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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라의 왕초
나는 지금까지 5년간을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이면 언제나 사육장 이곳저곳을 들러보는 것이 한결같은 일과의 첫 시작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철망 안으로 꿩이랑 오골계랑 그리고 청둥오리와 참새들에게 모이를 뿌려주고 나서 늦으막이 출근하는 그를 맞이해 왔다. 나는 그 때마다 그를 경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나는 지금도 그를 사장으로 부르지 않고 왕초라고 부르고 싶다. 아니 왕초로 부를 때가 많다. 더러는 사장이란 칭호와 혼용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 그는 공동체「오르라」의 왕초가 아닌 사육장「오르라」를 경영하는 사장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내가 왕초로 불러주는 걸 허용한다. 그의 마음 바탕에는 아직도 과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삶의 밑바닥에 질펀하게 깔린 나눔 공동체의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게다. 그는 사업가라기보다는 나에겐 나눔 공동체의 왕초이다.
나는 왕초의 눈빛을 보면 그가 무얼 원하는 지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수족이 되어 그에게 헌신해왔다. 왕초도 그 동안 최후까지 자기 곁에 남겨 두면서 나를 신뢰하고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나를 내치려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업 운이 있어 지난 5년 동안 돈을 모을 만큼 모은 왕초다. 정말 그는 이쯤에서 나를 내치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는 뜻하는 바가 있어 이곳을 떠나려고 하는 걸까? 왜 왕초는 나에게 그 말을 절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속내를 털어놓지 않으니까 자꾸 그에게 의심이 간다.
이런 의심은 그냥 기우가 아니다. 분명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었다. 헌데 지금은 그의 눈빛이 다르다. 예사롭지 않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의 돈을 모으고 싶다는 눈빛이 아니다. 오히려 나눔 공동체 때 식구들에게 던져주던 다정다감하고 순한 얼굴이다. 헌데 지금 그 이완된 눈빛이 오히려 나를 긴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습의 왕초라면 오르라 사육장의 사장으로는 마땅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그가 갈 길은 사업이 아닌 딴 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가 이 사육장 철망 안에 가두어 두었다가 이 때다 싶으면 음식점에 천둥오리나 참새들을 내다 팔듯이 나도 그 동안 자기 목적대로 붙들어 두었다가 얼마 후에는 그가 나를 내치고 의도한 길로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맞다. 그는 지금 예전에 공동체 ‘나눔의 집’「오르라」에서 우리 식구들을 보살피며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번득이게 하던 그 눈빛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그 때보다는 오히려 순수하면서도 열망에 찬 눈빛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들어 왕초는 하늘을 바라볼 때가 많다. 가로등, 네온싸인, 교회의 첨탑의 명멸하는 불빛이 어울어진 도시의 휘황찬란한 야경에 가려 이미 오래 전에 퇴색한 별빛을 지금 왕초는 애써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럴수록 나는 그가 하늘을 바라보는 진짜 이유를 더 확실히 알고 싶다. 그는, 그동안 사육장에 매달리면서부터는 돈을 모으려는 욕심을 부리느라 하늘을 향해 이렇게 갈망하는 눈빛을 쏘지는 않았었다. 식구들을 하나하나 독립시키고 나서 마지막 남은 나와 함께 벌써 5년을, 그는 꿩이랑 칠면조 거기다가 참새와 청둥오리까지를 사육해 팔아서 돈을 모으는 재미에만 골똘했었다.
나는 왕초가 이 도시의 끝인 변두리에서 나눔 공동체를 해체하고,「오르라」건물을 개조한 사육장에서 가금류를 키우기 시작할 때, 부푼 기대로 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었다. 그에게 다른 면이 있다는 걸 발견했고, 또 이 사업은 내 기질하고도 맞았다. 우선은 나를 끝까지 자기 곁에 붙잡아 준 것이 고마웠고, 새로운 사업에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신이 났었다.
