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그때는 국내 최초로 고리 1호기를 준공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원자력발전소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들이요 정기보수에 관해서도 아무런 경험이 없었으니 나 같은 신입사원이 무엇을 알 수 있었으랴!
원전의 정기보수란 약 1년간 운전을 하고 나서 발전소의 가동을 완전히 중지하고 두달 동안에 핵연료 교체와 기기들의 보수를 하는 것을 말한다.
낚시대 처럼 가느다란 금속튜브속에 새까만 분필토막 같은 핵연료 소자(펠렛)를 넣은 핵연료봉을 대략 17X17로 네모지게 묶은 상태를 핵연료 다발이라고 부른다.
그런 핵연료 다발은 하나의 원자로에 대략 120개 정도를 장진하며 매년 정기보수시에 그 핵연료다발의 1/3을 들어내고 대신 새로운 핵연료를 원자로에 넣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연쇄적인 핵분열을 위하여 중성자물리상 핵연료봉의 튜브(피복)두께는 매우 얇아 자칫하면 그 피복이 깨지고 그러면 방사성물질이 원자로 1차 냉각수를 오염시키게 된다.
*** 참고 : 여기서 원자로 1차 냉각수는 외부로 유출되지 아니함
(바닷물도 사용하는데 이는 2차 냉각수임)
고리 1호기는 운전 초기에 핵연료 다발에 약간의 이상이 있어서 네개의 핵연료봉을 교체하는 작업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직원이 직접 고리에 와서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 한전의 품질관리 직원들은 사실 그 핵연료봉 교체작업을 입회할 수 있는 수준도 못되었고 그냥 둘러서서 구경을 하는 정도였었다.
- 야 ! 박 기사... 미국사람이 열심히 들여다 보는 저 영문서류 말이야... 저것을 점심시간에 복사를 해 두면 필요할 때 가 있을 것 같아요..!!
선배 김 기사님이 나에게 그 서류를 복사하도록 지시하였다.
아니 필요하면 떳떳하게 사본을 달라고 요구할 일이지... 하긴 달라고 하면 계약사항이 아니라고 안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 미국인이 점심을 먹는 사이에 영문으로 된 두툼한 핵연료봉 교체에 관한 절차서를 감쪽같이 복사를 하고는 원본을 가져다 두었다.
그때 나는
- 내가 산업스파이로 체포되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도 점심도 제시간에 못먹고 콩닥거리를 가슴을 안고 땀을 흘리면서 덜덜거리는 복사기앞에서 복사를 하던 내 모습이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서류도 아닌 것을 훔쳐 복사하느라고 애만 먹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는 설계, 제작, 시공, 운전, 유지보수 등 모든 면에서 당당하게 원자력기술 대국이 되어 자체기술로 <SMART-일체형원자로>까지 개발하여 수출 대기중에 있으니 격세지감이로고 !!.
잠실 베레모
(12) 휴...! 진땀을 흘린 대표기도...
신혼시절에 우리 부부는 교회에 참석을 아주 열심히 하였다.
주일 낮과 저녁, 수요일 예배, 금요일 속회 등 모든 예배에 빠지는 법이 없었으니 목사님께서는 잠실 베레모를 아주 신앙심이 돈독한 성도로 오해를 하셨던 모양이다.
초신자 시절이나 믿음이 떨어져서 마음이 정돈이 되지 아니한 때는 기도가 결코 쉽지가 아니한 것임을 나는 지금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목사님이 기도를 시킬 까봐 두려워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남전도회 모임등에서는 서로 기도를 사양하느라고 실랑이를 벌리기도 한다.
- 기도는 성령의 감화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은 분명 맞는 말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이었다. 그곳 좌천의 교회는 크지가 않았고 저녁예배에 참석한 교인은 약 30명쯤 되었는데 찬송가를 부르고 나서 목사님께서 교인들을 한번 쭉 둘러보시고는
- 오늘 저녁예배의 대표기도는 박태종 선생님께서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는 나는 기도자로 지정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
이크 ! 이를 어쩌나 !
