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박춘무 절제된 아방가르드와 블랙의 조화로 정리되는 독특한 라인을 전개하는 디자이너 박춘무. '심플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옷'이 그녀가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세계 트렌드가 화려한 로멘티시즘으로 흘러도 그녀는 늘 무채색 컬러와 절제된 디자인, 베이직한 라인으로 일관해 왔다. 옷을 입었을 때 화려함으로 인해 그 사람의 개성이 가려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녀의 디자인 철학이기 때문. 박춘무는 늦깍이 디자이너이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어머니를 도와 조그만 옷가게를 차려 직접 만든 옷을 판매한 것이 바로 브랜드 '데무'의 탄생 배경이다. 97년 오사카 컬렉션을 계기로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그녀는 미국과 파리, 네덜란드 등지에서의 전시와 쇼를 통해 해외 바이어와 에이전트 개발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99년 6월에는 뉴욕 소호 거리의 대안으로 등장한 로리타 거리에 국내와는 다른 뉴욕식 버전의 직매장을 오픈했고 2001년에는 파리에도 직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가을 시즌부터는 내셔널 브랜드로 볼륨화된 '데무'와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디자이너 브랜드 '박춘무'를 런칭, 수출 주력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다.
12)배용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배용은 71년 배용 패션을 오픈 하고 73년 개인 의상 발표회를 연 이래 S.F.A.A. 컬렉션을 비롯해 약 70여 회의 패션쇼를 가졌다. 젠틀한 미소와 친화적인 분위기 때문에 '무대 위의 신사'로 통하는 그는 명실공히 부산 패션의 대표. 93년 패션지 <멋>이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했고, 98년에는 서울패션인상 '올해의 디자이너상'상을 수상했다. 그의 쇼를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클래식'. 갖가지 패치워크 테크닉을 통해 소대를 재가공하거나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 원피스에 정교한 비즈 장식을 수놓은 그의 컬렉션은 정확한 패턴과 함께 기성복 이라기보다는 고급 맞춤복에 가깝다. '정서와 안 맞는 과장된 옷차림이나 유행만을 쫓아가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패션은 사회적이어야 하며 입는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디자인 철학이다.
13)변지유 아트적인 요소가 없는 옷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변지유. 그녀는 옷에 아트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생동감을 불어넣는 디자이너다. 뉴욕과 파리의 <프레타 포르테>, 도쿄 오사카 홍콩의 <인터내셔날 패션 페어>, 독일 베를린과 퀼른 그리고 뉴욕의 <패션 아트전>등 다수의 해외 행사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그녀. 미술을 전공한 변지유가 아트적인 요소를 띄는 디자이너가 된 것은 그녀가 85년 일본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쇼에서 동기를 찾을 수 있다.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그녀는 주로 해외에서 패션공부를 하면서 그녀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쎄콜리 패션 스쿨, 마랑고니 예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뉴욕의 F.I.T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열심히 혼을 바쳐 일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변지유. 끊임없이 방출하는 그녀의 에너지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14)손정완 시즌과 트렌드가 바뀌면 쇼윈도의 풍경도 바뀌게 마련인데 손정완의 매장은 언제 보아도 한결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결혼할 때 누구나 한 번쯤 예복으로 입고 싶어하고,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 때의 정장으로도 그만인 옷이 손정완의 색깔이다. '예쁜 옷이란 지적이고 세련되면서 섹시미를 갖추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옷은 전형적인 페미니티 자체로 언제 봐도 깔끔하다. 숙명여대 산업공예학과를 다니던 중 학원에서 패션 디자인을 배운 그녀는 87년 '손정완 부티크'를 오픈 했다. 일에 파묻혀 살면서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서른 다섯이 될 때까지 독신을 주장하던 그는 서른 여덟이 되던 해 '운명'적인 한 남자와 결혼했는데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초등학교 때 짝꿍이라고. 탤런트 최화정과 20년지기 친구로 최화정은 패션쇼가 있을 때면 늘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그의 쇼 앞자리를 채워준다.
