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나레이션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기억하는 대사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 나레이션이 나오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살면서 숱하게 꾸었던 꿈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게 눈물을 흘릴 만큼 슬픈 꿈은 무엇이었나.
무서운 꿈도, 슬픈 꿈도 아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한 꿈.
그런 꿈을 꾼 경험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꿈 속에서는 모르겠지만, 분명 깨고나면 허망할 것 같다.
어쩌면 강인한 주인공이 슬피 눈물을 흘릴만큼 슬플 지도 모르겠다.
꿈 속에서라도 이루고픈,
그렇게 절절한 바람.
하지만 이룰 수 없는 연기처럼. 바람같은 사라지는 꿈.
그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나.
우리 교육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암울하기만한 우리네 학교이야기 같다.
아이도, 부모도, 그리고 선생님도 행복하지 않은 교육.
거창한 구호로 행복과 혁신, 미래를 외치면서도
정작 경쟁과 성적, 불신으로 물들어버린 골칫덩이가 되어버린 교육과 학교.
사랑과 배려의 교실에서 달콤한 이야기와 배움이 넘쳐야 할 교육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폭탄 돌리기가 되어 째깍째깍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희망이 절망이 되었고, 꿈이 악몽으로 변했다.
웃음은 눈물이 되었다.
맞잡아야 할 손은 상대를 향해 날카롭게 갈린 칼날이 되었고,
친구를 향한 관심의 눈은 감시와 약점을 찾는 레이더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꾸는 교육의 꿈은 이미 달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사는 달콤한 꿈을 꾸어야 한다.
꿈에서 깨어서도 꿈 속에서 꾸었던 것을 이루기 위해 슬피 울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흘릴 눈물이 비록 지금은 슬플지 몰라도 기쁨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그런 눈물을 닦아주지 않더라도 선생님은 옷깃으로 눈물을 훔치며 나아가야 한다.
말하기 힘들지만,
교육 개혁은 사실 선생님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프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꿈을 생생하게 그려 나가야 한다.
눈물을 머금고, 아니 슬피 울면서 변해야 한다.
피눈물이 나더라도 우리는 그런 꿈을 꾸고 이루어야 한다.
아니면 누가 한단 말인가.
그들의 말처럼 이루지 못할 꿈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냥 눈물만 흘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했다고 그렇게 자위할 것인가.
힘들게 통과한, 앞으로 통과할 임용의 관문.
왜 교사가 되고 싶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달콤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기에 이젠 눈물을 거둘 수 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꿈이었습니다.
나는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