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촌으로 유학간다
3월 2일. 올해 수곡초등학교 입학식은 말그대로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유치원 17명 입학, 초등학교 19명 입학. 유치원을 포함한 전교생 숫자가 90여명.
유치원 정원 18명에서 1명이 모자란 이유는 입학예정자 중 한 명이 초등학교 조기진학을 결정한 때문이었고, 모자란 1명은 그날로 채워졌다. 그러고도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 학급증설이 승인되지 않아 1개반만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2년 전인가 그 당시 교장선생님께 들은 얘기는 2011년도쯤 지역내 입학생수가 제로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년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유치원도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고 2010년도 많아야 서너 명 수준일 뿐이었다.
수곡초등학교뿐만 아니라 면소재지 아닌 시골지역 학교는 대다수 비슷한 사정인 걸로 안다. 정읍시만 해도 가끔 어느 면은 1년 내내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는데, 신생아가 없으면 그 지역은 몇 년 후 유치원 입학생이 없고 초등학교 입학생이 제로로 갈 수밖에 없고, 그 학교는 자동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학교가 없어지면 그 지역은 문화가 없어지는 것이고 아울러 희망이 사라진다. 학교가 없는 농촌에 귀농자가 오거나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이 살아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얘기가 된다.
수곡초등학교의 늘어난 학생들은 대개는 정읍에서 왔고 일부는 수도권에서 산촌유학(농촌유학)을 왔고 또 일부는 연고가 있든 없든 수곡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온 아이들이다. 학교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녀를 이 학교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서 일어난 일들이고 자율학교가 되어 학군이 확대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주로 저학년과 신입생이 많은 건 되도록 일찍부터 이 학교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직 숫자가 크게 많지는 않지만 농촌유학도 증요한 몫을 담당한다.
농촌유학은 산촌유학이라고도 하는데, 도시의 아이들이 농촌이나 산촌의 작은 학교로 전학 와서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TV와 게임기로만 놀고 학원을 순례하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농촌의 문화를 익히고, 생태적인 생활을 통하여 감성을 기르며, 학생수가 얼마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지역과 학교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게 된다. 우리나라 농촌이나 작은 학교는 아이들이 귀하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주목을 받고 모든 아이들이 고루 사랑을 받는다. 더구나 자연은 모든 아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 되어 햇살같은 사랑을 퍼부어준다.
지금 정부는 정책적으로 작은 학교를 통폐합하고 있지만 그대로 두어도 작은 학교들은 매년 수도 없이 사라져 간다. 지역에서 학교는 참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이기도 하고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는 경로이기도 하고 성장과 진보를 이루어내는 고향이기도 하다. 옛날의 유대인, 지금의 티벳인들도 가는 곳마다 정착촌에서 맨 먼저 동네 가운데 학교를 만들었다. 학교가 사라진 농촌은 오직 생산만 있는 공장일 뿐이다. 도시인들 먹여 살리고 돈을 받기 위해 소를 키우고 개를 키우고 볍씨를 뿌리는 공장 또는 농장. 거기엔 희망도 아름다움도 없을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농촌유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는 한편 일본은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짧지만 우리나라의 농촌유학은 일본과는 또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활성화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전국에서 십여 곳의 농촌유학 실현지들이 있어 작게는 5,6명 많게는 2,30명의 도시아이들이 와 있고, 방학 때는 체험캠프들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농촌유학생들은 농가나 유학센터에 등록을 하고 거주하면서 인근에 있는 작은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대개 1년 단위로 유학을 오고 졸업 때까지 몇 년 있기도 한다.
지금 수곡초등학교 주변에는 농촌유학협의회가 결성되어 세 농가가 농촌유학생을 받고 있고 그 외에도 친지의 자녀를 데려와서 돌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비어가는 농촌에 있는 작은 학교들은 폐교가 되면 그대로 방치되거나 개인 소유로 넘어가 지역과는 관계없이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작은 학교들이 농촌유학의 형태로라도 살아나면, 도시의 메마른 아이들이 1년, 또는 몇 년을 지내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삶을 이해하고 농촌의 문화와 농업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고, 아이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이 또 하나의 고향을 갖게 될 것이다. 도농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의 농촌과 자연을 경험한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길러진 감수성과 정서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작은 학교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비록 크다 하더라도 이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장차 정서가 풍부하고 안정된 감정을 지닌 성인으로 자랄 것을 생각하면 몇 십 년 뒤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을 엄청나게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