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추풍령 → 큰재 → 지기재
○ 일시
2007. 6. 2.~6.3(1박2일)
○ 참석자 : 둘둘회 백두대간종주팀10명(부부5팀)
1일째
○ 구 간
추풍령→금산(370m)→작점고개→용문산(710m)→국수봉(763m)→큰재(320m)
○ 거리 : 18.5km
○ 소요시간 : 약 9 시간
* 09:20경 추풍령 산행시작
* 09:35경 금산
* 11:30경 사기점 고개
* 12:30경 작점 고개 도착
* 13:30경 작점 고개 출발
* 14:20경 갈현
* 15:40경 용문산
* 16:00경 국수봉
* 18:00경 큰재 도착
2006년 가을 대간길에 이어 2007년 봄 대간길에 오르기 위해 05:55.서울역을 출발한 새마을호 열차는 08:35분에 김천역에 도착한다 김천역에 도착하니 지기재산장 장사장님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장사장님이 마련해준 봉고에 몸을 싫고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노래비가 서 있는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작년 가을 추풍령 노래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할매갈비집에서 갈비 주안상으로 뒷풀이를 한다음 추풍령노래를 신나게 부르던 기억이 새롭다
추풍령은 소문난 고개치고는 별 볼거리가 없다 해발 210m에 불과한 4번국도 상의 희미한 고개일 뿐이다 흔한 당집이나 당산나무 한 그루도 없는데 마을의 이름만은 예로부터 당마루라 불렀다. 당마루를 둘로 쪼개어 경상도와 충청도가 나뉘었고 당마루 역시 경북의 당마루와 충북의 당마루가 서로 생겨났다. 마을은 하나인데 반쪽은 경상도 김천시요, 반쪽은 충청도영동 군이다.
도계를 두고 한때는 경상도 주막과 충청도 주막이 나란히 있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밤이 아쉬운 경북의 술꾼들이 당마루에 올라와 경상도 주막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정이 되면 통행금지가 없는 충청도 주막으로 건너오곤 했다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다
추풍령은 언제나 구름이 모여들고 바람이 자고가는 고개였다. 조선 시대에는 역과 원으로 이어진 관로(官路)였으며 일제시대에는 경부선을 숨 가쁘게 오가는 증기기관차가 물을 보충하기 위해 어김없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마땅히 역은 번창하고 많은 일본인이 모여 살았던 탓에 마을의 규모 또한 매우 컸다고 한다.
60년도 초 영화 추풍령이 만들어 지면서 추풍령 노래가 유행하여 또 한번 유명한 곳이다 영화 추풍령은 3대째 내려오는 추풍령 토박이 선로수 박춘보(김진규)가 아들에게 만큼은 선로수 직업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아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나중 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철도국의 간부로 임명된다는 훈훈한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09:20 추풍령 노래비를 배경으로 산행 기념촬영을 마치고 길건너 농로를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금산쪽 들머리인 당마루에 올라서서 모텔 담을끼고 당마루 새마을 진입로를 따라 진행하다 작은 농가에 찹살개인 듯 개들이 멍멍거리며 우리를 반긴다 안전하고 즐거운 대간길이 되란다 조금 오르니 대간 표지기들이 울긋불긋 매달려있다
들머리를 올라서니 잡목이 무성하고 햇살이 따갑다 거친 숨을 모라치며 한참 오르니 금산에 도착한다 약 20여분 산행에도 몸이 안풀린 탓인지 무척 힘이든다 이곳 금산은 대간꾼들로 부터 금산이 사라지는 모습이라며 채석장 사진과 산이 반동강 난 모습을 사진으로 인터넷 등에 올리고 있어 유명해진 곳이다
일제 때부터 석재를 파먹기 시작하다 해방 후 중단되었으나 1962년부터 철도 레일에 까는 자갈로 쓰기 위해 계속 헐어낸 탓이다 아마 백두대간 훼손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직접와서 보니 절개지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이고 얼기설기 매어놓은 철망과 그물은 절개면을 감싸고 흉물스럽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펴보니 눌의산의 모습이 보이고 추풍령 마을과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가 내려다보인다
금산의 정상을 뒤로한채 30여분 내려서다 다시 오르니 502봉 정상조금 못미처 여기에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200km라는 표시 패말리 있다 남한의 백두대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종착점인 진부령까지는 640km로 10여km만 더가면 남한구간의 3/1을 통과하는 것이다
502봉을 통과하고 밋밋한 능선길을 계속 진행한다 왼쪽으로 추풍령 저수지가 보이고 봉우리(435봉) 하나를 넘으니 임도가 뚤린 사기점고개에 와닿은다 이 고개 남쪽 김천시 봉산면은 사기점리는 옛날 사기를 구워 팔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사기점고개다. 이 고개 북쪽 너머는 영동군 추풍령면의 작점리다.