그러나 그가 제날대로 번식하는 텃새인 참새까지를 일부러 붙잡아 들이겠다는 발상을 할 때, 난 조금은 황당했었다. 만남 공동체에서 왕초로 살 때의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처음에는 참새까지를 사육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왕초가 어느 날 인가부터 오르라 사육장 철망 안으로 날아 들어와 사료를 훔쳐 먹는 참새를 가두기 시작했다. 당연히 참새는 부화시킬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사육장 주변에는 참새가 억수로 많았다. 사육장 안으로 들어오는 놈을 포획하기만 된다. 그 참새를 따로 골라내어 별 동에 부설한 사육장에 넣고 모이를 주면 된다.
참새는 하루에도 몇 마리 씩 잘도 들어온다. 어느 날에는 신통하게도 십여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 올 때도 있다. 참새는 모이를 찾아 사육장 철망 꼭대기 벌어진 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끝이다. 용머리 탑이 길게 자리해 뻗어 오른 상단부는 성기지만 그 이하부터는 철망이 촘촘하다.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가 아주 힘들다. 왕초나 나는 그렇게 힘도 들이지 않고 참새를 포획할 수 있었다.
거기다 대장에게 운을 터준 것은 생각보다 이 도시에서는 가난한 시절에 즐겼다던 참새구이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살아났다는 점이다. 그만큼 참새의 수요가 많아진 셈이다. 그러니 사업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즉 밤마다 이 도시에는 참새를 즐기는 이들이 도미노 현상을 일구어낸다.
더구나 깊은 가을이 되면서부터, 일몰이 빨라져 일찍 어둠이 내리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 도시의 밤은 훨씬 찬란해진다. 날씨까지 쌀랑해 지면 더욱 참새 수요는 많아지게 마련이다. 연인이랑 둘이서 그리고 친구랑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참새구이집을 찾는다. 그 때부터 왕초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 참새구이를 즐기는 이들은 이 도시의 술꾼들이었지만, 수지를 맞출 수 있는 것은 왕초였다.
나는 처음 참새를 잡아들일 그 때만 해도 조금은 왕초에 대해 불만스러운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집을 뛰쳐나와 세상을 비아냥대며 살다가 왕초의「오르라」를 알고부터 그의 식구가 된 나였지만 나눔 공동체를 청산하는 마당에 꿩이랑 칠면조 사육을 하면 되었지, 가엾은 참새까지를 포획하려는 그가 마음에 들진 않았었다. 참새, 이건 순전히 왕초의 불로소득이다. 이러한 불로 소득으로 애써 돈을 벌겠다고 삶의 방식을 전환한 왕초의 사고방식은, 나를 설득할 수 있는 기발한 착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난 내 마음을 그에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에게 저항하는 내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비친다는 것은 나에 대한 그의 신뢰를 저버리는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동안 늘 그에게 순종하며 살아왔다. 그의 가족 구성원이 되면서부터 그것을 나는 나의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왕초와 지금처럼 언로가 통하지도 않았었지만, 애당초부터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나는 지금도 경외하는 눈빛으로 왕초를 바라본다. 다행이도 지금 왕초의 눈빛은 예리하지 않다. 왕초의 본 모습 그대로이다. 퍼득이는 참새의 날개를 쥐어 잡으며, 어린 시절 치기가 가득한 웃음을 흘리며 파안했다던 그의 유년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일거라고 나는 예상해본다.
그러면서 나는 왕초가 돈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 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그건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내내 궁금했던 사항이다. 왕초는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번 돈의 용도를 내게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돈을 헤프게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금고는 벙어리저금통처럼 꽉 닫혀버렸다. 나는 그의 사업 총책이라 누구보다 그에 대해서는 잘 안다. 그런데도 끝내 그 말만은 아끼고 있었다.
며칠 전 왕초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문득 결의에 찬 시선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 거는 아닐까 하면서 긴장했었다. 그랬었는데 왕초는 일어나 자판기의 커피를 한 잔 뽑아들면서 어느 새 그 결의에 찼던 시선을 순간적으로 누그러뜨렸다. 오히려 왕초의 입가에서 잔잔한 미소가 일었다. 의외였다. 나에게 불안을 떨어버리라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미소가 얼굴 전체로 번졌었다. 나도 그 미소를 받아들이면서 살며시 웃었다. 그쯤 하면 왕초가 나를 포용하려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믿어도 되었다.
