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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6 03:02 | 수정 : 2014.04.26 03:21
세계 산업의 두뇌 매클래런·ARM을 가다
95%에 탑재··· 라이선스·로열티로 1兆원 벌어
영국 SF 코믹 소설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따르면 은하계의 모든 주요 문명은 3단계 진화를 거친다. 생존, 의문,
그리고 세련(sophistication)의 단계다.
먹는 문제에 비유하자면, 첫째 단계는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까(how)',
둘째는 '우리는 왜 먹어야 하는가(why)', 마지막 단계는 '어디에서 점심
을 먹을까(where)'에 해당한다.
얼마 전 영국을 다녀오면서 받은 느낌은 영국은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
지 선택한 것 같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은 금융에 지나치게 의존한 영국 산업의 몰락을 얘기했다. 그
러나 영국은 점심 먹을 장소를 옮겼을 뿐이었다. 훨씬 더 멋있는 장소로
말이다. 적어도 자동차 산업과 전자 산업은 그랬다.
기자는 자동차 R&D 회사인 매클래런(McLaren ·통칭 '맥라렌')과 스마트
폰 핵심 부품 설계 업체인 ARM이라는 두 회사를 방문했다. 두 회사의 공
통점은 언제나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즉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지
항상 그들 스스로 결정해온 기업이었다는 점, 그리고 '두뇌'로 먹고사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지난 3일 런던 히스로(Heathrow) 공항에서 M25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
로 20분쯤 달린 뒤 오른쪽 숲길로 들어섰다. 주변에 건물 하나 없이 가로
수 사이로 넓게 초원이 펼쳐졌다. 편도 1차선 도로를 한 5분쯤 더 달려 완
만한 구릉을 지나니 앞쪽의 라운드어바웃(원형으로 된 영국식 교차로) 중
앙에 '매클래런 테크놀로지 센터'라는 작은 간판이 나온다. 간판 방향 지시
에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서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50만㎡(약 15만평)
나 되는 풀숲 안쪽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신사옥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인공 호수 위에 떠 있는 건물은
위에서 보면 태극 문양이다. 호수에 담긴 물은 50m 레인의 수영장 50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매클래런그룹은 원래 세계 자동차 경주 대회인 F1(포뮬러 원)에 출전하기
위해 직접 자동차를 만들고 출전한 레이싱팀이었다. 페라리와 함께 F1을
대표하는 양대축이었다. F1에 출전하면 TV 중계권료와 후원사의 후원, 입장
료로 한 해 수천억원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F1에서 쌓은 명성과 성공 노하우를 어떻게 사업 모델로 확장
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10년 전 스포츠카 생산을 결정하고, 3년 전 양산에
돌입했다. 연간 생산량은 3300대. 그중 염가형 스포츠카인 '650S' 가격이
3억원이며, 플래그십 모델인 P1은 기본 가격이 15억원, 맞춤형 모델은 20
억원이 넘는 차가 흔하다.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벤츠의 8억원짜리 최고급 스포츠카 'SLR 매클
래런' 은 매클래런의 기술을 바탕으로 했다. 매클래런의 기술은 자동차와 전
혀 무관한 업종에도 팔리고 있다. 매클래런은 현재 히스로 공항의 관제 시스템
효율화 작업 을 진행 중이며, 이 외에도 석유·제약·군사 등 다양한 업종에 기술
컨설팅을 제공 하고 있다.
매클래런그룹 직원 수는 2200명인데, 작년 매출이 약 1조원에 달했다. 이 중
2000 명이 기술직과 연구원이다. 2000명 중 700명은 그룹 내에서 '과학자(S
cientist)' 라는 최고급 두뇌에 속한다.
이튿날 찾아간 ARM 역시 두뇌 기업의 전형이다. 스마트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원천 설계 기술을 개발한다. 전 세계 모든
스마트폰 태블릿PC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의 95% 이상은 이 회사의
설계 기반으 로 만들어진다.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서 논스톱 급행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을 달려 케임
브리지 에 도착한 뒤 2층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달리니 한적한 대지에 2~3층
짜리 낮고 넓은 건물 10여개가 흩어져 있었다. 세계 모바일 기술을 쥐고 흔드는
강자의 존재감 따 위는 없었다.
앤드루 윈스탠리(Winstanley) 홍보실장은 "ARM은 공장이 없고 연구소뿐이니,
조용해 보이는 게 당연할 것"이라고 했다. 전체 직원 2800명 중 70%가 연구원
이다. 건물 안을 둘러보니 연구원들이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헤드폰을
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잔뜩 들어왔다.
