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사’의 추억
(2011.2.15 송고)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산시내에는 약20여개의 레코드가게가 성업했었다.
시골 이발소에서 흘러나오던 풍자적인 라디오 만담부터 일명 ‘소리사’
앞에 비치된 스피커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트롯가요가 거리 곳곳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던 때이다.
지금은 MP3와 스마트폰에 밀렸지만 소니가 개발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Walkman)은 단종될때까지 무려 1억대 이상이 판매되며 젊은 세대의
대표문화(trade mark)로 상징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만해도 인기있던 고수익 직종중 하나가 앞서 언급했던 ‘소리사’ 라는 점포였다.
세탁기, 냉장고, TV와 전축의 수리와 판매를 비롯하여 동네 곳곳에 TV안테나설치
까지 가전전자제품에 대해서는 정말 만물박사와 같은 곳이다.
갑자기 멈춰버린 괘종시계부터 먹통이 되버린 전축까지 이 소리사의 손을 거치면
어느새 멀쩡해지니 대단한 기술을 가진 넘사벽의 존재로 지금도 회고된다.
요즘은 대형가전매장과 전문AS센터의 기술자들이 그 자리를 충족시켜주고 있고,
음반 역시 인터넷의 발달로 소프트웨어화 되어 소리사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71년 읍내동에 ‘서울소리사’를 개업한 유재곤(63세)씨는 어떻게 보면 서산과 역사를
같이한 마지막 트랜지스터 세대가 아닐까 한다.
처음 읍내동에 개업한 이래 구터미널부근과 시장통, 지금의 호수공원앞까지 이전
하면서 아직까지 처음 개업할 때 간판인 ‘서울소리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수십년이 지났을법한 오래된 전축이나 요즘 AS기사들이 만지지 못하는 물건을
가지고 오는 옛 손님들을 위해서란다.
전자제품의 주요 부품이 트랜지스터였을때만 해도 어지간한 고장은 수리가
가능했지만 IC(직접회로)의 발달로 요즘은 수리가 불가능해져 거의 교환을 해야
한다고 한다.
97년 12월, 한국에 불어닥친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서울소리사도 큰 타격을
입었고 일도 힘들어 결국 일손을 놓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눈을 아리던 납땜 냄새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경기가 침체되자 고장나면 쉽게 버리던 물건들도 고치고 재활용하기
위해 되레 수리가 늘었다고 한다.
미용실에 자리를 내준 이발소처럼 소리사도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인가 3D업종으로 치부되어 배우려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유재곤씨.
점포를 찾는 손님들이 멀쩡하게 수리된 것을 보고 만족할 때 더없이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몸이 허락할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에 수도 없이 걸리고 내려지는 간판들 사이로 40여년동안 소리사라는 간판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기성
세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보내면 어떨까?
http://cafe.daum.net/seosandasamo
(DB AUTO C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