정식 예배시간에서 목사님의 말씀이니 못한다고 거절하거나 도망을 갈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 에라... 모르겠다 !
나는 불쑥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도를 시작하였으니 실로 내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대표기도였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참으로 부족한 저희들을 사랑하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로 삼아주시고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 어쭈 ! 잘 나가시네 ?
- 우리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하시어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믿음에 열심을 더하여 하나님을 섬길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
... 야... 이 정도면 첫 대표기도로서는 만점이었다.
- 특별히 분단된 우리민족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하루 속히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대통령을 도와주사...
하고는 말문이 꽉 막혀버렸다.
- 대통령을 도와 주사....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 계속 같은 말만을 몇번 되풀이 하다가 그만 혓바닥이 딱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게 왜 대통령까지 들고 나와서 끙끙거리느냐 말이다 !
- .... !?
나는 한참을 끙끙거리다는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
하고는 털썩 자리에 앉고 말았다.
휴...!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었고 혹시 교인들이 나를 기도 하나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흉을 보는 것같아 어찌 부끄런지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사실은 아무도 흉을 보는 사람들은 없는데도....
아마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이해를 하실 줄 믿는다.
잠실 베레모
(13) 원자로 헤드(뚜껑) 조립작업 입회검사
이 연재를 읽으시는 벗님들은 어쩔 수 없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공부를 하시게 된다.
수강료는 무료이니 안심하시기 바라며 자칫 언론에서 흥미위주로 거론하는 기사들에 비하면 그 진실성을 믿어도 좋다.
원자로는 1년에 한번씩 가동을 중단하고 핵연료 교체와 정기보수를 실시한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를 하였다.
핵연료 교체를 완료한 다음에 원자로 헤드(뚜껑)를 조립하는데 결코 그 작업이 쉽지가 않다.
원자로 헤드는 제어봉구동장치와 부착되어 있는 정밀부품으로서 추호의 오차도 없이 조립되어야 하고 한편 아주 무거운 대형 강철구조물로서 그 취급에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원자로 헤드의 조립작업은 품질검사원이 입회를 해야하는 공정인데 문제는 그 작업시기가 1979년 10월 추석명절 연휴 어느 날 저녁이었고 더구나 원자로가 설치되어 있는 방(Reactor Cavity)은 방사선 구역으로서 밤새워 작업을 입회하려면 어느 정도의 방사선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 나는 죽어도 방사선 구역에는 못들어 가겠다!
- 나는 추석에 고향에 간다.
- 나는 5대 독자라서 방사선 구역에 들어 갈 수 없다.
- 나는 어쩌구... 저쩌구...
하여 선배 사원들은 모두 사유가 많았고 아직은 OJT 요원인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 나는 추석때 고향에 가지는 않는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구동성으로
- 야 ! 그럼 이번 원자로 헤드 조립작업은 박 기사가 입회를 하면 되겠다 !
하고는 결론을 내고 말았다.
....쳇 난들 원자로 방안에 들어가 밤새워 가면서 방사선을 맞고 싶을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여 고리1호기 1차 핵연료 교체후 원자로 헤드 조립공정을 입회하는 영광스런(?)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 작업은 솥뚜껑을 덮듯이 간단히 끝나는 작업이 아니었다.
원자로 헤드를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그야말로 조심스럽게 원자로 하부 동체와 정확하게 맞추어 놓은 다음에 크기가 어른 장단지 만큼씩이나 되는 커다란 스터드 볼트를 역시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결합한 후 유압기로 조이는데 이때 바로 유압을 품질검사원이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 확인이야 어려운 것이 아니고 문제는.... 그 말썽장이 <방사선 피폭>이었다.
그래서 방사선 구역의 작업을 하려면 별도로 방사선관리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노란색의 방사선방호복을 입고 도지미터와 필름뺏지라는 이중의 방사선측정장비를 몸에 부착하고 들어가야 한다.
