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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15-21> 술 취하지 말라, 방탕한 것,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노아와 롯의 술취함, 벗겨지는 수치, 술취하면 망하는 길, 육신의 현저한 일
1. 말씀배경
에베소서는 주변 지역 교회에 함께 돌려보는 회람서신으로서 바울이 제1차 로마 감옥 생활 중 AD 61~62년 사이에 기록된 옥중 서신입니다.
※ 옥중서신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1~3장까지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서 하나됨을 교리적으로 가르쳤다면, 오늘 말씀이 포함된 4~6장은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성도들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술 취함과 성령충만 관련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술 취하지 말라는 사실상 술에만 국한되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 술에 취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세상의 기쁨과 쾌락, 연락을 가져다주는 대표적인 것이 술취함이기 때문에 술취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술취함은 한마디로 방탕한 일이며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일입니다. 세상의 술 취함과 성령의 술 취함은 극과 극입니다. 서로 대적합니다.
그래서 술 취하는 자는 결코 성령 충만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 충만한 자는 세상의 술에 취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취하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 칩니다. 육신적인 삶을 끊고자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롬 8:7)
육신의 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반대로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6). 술을 먹고 다니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입니다.
성경은 여기 저기서 술(포도주)의 삶과 성령의 삶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갈 5:16-26절에서는, 육체의 소욕, 육체의 일에 대한 말씀과 성령의 열매에 대한 말씀이 함께 나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 분쟁, 시기, 분맴, 분열,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
세례요한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1:15)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기에 성령충만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방탕한 많은 것들 중에서 실제 술취함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2. 술 취함과 성령충만
1) 술 취함
저도 말씀이 하나님의 법이 없을 때에 술을 먹어 본적이 있습니다.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술 취함의 특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술로 인하여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항상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술로 인하여 망하는 인생이 부지기수입니다.
폐인이 되어 아무것도 못하시는 분, 일찍이 중풍 같은 것이 찾아와 어려움을 겪는 분, 신장과 간이 좋지 않아 일찍 돌아가시는 분들 말입니다. 비참한 모습들입니다.
가까운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어 하나님의 법이 없었을 때에도 저는 술을 가급적 피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술을 먹지 않고 콜라, 사이다만 마시고 있을 때에 그들은 나에게 말하기를 “성경에 술 먹지 말라고 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안 취할 정도로 마시면 되지 않느냐고”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자칫 넘어가기 쉬운 논리입니다. 또 건강을 위해서 먹는다. 교제와 사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등등, 우리들이 알 것은 술을 안 먹어도 하나님은 건강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술을 안 마셔도 사업 잘할 수 있고 교제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교제와 사업과 건강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유익보다도 술이 주는 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육적인 해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장과 자주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는데 (딤전 5:23) 분명히 약용입니다.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약용이 아니라면 다 변명입니다.
▶ 여러분 도대체 술 취함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인사불성 되어야 취한 것입니까? 취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알콜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잔을 먹으면 한잔 만큼 취하고, 두잔을 마시면 두잔 만큼 취하는 것입니다. 알콜의 량이 적으면 적게 취하고, 많으면 많이 취하는 것입니다. 취한다는 절대적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분은 소주 한잔에도 취합니다. 한잔에도 취하여 평소와 다르게 반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여 술을 마셨을 때 조금만 먹어도 토하거나 속이 불편합니다. 이렇듯 사람마다 술의 세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한 잔을 마셔도 알콜의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생물학적으로 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 마시는 것이 안 취하는 것인 것입니다. “안 취하면 되지!” “사업을 위하여, 교제를 위하여 어쩔 수 없다“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다면 조금씩 조금씩 무너뜨리는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면 왜, 단호하게 먹지 말라고 하지 않고, 취하지 말라고 했을까?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물이 부족하여 포도주를 음료수로 마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먹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물이 부족해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것입니까? 생수가 넘치는 시대인데~~ 아닌 것입니다. 포도주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술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술(헬, 오이노스)은 원어적으로는 포도주, 와인을 뜻합니다 (디오니수스는 포도주의 신)
70인 역에서는 히브리어 “야인”(포도주)을 “오이노스”로 번역을 했습니다.
▶ 술에 취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죄를 짓는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술을 먹는 것은 사탄의 입속으로 머리를 들이 미는 것과 같습니다.
① 롯은 술이 취하여 자기 딸들을 통해서 자식을 낳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율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시 그의 아내는 불타는 소돔성을 뒤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롯과 두 딸은 소알성으로 피하였다가 다시 소알성을 나와 굴에 거주합니다.
두 딸이 아버지 롯에게 술을 많이 먹여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게 되는 일이 벌아집니다 (창 19:30-38). 술로 인한 성적인 죄를 지은 것입니다.
