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師)이라고 하는 말이 15세기에는 무(巫), 스승(師), 화상(禾尙)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신라의 화랑도 그 기원은 무(巫)였다고 하겠다.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1527)에는 화랑의 격이 있는데 단시에 박수가 화랑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2대 남해 차차웅의 차차웅(次次雄)은 무(巫)의 뜻으로 무는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므로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서 임금이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남해왕의 아버지가 신라의 시조가 되는데 역시 박혁거세도 무(巫)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단군왕검도 당시 고조선의 제를 지내던 제사장 무속인 이였다..
조선시대 유교는 이중인격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것은 샤머니즘임에도 불구하고 그 샤머니즘의 모태인 무속만을 멸시했다.
무속이란 조선시대 전까지만 해도 스승을 말하는 순례자 인도자 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유교를 거치면서 고상하고 계급문화의 극치를 달리며 박해받고 천한것으로 비쳐지기 시작하며 우리나라의 운도 신을 숭상하던 찬란한 민족에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민족이 되버리고만다.
신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던 한민족은 결국 우리의 민족의 정신을 죽였고 신도 함께 죽어갔다..
결국은 일본에게 침략당하며 국치의 수모를 격게 된다.
잃어버린 우리의 정신을 다시 찾아서 가야 할것이다..
-김용철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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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
도암 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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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0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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