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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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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개론,심층고찰 스크랩 禪佛敎 공부 10
원명 원적 추천 0 조회 93 18.10.02 14: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禪佛敎 공부 10


山中日月 산중의 해와 달

 

산중일월한래왕山中日月閑來往 산중의 해와 달은 한가로이 오가고

동구연하자고금洞口煙霞自古今 동구의 저녁연기 예나 다름없고나.

 

호북성의 성시 와집진 방거촌龐居村 龐居士 동굴(龐居洞). 

中國의 유마거사’ ‘범부부처凡夫佛陀라 불리는 中國 禪佛敎 最高의 재가在家 禪師龐溫居士(740-808)現住所.

 

내 집은 오래 전 산 속에 자리 잡아 일찍이 이미 성안을 떠난 고장

엉성한 초가삼간이 고작이고 한 칸 길이는 열 두자 안팎

자식한테 물려줄 것도 없고 텅 비고 텅 비어 앉을 자리도 없느니

집안을 둘러봐도 그저 텅 비었을 뿐 공하고 공하니 돈이 있을 리 없다

해가 뜨면 속을 거닐고 해가 지면 속에 눕는다.

 

나는 보잘것없는 촌 늙은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자

집안엔 아무것도 없고

입을 열면 공공空空을 설한다.

 

龐居洞 柱聯의 글귀를 대하는 순간 떠오른 龐溫居士偈頌이다

龐居士는 적빈赤貧無所有와 일체개공一切皆空對比시키면서 대도자연大道自然 속에 沈潛唯唯自足하는 自畵像을 노래하고 있다.


오늘의 龐居洞 柱聯 72도 이와 같은 龐居士의 한 물건도 없는 絶對가난과 텅 빈 속에서 自適하는 絶對自由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글귀로서 손색遜色이 없다.


龐居師 家族生計手段은 주로 婦人과 딸이 조리, 대바구니 등을 만들어 市場에 내다 팔았던 것으로 記錄돼있다. 그리고 아들은 農事를 짓고


어쨌든 龐居師 一族耕作했던 밭은 千年을 예와 다름없이 밀을 키워내고 있다

사람의 마음 밭(心田)도 이와 같이 意識作用을 통해 萬物生成해 낸다

그래서 禪師들은 世上萬事人間의 심지心地에 달려있다고 누누이 說破한다.

 

人間 本然自性(老婆佛心)龐居士 一家族耕作했던 저 언덕처럼 예나 다름이 없다. 그렇건만 江漢平野 위에 뜬 구름(世俗人心)唐 中期 龐居士가 살았던 時節과는 判異하게 바뀌었음을 實感케 한다. 龐居洞의 청신녀 후노파가 無斷居住로 홀대를 받는 판국이니 말이다.


나는 이러한 感懷를 한줄 읊어 龐居洞 돌기둥에 새겨진 72하고 老婆作別했다.

 

로파심월고원상老婆心月孤圓相 노파의 마음 달 홀로 둥근데

강한부운이석시江漢浮雲異昔時 강한평야 위에 뜬 구름은 예와 다르구나.

 

選佛場 부처를 뽑는 과거장

 

시방동일회十方同一會 사방에서 모여들어

각각학무위各各學無爲 각기 무위를 공부한다.

차시선불장此是選佛場 여기는 부처를 뽑는 곳

심공급제귀心空及第歸 마음을 비워 급제해 돌아들 간다.

 

龐居士馬祖道一禪師(709-788)를 참문하고 지어 바친 偈頌이다. 龐居士 一代記素材로 한 나라 때 演劇 [월명화상도류취月明和尙度柳翠]主人公 월명이 舞臺登場하면서 龐居士의 이 를 읊조린다. 演劇, 靑代까지도 傳乘돼 왔다.

 

中國 禪宗 寺刹들은 禪房을 선당禪堂, 또는 選佛場이라 한다. 그리고 選佛場이라는 懸板밑에는 흔히 붓글씨로 龐溫居士話頭 心空及第를 써 붙인다. 選佛場은 관리를 뽑는 科擧場選官場比喩, 부처를 선발하는 곳이란 뜻이다

由來龐溫居士와 단하천연선사檀瑕天然禪師出家 逸話에서 비롯됐다.


각각 科擧를 보러 가다가 偶然同行이 된 두 사람은 한 行脚僧을 만났다. 세 사람은 함께 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중이 選官場보다는 選佛場으로 가서 부처가 되는 게 몇 백배 값진 일이라고 하자 龐溫檀瑕부처는 어떻게 선발하느냐고 물었다


중은 찻상 위의 찻잔을 위로 들어 올리고는 알겠습니까하고 반문 했다

두 사람이 그 높은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하자 중은 강서江西에 가면 馬祖禪師가 있는데 거기가 참다운 選佛場이라고 일러 주었다.