오늘도 점심을 마친 왕초는, 커피를 한 잔 뽑아들며 나를 향해 먼저 웃음을 띠운다. 좀 풀어진 모습이다. 나도 그를 따라서 웃는다. 이럴 때는 왕초의 얼굴을 경외하는 눈빛이 아닌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그의 입을 주목한다. 요즈음 들어 나는 그의 입을 주시하면서 계속 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역시 나는 왕초의 영향력 안에 들어있는 아기 참새에 불과했다.
아, 그런데 갑자기, 아니 돌연이 라고 해야 옳다. 왕초의 눈에서 서기가 인다. 불꽃이 인다. 나는 다시 긴장한다. 어떤 중대 발언을 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지금까지는 그의 미소 속에 어떤 복선이 깔려 있으려니 생각하진 않았었다. 섬뜩해진다. 그는 정말 나를 내치려는 걸까?
나는 대장의 주위를,「오르라」시절 나눔 공동체의 왕초 시절 말고도 지금 이 순간까지 맴돌면서 구축해 놓은 그 성을, 누가 넘보려니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왕초 또한 자신이 설계해 만든 ‘조류 공화국’의 일부를 카스테라 빵 조각을 떼어내어 주듯이 누구에게 나누어주면서 허물 거로 예측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왕초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또 진솔하다. 맛깔스럽지는 않은 사람이지만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믿었기에 나는 경애하는 주인님으로 모시면서 순종해왔다.
아, 그런데 때를 맞추어 바람이 인다. 퍽 다행이다. 바람이 나의 긴장감을 이완시킨다. 잠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이렇게 긴장하고 있을 때, 바람이 불어 준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그 바람이 비록 미풍은 아니지만 말이다. 옷깃을 파고드는 기류가 팍 느껴진다. 참새들도 움직이는 기류를 인지하기 시작했는지 짹짹거린다. 수 백 마리 아니, 어쩜 지금 기 천 마리는 될 성싶은 참새들이 깃털을 날리며 짹짹거리기 시작한다. 자기들끼리 만나 알을 깨고, 그래서 방금 부화해 나온 새끼부터 아직까지 운 좋게 참새구이집으로 가지 않은 어미 참새들이 함께 짹짹거린다. 꿩이랑 오골계, 칠면조보다 포르르 포르르 나는 참새들의 날개 짓이 하늘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하늘이 다 가려진 것은 아니다. 날개 틈으로, 비좁은 참새들의 날개 틈으로 쪽빛 하늘이 다가든다. 하늘의 색깔이 분명해지는 걸 보면 역시 가을로 접어드나 보다. 나는 그들 참새에게 모이를 주고 싶어진다. 맞다. 저들도 점심을 먹어야 한다. 마실 물도 문득 따라주고 싶다. 나는 벌떡 일어난다. 사육장 쪽으로 간다. 참새들이, 나를 향해 날아든다. 참새들은 안다. 내가 그들의 생육권을 쥐고 있음을 안다. 참새들은 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나 보다. 그들에게는 내가 모이로 보이나 보다. 그러니까 저렇게들 나를 반기지. 나는 참새들에게 모이를 뿌려준다. 참새들이 정신없이 모이를 쪼아 먹는다.
나는 아예 왕초에게서 완전히 몸을 등진 채로 바람을 마주 안고 서서는 모이를 쪼는 참새들을 향해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진다. 나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때 뜻밖에도 왕초가 따라와 내 등 뒤에 다가와 선다. 왕초가 등 뒤에 와 있으니 다시 긴장된다. 왕초는 내게 무슨 선언을 하려고 자꾸 내게 다가서는 것일까? 오늘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다시 바람이 인다. 칠면조의 깃털이 날리듯이 나의 머리칼이 잘게 흔들린다. 대장의 긴 머리칼도 바람에 흩날릴 것이 분명하다. 그 바람은 시원하다기보다 쌀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바람 때문에 잠시 마음이 누그러들려고 한다. 그렇다. 순전히 바람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등 뒤에 서 있는 왕초를 의식하면서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맨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나는 이 바람을 거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한 일이다. 그 동안은 왕초에게 순응했듯이 나는 부는 바람에 거슬리려 하지 않았다. 나는 늘 왕초를 향해 미소를 흘렸다. 그러면서 왕초에게 포용 당한 채로 안주하려 했다. 그가 식구들을 다 내보내고 나를 자기 곁에 잡아 둔 데 대한 신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왕초가 나를 내친다는 상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영목이를 이 사육장으로 데려오려고 하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에게 대항하려 한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내치려고 한다면 지금부터는 다르다.
