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사주고 싶은 것 아이가 갖고 싶은 것
악셀 담믈러 지음/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2003년 7월/272쪽/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도 좋다: 아이들의 기본적인 욕구
요즘 아이들이 겪는 어린 시절은 20년이나 30년 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유년 시절과는 분명 다르다. 이는 최근에 자식을 하나만 갖는다거나 한 부모 가족이 늘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에는 1시간 동안만 어린이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지만(축구시합이 있으면 이것마저 취소되었다), 요즘은 케이블방송 덕분에 언제든지 아이들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일본 만화와 만화영화의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
아이의 삶이란 일반적으로 많은 자유시간, 놀이, 버릇없는 생활습관,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열 살이 될 때까지의 시기는 정말 중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는 기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이 시기에 움직이는 것과 사지를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또한 사회적인 존재로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것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규칙과 친절처럼 인습을 고려하는 것도 배운다. 훗날 한 개인으로서 행동할 수 있기 위해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자의식을 개발하고, 읽기·쓰기·계산하기처럼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컴퓨터도 배워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열 살 때까지 배우는 과제이며 이 과정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과제 외에도 주위의 복잡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뭔가 '의미 있는 것' 혹은 '가치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관과는 달리 아이들에게는 쉴 권리가 있다. 여기에서 쉰다는 것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낭비해도 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발전을 위한 많은 과제를 실천하느라 늘 힘들게 배우고 있으며, 이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자신들의 규범과 규칙을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아이들도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식생활과 장난감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난다. '건강한 식생활 습관'이라고 부르는 독단 때문에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먹을 습관을 억누른다. 또한 어른들은 포켓몬과 바비 인형의 가치를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해버린다. 아이들을 위한 제품은 단순히 아이를 위한 제품이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이런 제품이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증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을 때가 많다.
아이들이 특정 물건을 원하는 것은 대부분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으며, 특정 제품을 원하는 욕구는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항상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왜 특정 제품을 선호하는지 이해하게 되면 그 같은 욕구를 좀더 쉽게 평가할 수 있을뿐더러 좀더 관대하게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에는 육체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처럼 '심리적인 욕구'도 있고, 세상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하는 바람처럼 '정신적인 욕구'도 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원동력으로 삼아 아이들은 온갖 종류의 활동을 하게 된다. 또한 이런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은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 중에서 소비라는 주제와 연관된 것은 바로 소유함으로써 자부심을 느끼고 싶은 욕구이다. 오로지 자신만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이는 자신을 다른 아이들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다른 아이들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소유와 관련해서 아이들만이 가지는 특징은 아이들이 뭔가 가지고 싶어하면 즉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욕구를 미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아이들의 이 같은 기본적인 욕구는 전 세게 어디에서나 산업 발달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아이들과 소비에 대한 간략한 조감도 : 왜 나는 할 수 없어?
아이들은 제품을 어떻게 인지할까?
평생 똑같은 제품과 상표를 사용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정신적으로 발전하면서 자신의 삶과 자화상을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에 거의 매년 핵심적인 신호가 바뀐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신이 아이처럼 보이는 것을 강렬하게 거부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핵심적인 신호 뿐 아니라 '나보다 나이가 약간 더 많은' 아이를 위한 제품이라는 신호를 찾게 된다. 아이들은 계속 성장하고 싶어 하고, 이 때문에 제품을 이용해서라도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목표로 정한다.
그래서 다섯 살 된 아이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옆집 아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하며, 초등학교 1학년은 2학년 또는 3학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한다. 아이들이 매번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코드를 제시하는 새로운 제품을 원하는 이유는 자신이 성장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상품세계를 인지하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그들이 가진 코드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 아이들의 코드에는 무엇보다 시각적인 코드가 중요하다. 다음에 열거한 중요한 코드와 핵심적인 신호는 아이들의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것을 참조한다면 다음 번 쇼핑에서 또는 아이들 선물을 구입할 때 더 이상 쓸모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시에 그와 같은 코드를 알면 기업이 아이들의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어떤 '속임수'를 쓰는지도 볼 수 있다.