15)송지오 송지오는 '장 폴 고티에'나 '비비안 웨스트우드'같은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연출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디자이너이기보다는 크리에이터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의 영원한 테마 '블루이즘'은 여성을 우아하고 섹시하게, 그리고 때로는 파격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패션쇼에서는 극적인 요소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92년 '지오 에 지아 에스빠스 블루'라는 다소 긴 이름의 디자이너 부티크를 오픈한 그는 LG 패션의 '옴스크'와 계약제 디자이너를 통해 디자이너와 기업의 전략적 제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0년 F/W 시즌부터 여성라인을 일시 중단하고 '송지오 옴므'라는 남성복을 선보였다. 여성 라인을 중단한 이유는 자신의 라인인 '섹시즘'이 요즘 트렌드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트렌드가 돌아오면 다시 특유의 '블루이즘'이 담긴 여성 라인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16)오은환 독특한 소재 사용이 특징인 오은환은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국제복장학원 연구 과정을 졸업한 후 65년 '꾸망 의상실'을 오픈 했고, 79년 기성복인 '오은환 부티크'를 오픈 했다. 90년부터 S.F.A.A.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는 그는 20대의 어린 나이에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며 친구와 한 약속을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결코 남 앞에 화려하게 나서지 말고 고비를 장애물 넘듯이 넘겨가며,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자'가 그 약속이라고. 그래서인지 그는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과장이나 허영은 절대 금물이며 어느 한 부분만의 발전과 국제화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 높고 험하게만 느껴지는 해외시장 진출에의 높은 벽을 느낄 때마다 장거리 육상 선수의 마음자세로 장기 레이스를 떠올린다고.
17)우영미 여자가 봐도 탐나는 남자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우영미. 그녀는 '솔리드 옴므'라는 남성 브랜드로 국내 남성패션을 업그레이드한 장본인이다.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입기 편한 남성복을 만드는 디자이너. 그녀는 무난한 듯 보이면서도 절묘한 컬러 매치로 그녀만의 스타일을 제안한다. 성균관대 의상학과 졸업 후 반도패션에서 실무를 경험한 그녀는 86년 제1회 오사카 인터내셔날 패션쇼에서 3위를 수상하면서 패션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피에르마', '레드옥스' 등의 남성복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았고 88년에 비로소 황폐했던 남성복 불모지에 '솔리드 옴므'를 런칭, 13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특히 그녀는 지난 97년부터 파리 SEHM 전시회와 독일 KOLN 전시회에 매 시즌 참가하고 있기도 하다.
18)이경원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니트 디자인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패션과 인연을 맺은 이경원. 니트 프로모션 디자인을 하면서 자시만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갑갑함을 느껴 '아가씨'라는 니트 전문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녀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미건조한 니트 웨어에 대한 편견을 익살스럽게 바꿔버렸다. 그녀의 디자인 방법은 특이하다. 특별한 공식 없이 장난 삼아 실을 섞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옷으로 만들면 어느새 그 결과물들은 '아가씨' 그 자체가 된다. 홍대 앞에 있는 그녀의 아뜨리에에 가면 로보트 태권브이와 같은 장남간과 키치한 물건들이 마치 만물상을 방불케 한다. 아들과 함께 만화보기를 즐긴다는 그녀는 만화를 보면서 많은 디자인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녀는 '뉴웨이브 인 서울'의 멤버로 96년부터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해 박춘무, 박은경과 함께 주목 받은 코리아 3인방으로 현지 언론과 바이어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19)이보미 98년 말총의상으로 프랑스 국제 신인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입상하여 유명세를 탄 새내기 디자이너 이보미. 그녀는 당시 매미날개처럼 섬세하고 투명하여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인 말총의 조형적 특성을 이용한 관모기법으로 오트 쿠튀르풍의 의상을 선보여서 화제를 모았다. 수상 이후 디자이너 정구호로부터 여성복을 해 볼 것을 권유 받은 그녀는 편집매장 '콜렉티드'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 VETO의 판매 라인을 갖추었고, 비로소 대중들의 호응을 얻게 됐다. 이를 발판으로 갤러리아 백화점의 GDS에 입점했고 작년 겨울 청담동에 자신의 숍을 오픈했다.
20)이상봉 시원한 헤어 스타일과 구렛마루가 매력적인 이상봉. '디자인이란 고여있는 것이 아닌 움직이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그는 99년 서울 패션인상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다. 독일 여성복 박람회인 'CPD 2000년 가을/겨울 패션파워'에 참가하는 등 해외 진출을 모색중이다. 83년 중앙 디자인 콘테스트에 입상하면서 디자이너가 된 그는 패션쇼를 퍼포먼스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어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광주 비엔날레, 국제 미술 의상전, 죽산 국제 예술제의 패션 퍼포먼스를 통해 패션과 예술과의 접목을 꾸준히 시도했다. 그에게 있어 패션이란 전체적인 이미지와 실루엣에 맞춰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이자 문화이다. 철학이 있는 패션, 옷을 문화로서 사랑하는 삶, 그리고 시대를 읽는 방법을 패션쇼와 퍼포먼스의 접목으로 연출하는 그의 쇼는 늘 색다르고 특이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