그 동안은 나는 정말 와초를 도와 꿩이랑 오골계 그리고 칠면조를 열심히 길러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참새를 새 중에 새라고 믿게까지 되었다. 처음에 대장이 참새를 포획하여 사육하려했을 때만 해도 정말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참새에 대한 대장의 유년 시절 추억은 여전히 각별했다. 유년 시절 참새구이를 먹어댔다던 왕초의 가난한 추억이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자꾸 가엾은 참새를 속박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래서 의사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참새는 왕초 그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는 새였다.
“김 상무, 참새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어?”
그는 내게 상무라는 직함을 5년 전에 주었다. 명함도 한 다발 찍어다 주었었다. 처음에는 그 명함이 아주 낯설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
“아뇨.”
나는 그의 앞에서 상무가 되어 대답했다. 왕초인 그 앞에서 나는 성실한 그리고 능력 있는 상무가 되어 사육 업무의 기획부터 판로에 이르기까지 전천후로 뛰어왔다.
“정말 참새고기의 고소한 맛을 몰라? 이 참새들을 가난했던 시절 그 고객 의 입맛에 맞추면 틀림없이 돈이 된 대두.”
“…….”
왕초는 참새를 포획하기 시작할 무렵에 내게 몇 번이나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후, 그가 참새를 잡아들였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그 참새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참새는 그냥 참새일 뿐 참새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참새에게 애정이 느껴졌다. 참새고기를 먹어본 왕초가 간직하고 있는 유년의 추억일 뿐이라고 단정 짓기로 했다. 왕초의 유년으로 흐르는 강 속에는 참새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그득하다. 질펀하다. 왕초의 막내 삼촌이 처마 밑에서 잡아주던 참새였다.
“막내 삼촌은 나에게, 배고프고 외로워하는 나에게 언제나 참새구이를 해 주었지. 몸통 살은 그대로 한 입이었어. 다리 살은 반입이고, 다리가 둘이니 합해서 한 입이었지. 한 마리를 다 먹어도 간이 차지 않는단 말이야. 늘 입 만 놀랬지. 그래서 난 삼촌에게 졸라대며 참새를 있는 대로 다 구어 먹었지 만. 그래도 언제나 갈증이 왔거든.”
왕초는 그렇게 가끔은 까마득한 기억을 불러들이며 상무라는 직함을 준 나에게 자신의 가난한 유년을 추억하고 싶어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마침내 결정적인 선언을 하려고 한다. 아, 마침내 그의 선언은 내 피부를 찌르며,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올 것이 왔다. 긴장감이 감돌던 그 예리한 눈빛이 강력한 말 폭탄으로 바뀌면서 바로 지금 내 귀에 꽂히고 있다.
“김 상무, 며칠 후면 영묵이가 이 사육장으로 온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예? 영묵이가요?”
그럴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나는 놀란다. 역시 내 의심이 사실로 확정되어지는 순간이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왕초의 그 말은 왕초에 대한 믿음을 허물어뜨리게 하고 있었다. 자기 수하라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렇게 의사 결정이 끝난 후에 일방적으로 통고할 수는 없다. 황당하다. 정말 속이 상하다. 그렇다. 나는 그 동안 그의 확실한 수하라고 믿었었고, 참새 사육은 거의가 내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게 한 마디도 의논하지 않았다면 이건 확실히 나를 경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소외시킨 것이다. 한참 잘못된 거였다. 꿩이랑 오골계를 포함한 참새의 사육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있고 경리를 보는 미순이도 있다. 왕초랑 넷이 하면 먹이를 주는 것도, 참새구이집에 배달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렵지 않다 보다는 손에 익었다고 해야 맞다. 정히 필요하면 그 때마다 잠시잠시 놉을 얻으면 된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도 굳이 참새구이집을 차려 독립해 나간 영묵이를 불러들인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위치가 취약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겉으로 태연해야 한다. 마음의 흔들림을,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감춘다. 그래야 내 입지가 좁아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영묵이가 내 일자리를 넘보는 경쟁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미 왕초는 영묵이가 참새구이집 금순이 그녀와 눈이 맞은 것을 확인 한 후에 마침내 독립을 시켰다. 영묵이는 왕초라는 백그라운드가 있다. 또 참새를 무한정 대 줄 수 있는 오르라 사육장이 있어 지금 탄탄대로였다.