사기점고개에서 20~30분쯤 나아가니 난함산(733.4m)으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길을 만나게 된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국통신의 무선통신 중계소다 세멘트길에서 자칫 통신중계소쪽으로 올라가면 난함산 정상 이다 난함산 정상은 백두대간 길이 아니다 길을 따라 곧장 내려가야 작점고개다 뒤따르던 우리 일행도 길이 잘못들었다며 야단이다
우리는 시멘트 포장길 내려오면서 길가에서 오디를 따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항상 후미 대장인 내천도 보이지 않는다 오디를 따먹고 있다 시멘트 포장길을 번갈아 내려오니 인근 신애원농장에서 가져다 놓은 돼지 분뇨냄새가 코를 찌른다 분뇨를 지나 좌측으로 대간길 리본이 보인다 경운기가 달릴 수 있는 농로 입구다 농로를 따라 숲속으로 접어들어 계속 내려오니 고갯마루다 고개마루 아래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으며 공원이 잘조성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절개지를 따라 내려와 길을 건너니 김천시쪽으로 능치쉼터라는 현판을 단 팔각정자에 이른다 이곳이 백두대간 종주 자료에는 대부분 작점고개라 적혀 있다. 고개 너머 서쪽(영동군) 마을인 작점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 같다. 우리가 가지고 간 지도에도 작점고개라고 표시되어 있어 어리둥절하였다 갑자기 능치쉼터라는 팔각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김천쪽에 능치리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그래서 김천시에서 팔각정을 만들어 놓아 능치쉼터라는 현판을 달아놓은 것 같다
능치쉼터는 충북사람들이 고개 너머 경상도 땅에 여덟 마지기 전답에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여덟마지기 고개라하기도 하고 김천사람들은 고갯마루에 성황당이 있었다고 하여 성황데이고개라 칭하는 사람도 있다.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고개다
우리는 능치쉼터(정자)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왔다는 부부가 우리에게 말을 건넌다 시누이가 신애원농장 옆에 있는 정신병원에 있어 면회를 다녀오는 길이라며 자기 부부도 백두대간을 같이 하였으면 좋겠다며 우리를 부려워 한다 다음 인연이 있으면 그렇게 하자며 우리는 죄측편 능선길을 따라 갈현을 향해 대간길을 오르고 있다 능치에서 사부작 사부작 1시간 정도 진행하니 갈현이다
갈현을 출발하여 계속 북으로 발길을 옮기니 움막이하나 나타나는데 아마도 이곳이 지도상에 표기되어있는 기도터 바위인 듯싶다. 움막안에는 찬송가 책이 놓여있고 사람은 없다 기도터 바위에서 계속 진행하니 이번 구간에서 고도가 제일 높은 용문산(710m)이다. 정상은 넓은 헬기장이 만들어져있고 전망도 좋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고 있다 용문산 오른쪽 기슭의 용문산기도원은 우거진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용문산 기도원은 경북김천시 어모면에 위치해 있다 1950년 나운몽 목사가 건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한국기독교 부흥의 원천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50여만평의 넓은 기도원에는 신학교, 신용협동조합, 구판장, 우체국, 대성전, 애향원 등 5개의 촌락, 구국제단, 88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용문산상 표시석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국수봉을 향해 가파른 길을 내려서서 한참 진행하니 이정표가 나온다 용문산 730m 표시와 함께 국수봉0.65km(30분) 용문사 3.6km(1시간30분)라고 안내하고 있다 인제 국수봉은 30여분만가면 된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국수봉이다