- 만화 캐릭터 : 텔레토비 같은 아이들 캐릭터는 알록달록한 원색에, 통통하며 부드럽고 털이 많다. 솔직하고 단순하며 친절하다. 게다가 텔레토비는 외모에서뿐 아니라 말할 때와 몸짓에서도 매우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텔레토비 캐릭터는 다시 알아보기도 쉬워서 그야말로 하늘이 어린아이에게 내려준 제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세 살, 늦어도 네 살이 되면 아이들은 텔레토비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 이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텔레토비보다 더 잘 움직일 수 있으며, 말도 더 잘할 수 있어서 끊임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복잡한 내용을 기대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텔레토비는 퇴보를 의미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심슨은 모든 것이 날카롭고 과장되며 모가 나 있다. 유머는 흔히 악의에 차 있고, 숨은 뜻이 있으며, 무엇보다 말이 많다. 일곱 살 아이들 대부분은 이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농담도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에게 광고에 심슨이 들어간 제품은 흥밋거리가 될 수 없다. 반대로 아홉 살 아이들은 심슨 가족에서 규칙을 위반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심슨이 멋있다고 본다. 그래서 심슨이 등장한 제품은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캐릭터를 통해 소비자 그룹을 제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루한 제품을 흥미롭게 만들 수도 있다.
- 색깔 : 아주 어린아이들에게는 원색이 적합하므로 레고 프리모와 듀플로의 색깔은 원색이 지배적이다. 다음 단계부터는 레고 시스템처럼 색깔이 점점 혼합되어 어두워지며, 열 살이 되면 검은색이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된다. 레고 시리즈 가운데 스타워즈나 레코 테크닉에서는 색깔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글씨, 필체 :남자아이들은 활력을 내뿜은 비스듬한 글자체를 선호하고, 여자아이들은 반대로 경쾌하고, 꽃 모양 같은 글씨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둥근 글씨가 좋으며, 가장 이상적인 글씨는 알록달록한 색깔로 구성된 재미있어 보이는 필체다. 비교적 어린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지만 나이가 좀 들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코드와 신호 가운데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신호를 선택한 다음 상품 전체를 이해하거나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부모들의 시각은 아이들의 시각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물건을 선택하게 되고, 결국 이렇게 구입한 제품은 핵심적인 신호가 없거나 잘못된 신호(나이와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제품)를 선택한 것이 된다.
아이와 어른의 서로 다른 기호가 동일한 제품을 선택하게 될 경우가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부모가 이해를 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며, 아이와 타협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어차피 살 요구르트와 비스킷이라면 아동용이라고 해서 뭐가 잘못 되었겠는가? 물론 동일한 제품이라고 전제를 했을 경우에 말이다.
아이들 소비에 대응하기 : 스스로 하기
아무도 아이가 원하는 것 모두를 해주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으며, 당신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당신이 꼭 지켜야 할 것은 모순 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에는 확실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도덕적인 가치를 원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한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꼭 한 가지, 아이들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해서 용돈으로 사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수용하고 허락해야 한다.
살라미 전략(살라미를 얇게 썰 듯 목표를 점진적으로 달성하는 전략)은 장난감, 스포츠 용품, 기호품, 대중매체에도 잘 적용할 수 있다. 이 전략은 아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어떤 것을 원하면 부모가 이를 받아들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일 아이가 확정적으로 뭔가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결정을 내려줘야 하며, 아이는 이에 대하여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다.