그 대신에 나 역시도 오르라 사육장을 총괄하는 차석으로서 위치가 탄탄하다. 꿩이랑 오골계 그리고 칠면조와 청둥오리, 더구나 하루에 들어오는 참새가 거의 한정되어 있고, 팔려나가는 거래도 거의 일정했다. 영묵이를 불러들일 필요는 없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참새구이집에서 일하는 영묵이를 잘 알고 있다. 영묵이는 왕초의 휘하에 있을 때도 평소 잔꾀를 더러 부렸었다. 그렇다면 강직하고 늘 신념에 차 있는 왕초의 머리로 오르라 사육장을 영묵이에게 맡기려고 한다기보다는, 영목이가 스스로 굴러들어 오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나나 영목이는 한 때 왕초를 꼰대로 모시고 똘마니 노릇을 한 적이 있다. 그라고 해서 이리로 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지금 그는 그의 일터인 참새구이집이 있고, 또 금순이가 있다.
그에 비해 나는 나대로 오르라 사육장이 일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영묵이가 내 몫을 빼앗으려고 이 사육장으로 온다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왕초는 사육장 사업을 확장한다는 거일 테지만 나를 밀고 들어오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영묵이가 이 오르라 사육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소원인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영목이는 포장마차 참새구이집에서 일에 시달리며 조금은 금순이에게도 불만이 있는 것으로도 해석해야 한다. 참새구이집은 밤 열시나 되어야 손님이 모여든다. 그리고 새벽 세 시나 네 시까지 고스란히 밤을 지새워야 한다. 그에 비해 내가 일하는 이곳은 밤일이 없다. 밤에는 새들도 잠을 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약삭빠른 영목일 거라고도 유추해 본다.
“왕초, 영묵이가 없어도 참새를 기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거든요. 꿩이나 칠면조까지 아니 참새랑 청둥오리까지도 미순이랑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잘 돌보잖아요?”
나는 왕초의 통고를 받은 후, 한참을 참담해진 심정을 가다듬고 있다가 어렵게 한 마디를 했다. 벼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왕초는 아주 냉소적이었다.
“그건 알지. 김상무의 능력이 대단하지. 그러나 나는 참새를 좀더 길러야 하거든. 꿩과 오골계도 대폭 늘릴 참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참 새구이집은 물론 오리사냥 체인점과도 다 터야 하거든. 그뿐만 아니라 꿩 샤브샤브가 요즈음 인기가 대단하니 그들과도 다 터야지.”
“그들과 다 터요?”
“그래, 거래를 터야지.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는 자금원이 확보되는 거야. 확실한 자금원이 있어야 해. 그러려면 영묵이를 데려와야 하겠어. 우리 사 업을 확장해야 하니까. 그보다도 나는…….”
역시 내가 예측한 대로였다. 그러나 왕초가 말끝을 흐리는 바람에 나는 그의 속내까지를 다 짚어낼 수는 없었다. 왕초의 그 말에 실망만 했다. 그러면서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왕초의 마음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 왕초의 마음이 정해져 있다. 이 상황에서 왕초의 뜻을 반전시키려면 난 남다른 용기를 내야 한다. 반란을 꾀해야 한다. 그래야 참새구이집 금순이도 보호하고 나 스스로도 보호할 수 있다.
나는 이틀 전에 이미 영묵이를 찾아갔었다. 밤 12시경이었다. 참새랑 오골계를 배달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나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초저녁에 다 할 일을 일부러 자정 시각으로 정했다. 영묵이와 담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 영목이는 불을 지피고 있었다. 포장마차 안에는 네 팀이 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영묵이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그냥 일에 열중했다.