만일 작업구역인 방사성 입자로 오염된 지역이라면 특별히 비닐장갑과 고무장화를 신어야 하고 손목과 발목도 테이프로 밀봉을 해야 하며 물론 방독면을 착용하는 하느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방사선관리원이 앞장을 서서 측정기로 방사선의 준위(세기)를 재확인한 후 작업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다음에야 작업이 허용되는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원자로가 설치되어 있는 원자로 방(Reactor Cavity)에는 무시할 수 없는 방사선이 나오고 있었다.(그러나 방사성 입자로 오염된 상태는 아니었다.)
국내 원자력 법령에 근거하여 1년에 5 렘(Rem)이상의 방사선을 맞지 않도록 제한되어 있고 그 규정을 한전에서는 더욱 엄격하게 분기별로 1,250 mRem이상의 방사선을 맞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었다.
1.25렘이란 1250밀리렘인데...
내가 입회를 행하는 원자로 방안에서는 방사선 측정기(도지미터)의 눈금이 눈에 띌 정도로 매시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작업입회도 중요하지만 도지미타의 눈금에 훨씬 더 신경이 쓰여졌다.
... 50 밀리렘... 잠시 후 ...100밀리렘...잠시후 150 밀리렘... 200밀리렘...!!
한개의 도지미터로는 눈금이 250 밀리렘 밖에는 측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밤 12시가 되기전에 도지미터를 교체해야 했고 다시 새벽에 또 다른 도지미터를 사용해야 했다. 사실 그 정도의 방사선 피폭량이란 아주 미미한것으로 인체에 아무 영향이 없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심리적인데 있었다.
나는 작업을 마치고 샤워를 한후에도 웬지 꺼림직하고 온몸이 간지러운 느낌에 두어달을 아주 시달려야 했다.
원자력발전소 종사자들의 방사선 피폭관리는 이처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언론의 기사를 보면 너무 황당한 경우가 많다.
제한치 이상의 방사선 피폭은 인체에 치명적으로 유해한 것이기때문에 국내의 원자력발전소에서는 결코 허술하게 관리하지 아니함을 믿으시기를 바란다.
지난 언젠가 영광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서 방호복도 입지 아니하고 방서선 구역에서의 작업을 했다고 하여 파문을 일으킨 것과 같은 사건은 방사선작업관리 상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나는 확신한다.
잠실 베레모
(14) 預知行動
사람들도 본능적 감각으로 앞을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아는 경우가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현재의 의식에서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날씨가 제법 추운 겨울 어느 오후였다. 고리원자력본부 전직원(약 400명 정도 ?)이 강당에서 본부장님의 훈시와 지시사항을 듣고 해산을 하려는 참이었다.
갑자기 예정에도 없이 보안과장이 단상에 올라가서는
- 여러분 ! 불조심 합시다 ! 첫째도 불조심, 둘째도 불조심 ! 불조심을 해야 우리가 살아갈수 있습니다 !
평소 어께에 무게를 잡고 다니던 보안과장의 그날의 행동은 필시 정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냥 불조심을 하자는 정도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정도가 아니었고 두팔을 하늘로 내 뻗으며 마치 온몸으로 절규하듯이 소리를 내질렀기 때문이다.
그러한 보안과장의 코믹한 연기에 모든 직원들은 폭소를 터트리고 웃어버렸다.
- 와 ! 하 하 하 하 하 ! 와글 와글 !!
그런데 그날 저녁에 그만 사단이 터지고 말았으니...
당시에 고리에는 고리 1호기가 가동중이었고 고리 2,3,4호기가 건설중이었고 정문 바로 안에 임시 콘서트 건물을 짓고 원자로 설비를 공급하는 웨스팅하우스사의 자재창고와 노조사무실과 또 보안과 사무실과 당직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조사무실에서 석유난로를 끄지않고 퇴근하는 바람에 과열로 인한 화재가 일어나 콘서트 건물 두동을 폭삭 태우고 말았던것이다.