국수봉정상에는 넓은 공터에 정상석이 자리를 잡고 있고 시야가 툭 터지면서 경북 상주시 공성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부터는 대간의 좌우가 모두 상주땅이다. 상주시에서 만들어 놓은 정상표시석과 백두대간 안내판 그리고 잘정비하여 놓은 등산로 우리 같은 대간꾼 들에게는 감사할 따름이다 정상 백두대간 안내판에는 백두대간 지도와 함께 국수봉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국수봉의 유래는? 국수봉에 서면 상주의 너른 평야와 백학산. 서산. 기양산. 갑장산. 묘함산. 황악산. 민주지산 등 주변의 산들이 전개 되고 날씨가 좋은날이면 상주. 문경. 김천구간과 소백산까지도 조망된다 국수봉은 웅산(熊山). 용문산(龍文山). 웅이산(熊耳算) 또는 곰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지고 있다. 정상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이고 아울러 낙동. 금강의 분수령이므로 국수(菊水)라고 한 듯 하고 웅신당(일명 용문당)이라는 대가 있어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蓍草)가 난다고 하여 웅이산 이라고 하며, 상주의 젖줄인 남천(이천)의 발원지 이기도 하다.
국수봉에서 기지개산장 장사장에게 전화를 하고 큰재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국수봉에서 작은 봉우리 하나 넘으니 큰재까지는 줄곧 경쾌한 내리막이다. 조금내려오면 작은 봉우리가 나온다 국수봉과 작은봉우리에는 등산로 정비 공사에 헬기장으로 사용하였다는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에는 이곳은 2006년도 백두대간등산로 정비사업에 따른 자재운반에 있어 헬기 이착륙장소임 금년도 입목상태를 관찰한 후 익년도에 적지에 맞는 수종으로 식재를 조성할 계획임이라고
작은봉을 지나자 아기자기한 바위가 어우러진 조망처가 나타난다. 눈앞으로 큰재 위 초등학교 건물의 머리부분이 보인다. 대간의 기슭이 쫙 편 손가락처럼 흘러내린 사이사이로 조그마한 산골마을과 논밭들이 한가롭다.
이번 대간길은 고도가 가장 낮은 길로 싱그러운 숲속길로 연결되어 있어 햇살의 따가움을 느끼지 못하는 편안한 길이다 은방울꽃 둥글레, 은대난초, 산딸기(복분자)가 군락을 이루는곳이 많다 국수봉에서 큰재까지 내리막길은 한결 가벼운 발길은 눈길을 바쁘게 한다. 중간중간 빨안간 산딸기가 미소를 띄우며 목마른 우리들을 반긴다 우리는 산딸기(복분자)군락지를 지날때마다 대간길도 잃어버린채 정신없이 딸기를 따먹고 있다 산딸기가 목마름을 적시워주는 또 다른 상쾌함을 만들어 주고 있다
산딸기에 취해 한참 내려오니 큰재다 멀리 지기재산장 사장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보니 오후 6시다. 큰재에 내려서니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다 교문 옆 교적비에는 1949년11월9일 개교 졸업생 597명을 배출하고 1997년3월1일 폐교 되었다고 쓰여져 있다. 지금은 부산녹색환경연합에서 임대하여 생태학교로 사용하고 있으나 아이들이 모두 떠나 폐교가 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 운동장. 백두대간 위의 유일한 초등학교다. 또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지기재산장에 도착 어느 때와 만찬가지로 상주 돼지고기에 오늘의 뒷풀이가 시작된다 기지개 산장 장사장님의 이야기 백두대간길 이야기 어느새 피로에 젖어 눈이 스스로 잠기는 것을 느끼며 내일 대간길을 향에 취침에 들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