물론 자기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고, 참새 배달왔겠거니 하고 태연한 척했지만, 지은 죄가 있어 애써 태연해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나는 그가 미웠다. 나는 참새구이집 안주인 금순이에게 참새와 오골계를 인계한 후에 영묵이에게 다가갔다. 그런데도 영묵이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불을 피우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영묵이 말여, 나는 네게 할 말이 있는 걸”
“할말?”
“그려.”
나는 영묵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그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그러자 영묵이는 힐끔 나를 바라보며 볼멘소리로 되물었다. 관심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 한 밤에 일부러 참새를 가지고 온 거여? 오늘은 오 골계도 가져왔구먼. ”
영묵이는 여전히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내가 찾아온 이유를 빤히 알면서도 일손을 놓지 않았다. 그게 화가 났다. 하지만 나는 참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를 곧추세웠다. 그래야 정작 내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와 이야길 할 수 있겠어? ”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그에게 저자세로 다가들었다. 영묵이에게 사육장 일을 내주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엿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영묵이는 여전히 냉담했다.
“말하지 않아도 네가 찾아온 이유는 내가 잘 알고 있지.”
“그래? 알고 있었구먼. 그렇다면 나는 네가 굳이 오르라 사육장으로 온다는 이유를 알고 싶구먼.”
나는 굳이 우회적인 수법으로 주변을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단칼로 베듯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영묵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뱉었다.
“넌 여길 잘못 왔는데……?”
“……?”
난 영묵이의 말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왕초와 어떤 말도 나눈 적이 없거든. 그래, 그러니까 왕초에게 날 그 곳으로 불러 달라고 말한 적이 없단 말이야. 너 말이야. 왕초와 늘 붙어사는 네놈이 왕초의 뜻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너 같이 가방 끈이 길어 세상 볼 줄 안다는 놈이 아직도 그걸 눈치채지 못해? 오히려 나는 내가 호출 당하는 이유를 네게 물어볼 참이었어”
“그랬어? 호출을 당해?”
나는 영묵이의 말에 벼랑에서 떨어지는 듯한 낭패감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잔꾀를 잘 부리고 술수에 능한 영묵이었지만 허튼 소리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진지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함께 있으면서 왕초의 뜻을 눈치 못 챈건 네 잘못이지. 그러고도 나를 찾 아 오다니……. 음, 내 생각으로는 말야. 내가 왕초에게 가고 싶다기보다는 왕 초가 날 필요로 하는 거야. 그게 왕초의 뜻일 거야.”
영묵이는 전혀 예상 밖의 말을 했다. 나는 다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 말은 나에게 공감을 주었다. 영묵이는 그 특유의 치기가 느껴지는 백치미를 동반한 미소까지를 내게 던졌다. 그러면서 팔소매로 콧등을 쓱 훔쳤다. 그리고는 내 손을 덥썩 잡았다. 그의 팔소매에는 비릿한 참새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나는 문득 그와 한솥밥을 먹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영묵이 그의 이중성에 대해 오해를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시 우리가 약속의 땅으로 모인다는 거야? 그럼 땅벌도, 옵빠시도 그리고 찐빵도……?”
“몰라. 그러나 우리가 그의 수하에 다시 모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잖아.”
영묵이가 오히려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독립할 때 왕초는 다시 모이자고 한 적은 없었다. 다 제각기 흩어지지만 이제부터는 잘 살아보자고 했을 뿐이다. 그랬다. 그 당시 대장의 수하에 있던 졸개들 중에 나는 대장의 일급 참모였다. 당시 오르라 식구 모두가 인정한 바다. 영목이 말대로라면 내가 왕초의 식구 중에 가방 끈이 제일 길었다. 어쩜 왕초를 포함해 부모 중 적어도 하나는 결손 상태의 빈곤한 프롤레타리아였고, 나만 양부모가 생존해 있는 그리고 조금은 넉넉한 부르좌지였다.
