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의 하나는 창세기 12:1말씀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복의 근원이라는 말이 어려워서 영어성경을 찾아보니 의외로 쉽게 표현되어 있다. 'You will be a blessing.'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재미있게도 '너는 복을 받을 것이다' 가 아니라 '네가 복이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복의 근원' 같은 어려운 말 말고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해서 '너는 복 덩어리가 될 것이다' 이런 뜻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며 너 혼자 복 많이 받아먹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다. "네가 복 덩어리다. 네가 가는 그곳에서, 네가 만난 그 사람들이 너를 가리켜 복 덩어리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 제가 가는 곳마다 복된 만남을 주시고, 저 또한 사람들에게 복된 만남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이곳 먼 미국 땅에서도 복된 만남을 주셨다.
정○○ 집사님
이곳 남부한인교회에서 벌써 오래 전부터 군 선교를 담당해 오셨던 자매님이다. 정집사님이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한국군 유학생들이 오면 공항에서 픽업하는 일이다. 보통 한 가정에 이민 가방 서너 개는 기본임으로 큰 밴을 몰고 다니신다. 그리고 당신 집으로 데려가서 식사를 대접하고 2층에서 하루 밤을 묵게 한다. 다음날 아침부터 부대 내 학교에 데려다 주고 본인과 가족의 ID발급, 집을 얻는 것과 차 구입하는 것, 물통 사는 것, 한국식품점에서 기본적인 부식을 구입하는 것까지 일일이 가족들을 태우고 다니시면서 빨리 정착하도록 도와주신다. 이 과정이 보통 3-4일에서 일주일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자녀들 학교 입학에서부터 때로는 아침에 학교 늦은 아이(여기는 아이들이 새벽같이 학교에 가서 아침과 점심을 다 먹는다) 대신 태워다 주시는 일까지... 이런 일을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일년에 수 백 명씩 챙기려니 얼마나 바쁘게 열심히 사시는지 모른다. 물론 교회가 정집사님의 사역을 전적으로 후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도와주시는 덕분에 생전 교회 나가보지도 않았던 군인들이 최소한 한 두 번은 모두 교회에 나온다. 믿음이 아니라 도와주신 분에 대한 예의로, 또는 미안한 마음에 교회 나오기 시작한 군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들은 이곳이 아니었으면 평생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거나 결코 마음을 열고 교회로 찾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례나 대가도 받지 않으신다. 집사님 왈 "목사님,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하게 돕지 않으면 그들이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하○○ 대령
올해 대령으로 진급해서 이곳 어학과정을 거쳐 워싱톤 지휘참모대학과정을 마치면 내년 중반에 귀국해서 구축함장(육군으로 말하면 연대장)으로 취임할 사람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근무 때문에 가끔씩 교회를 나갔는데 '나오다 안 나오다 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물을 흐린다...'는 말씀에 실족해서 그 다음부터 교회와 담을 쌓고 지내던 분들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마음이 다시 열렸다.
얼마나 신실한지 계급은 제일 높은데 가장 솔선수범해서 아래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목사님을 존중하고 목사님의 말을 귀하게 여긴다. 어린아이처럼 얼마나 순수하게 믿는지 목사님이 기도하면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렇게 9주를 함께 신앙 생활하고 워싱톤으로 떠나던 날 새벽에 기도를 부탁하면서 "이곳에서 죽었던 신앙을 회복하고 갑니다. 어디서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군대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겠습니다..." 겸손히 약속을 하며 떠나셨다.
이○○ 소령
육사출신으로 자기 동기들 중에 선두 주자다. 화려한 경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실력으로(영어도 엄청 잘한다) 자기 자신만을 믿고 살았다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복부에 통증이 와서 과정 중에 세 번을 응급실에 실려갔다. 본인은 죽을 것 같은데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학업도 엉망이 되고(수료도 못할 줄 알았다) 자괴감으로 낙심해서 포기하고 돌아갈 생각까지 하고, 인생의 위기를 맞았는데...