살라미 전략의 경우에 아이가 선택한 소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아이가 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당신이 애초부터 더 좋다고 생각했던 물건을 구입해서 아이에게 주는 것이다. 아이가 오류를 범했다면 아이는 잘못을 저지른 셈이 되며, 이로부터 다음 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배워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로부터 다른 물건을 받게 되면 아이는 물건을 구입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는 태도를 배우지 않을 것이며, 장기적으로도 소비 행위에서 부모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성향을 가질 수 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소비에 대한 입장을 전수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다만 대부분 너무 늦은 시기에 시작하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만약 어린아이가 초콜릿을 집고 계속 졸라대면 부모의 "안 돼."라는 말이 "경우에 따라 괜찮아."로 바뀔 수가 있다. 만일 이 "경우에 따라 괜찮아"가 "그래, 좋아."라는 허락으로 이해하는 버릇이 들면 이 아이는 나중에 다른 물건을 살 때도 그런 식으로 조르게 된다. 따라서 소비교육은 아이가 소비활동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최초로 소비할 물건을 결정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비싼 물건을 구입할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성적으로 광고를 접할 수 있도록 충고하는 것은 부모나 교육을 담당하는 다른 기관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만 가능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광고를 광고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제품의 크기와 용도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아이에게 어떤 제품이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 제품을 파는 가게를 지날 때 아이와 함께 그 제품의 실제 모양과 용도를 테스트해볼 수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이 광고와 광고의 메커니즘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 광고의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이 진실이며, 어떤 것이 진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일까?
-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광고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이 사람은 광고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그 제품을 사용하며 광고에서처럼 행동할까? 잡곡이 든 과자를 먹으면 정말 스케이드보드를 더 잘 탈 수 있을까?
- 광고에서 스타를 보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만 할까?
광고의 진실성을 가게에서 시험해볼 수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광고를 보면서 특별한 메커니즘을 지적해줄 수도 있다. 이때 당신은 냉소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며, 가르치려 들거나 감독하는 사람처럼 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아이가 천천히 배우도록 하고, 다른 의견을 가져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아이는 많은 것을 다른 식으로 이해하고, 당신과는 다른 점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둘러싸고 매일 벌어지는 전쟁 : 우엑, 그건 싫어
아이들 제품은 지나치게 설탕을 많이 먹고 흔히 지방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받는데 사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기업은 아이들의 기호에 맞추어 달콤한 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제품이 해롭다는 중요한 증거로 사람들은 비만 아동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설탕과 지방은 그 자체로 해롭지는 않다. 사실 달콤한 것과 지방을 많이 먹지만 살이 찌지 않는 아이도 있다. 아이가 충분히 움직여서 몸 속의 칼로리를 모두 연소시키면 말이다. 비만은 거의 영양 과잉과 운동 부족으로 생기지만 대부분 식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식품을 금지하면 안 된다. 아이들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먹는 양과 무엇을 혼합해서 먹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흔히 식품에 미네랄이나 비타민을 인공적으로 첨가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우선 제품에 뭔가 인공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고, 천연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을 비난한다. 하지만 오늘날 가공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제품이란 있을 수 없으며, 더욱이 식품위생법을 어기지 않으려면 가공할 수밖에 없다.
식품에 그와 같은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어머니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이다. 기본적으로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첨가된 제품이란 '훌륭한 영양섭취'를 위한 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결과로 보면 된다. 왜냐하면 비타민, 영양소, 섬유질 등을 고려하느라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나머지, 아이가 그런 성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갖게 된 부모가 부족한 성분을 보충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제품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면 특정 영양소의 결핍 따위는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영양을 섭취하는 두 가지 방법이 공존하면서 첨예화된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보는 훌륭한 식생활과 먹으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아이들 식품이 그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양섭취에 대한 입장을 전해주고, 아이들의 감각과 욕구를 고려하여 약간의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가령 칭찬을 할 때나 즐겁게 해주고 싶을 때는 달콤한 것을 선택하도록 해준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음식물, 과일이나 야채를 먹는 문제가 등장하면 사소한 식품일 경우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타협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경우에는 어렵더라도 아이를 설득하도록 해야 한다. 어쨌거나 아이에게 '건강한 영양섭취'를 이해하라고 요구하거나 늘 새로운 음식을 내놓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줘서는 안 된다. 대신 무엇보다 식사를 맛있고 재미있게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다.
