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들 사이에 유방암이 무섭게 늘고 있다. 2000년에 발병한 환자는 5401명이었으나 2004년에는 9667명의 유방암 환자가 새로 생겨났다. 한 해 동안 유방암에 걸리는 환자 수가 4년 만에 약 2배 는 것이다. 암 통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유방암의 달’인 10월을 맞아 10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서울시·대한암협회·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핑크 점등식’(유방암 퇴치를 상징하는 색깔인 핑크색 조명을 밝히는 행사)이 열린다.
전 세계 40여 개국 100여 도시에서도 유방암 정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1. 한국 유방암 증가 속도, 세계 평균의 20배
1990년대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던 국내 유방암 발생 건수는 2000년대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왔다. 2002년엔 유방암이 전체 여성 암 발생의 16.8%를 차지하며 1위로 올라섰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유방암 증가율은 매년 0.5%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은 한 해 10%씩 유방암 환자가 늘고 있다. 세계 평균의 20배인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비만 증가 ▲출산 기피 ▲모유 수유 기피 ▲발육과 영양 상태 호전으로 초경은 빨라지고 폐경은 늦어지는 등 유방암에 관여하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한국유방암학회 안세현 암등록사업 위원장(서울아산병원 외과 교수)은 “유방암 세포는 여성호르몬을 먹고 사는데, 최근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바람에 유방암 위험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임신 중에는 여성호르몬이 나오지 않는데, 출산을 하지 않으니 여성호르몬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2. 젊은 여성에게 유방암이 많다
유방암 발병은 폐경이 오는 50대부터 늘기 시작해 60~70대에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에선 유독 40대 이하 유방암 환자가 많다. 40대가 전체 환자의 39%로 최다 연령층이다. 20~30대 유방암 빈도도 전체 유방암의 25%를 차지, 미국에 비해 4배 이상 높다. 유방암학회는 젊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고(高)지방질 위주의 서구식 음식을 더 많이 먹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유방암학회 송병주 정책이사(강남성모병원 외과 교수)는 “젊은 환자는 유방암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 사망률이 30% 이상 높다”며 “젊은 여성도 적극적으로 유방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3. 일반 검진에서 암이 잘 안 보이는 ‘치밀 유방’이 많다
유방은 젖을 만드는 유선 조직과 지방 조직이 섞여 있는데, 한국 등 아시아 여성의 유방은 지방 조직이 적은 대신 유선 조직이 촘촘한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치밀(緻密) 유방이다. 이 경우 엑스레이로 사진을 찍어도(유방촬영술) 유방 전체가 하얗게 보여 암 덩어리를 찾아내기 힘들다. 미국은 치밀 유방이 50% 이하지만 한국은 70~80%를 차지한다. 김미혜 유클리닉 원장(영상의학과 전문의)은 “치밀 유방에 대한 유방촬영술 암 진단율은 60%에 그쳐 유방 초음파 검사가 추가로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4. 가슴에 멍울이 잡힌 뒤에야 병원 찾는다
최근 유방암 진단을 받은 N(46)씨는 어머니와 이모 두 명이 유방암 환자였지만 가슴에 멍울이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진을 미뤘다가 후회하고 있다.
전문의들은 손으로 자신의 유방을 만져 암 덩어리를 찾는 자가검진을 과신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덩어리가 만져지는 1~2㎝ 크기면 조기 발견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996년 현재 한국은 0∼1기에 유방암을 발견한 경우가 23.8%인 반면 미국은 56.2%에 이른다. 유방암 1~2기의 5년 생존율은 90% 선이지만, 4기는 20%대로 뚝 떨어진다. 한세환 상계백병원 외과 교수는 “40세 이후에는 1~2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 유방암 환자의 삶의 질이 무시된다
유방암으로 왼쪽 유방을 잘라낸 K(50)씨는 이를 가리는 브래지어나 보조용품을 구하지 못해 한동안 외출도 못했다. 미국의 경우 웬만한 유방센터에는 보조용품 숍이 딸려 있다. 브래지어 속에 넣을 수 있는 실리콘 보형물, 또 이런 보형물을 감쪽같이 넣을 수 있도록 고안된 수영복과 옷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식 부족으로 보조용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나마 서너 군데 업체가 있지만 용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고 가격도 수십만원대로 비싼 편이다.
인공 보형물을 넣어 가슴을 만들어 주는 유방재건술은 300만~500만원이나 들어 이 수술을 받는 유방암 환자는 1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유방재건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핑크 리본 캠페인
핑크리본 캠페인은 1991년 화장품으로 유명한 미국 에스티로더 그룹에서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여성들의 고통과 희생을 줄이려고 캠페인을 벌인 데서 시작했다. 그룹의 부사장이었던 에블린 로더가 유방암에 걸린 후 유방암 예방과 정복을 위한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치자 1992년부터 뉴욕·런던·파리 등 전 세계 100여 개 도시가 동참하면서 국제적인 운동이 됐다. 상징인 핑크 리본은 에스티로더 그룹에서 가슴을 꼭 죄는 코르셋 대신 실크 손수건 2장을 엮어 만든 핑크 리본으로 가슴을 감싸는 ‘핑크 리본 브라’를 고안한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한국유방건강재단이 설립된 후 민간·기업차원에서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