롯이 술이 얼마나 취했는지 성경은 자기의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로 인하여 실제로 인사불성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감각이 마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의 딸 앞에서 벌거 벗은 것은 수치를 다 보인 것입니다.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자식을 낳은 유다가 있지만, 친딸을 통해서 자식을 낳은 인간은 성경에 롯 밖에 없습니다. 술이 주는 해악입니다. 취해서 그렇다고요? 술을 마시면 점점 량이 늘어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량에는 작은 죄를 지을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 롯처럼 벌거벗기는 수치를 당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중에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벌거벗은 것은 영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 3:17,18, 16:15)
성경은 롯을 “의로운 롯“(벧후 2:8-9)이라 하고 있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의 영혼까지 구원받았을지는 의문입니다. 구원을 받았어도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식인 암몬과 모압은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짝둥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들은 정통 하나님 나라의 선민을 괴롭히는 인간들입니다. 사탄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모두 다 구원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② 노아의 경우도 술에 취하여 벌거벗은 상태로 자식들에게 하체가 노출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여기서도 벌거벗는 모습입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입니다. 그가 홍수 이후에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 9:20-27).
술은 의인마저 벌거벗게 만듭니다. 의의 옷을 입어야 하는 믿는 자들을 벗게 만들어 넘어뜨리는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여 벗은 몸으로 있을 때에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고 셈과 야벳에게 알리게 됩니다. “알리다”가 “나가드”인데 “폭로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감추어야 할 사실을 폭로한 것입니다. 그것도 미완료형으로 계속 그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두 형제 셈과 야벳은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그 하체를 가려준 것입니다.
술이 깬 노아가 이 사실을 알고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 대하여 저주를 퍼 붓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창 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저주로 실제 가나안 족속은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함 족속을 흑인으로 보는데, 흑인은 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오랜 기간동안 노예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은 멸망을 당했습니다 (행 13:19).
노아는 세상 어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홍수 심판을 경험했기 때문에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마셨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너무 힘이 들어서,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술을 마신다고 정당화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만 그래도 술에 취하면 벌거벗는 수치를 막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렇 때에는 하나님께 나아가야지요!
술을 먹고 자식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출 20:26, 28:42)
그가 술 취함으로 인하여 그의 열매인 후손이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 9:25)
술은 자기가 먹고 저주는 후손이 받은 것입니다.
결국 롯처럼 좋지 않는 자식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본 것은 성적인 범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함이 그 아버지의 하체를 본다는 것은 원어적으로 “라아”인데, 주목하다, 느끼다, 즐기다, 바라보다, 조사하다는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세밀히 조사하듯이 즐기면서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미완료형이므로 계속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함의 행동은 마치 동성애자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남자인 함이 남자의 하체를 즐기면서 조사하듯이 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동성애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비의 하체를 범하면 안됩니다
술은 대부분 성적인 범죄를 가져옵니다. 앞서 보았던 롯도 성적인 범죄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고 죄로 연결되며, 특히 성적인 죄로 연결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③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왕도 성전 기명으로 술 먹다가 그날 죽임을 당하고 나라도 망했습니다(단 5:1-30)
이것은 조금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가 술을 먹지 않고 있었더라면, 술과 함께 잔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에서 그렇게 쉽게 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벨론 성은 규모나 구조가 난공불락의 성입니다.성 둘레에 해자까지 있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니까 성벽의 두께가 50 페키스(30m), 높이가 200 페키스(120m), 한변의 길이가 120 스타디온 (23km), 둘레가 480 스타디온 (92km)입니다.
고레스가 그런 바벨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인 문제로 백성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고레스를 맞이했기 때문도 있지만, 벨사살왕이 잔치하느라 술에 취하여 성이 많은 부분 점령이 된 상태에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레스는 거의 무혈입성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한 시간 곧 짧은 시간에 망한 것입니다 (계 18:10,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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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사살의 아버지인 나보니두스왕은 바벨론의 신 마르둑보다 달의 신을 섬기기 위하여 10년 동안 사막에 가서 살면서 아들 벨사살에게 섭정을 맡겼습니다. 백성들이 섬기는 마르둑을 섬기지 않는 정권에 대하여 백성들이 성문을 열고 고레스를 맞이한 것으로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술 취하지 말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술 취함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죄들이 있는 것입니다. 성적인 죄를 포함하여 다른 죄들도 함께 따라옵니다.
오늘 말씀 18절은, 술 취하는 것이 “방탕한 것이다”(아소티아) 라고 있습니다.
원어적으로 거칠고 무질서한 삶, 폭식, 대식, 무절제라는 뜻이 있는데 원어를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구원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방탕하다의 히브리어 “아소티아”는 부정 접두사 “아”와 구원이라는 “소조“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방탕하다고 번역한 단어는 ”구원이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술취하여 방탕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15절부터 18절의 말씀은 술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술 취하는 것은 지혜 없는 자이며, 세월을 아끼지 않는 자이며, 어리석은 자이며, 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이며, 성령 충만 받지 못한 자이다“ 라는 것입니다. 술을 먹는 자가 성령충만한 자 없습니다.
하나님이 술 취한 자에 대한 평가입니다.