놀이와 장난감 : 말 잘 듣는 아이는 권총놀이를 하지 않아
게임보이, 플레이스테이션, 컴퓨터
전자 오락은 이제 아이들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가 되었다. 사실 비디오 게임이나 컴퓨터가 없는 아이는 거의 없다. 지난 몇 년간 컴퓨터에 대한 긍정적인 경해가 형성되었지만 아이들을 고려해서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을 의심하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다.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을 다른 학습 장난감과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비교하는 것은 우리가 그런 장난감을 가지고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어린 시절 알고 있던 책상 서랍에 들어가지 않는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컴퓨터 없이도 잘해 나갔기에 그런 장치는 불필요한 것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 컴퓨터를 잘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감도 느낀다.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보다 이 물건을 훨씬 잘 다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상태를 흔히 감독상실 혹은 통제상실이라고 하는데 바로 어른들이 처해있는 상태이다. 아이들은 좌절감을 훨씬 잘 참기 때문에 비교적 편견 없이 새로운 매체에 접근해서 실패를 하더라도 재차 시도를 하는 반면에 어른들은 신경질을 내며 포기하든가 아니면 도움을 요청한다. 아이들을 컴퓨터에 앉히는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컴퓨터를 성공적으로 배우는 아이를 중도에서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게임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것이다. 물론 첫 단계는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단계에 가면 복잡한 명령어를 환하게 알고 있지 않는 한, 이길 기회가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도전이고, 여기서부터 어른들이 두려워하는 '중독 가능성'이 등장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대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컴퓨터 게임과 비디오 게임만이 아이들에게 중독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레고나 카레라 경주도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모든 장난감은 중독 효과를 노려야 한다. 만일 카레라 경주로에서 쉬지 않고 다섯 번의 경주를 한다고 해도, 그 이유를 알기에 소음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엔진의 힘이 더 필요하다거나 권총을 피하기 위해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면 인내심이 바닥날 수도 있다.
다른 장난감과 달리 아이들은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 안에 오랫동안 앉아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이든지 처음에는 오랫동안 가지고 놀지만 싫증이 나면 다른 것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을 오래 전에 사준 부모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언젠가 게임도 하고 다른 놀이도 하게 된다고 얘기를 한다. 또한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게임을 멀리하게 하는 부모는 이를 통해서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소외될 수 있으며, 게임을 해서 입는 것보다 더 심한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덟 살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게임 시간을 정해주는 방법도 매우 좋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게임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자기 능력보다 높아서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이 여러 놀이기구와 함께 사용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이가 집에 있을 때 이런 장치만 가지고 놀고 싶어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다른 장난감에서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역시 그것에만 몰두하지 않도록 부모가 관여를 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게임 가운데 어떤 것을 사줘야 할지 고민될 때는 잡지나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게임에 대한 정보를 참고하라.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다른 좋은 장난감처럼 좋은 효과를 낼 것이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문제 : 인터넷을 못하면 바보야
아이들이 인터넷을 사용해도 될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인터넷이 필요한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이며, 그 밖의 측면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에게 인터넷은 근본적으로 네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정보 검색 : 청소년들은 취미, 음악과 영화에 대한 뉴스,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뿐 아니라 숙제를 하기 위해서도 인터넷이 필요하다.
- 커뮤니케이션 :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모르는 사람은 채팅으로 사귄다.
- 다운로드 : 특히 남학생들에게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모아 모으는 작업이 중요한데, 능력을 발휘해서 얻은 '노획물'을 통해 다른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림이나 화면 보호 그림에서 오늘날에는 DSL 같은 새로운 기술 덕분에 영화 전체나 프로그램, 게임 전체를 다운받기도 한다.
- 서핑 : 인터넷이 복잡하고 다양하기에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연결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이는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원하기만 한다면 청소년들은 세상을 알아야 하는 어린 시절의 과제를 인터넷에서 계속 실천할 수 있다.
인터넷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포르노와 폭력적인 내용이 지적되고 있다. 만일 아이들이 서핑하도록 허락하면, 그와 같은 장면은 언젠가 아이들의 눈에 들어오게 될 현실이므로 어른들의 감독이 중요하다. 그 밖에도 차단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편집자가 위험하지 않다고 인정한 사이트만 열어주거나 섹스처럼 특정 글자를 담고 있는 사이트는 열지 않는다. 그와 같은 프로그램은 유해 사이트로부터 안전하다고 약속하지만 현실적으로 해킹도 가능하고, 점점 문제가 생겨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런 해결책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 편이다.