중이 찻잔을 들어올린 行動言語(Body Language)는 마음만 비우면 選佛 科擧及第할 수 있고 成佛을 하면 지금 우리가 여기서 무심히 를 마시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安定된 한도인閑道人으로 살 수 있다는 暗示였다


두 사람은 여기서 科擧길을 포기하고 그 길로 馬祖를 참문, 龐溫馬祖門下在家僧이 됐고 檀瑕는 다시 石頭 希遷禪士를 참문한 후 出家僧이 됐다.


방온龐蘊은 호남성 형주(현 형양시) 出生儒生이었다. 그의 父親은 형양 太守로 대대로 儒學을 공부한 집안이었다. 따라서 그는 家門에 걸맞는 높은 學識을 갖춘 知性人이었고 결코 가난한 촌뜨기가 아니었다.

 

남전보원선사南泉普元禪士語錄南泉語要景德傳燈錄<南泉章>에서는 그를 학사學士라 부르고 있다. 즉 그는 學文境地가 상당한 水準儒生이었다는 얘기다

禪宗 語錄조당집에 나와 있는 그의 傳記는 아주 간단하다.

 

당시 강서성 홍주(현 남창시)馬祖道一과 남악 형산의 石頭希遷禪士 門下天下 秀才들이 모여드는 敎育場으로 名聲을 떨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現實反影하는 代表的事例 하나가 강호제현江湖題賢이라는 古事成語. ‘馬祖主席地인 강서성의 첫글자, ‘石頭主席地인 호남성의 첫 글자를 각각 딴 것이고 諸賢은 지금도 在野人士’ ‘草野에 묻혀있는 知識人등을 치켜세울 때 자주 使用하는 成語.


龐溫佛家 入門儒家 學士라는 한 젊은 知識人이 새로운 時代變革을 재빨리 읽고 

파도波濤를 따라 흐름을 같이한 수파축랑隨波逐浪自己革新 같다.

 

: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몽땅 들이마시면 그때나 말해주마.

 

龐溫居士酒幕집에서 만난 한 行脚僧의 권유로 科擧試驗을 포기하고 강서성 홍주(현 남창시) 개원사(현 우민사)馬祖를 찾아가 참문한 禪問答이다

話頭로는 마조서강馬祖西江이라 한다

龐溫最初禪林에 발을 내딛는 入學式이기도 하다.


우선 龐溫居士의 물음에 知識人다운 知性識見이 번득인다

그가 質問, 一切 存在同一次元에 있지 않은 사람은 通常絶對者, 超越者를 뛰어넘은 極限超脫者, 超克絶對者를 말한다


通常超越者絶對者萬法의 하나일 뿐이다. 龐溫이 말하는 一切差別克復한 사람, 一切存在無關한 사람은 絶對超越까지도 버린 解脫道人, 宇宙的 人格者를 뜻한다禪林은 이러한 最上人格者를 흔히 祖師, 또는 道人이라고 일컫는다

과연 어떤 사람이 現實實存하는 그런 人格者일까.


馬祖對答通常常識으로는 不可能境地가 바로 그런 人格이라는 것이다

좀 어렵게 말한다면 그러한 人格이 바로 도인데 人間意識分別作用을 일으키기 이전부터 存在해 왔고人間通常思惟方式分別意識으로는 說明不可能하다는 애기다. 馬祖分別意識 以前問題이며 言語文字로는 說明할 수 없는 言語道斷本質임을 나타내 보이는 對應으로서 의 물을 例示했다.


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시는 것은 現實世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不可能象徵한다. 그러니까 馬祖龐溫에게 네가 물은 萬法과 짝하지 않는 超克絶對者는 네가 西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실 수 없는 것처럼 言語 文字說明不可能 하다는 점을 누누이 强調해오고 있다.


는 다만 直觀해 감지感知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龐溫은 이 한마디 禪問答에서 활연대오豁然大悟하고 心空及第라는 偈頌을 지어 바쳐 馬祖에게 자신의 깨친 境地認定 받았다. 그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바로 깨침의 요체要諦라는 점을 꿰뚫었던 것이다.


龐溫馬祖를 참문, 크게 깨친 후 自身의 고향인 호남성 형양으로 돌아가 馬祖雙璧을 이루고 있는 石頭禪師를 참문 했다. 石頭 讖文 때도 馬祖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質問을 했다. 石頭對答대신 입을 틀어막았다. 역시 馬祖와 같은 에 대한 說明不可能함을 뜻하는 行動言語. 그런 말은 입 밖에 안 내는 것이 도리고 입을 놀려서 說明할 수도 없는 問題라는 애기다.