이 회사 매출의 대부분은 스마트폰·태블릿PC 제조업체에 설계 기술을 제공해
주고 받는 라이선스비와, 해당 제품이 팔릴 때마다 받는 로열티에서 나온다.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24% 증가한 1조3000억원이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
은 49%에 달했다.
앨런 포스터(Foster) 스포츠카 생산 담당 부사장 안내로 자동차 공장을 먼저 둘
러봤다. 축구장 네 개 정도인 3만2000㎡의 공간. 바닥과 벽이 눈부시게 하�다.
대조를 이루는 검은색 직원 작업복은 휴고 보스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자동차
공장 특유의 쿵쾅거리는 프레스 소리나 매캐한 기름 냄새는 없었다. 깨끗했고,
심지어 우아했다.
도 일했다. 2005년 매클래런으로 스카우트돼 3년 전 스포츠카 양산을 시작하
기까지, 공장의 작은 디테일까지 전부 그의 손을 거쳤다. 10여년 전 매클래런
은 F1 레이싱 팀에서 종합 기술 회사로 다변화하려는 장기 전략을 세웠다.
"저희는 아주 긴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봤습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이 가졌던
긴 안목의 투자 전략 말입니다. 저희는 F1 팀만 갖고는 재정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지요. 우리는 페라리가 했던
것처럼, F1에 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스포츠카 생산 쪽으로 영역을 넓혀 규
모의 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영국엔 내세울 만한 자동차 회사가 없다. 재규어, 랜드로버, 롤스로이스가
모두 외국에 팔렸다. 그는 영국 자동차 산업이 몰락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30년 전 영국 자동차 회사에는 오직 1년짜리 계획만 있었습니다. 당장 올
해만 생각했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고, 도요타처럼 10년, 20년을 보는
회사에 맞설 수가 없었지요. 현재 매클래런의 사업 전략은 일본식 사업 철학에
영국의 브랜 드 파워를 접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장이 지나치게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도요타식으로 보면 '무다(낭비 요인
이라는 뜻)'투성이인 것 아닌가요?
"(웃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도요타나 GM에 있을 때 이 정도 라인을 만들
려면 최소 1200억원은 들었을 겁니다. 저희는 고급스럽게 만들고도 800억원
밖에 안 들었어 요.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면밀하게
계획됐다는 겁니다. 과 정을 잘 짜면 실제 실행 과정의 낭비가 거의 없어집니
다. 공장을 짓다가 설계 변경을 한다든지 장비를 갑자기 도입한다든지 하면 그
게 전부 추가 비용으로 전가되지요."
"이 공장 형태는 무엇 하나 기능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진 게 없습니다. 벽은
작업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빛을 반사하게 함으로써 공장 내
조명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25% 절감할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건물 바깥 인공
호수는 아름다움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호수에서 물을 끌어올린 뒤 식물과 바이
오기술을 이용해 열을 식히거나 저장하는 데 사용됩니다. 에너지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이 어떻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느냐
에 달렸습니다."
한 분야에 최고가 되면 다른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매클래런은 세 가지 핵심 비즈니스가 있다. 스포츠카 생산, F1, 기술 컨설팅이다.
기술 컨설팅을 자동차 회사에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철도 ·항공·에너지·제약·군
수·헬스케어·가전 심지어 축구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에 제공한다. 자동차
회사에 대한 기술 컨설팅은 10%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제프 맥
그래스(Mcgrath) 기술 컨설팅 담당 부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F1 기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엔진, 조향(操向), 디자인 등 눈에 보이는 부분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F1의 가장 큰 혁신은 전자·소프트웨어, 데
이터 관리와 분석에서 일어났어요.
F1 운영사인 FIA는 자동차의 디자인이나 파워 등 모든 분야에 제한을 두고 있습
니다. 이 때문에 레이스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런 제약 속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고 빠르게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매
년 일어나며, 때로는 레이스와 레이스 사이 몇 주, 또는 레이스 도중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마지막 경우라면 전략적 판단을 위해 허용된 시간은 몇 분, 몇 초에 지나
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전자공학·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지난 20년간 이런 일을 겪어 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따라서 여기에서 얻어진 노하
우로 히스로 공항 관제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고, 석유 회사들이 석유 생산을 최적
화하게 도울 수 있는 겁니다."