하나님이 그의 곁에 좋은 신앙의 동지들을 보내셨다. 신실한 중령 안수 집사님의 조건 없이 베푸시는 사랑을 받으며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목사의 심방을 받았다. 처음으로 기도를 받았다는데 눈물이 글썽거리며 고맙다고... 떠나기 전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목사님, 그 동안 제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되면 다시 목사님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굳었던 제 마음에 빛이 비취는 경험을 하고 갑니다..." 고백을 하고 떠났다.
김○○ 대위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군법무관(군대의 판검사)으로 일하는 사람인데 법무관은 특별한 예우도 받고 모두가 어려워하는 직책이다. 이 사람들은 진급도 빠르고 나중에 전역하면 변호사가 되는 인재들이다. 그는 생전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부인이 공인회계사로 큰 법인의 회계팀장으로 일하고 있어서 함께 오지 못했는데, 자기는 부인이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싫었고 특히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둘이 버는 액수가 만만치 않을텐데... 자기 표현으로 "엄청난 돈을 교회에 갖다 바칩니다..." 목사들은 다 도둑놈으로 보였고 자기 실력만 믿고 자기 계획에 의해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도와주는 교회에 미안한 마음으로 한두 번 발을 들인 그를 성령님이 붙잡으셨다. 어느 날(이것도 자신의 표현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깨달음이 오는데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니며, 인생이 참 짧다는 것, 자기가 지금까지 산 것만큼만 더 살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인하던 성경이 읽고 싶어지고, 초라한 인생에 비하면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자신이 한없이 교만했다는 깨달음이 오면서, 어느 날 모든 것이 그저 믿어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따지기만 했는데 믿음이라는 전제가 생기니까 신앙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던 모든 장벽들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믿어져야 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했더니 그렇게 신기해하며 이곳에 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했다. 믿음을 가지고 나니까 너무 좋다고, 자기는 미국에 와서 제일 큰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얼마나 놀라운 간증을 하는지.
육군 9가정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아직 술을 못 끊어서 하나님께 죄송하다며 취한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한다. "우리가 여기 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제가 정말 안 믿던, 못 믿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믿고 나니까 너무 큰 기쁨이 있습니다..." 똑똑하고 실력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법무관이 이런 말을 하니까 모두들 진지하게 듣는다.
서울의대를 나온 군의관 하소령, 미국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박소령은 이곳에 함께 도착해서 어학적응과정 동기로 공부를 같이 하고 있는데 만날 때마다 섬기려고 한 모습이 좋았는지 모두들 마음을 열고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 새힘이 머리 깎은 걸 보더니 자기 아이들 머리도 좀 깎아 달라고 해서 기도하며 깎아 주었더니 마음에 든다고 한다. 다들 '목사님, 돈 받고 이발해 주셔도 되겠어요.' 그런다. 미국와서 비싼 이발비 아끼려고 아들녀석 깎아주다가 내 실력도 많이 늘었다.
믿다가 낙심했던 그들인데 마음이 많이 열려서 교회도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요즘은 곧잘 속마음도 털어놓는다. 알고보니 박소령은 자기 형님이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님이시다. 하소령은 고등부학생회장까지 했던 신앙의 경력이 있다. 다음 주에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좋은 만남이 될 것 같다. '하나님, 저들의 마음도 열어주소서...'
9주 과정 중에 6주가 지났다. 그 동안 새벽기도에 정화만 보냈었는데(아이들 핑계 대고-이곳에서는 아이들만 집에 두면 당장에 폴리스가 뜬다) 아이들, 학교 수업 등은 다 핑계다. 어차피 성적은 늘 바닥인데, 공부 핑계 대고 기도에 너무 게을렀음을 깨닫고 요즘은 아이들을 다 데리고 새벽기도를 간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뿌듯하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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