 

신통병묘용神通倂妙用 운수여반시運水與搬柴 진리는 물 긷고 땔나무 나르는데 있다


날마다 하는 일 별다른 것 없고 오직 나 스스로 탈 없이 지낼 뿐.

무엇 하나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니 어디서 무얼 해도 災難 찾아들 리 없다

빨강이니 자주색이니 누구를 이름인고. 山中은 티끌 하나 없는 平和로운 고장

나의 神通力妙用은 어떤 것이냐 하면 물이나 긷고 땔나무 나르는 일이네.

 

龐溫居士石頭禪師에게 지어 바친 깨달음의 시다.

石頭禪師가 어느 날 門下에 와 있는 龐溫에게 물었다.

 

: 그대는 나를 만난 이후로 날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 날마다의 일을 물으신다면 입을 열어 對答할 나위가 없습니다.


: 그대가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묻지 않는가?

:(龐居士는 대답으로 앞의 偈頌을 지어 올렸다.)

 

神通倂妙用 運水與搬柴이라는 偈頌이 나온 緣由.

偈頌滿足해하며 

그대는 검은색(出家僧侶)을 택하겠는가, 흰색(在家僧侶, 俗人)을 택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龐溫원컨대 思慕하는 분을 따를 뿐입니다라고 對答, 삭발削髮 염의를 拒否한 후 一生居士(在家僧)로 살았다. 그때 그에게는 이미 婦人11녀가 있었다. 그는 佛道를 이루겠다며 妻子까지도 버리는 出家選擇하지 않았다. 그가 굳이 俗人의 삶을 택한 것은 家難을 함께 나누며 사는 妻子를 툇마루 아래로 걷어 차버리고 훌훌 떠나는 非情가출家出같은 出家를 않고 在家 凡夫로서도 佛道成就할 수 있다는 自信感 때문이었다.


아마도 유마경에서 이러한 自信感을 얻었으리라. 그는 유마경’ <불도품>무위법無爲法을 터득攄得한 다음에야 비로소 제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자라면 끝내 佛法을 이룩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믿었다.

또 유마는 문수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설하기도 했다.

 

진정한 佛法出家 修行生活에 있지 않다. 관건關鍵主觀的 修養心境淸淨 與否看破하는 것이다. 財産恒常 無常한 것으로 보고 처첩妻妾이 있으되 5에서 떠나 노니는 것이 진정한 菩薩行이다

 

中國古典예기禮記’ <禮文>에도 人情이 성왕聖王의 밭이다라고 해 妻子를 아끼고 사랑하며 거느리는 인정人情이 곧 성根本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龐溫은 자기 자신을 카테고리화해 自己生活規定해 놓을 경우 자칫 한발을 잘못 내디뎠다가는 법집法執, 또는 無位法에 얽매이는 이장理障에 떨어지고 만다는 점을 나름으로 熟知하고 있었다따라서 그가 出家拒否한 데는 이럴 境遇에 대한 素朴한 두려움과 羞恥心作用했을지도 모른다.

 

龐居士禪林入門한 후 財物境界하는 다음과 같은 偈頌을 남겼다.

 

世上 많은 사람들 돈을 尊重하지만

나는 刹那의 고요古謠를 사랑한다.

돈이 많으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지만

古謠하면 眞如本性을 나타낸다.

 

龐居士石頭에게 지어 올린 오도송悟道頌 [운수여반시運水與飯柴]로 돌아가 보자.

[運水與飯柴]平常心이 곧 [平常心是道]임을 대표하는 話頭의 하나로 회자膾炙돼 오면서 많은 中國 哲學者들의 讚嘆을 자아냈다.


龐居士는 자신 있게 말했다.

물을 깃고 땔나무를 나르는 日常生活이 바로 

나의 오묘奧妙하고 無窮神通力이며 眞理라고.


宋代儒學者 양작은 龐居士의 이 獅子吼를 

자득自得한 사람의 말이요, 가장 道理到達한 것이다

라며 讚嘆했다


또 많은 哲學者들이 孟子堯舜의 도에 담긴 깊은 뜻을 日常生活에서 實踐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解說한 뛰어난 현자賢者라면 龐居士日常生活 그대로가 임을 드러내 보인 자득自得達通道士였다고 讚揚했다.


龐居士를 비롯한 祖師禪禪師들은 물 깃고 땔나무 나르는 日常生活活動을 통해 마음의 직관直觀日常性重視하는 大衆的 修行體系를 새로운 佛敎實體提示했다

이는 自主的人間性啓發을 표방標榜한 것이기도 하다.