그는 "결국 기술은 고급의 세계로 가면 다 통한다"고 말했다. "당신이 어떤 기술에
통달한다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보는 눈이 열릴 겁니다. 이런 것은 한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만이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융합이라는 것은 각각의 기술을 조금
씩 알아서는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술 분야의 고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것은 F1 분야에서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매클래런이 컨설팅하는 회사 중에는 세계 최대 제약 회사인 영국의 글락소스미
스클 라인도 포함돼 있다. 해외 물류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미국 디자
인 회사 아이데오(IDEO)에는 데이터센터의 운영 방법과 디자인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첼시 축구클럽이나 영국 내 럭비클럽 같은 스포츠팀도 컨설팅한다. "선수들이 경
기중에 상대팀의 어떤 포지션의 선수와 어떤 식으로 얼마나 많이 육체적인 접촉
을 하 는지 등을 측정한 뒤 이를 토대로 어떻게 트레이닝을 하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그는 고객 중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국 기업도 몇
개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에 모여 일한다. 1층 자동차 공장 옆에 F1 레이싱팀이 있고, 자동차용 고성능 전자
부품을 설계하는 팀이 있다. 2층에는 이런 기술을 여러 산업에 응용하는 컨설팅 회
사가 있다.
포스터 부사장은 "첨단 기술만 만지는 엔지니어들이 실제 자신들의 기술이 어떻게
양산차에 구현되는지를 실물로 확인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양산과 첨단 기
술 양쪽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F1 팀 엔지니어들은 지구 상에서 차를 가장 빠르게 달리게 하는 기술 면에서 최고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매클래런의 플래그십 스포츠카 'P1'은 8기통 트윈터보 엔진
과 전기모터를 결합해 최고 출력이 900마력 이상이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까지 가속하는 데 2.8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현대 쏘나타가 168마력·10초대이다.)
매클래런의 스포츠카에는 F1의 두 가지 대표 기술이 숨어 있다.
―어떤 부자가 주문한 차 안에 커피 머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는데, 사실인가요?
"그런 고객이 있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그는 바로 앞에서 조립이 진행
중인 차량을 가리켰다.) 보통은 탄소섬유 차체 위에 코팅해서 블랙 느낌을 그대로
살립니다. 하지만 한 고객이 '나는 블랙이 싫다'면서 녹색으로 바꿔 달라고 했습니
다. 그래서 전체를 녹색으로 하고, 시트와 휠도 녹색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이렇게
고객 취향을 반영해 차를 생산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같은 매클래런 차량은 지구 상
에 하나도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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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6 03:02 | 수정 : 2014.04.27 23:11
기를 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2만6000원)짜리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차이나모바일의 OEM 제품인데, 중국에
서 만들었습니다. 이 65달러짜리는 대만 미디어텍 프로세서를 탑재했는데 가격 대
비 성능이 꽤 좋습니다. 이것은 모토롤라 대표 모델 모토G입니다. 200달러짜리입
니다. 마지막 제품은 영국 수퍼마켓 체인 테스코가 중국에서 주문 생산해 들여온
태블릿PC입니다. 100파운드(약 17만원)짜리지만, 구글의 넥서스7과 비교할 만한
성능을 갖고 있습니다."
가는 게 어렵지 않다는 의미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한태희 교수는 "삼성
전자도 중국 신생 업체도 OS는 구글 안드로이드, CPU 핵심 기술은 ARM에 의존한
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라면서 "결국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핵심에서 삼성
전자가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인 1991년 입사했으며, 작년 7월 45세 나이로 CEO에 임명됐다.
입니다. 대략적으로 보면, 저희 매출 가운데 영업이익이 절반입니다. 그리고 비용
가운데 R&D 비용, 즉 인건비가 25%, 그 외 비용이 25%쯤 되겠네요."
하고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장은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반도체라는 제품 자
체를 생산하는 것은 포기한 겁니다. 대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라이선스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프로세서
설계를 하는 데 공통 부분을 묶어 최고의 성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
다면, 그만큼 규모가 커질 것이고 비용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
니다. 설립 당시 스마트폰의 초기 형태에 해당하는 애플 '뉴턴'이라는 PDA의 프
로세서를 개발해야 했는데, 휴대용 기기이기 때문에 프로세서를 작고 저전력이면
서 싸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거기에서 저희 기술력의 강점이 시작됐습니다."
사에도 이익일 겁니다. 가장 저렴하고 전력 소모도 적고 가장 작은 프로세서를 설
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바일에 특화된 저전력, 소형, 저
가격인 ARM 기술을 쓰는 게 스마트폰 회사가 직접 내부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저
렴하고 효율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많은 스마트폰 회사가 ARM 기술을 채택
했고, 소프트웨어도 ARM 기술에 최적화된 형태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ARM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가 늘어나니 더 많은 스마트폰 회사가 ARM 기술을 채택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죠.
사들은 설계 기술을 외부에 제공하는 데 아주 폐쇄적이었지요. 반면 저희는 모든 고
객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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