그런데도 난 여기 참새구이집에 오기까지 단순하게 영목이가 나를 몰아내려는 음모를 제거해야 하겠다는 외골수에 빠져 있었다. 그러노라 나는 왕초의 속뜻을 눈치를 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은 아둔한 내가 1급 참모가 아니고 영묵이가 대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영묵이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아찔했다. 그랬다. 대장은 옛날의 꼰대가 되어 수하를 두고 싶은 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무얼까? 다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풀어주고, 이제 5년 만에 다시 모이게 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영묵이는 벌써 눈치를 챘다는 말이 된다. 나는 그 길로 급히 서둘러 사육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왕초를 찾았다. 영묵이에게는 더 이상 할말이 없었고, 대신에 영목이 말의 진의를 왕초에게 확인해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초는 없었다. 나는 그 후로 오늘 아침까지 왕초를 만 하루 동안 만나지 못했다.
갑자기 바람이 뚝 멎는다. 모이를 쪼던 조류들도 포만감을 느껴서인지 조용하다. 거위도 꿱꿱거리지 않고, 참새도 짹짹거리지 않는다. 나의 기분에 맞추듯이 사육장은 적막이 흐르고 있다. 바로 그 때 내 등 뒤에 서 있던 왕초가 더 이상 아무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부속 사무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고 있다. 그는 들어가자마자 습관처럼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내어 마신다. 나도 목이 타는 걸 느끼며, 그의 뒤를 따 허둥지둥 부속사 안으로 들어선다.
“내게 무슨 할 말이 더 있는 거여?”
왕초는 눈을 껌벅이면서 나를 응시한다. 얼굴이 평안하다. 그 평안한 모습으로 대장은 커피를 다시 한 잔 뽑아들더니 내게 권한다. 왕초의 평안한 얼굴은 나를 안정시킨다. 다행이다.
“왕초, 왕초의 확실한 속뜻을 말해 주시요”
나는 커피 잔을 받아들면서 볼멘소리로 대꾸한다. 함께 있는 나에게 어떤 지시도 아니, 작은 암시도 없이 독립시킨 수하들을 불러들인다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납득되지 않았다.
“속뜻?”
“그래요. 왕초는 제 살림 차려 나간 영목이를 왜 다시 불러들이는 거요?”
나는 여전히 입이 부는 채로 왕초에게 불만을 토했다 그러자 왕초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왕초는 무겁게 입을 연다.
“김상무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예……? 때요?”
“그래. 난 말이야 지금까지 이 순간을 기다려 왔어. 지금이 바로 그 때야.”
“……?”
나는 왕초의 말에 어리둥절해야 했다. 그러나 왕초는 내가 놀라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무심코 커피만 마시고 있다. 나는 그런 그를 머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시선을 떨궈냈다. 대장에 신뢰를 잃은 것 같아 난 많이 화가 났다. 영목이를 만날 때만 해도 나는 거센 항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왕초의 진의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자책감 때문에 나는 조금은 기가 죽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건 내게 탓할 것은 아니다. 왕초가 지금까지 속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모여 살 때가 되었다는 말이지.”
“때가 오다니요? 애써 독립을 시키고는 다시 모인다는 말씀이에요? 그럼 영묵이의 말이 현실이 되는 거예요?”
“아니야. 너희들과 모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과 다시 모 인다고 말하는 거지.”
“우리가 아니고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다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대장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왕초가 지금 불쑥 내뱉은 그 말의 의미를 짚어보아야 한다. 왕초와 함께 한 세월에 갑자기 이질감이 생긴다. 그런데도 왕초는 여전히 나에게 무얼 말하고 싶은지를 직설적으로 내뱉지 않는 것이다.
“김상무는 어린 시절 망망한 밤하늘에 뜬 별을 바라 본적이 없지?”
“예? 예……. 그래요. 나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별에 대한 추억이 없어요. 가로등에 별빛이 다 가려버렸거든요. 그보다도 난…….”
나는 그제서야 대장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의 질문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주저거리며 대답했다.
“맞아. 외롭게 아니, 서럽게 울면서 별을 바라보며 유년을 보내지 않은 사람 은 나와 공감대를 세워 이야기할 수가 없지. 고독이 무엇인지 정말 가슴이 아 프고 쓰린 게 뭔지 모를 테니까. 지금도 우리들의 어린 시절과는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유년을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 가엾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김상무는 아나? 것도 가난 속에서?”