禪佛敎가 내건 敎外別傳, 不立文字라는 기치도 絶對的人間信賴個性强調를 달리 表現한 말일 뿐이다. 完全樂觀論的人間信賴個性主義는 당시 새롭게 胎動時代精神이기도 했다.


禪師들은 平常心是道實踐方法으로 대중과 더불어 生産勞動直接 參加農事일하고 찻잎을 따는 등 농선병행農禪倂行修行戒律로 삼았다

이른바 청규정신淸規精神이다. 馬祖法師 百丈懷海禪師(479-814)는 선문규식禪門規式(一名 百丈淸規)制定, 淸規精神戒律化 했다.


이는 탁발托鉢과 보시報施依存하면서 訓?的經典註釋祈福佛敎展開하던 敎學佛敎에 대한 佛敎改革이고 旣成佛敎否定하는 일대 革命이었다. 龐居士偈頌은 물 긷고 땔나무를 나르는 平素活動이 그대로 부처의 活動이라고 說破하고 있다


馬祖系統祖師禪(一名 홍주종, 江西禪, 祖師禪)은 이를 작용즉성作用卽成이라는 말로 表現한다禪學 用語로는 全體作用說또는 체용일여體用一如라고도 한다. 이는 本體作用銅錢의 앞뒷면처럼 同時的이고 상즉적相卽的關係라는 뜻이다. 따라서 日常生活活動佛性(法身, 本體)作用이며 그대로가 眞理라는 것이다.


體用一如論馬祖禪長子?仰宗禪師들이 더욱 深化, 發展 시켰고 그 사촌인 臨濟宗開山祖 臨濟義玄禪師差別없는 참사람[無位眞人]’이라는 公案을 통해 꽃을 피웠다. ‘平常心是道를 떠받치는 禪學 理論體系體用一如論具體化 시킨 公案龐居士運水給飯柴臨濟無位眞人이다

 

達磨著述로 알려진 혈맥론血脈論'도 일찍이 全體作用說主唱했다


부처란 印度 말이며 覺醒을 뜻한다. 이란 영각靈覺을 말하며 機會하고 事物을 대함에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박이며, 손발을 움직이는 日常活動이 모두 自己 靈覺의 성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은 곧 마음이요, 마음은 곧 부처요, 부처는 곧 , 는 곧 이다.”

 

血脈論의 이와 같은 體用一如論馬祖說法脈絡이 같다. 馬祖는 이렇게 說破했다.


지금 그대가 보고 듣고 知覺하고 인식하는[見聞覺知] 作用이 본디부터 그대의 本性이며 本心이다. 마음을 떠나서 달리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다."


龐居士가 말하는 물 긷고 땔나무 나르는 일이 그대로 부처의 行動이라는 것도 達磨, 馬祖說破趣旨가 같다. 그러나 朱子學倫理體系作用이 그대로 이라는 體用一如論絶對 배격排擊한다.

그 이유는 體用一如라면 유가 倫理學根幹인 수양론修養論成立될 수 없기 때문이다.

 

禪宗內에서는 점수론漸修論을 주장하는 北宗의 경우 작용즉성作用卽成을 내세우는 祖師禪頓悟强力批判한다. 6祖 慧能南宗禪馬祖以後祖師禪은 작용즉성론作用卽成論을 통해 基督敎聖父, 聖子, 聖靈 三位一切說恰似法身, 保身, 化身三位 一切論核心思想으로 展開했다.


이는 現在까지도 변함없이 祖師禪一貫禪思想眞髓. 祖師禪全體作用論은 성선설적性善說的 樂觀論立場에서 自性完全無缺性을 앞 세워 륜리倫理의 범주範疇를 넘어선다.


윤리倫理超越, 究極絶對自由를 따라 펼치는 素朴日常生活價値 속에 內在하는 眞理說破龐居士偈頌後世에도 널리 인용됐다. 소동파와 함께 自然主義 文學代表하는 강서시파江西詩派創始者이며 唐宋 8가의 한 사람인 북송시인 황정견(1045-1105)便紙를 대신해 취암선사에게 부치다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팔풍八風과 더불어 걸어가니 가는 곳마다 모두 일용日用이다

 

臨濟宗 황용파 居士이며 황용혜남선사의 法師이기도 했던 황정견의 이 詩句龐居士運水與飯柴偈頌을 다르게 表現한 것이다


明代 書禮1인자인 동기창董其昌은 그의 문집 용대별집에서 龐居士偈頌을 아주 要領있게 解說했다.


오직 나 스스로 탈 없이 지낼 뿐句節臨濟義玄禪師가 후일 上堂法語에서 無位眞人寺門으로 出入한다說破한 것과 똑같은 意味를 갖는다. 眞人의 인은 바로 를 뜻한다.

