붙혀진 이름이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머릿속에 하늘에 닿아 있는 영산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국토가 한반도로 정해진 뒤에는 백두산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민족 근원의 상징적 이미지로 부각되었고, 정신적 귀의처로서
인간세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고리역활을 하였다.
지리산이 두류산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처럼 민족의 근원을 찾아 천상의 세계와 연결시키려
한 정신적 산물로 볼 수 있다.
백두산이 우리 민족의 정신사 속에서 천상의 세계와 넘나드는 경계라면,
그 산이 흘러내린 두류산은 인간세상에서 가장 우뚝하게 솟아 있는 현실세계에 군림하는 산이다.
이 산의 줄기를 따라 백두산으로 올라가면 천상의 세계로 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천신의 자손임을 강조하는 건국신화와 맥을 닿아 있고,
우리 민족과 국토의 독립성을 의미하는 상징을 함유하고 있다.
셋째, 방장산에 대해 살펴보자.
방장산은 신선이 사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장산은 중국 전설 속의 삼신산의 하나이다.
이에 관한 기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생략, ... 시에 '방장산은 바다 건너 삼한에 있네'라고 하였는데, 그 주 및
[통감자집람]에 모두 "방장산은 대방군 남쪽에 있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② 세속에서 전하는 속담에 "태을이 그 산 위에 사는데,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고,
용상이 거처하는 곳이다"라고 한다.
③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고,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하니, 이른바 삼신산이다.
지리지에 "지리산은 태을이 사는 곳으로,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다" 라고 하였다.
④ 두보의 시 '방장산은 바다 건너 삼한에 있네' 라는 구에 대해 논평하는 자들은 삼신산이
우리나라에 있다 고 하며, 방장산을 지리산에 해당시키고, 영주산을 한라산에 해당시키고,
봉래산을 금강산에 해당시킨다.
그러므로 지리산이 방장산이 된 것이다.
신라시대 승려 의상의 [청구기]에 "두류산에는 일만 년 동안 문수보살이 머눌던 곳이다.
그 아래 지역은 해마다 풍년이 들고 백성들은 정성스럽다" 고 하였다.
지리지에는 "지리산은 태을이 사는 곳으로,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다" 라고 하였다
⑤ 지리산은 방장산이라고도 한다.
두보의 시 '방장산은 바다 건너 삼한에 있네'라는 구의 주 및 [통감집람]에 모두
"방장산은 대방군 남쪽에 있는 것이 그것이다" 라고 하였다.
⑥ 방장산은, 두보의 시 '방장산은 바다 건너 삼한에 있네' 라는 구의 주 및
[통감집람]에 모두 "방장산은 대방군에 있으니, 곧 남원의 남쪽이 그곳이다"라고 하였다.
삼신산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자, 제나라 사람 서불이 진시황에게 올린 글에
"바다 가운데 삼신산이 있는데, 그 이름을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라고 하며,
신선이 그곳에 삽니다" 하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실제로 그 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후세 사람들이 '바다 가운데 있다'고 한 말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으로 인식하게 된것이다.
삼신산은 도가의 신선사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방장산은 삼신산의 하나로, 태을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였다.
태을은 태일진군이라고도 하는 도가의 천신으로, 북극산의 별명이다.
이처럼 지리산은 도가사상과 관련되어 청학과 신선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지리산 청학동도 이런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리고 간혹 ④에 보이듯, 불교의 영향으로 문수보살이 사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지리산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와 관련된 설이 많다.
예컨데 천왕봉에 있던 성모를 석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라고 하는 설이나, 반야봉,
가섭대 등의 지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천왕봉의 성모상)
②에 보이는 '용상'은 '용과 코끼리'를 말하는데, 이는 고승이나 나한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 역시 불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넷째, 불복산에 대해 살펴보자,
볼복산은 '반역산'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성계에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이 명칭은 한자로 쓰여진 고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불복산이라는 말은 전설 속의 명칭이며, 실제로 지리산을 부르는 명칭으로는
거의 쓰여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리산은 부르는 명칭은 매우 다양하다.
위에서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살펴보았지만, 불복산을 제외하면 실제로 우리 조상들이
지리산을 부르던 명칭은 크게 지리산, 두류산, 방장산,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선인들은 지리산을 표기할 적에는 대체로 '지리산'이라고 하거나,
'두류산'이라고 하였다.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면, 지리산은 신라시대 최치원(857~915)의 문집인 [고운집]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 이제현(1287~1367). 이색(1328~1396).
정추(1333~1380)등의 문집에 연이어 나타난다.
반면 두류산은 고려 말 이곡(1298~1351). 이색, 정추 등의 문집에서부터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 보면, 지리산이 두류산보다 훨씬 먼저 쓰이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의상의 [청구기]에 '두류산'이라는 명칭이 보이는데, 이는 의심할 만하다.
또한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한 한국문집총간을 검색해 보면, '지리산'이라는 표제어는
총 290건이 나오고, '두류산'이라는 표제어는 총 173건이 나온다.
즉 지리산으로 표기한 것이 두류산으로 표기한 것보다 배나 더 많았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지리산이라는 명치잉 가장 오래 전부터 쓰였고,
또 가장 널리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선인들의 유람록 가운데 [유쌍계사기]의 경우처럼 어느 특정 지역만을
유람한 경우를 제외하고, 지리산에 오른 비교적 분량이 많은 64편의 지리산 유람록을
분석한 결과, '지리산'으로 제목을 쓴 것이 10편이고, '방장산'으로 제목을 쓴 것이 7편이며,
나머지 47편은 '두류산'이로 제먹을 붙였다.
이를 보면, 적어도 조선시대 사인들은 지리산이나 방장산이라는 이름보다는
두류산이라는 이름을 선호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두류산은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민족의 영산이라는 인식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리산은 특별한 의미가 없고, 방장산은 신선사상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두류산이라는 명칭을 선호한 듯 하다.
(지난겨울 지리산의 천왕봉)
남명과 지리산
글 출처:남명과 지리산
첫댓글 이 긴 글을 일일이 다다다다다 ..
수고 마니 했군 ~
그럼서 내 공부도 하는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