바로 옆 우리 품질관리부와 품질보증 기록보관실이 자리하고 있는 역시 콘서트 건물이었는데....!!
만일 품질보증기록실까자도 전소되었더라면 고리1호기의 가동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을 것이지만 그런 불상사를 막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화재당일에 출근을 하니 두동의 콘서트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앙상한 철재만이 시커멓게 불에 그을린채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다.
어찌나 놀랐을 것인지 당직과장과 보안과장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둥대고 있었다.
그런 참화를 보안과장은 몇시간 앞선 豫知했던 것이리라...
때문에 그는 몸으로 절규하면서 불조심을 하자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 여러분 ! 불조심 합시다 ! 첫째도 불조심, 둘째도 불조심 ! 오직 불조심만이 우리의 살길 입니다. !
그의 절규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 한다.
잠시,
이야기를 바꿔 또 다른 경험...
내가 군대시절에 대통령경호실 산하의 제66특전대대에 복무하고 있을 때었다.
그때 대대원이 낙하훈련(점프)을 할려고 출발직적전에 대대장 이태X 중령이 훈시를 하였는데....
- 여러분 ! 점프를 하다가 발목이 부러지는 것은 군기가 쏙!! 빠져서 !!!
그런사고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 군기가 확실하면 절대 발목이 부러지지 아니합니다. 요즘 보니까 군기가 너무 빠져 있어요 !! 정신들 차리고 점프하십시요 !
거구의 몸집을 하고 있는 이태X 중령은 그날 따라 매우 심하게 신경질적으로 대대원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점프에서 다른 장병들은 모두 무사하였는데 바로 그 이태X 중령이 점프중에 발목을 부러트렸으니....
발목에 기부스를 하고 커다란 몸집을 뒤우뚱 거리며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사병들이 들으라는 듯이 수근거렸다.
- ㅎㅎㅎ 군기가 빠졌으니까 발목이 부러지지...!!
이 중령은 듣고도 못들은 척 했다.
자기가 豫知한 말이었으니...
잠실 베레모
(15) 그런 방은 없소....!! 야속한 복덕방 아저씨
고리에서의 신혼생활은 무료했으나 그래도 우리 부부는 아내의 태중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의 배냇짓을 느끼며 몇 달을 훌쩍 보내 버렸다.
그동안 아내는 정성으로 생활비를 아껴 쓰고는 약혼식과 결혼식 때 빌려 쓴 돈 80만원을 누님께 모두 갚아드렸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출근을 하니
- 야 ! 박 기사, 본사 품질관리실로 서울로 발령이 났는데 가기 싫으면 말해 ! 내가 발령을 취소해 줄께...!
하면서 직속상관인 이영X 계장님이 내 마음을 지레 짐작하여 선수를 쳤다.
당시 고리품질관리부에는 OJT 요원이 17 명이나 몰려 있었고 출근을 해도 앉아 있을 의자조차 형편이었지만 나는 그 OJT 요원 중 선임이었으며 부내 서무와 현장의 품질관리업무를 일부 수행하고 있었다.
그 무렵에 고리원자력 1호기는 1차 냉각수 샘플링계통 개선공사를 하면서 공무과에서 규정 운전 품질보증계획에 따른 규정을 잘 지키지 않았으니 품질관리부에서는 이를 제재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었는데 선배기사들이
- 박 기사가 부적합보고서를 발행해요 !
하고는 자신들은 용기가 없는지 나에게 부적합보고서 발행을 미루었다.
그 부적합보고서란 지금은 ISO 품질인증제도가 널리 보급되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종의 부적합 제품 또는 작업을 제재하는 품질관리제도의 하나다.
그 당시만 해도 엄연하게 품질보증계획서에 명시된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품질관리 직원이 공사부서의 기세에 눌려 그 부적합보고서 발행을 한번도 못해본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샘플링계통 개선 공사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곧바로 <부적합보고서>를 발행하여 해당 공사의 작업을 중지시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