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비의 시대
권미강
눈물도 팔고 사는 시대가 있었다. 조선시대 얘기다. 우는 소리가 밤새 나야 효자소리를 듣던 옛날에는 곡비(哭婢)라는 여자노비를 시켜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했다. 천하긴 하지만 ‘곡비’가 직업인 여성도 있어 그 여식에게까지 대물림되기도 했다 한다. 곡비는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우는 계집’이다. 운다는 것이 가슴 저 끝, 막막하고 답답하여 몸속의 수분이 터져 나오는 것인데 그것이 하필 눈(目)이어서 보는 사람마저 그리 슬프게 만든다. 노비라는 신분이 주인의 뜻에 따라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의 가장 아픈 구석인 눈물샘을 자극해서 억지로 울어야 한다는 처지이니 그 자체가 가슴 아프다.
예전에 상영됐던 영화인 ‘죽어야 사는 여자’처럼 ‘울어야 사는 여자’가 곧 곡비인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울어야 한다지만 곡비들은 어떻게 울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그 슬픔의 끝을 어떻게 다스리고 감정의 촉수에서 어떻게 눈물을 흐르게 했을까? 어쩌면 계급 구분이 확실한 봉건사회에서 같은 사람인데도 천하게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한탄이 자연스럽게 눈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곡비(曲庇)’라는 단어도 있다. ‘굽을 곡, 덮을 비’로 ‘힘을 다하여 남을 감싸고 보호해줌, 도리를 어기면서 남을 감싸고 보호해 줌’이란 뜻이다. 타동사인 ‘곡비하다’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정성을 다해 감싸고 보호해 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비’라는 두 단어는 맥이 통하는 듯하다. 누군가를 위해 대신 울어준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힘을 다하여 남을 감싸고 보호해주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남을 위해 그의 도리를 다해주는 것이 곡비의 직업의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지나칠까?
눈물 흘릴 일들이 많았던 지난해부터 유독 ‘곡비’라는 단어가 입에서 맴돌았다. 눈물이 슬프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더없이 기쁘거나 즐거워 박수를 치다가도 심지어는 하품을 하다가도 나오는 게 눈물이지만, 그 눈물의 짠 이유조차 모르는데 황망한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맞았기 때문 일게다.
지난 해 4월 16일 이후, 늘 그랬다. 텔레비전을 틀다가도 신문을 보다가도 인터넷 카페에 들렀다가도 이놈의 눈물이 도무지 가뭄 이후 태어난 장마마냥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다. 사돈의 팔촌쯤 따진다 해도 전혀 인연의 끈이 닿지 않을 거 같이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팔이 잘라진다 해도 내 손톱에 박힌 가시만 하겠나. 사람의 아픔과 슬픔이란 그런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 요즘에는 다르다. 하루아침에 생떼 같은 자식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다. 그것도 텔레비전을 통해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모습을 보는데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만 했다. 그저 황망해서 말도 나오지 않고 코미디프로를 보다가 웃음 나오는 것조차 두려웠다. 웃음이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누군가 강제로 시켰거나 어떤 법에 의해 그리 될 수 없는 일이다. 내 안에서의 양심이 그리 해야 된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때부터 난 ‘곡비’가 되고 싶었다.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울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를 지닌 여자 ‘곡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스쳐 지나간 적도 없었을 사람들을 위해 마구 울고 싶었다. ‘곡비’가 울고서 받았던 대가 따위는 필요 없다. 사랑의 대상이 눈앞에서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을 목도하며 울대의 사용기한이 다된 것처럼 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때까지 가슴 저며야했던 사람들을 대신해 ‘곡비(曲庇)’하고 싶다.
그 시절 그녀들이 가슴을 틀어지고 목 놓아 꺼이꺼이 울었던 것처럼, 울고 난 후에 부엌 한 쪽에서 마른 눈물을 훔쳐가며 국밥 한 술 뜨고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면 지금의 세상처럼 답답하게 막혀있던 속이 조금은 풀릴 것 같았다. ‘울어야 사는 여자’ 곡비가 부러운 세상, 밥을 위해 굳이 울지 않아도 되지만 속이 확 뒤집어지도록 울기라도 해야 위안 받는 세상. 지금 ‘곡비’이고 싶은 사람들, 거리를 서성인다.
첫댓글 울면 안된다는 선친의 가르침을 끌어안고 살았네 절대로 절대로 울지 말라는 그 유지를 받들어 살았네 그런데 젠장 다 늦게 왈칵 눈물이 나네 젠장 나는 쉽게 울 수도 없는 다른 세상 사람 같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울 수 있는 권리" 그 권리를 잃은 지 오래되었네 내게 한 시간만 울게 해준다면 일년 내내 술 사드리겠네 젠장 술이나 마셔야겠네 또 술로 울음을 삼켜야하는 것이 한으로 남겠지만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