 

龐居士偈頌은 이처럼 臨濟無位眞人으로 이어져 이른바 양지良智(般若智慧)主體的 立場에서 人格化 시킨 진인眞人으로 表出됐다.


다시 말해 佛性人間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眞人이다

眞人은 배고프면 밥 먹고 추우면 화롯불 쬐는 日常 속의 自性作用完遂하며 살고 있는 . 主體的'는 언제나 지금(Now), 여기(Here)의 자아(Self)로서 存在한다

그래서 眞人의 삶은 主體的일 수 있고 眞理展開가 된다.


龐溫磨祖石頭禪師를 처음으로 참문한 것은 785, 그의 나이 이미 45세 때였다

그는 馬祖門下에서 2년 동안의 精進을 끝내고 호북성 양번으로 옮겨 양번 교외 녹문사라는 절이 있는 녹문산鹿門山에 거처를 정했다. 딸 영조가 竹細工品을 양양 市場에 내다 팔아 生計維持했다.

 

 

好雪! 片片不落別處 참으로 탐스러운 눈이구나!


(龐居士가 하늘에서 펄펄 내리는 흰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 탐스러운 눈이구나! 송이 송이마다 딴 곳에는 떨어지질 않는구나!”)


: 그렇다면 어디에 떨어집니까?

: (居士質問을 한 禪僧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였다.)


: 함부로 이게 무슨 짓이요?

: 그러고도 선객禪客이라고 낯짝을 들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閻羅大王이 용서를 안 할거다.


: 居士님은 어떻다는 말 입니까?

: (龐居士는 다시 한 번 따귀를 치고 나서 말했다

     눈은 보여도 소경과 마찬가지, 입은 열려 있어도 벙어리와 마찬가지구먼!

 

龐溫居士藥山寺(현 호남성 진시시 상화향 약산촌 소재)主席하는 藥山惟儼禪師(751-834)를 찾아가 禪問答을 하고 나오는 길에 전이라는 藥山寺 禪僧과 나눈 거량이다


藥山寺 方丈 惟儼禪師僧侶 10여명을 시켜 龐居士山門까지 傳送하도록 했다.

때는 한겨울이었고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

龐居士의 풍전한風顚漢다운 行脚을 보여주는 禪話의 하나다

話頭로는 호설불락별처好雪不落別處라 한다.

 

風顚, 風狂, 양광佯狂은 멀쩡하면서도 일부러 미친 척하는 禪哲學低流를 이루는 禪林家風이다. 禪家風光은 깨친 사람이 世上을 더 積極的으로 살아나가는 方法이며 現像 打破指向하는 强力變革의 몸부림이다.

 

우리는 때로 미친 사람의 말에 正義眞理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은 바로 이런 世俗俗說을 십분 活用해 기존 틀을 깨부수려는 革命的 熱情佛法眞理 具顯試圖한다. 그래서 歷代 禪僧 중에는 常識을 뒤엎는 거센 風狂의 바람을 일으킨 괴짜들이 수없이 많다.


龐居士歷代 禪林에서 빼놓을 수 없는 風顚漢이다. 風顚漢에서의 자는 치한癡漢, 취한醉漢에서 처럼 멸시하는 의미의 , 자식과 같다

그러니까 風顚漢은 흔히 말하는 미친놈이다.

 

龐居士行脚에는 늘 風狂의 바람이 거세게 일었으며 얼핏 보기엔 미친 사람의 짓거리 같은 선화禪話를 꽃피웠다. ‘好雪不落別處龐居士 仙風核心인 직심直心을 잘 드러낸 거칠고 單刀直入的이며 당당한 風顚의 대용현전大用現前이다.


龐居士는 함박눈이 내리는 自然大道를 통해 絶對的 眞理(흰눈)靈妙活動(떨어짐)은 언제나 당당히 나타나며 우리 周邊充滿해 있음을 直指하고 있다

지도至道活動人間의 속된 法則依存하지 않는다.


虛空에서 내리는 눈은 아무 意識作用을 일으키지 않는 무위無爲 속에서 흩날리는 無秩序를 스스로 克復하고 떨어져야 할 곳에 모두 떨어져 땅위에 쌓인다

至道의 대용현전大用現前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에서는 낙처落處落地, 입지入地라고도 하는데 大悟나 오달悟達境地를 말한다

그러니까 大悟境地라는 것을 눈으론 볼 수 없는 觀念世界設定하지 않고 지금 여기 눈앞의 大地, 눈이 떨어지고 있는 땅이 곧 眞理現場임을 喝破하고 있다.

 

龐居士禪風에 나타나 있는 뚜렷한 特徵의 하나는 일용日用이 바로 眞理라는 점이다. 이는 馬祖의 제자로서 日常生活 속에서 展開하고 있는 平凡한 일들을 이끌어 가는 素朴한 마음이 곧 眞理本體라는 馬祖禪平常心是道를 그대로 繼承龐居士家風이다.