고통스럽지만 아이들이 이 매체에서 더러운 것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야 된다. 아이들이 그와 같은 것을 만났을 때 그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그들이 받은 교육에 달려 있다. 유태인 박해에 관해 많은 것을 들은 사람이 아우슈비츠는 날조된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웹사이트를 발견하면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책략임을 금방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원칙을 포르노에도 적용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을 접한 아이들은 포르노를 보더라도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어른들은 감독권을 상실할까 몹시 두려워하는 편이다. 만일 아이들에게 인터넷 사용을 허락하면 언젠가 이들을 감독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떤 해로운 일도 생길 수 없도록 준비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터넷의 효과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책임을 떠맡고, 가장 강력한 기관으로서 우리의 가능성을 한번 이용해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원칙 외에도 아이들이 서핑을 할 때 주의를 줘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 모든 서퍼들이 솔직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친절하게 접근하지만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도 있다.
-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진짜 이름과 주소를 말해서는 안 되고, 별명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 만일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아이는 이를 부모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부모는 이것에 관해 아이와 얘기를 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유해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는 점 외에 또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청소년들이 '진짜 삶'을 살며 사람을 접촉하지 않고 사이버 접촉만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우정이란 사랑이나 적대감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상으로만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가진 두려움을 종합해보면, 이는 인터넷 세상에 대한 부모들의 전반적인 불안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부모들 스스로가 인터넷을 사용한 경험이 많고 인터넷의 장점을 잘 알수록 인터넷 사용을 더욱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의 특별한 장점(풍부하고 깊이 있는 내용, 시사성, 커뮤니케이션)들은 아이가 여덟 살에서 아홉 살이 되면서부터 비로소 중요하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이의 나이가 이보다 어리다면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CD-ROM으로 해결해도 좋다. 어쨌거나 부모들은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가운데 무엇이 좋을지 따져보고, 아이의 관심사도 고려해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인터넷이 무조건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태도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말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소비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자유시장경제라는 경제체계를 시인한다면, 아이들이 이성적인 소비자로 발전하기를 바래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성적이라 함은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진 돈으로 가장 최적의 것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필기도구로 필기를 하는 방법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대중매체를 대하는 방법이나 제품과 광고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소비교육이라는 과정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경고하고, 부모와 교사의 시각을 강요하는 단편적인 과정이 아니라 다른 모든 학습과정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욕구와 바람을 고려하고 이런 욕구를 긍정적으로 강화시키는 데 사용해야 한다. 아이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다.
때문에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과 같은 눈 높이에서 아이들의 제품 세계를 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소비 교육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성공적인 소비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부모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나 규칙 그리고 금지조항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것을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 제품을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며, 실질적인 효용가치에 따라 제품을 판단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올바른 소비교육을 배우도록 하려면, 모순적이지만 부모가 소비교육을 포기할 때 비로소 교육이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성장에 적합한 제품을 구입해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비교육이다. 즉, 어릴 때 본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소비를 배운 사람만이 청소년과 성인이 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올바른 소비교육이 이루어지면 '중요한 소비'와 '부수적인 소비'에 따라 서로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제품의 외양을 두고 부모와 아이가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채 다투는 것은 부수적인 소비 문제에 불과하다.
모든 장난감이 반드시 교육적일 필요는 없고, 매번 먹는 식사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를 통해 아이들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훌륭한 소비교육이란 여러 가지 극단 사이에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스스로 고려할 수 있게끔 아이들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교육에는 규칙과 한계도 필요하다.
아이들은 경제적인 한계를 수용하는 태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아이들이 훗날 성인이 되어 스스로 번 돈을 사용할 때 필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역시 소비의 가치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제품을 구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인생에 선물해주고 싶은, 소비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들의 욕구 가운데 어떤 것을 충족시켜주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포기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