술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전제로 드리거나 약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술 취해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 외에는 술은 지혜 없는 자로, 어리석은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마온 땅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피해 다닐 때에 그의 양떼를 보호해 주었는데 다윗이 먹을 것을 그에게 구했으나 거절당하여 다윗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한 자입니다.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현명하게 다윗을 찾아가 지혜롭게 말하므로 죽임 당함은 면했으나, 그것도 모르고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베풀고 크게 취했습니다.(삼상 25:2-36)
그의 이름의 뜻이 ”어리석은“입니다.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다윗을 ”주인에게 억지로 떠나는 종“으로 평가하여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술에 취해 있는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술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만드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나발이 되는 것입니다. 음란의 영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나발의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 잠언 23장에서는 술 취함의 악한 열매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잠언 23:20]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9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술 취하는 자와는 더불어 시귀지도 말라, 술을 보지도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보지도 말라고 하는데 먹고 취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술 친구까지 떠나야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갈지자로 걷는 자와 함께 해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술이 취해지면 가난해져서 패가망신 되는 것입니다.
재앙과 근심과 분쟁과 원망과 상처가 따릅니다.
마치 뱀에 물린 것 같으며 독사에 쏘인 것과 같이 정신이 헤롱 헤롱하게 됩니다. 마치 바다 가운데,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아서 비틀 비틀하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가는 것입니다. 맞아도 감각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정신 차리게 해 줄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영적으로 혼란한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31:5]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그리고 여호와의 법도 잊어 버리게 되고 송사를 굽게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판단력이 없어집니다.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고 하는 의미의 구절이 많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으면 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취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로 빠지게 됩니다.
사탄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바닷가에 가면 빠질 수도 있고 안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그들 살리기 위하여 바닷가에 아예 보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술도 이와 같습니다.
이런 나쁜 열매를 거두지 않기 위해서는 술을 멀리하는 영적 나실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술을 즐기는 사람도 성경은 집사의 직분, 감독의 직분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딤전 3:3, 딛 1:7)
술을 좋아하는 자에게 직분을 맡기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취하는 자가 직분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성령충만
술 취함의 특성이 성령충만의 특성과 유사하기에 성경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비해 놓은 것입니다.
술 취하면, 말이 많아지고, 담대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하여 지그재그로 걷게 되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비진리를 담대하게 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구토를 하고, 정신이 없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는 등 평소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충만해져도 이성적인 생각이나 판단이 아닌 성령에 의해 이끌림을 받습니다. 담대해집니다. 진리를 선포하는 말도 많아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 그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갑니다. 그러나 진리의 길입니다.
사람이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술 취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죄에서 멀어지고 아름다운 영적인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술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성령 충만을 받는 길입니다.
술에는 대체로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술 중독은 100% 마귀의 역사입니다. 술에 중독된 자는 축사가 필요합니다. 술 마귀가 계속 술을 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술이 술이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술이 사람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완전히 장악하여 그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폭력, 구타폭력, 언어폭력 등으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두렵게 하므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국한해서 본다면, 성령충만 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합니다.
한 마디로 찬송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 술 취해서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찬송으로 중얼거릴 것입니다.
② 범사에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술 취하면 온갖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성령충만은 모든 일에, 항상 감사가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복종한다는 것은 아래에 정렬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술 취하면 상하가 없는 것입니다. 윗 사람에 대해서 아랫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완전히 이와 반대입니다.
<맺는 말>
술은 내가 먹지 말고 하나님께 전제로 드려보십시오. 전제는 술을 부어드리는 제사입니다. 단독으로 드리지는 않고 다른 제사와 함께 드립니다. 전제는 내 생명까지 내어드리겠다는 헌신의 의미가 있는 제사입니다. 나의 기쁨, 즐거움을 주님께 다 내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순교의 피를 전제로 드린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피도 곧 생명도 전제로 부어드리는데 어찌 그 세상의 술을 하나님께 내어놓지 못합니까?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하여 당시느이 생명을 주셧는데, 어찌 우리는 그 술을 주님께 못드립니까?
하나님께 술도, 피도, 땀도 부어드려야 합니다.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먹지 마십시오. 조금씩 시작하다가 보면 어느새 많이 먹게 되고 중독에 이르게 됩니다. 마귀의 역사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술 취하면 옷이 벗겨져 성적 범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벗거벗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벗은 수치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계 3:17,18,16:15, 17:16).
그리고 방탕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삶인 것입니다.
더구나 반대로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도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며, 술 취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단정하지 못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호색하고 다투고 시기하게 됨을 술취하지 말라와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술취함은 육신의 일입니다(갈 5:19-21). 그러면 사망인 것입니다 (롬 8:6)
술 취함은 낮의 삶이 아니라 밤의 삶입니다. 사탄의 문화인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하여 로마까지 멸망의 시대는 역시적으로도 전부 술 문화였습니다.
밤은 주로 사탄이 역사하는 시간입니다. 결국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술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고 잠언의 말씀처럼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는 피하는 것이 최 상책입니다.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이다나 콜라를 시켜 줍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요새 직분자들도, 때로는 진보교단에 있는 목회자들 마저도 술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탄의 농간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이 멉니다.
세상의 달콤한 맛을 즐기기 위하여 육신의 것을 추구한다면 그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부디 알콜에 의한 술취하지 말고, 술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