 

딴 곳에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락별처不落別處는 눈 한 송이 한 송이가 正確하게 제자리에 떨어지고 있는 자연대도自然大道를 말한다. 龐居士는 눈송이들이 正確하게 떨어질 곳에 무심히 떨어지는 光景, 마치 意圖的으로 그렇게 하는 것 같은 멋진 無爲深趣했던 것이다.


흰 눈으로 뒤덮인 은빛 世界를 바라보며 感歎하는, 文學 少女에게 흔한 抒情的 表現은 결코 아니다. 龐居士感歎은 눈송이 하나하나가 내려와 제자리에 떨어지는 光景이 마치 攝理인 듯 神秘롭고 莊嚴宇宙 秩序였던 것이다.

 

不落別處의 이면에 어떤 計巧深奧哲學이 있지 않나 疑心해서는 안된다

오직 自然大道喝破한 것일 뿐 아무런 함정陷穽, 깊은 사려思慮도 들어있지 않다.

 

눈은 어디에 떨어져도 똑같다

눈이 떨어질 때 이곳이냐 저곳이냐 하는 分別을 하지 않는다


禪學論理世俗에서 활로 과녁을 맞히는 判別法과는 전혀 다르다

世俗弓術은 먼저 과녁을 정해놓고 이것이냐, 아니냐分別로 정부正否判別한다.

그러나 은 아무데나 맞히고서 화살이 꽂힌 곳이 원래 맞히려고 했던 곳이라고 해도 된다. 世俗弓術에서라면 조롱操弄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활을 먼저 쏘아놓고 화살이 꽂힌 곳이 바로 맞히려고 했던 과녁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論理眞理와는 거리가 먼 궤변詭辯이라고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눈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論理構造에 속한다

눈은 떨어진 곳이 바로 떨어지려 했던 곳이다

여기다 저기다를 정해 놓은 바 없다

마치 과녁을 정해놓지 않고 쏜 화살이 아무데나 맞혀도 白發白中 아닌가.


맞힘과 맞히지 못함을 分別하지 않는다는 것은 取捨選擇思惟體系意識作用이 빚어내는 妄念이 사라졌을 때 到達하는 境地. 명중 與否區分하지 않는 것이 바로 無心이다. 눈송이들이 떨어질 場所를 미리 分別取捨選擇하지 않는 無心無爲는 모두 다 어김없이 떨어져야 할 곳, 있어야 할 자리에 내려않아 찬란한 은빛 世界演出한다.

 

龐居士참으로 좋은 눈(好雪)!’이라고 讚嘆한 것도 화살 꽂힌 모든 곳이 바로 과녁이라는 우스갯소리에 담겨있는 眞理를 말한 것이다그를 傳送하던 약산사 禪客들이 눈이 어디에 떨어졌느냐고 물은 것은 여기냐, 저기냐를 區分하는 分別心作用이었다.


따귀는 그러한 分別심에 대한 이다

閻羅大王이 용서를 안 할 거다라고 한 것은 눈앞에 現存하는 存在根源, 지도至道作用을 아직도 보지 못하고 이 뭐꼬[是什磨]’라는 話頭에나 매달려 있는 모든 禪客에 대한 極限的인 질타叱咤.


禪家存在根源, ‘라는 人間本質, 眞理本體를 밝힌 이 뭐꼬[是什磨]’라는 話頭를 지견知見의 알음알이로 불어낸 見識虛像不過한 것으로 치부해 버릴 뿐 전혀 認定치 않는다.


따라서 龐居士傳送하는 禪客 모두를 장님, 벙어리 取扱해버린다두 번째 올려붙인 귀뺨도 역시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分別心知見妄念境界하기 위한 것이다.

 

雪峰義存禪師(822-908)話頭 是什磨韓國 禪房에서 많이 드는 公案의 하나다

人間 存在根源本質을 밝히기 위한 話頭. 現在 中國 禪房들은 이와 같은 種類부처를 생각하는 그 사람은 바로 누구인가[念佛是誰]’라는 話頭를 든다.

아예 禪房 壁面에다 念佛是誰를 써 붙여놓고 있다


念佛是誰臨濟宗 禪刹 禪房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話頭인데 趙州禪師에게서 비롯된 臨濟宗重要 話頭의 하나다. ?仰宗의 간판 話頭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다. 그러나 曹同宗, 雲門宗 등은 물론 모든 禪宗 宗派共通으로 가장 많이 깨침의 길잡이 로드 話頭念佛是誰.