“……?”
왕초는 혼자 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말을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라고 주위에 간헐적으로 가정이 붕괴되고, 이웃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다시 5년 전 나눔 공동체의 왕초로 돌아가 그들을 찾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떠난다.”
“그들에게로요?”
이제는 정말 왕초의 행동과 말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왕초가 가면 나도 가야 한다. 나는 왕초와 바늘과 실이고, 빛과 그림자이다. 왕초가 나만을 놔두고 떠난다는 것은 형벌이다. 나 역시 혼자 남을 없다. 그런 상념에 젖어 있는 내게 왕초가 대답한다.
“그래. 나는 별을 찾아 떠나야지. 아니, 별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찾아 떠나는 거라고 말해야 될까?”
왕초는 아주 담담하다. 그리고는 얼마 전부터 생긴 버릇이지만 그는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아주 엄숙하게 응시한다.
“그럼, 왕초는 유년의 별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찾아 이곳을 아주 떠나는 거 요?”
“아녀. 아주 떠나는 거는 아니야. 그들이 마음을 놓고 유년 시절에 별을 바라 볼 수 있는 한가하고도 청정한 지역으로 갈 때가 되었단 말이지. 이제 자주 이 곳을 비울 수밖에 없으니 내 자리를 김 상무가 영묵이와 함께 지켜주어야하겠 어. 세상이 잘 살게 된 것 같지만 우리의 손이 필요한 이들이 많아. 지금 이렇 게 내가 떠날 수 있는 것은 김상무가 열심히 일해 준 덕이지만…….”
“…….”
왕초는 아주 침착했다. 나는 말을 잃었다. 그는 나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의 손이 따뜻했다.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도 재원이 필요하다더니……. 이제 왕초는 자금이 다 마련되었다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놓고 소외된 이들에게 별을 헤아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건지 나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왕초를 조용히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러워요. 어제도 거길 다녀 온 거요?”
“그래. 맞아. 하지만 이건 벌써 5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거였어. 김상무, 아니 지금부터는 김사장이라고 불러야 하겠구먼. 구체화되지 않아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야. 내가 이곳에서 너무 오래 머물고 있었어. 이제 이곳은 내가 없어도 김상무가 사장이 되어 영묵이의 도움을 받으면 잘 꾸려나갈 거야 그래야 앞으 로도 내가 손을 벌리면 또 날 도울 수 있지. 김사장, 이 세상에는 나를 필요 로 하는 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 아닌감.”
나는 왕초의 말을 들으면서 침묵에 빠진다. 왕초는 5년간의 준비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난 갑자기인 셈이다.
“왕초, 왕초가 그들에게 유년의 별을 바라보게 할 곳이 어딘가요?”
“아, 그 곳은 막내 삼촌이 사시는 곳이지. 그 곳에서 얼마 전부터 만남공동체 가 결성되고 있는 중이었어. 그래서 어저께도 잠깐 다녀온 거고…….”
“그럼 나도 이 곳 일은 영묵이에게 맡기고 왕초를 따라가고 싶어요.”
그건 나의 진심이었다.
“아냐. 김사장, 자네는 이 일이 적성에 맞아. 나만 가도 되어. 그 곳에서는 날 도울 사람이 따로 있기도 하고……. 어떻든 그곳에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 아. 우리가 각자 독립하던 5년 전과는 또 다른 색깔과 의미를 담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거든. 그러니 김사장은 여기 남아 꿩이랑 칠면조를 그리고 참새를 사 육하게나.”
왕초는 졸라대는 나를 애써 설득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실랑이를 하고 있는 사이에 머얼리 동쪽 산마루에 삐죽이 해님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해님이 가을이 오는 걸 알리겠다는 듯이 빗살무늬 모양의 흰 구름덩이를 온통 붉은 기운이 돋게 물들이고 있었다.♧
첫댓글 소설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오늘은 카페지기님의 소설 '오르라의 왕초'를 다시 읽고 갑니다.
많은 느낌을 가지고 갑니다.
방금 소설을 읽고 나가셨군요. 감사합니다. 졸고를 읽어주셔서^^^^^^^^^.
카페지기님의 소설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문운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