 

中國禪宗語錄들에는 現代語法을 따라 好雪! 片片不落別處로 분명히 띄어 쓰고 있다.

(! 참으로 좋은 눈이구나, 송이송이 딴 곳에 떨어지지 않는구나)

 

두루마기 자락으로 風狂의 바람을 일으키며 高明禪杖들을 찾아 한판 勝負를 벌이는 龐居士의 당돌한 行脚은 그 발길을 멈출 줄 몰랐다.

 

(百靈和尙方丈室에 앉아 있는데 龐居士가 들어왔다.)

: (百靈龐居士의 멱살을 거머쥐고 말했다)

     요즘 사람도 말하고 옛 사람도 말한 것이 있다그러니 거사는 어떻게 말하겠소?

: (龐居士百靈方丈에게 따귀를 한 대 먹였다.)


: 말하지 않고는 못 뱃길 걸!

: 말하면 失手하게 되는 걸!


: 한 대 얻어맞은 報償을 좀 해주어야지.

: 어디 한 대 때려 보시지!


(百靈그럼 미안!”이라고 했다.)

 

龐居士行脚 이야기인 이 禪話話頭로는 百靈의 뺨을 때리다[打靈一掌]라 한다.

 

禪話禪佛敎特徵으로 흔히들 말하는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에 대해 批判的龐居士禪風을 잘 드러내고 있다. 龐居士에게는 박사노인博士老人이라는 別名이 붙어 있었다이는 당시 禪林에서 龐居士博識함을 嘲弄하는 야유 섞인 稱號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한 소식 했다는 禪師들도 쩔쩔 맬 정도로 禪理達通하고 있었고 자신의 得法 境地와 앎을 말로 表現見性한 바를 客體化할 수 있는 卓越知識人이었다.

 

百靈이 첫 번째 물음에서 龐居士에게 要求하고 있는 것은 馬祖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 南泉"모름지기 버림받은 사람을 目標行動한다[異類中行]“ 등과 같은 最後座右銘, 흔히 말하는 말후구末后句要求한 것이다.


過去現在超越本體明明百百히 드러내는 한마디를 일러보라는 要求.

龐居士가 따귀를 올려붙인 것은 직도直道, 다시 말해 마음이 곧 라는 直觀的 通察이 나의 末后句라는 얘기다. 그러나 百靈龐居士提示하는 直道를 그대로 肯定하지 않고 말로 表現해 보라고 다그친다. 그러니까 龐居士가 때린 귀뺨이 아직은 말이 없는 말로까지 승화昇華돼 있지 않다는 반박反縛이다.


龐居士는 이와 같은 百靈和尙追窮에 말을 해도, 안 해도 양쪽 다 를 범한다는 선리禪理防禦한다. 龐居士가 끝내 에 대한 言語文字的 表現拒否하자 백령은 그렇다면 

나한테 먹인 따귀 한 대는 진정한 도득道得에서 나온 게 아니었으니 그 얻어맞은 따귀 한 대를 報償해야 한다.”反擊한다.


龐居士는 여기서 ?言을 하지 않고 따귀를 때린 言語밖의 言語를 이미 使用한 자신의 失手認定하고 그래 내 한방 얻어맞는 것으로 失手報償할 테니 때려 달라고 얼굴을 내민다. 龐居士가 완전히 窮地에 몰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失手를 솔직히 認定하는 剛直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百靈龐居士의 낙기落機(機峰을 잘못 使用失敗)看破하고는 그럼 미안이라는 한 마디로 問答大汎하고 結緣하게 끝맺는다.


이 보여주는 멋진 勝負世界. 진 사람은 欣快敗北自認하고 이긴 사람은 大汎하게 相對失手를 용서해 준다. 이렇게 되면 지거나 이겼다는 勝者敗者分別無意味해 진다.


경청도부선사(864-937)解脫의 소식을 말로 說明하기 어려움을

출신出身은 오히려 쉬워도 탈체脫體는 말하기가 도리어 어렵다고 했다.

 

雪峰義存禪師의 제자로 절강성 월주 경청사鏡淸寺에서 법화를 폈던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心身을 벋어나는 解脫體驗을 얻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境地를 사실대로 表現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참된 깨달음이란 그 깨침의 당체當體를 말로 說明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龐溫居士禪風이었다. 깨달음은 그것을 말로 表現見性客體화하는 過程을 통해 이미 깨친바 자기의 見性關聯시켜 再確認할 수 있을 때 眞正生命力을 갖는다.


쉽게 말해 자기 깨친 바를 말로 說明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종의 自己檢證이 없이는 깨달음의 아름다움이나 자기 所有化가 이루어질 수 없다. 龐居士는 이 점을 깊이 認識, 禪林禪師들에게 말을 아끼지 말라[莫惜言句]”라고 거듭 促求 했다.


비록 百靈和尙과의 禪問答에서는 이러한 그의 禪理를 제대로 說破하지 못한 채 敗北者가 되고 말았지만 제봉, 보제, 송산, 석림선사 등을 만나 나눈 거량에서 한결같이 당신의 깨달은 바를 당신 자신의 말로서 말해보라要求 하고 있다. 따라서 龐居士不立文字라는 禪林의 캐치프레이즈에 대해 批判的姿勢였다.

 

이러한 도득道得檢證을 위한 文字的 說明後日 日本 禪佛敎 조동종의 開山祖인 영평도원선사(1200-1253)에게서 철저히 强調됐다. 龐居士는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는 老莊득의이망언得意而妄言이나 는 말로 說明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라는 禪林立場과는 달리 解脫體驗을 말로 說明해보이는 檢證을 강력히 主張했다. 이 점이 바로 龐居士獨特禪風이기도 하다.


그의 禪風에서 또 하나의 뚜렷한 特徵風狂은 때로는 自己 과시적誇示的인 횡포자적橫暴者的 태도態度로까지 비쳤다. 그러나 아무도 定常軌道를 벗어난 그의 미치광이 짓과 만만치 않은 橫暴者的 態度잘못이라는 걸 檢證할 사람이 없었다.

 

禪林方丈들은 그의 거칠고 質朴禪氣와 종잡을 수 없는 行動미친 늙은이라는 表現으로 야유를 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감히 그의 見性境地無視하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禪林風味한 어떤 禪師보다도 높은 이름을 남겼고 道人班列에 자리했다.


率直하고 質朴하면서도 언제나 당당하고 剛直하며 單刀直入的인 그의 家風禪理를 꿰뚫는 該博知識과 함께 一世風味했다. 龐居士俗家의 삶에서도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가난해야 한다.’ 淸貧을 온 몸으로 實踐해 보였다.

 

 

시앙시복是仰是覆 올려다보는 산이라면서 내려다보다니

 

: 오래전부터 앙산仰山 禪師思慕해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위로 쳐다보지 않고 내려다      보고 있는 건 무슨 까닭이오?

: [仰山이 불자拂子를 딱 세워 들었다.]


: , 그렇군.

: 쳐다보는[] 거요, 내려다보는[] 거요?


: (居士가 기둥을 치며 말했다

     마침 사람이 없으니 이 돌기둥(露柱)證言을 부탁해 봅시다.

: (仰山拂子를 내동댕이치고 나서

     당신이 만나는 사람마다 이 事緣에 대해 마음대로 이야기하구려!

 

龐溫居士仰山禪師訪問해 나눈 법거량이다.

話頭로는 시앙시복是仰是覆이라 한다. 우선 분명히 해둬야 할 問題가 있다.

 

여기 나오는 仰山一部 著述이나 飜譯書 등에서 스승 ?山靈祐와 함께 ?仰宗開山仰山慧寂(807-883)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仰山慧寂龐居士(704-808)入滅하기 1년 전 출생, 1백년의 世代差가 있다.


그리고 龐居士가 거량한 禪師들은 연배가 그와 비슷한 당대의 1禪僧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仰山慧寂은 어림도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오류誤謬는 단지 仰山慧寂이 너무도 有名禪師仰山하면 ?仰宗 開山祖 慧寂으로만 아는 斷片的 知識 때문인 것 같다.

龐居士가 거량한 앙산선사는 분명히 仰山慧寂과는 다른 禪僧인데 不幸히도 그의 傳記가 알려진 게 없다.

 

이와 비슷한 또 하나의 예는 靑原行思(?-740)와 청원유신(?-1117)混同하는 것이다.

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話頭를 남긴 宋代 臨濟宗 黃龍波 禪師 청원유신을 6祖 慧能兩大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유신선사보다 3백년이나 앞선 靑原行思라고 飜譯하거나 脚註를 달고 있는 책들이 있다이 역시 청원선사하면 행사로만 알고 유신이라는 선사도 있었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빚은 어처구니없는 誤謬.


龐居士仰山法去量은 우선 시작부터가 是非조다

龐居士初面仰山禪師에게 이름이 쳐다보는 산[仰山]이라해서 思慕해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엎드려 있는[] 시시한 禪客이구먼 그래!”라고 비꼬면서 부아를 돋운다.


비꼬는 質問을 던져 仰山을 한번 흔들어 놓고 어떻게 나오는지 그의 禪機를 엿보자는 속셈이다. 仰山佛子를 세우는 行動言語로써 올려다보느냐[]’ ‘내려다보느냐[]’質問 自體를 떨쳐버리면서 이것이 바로 어떤 것에도 執着치 않는 공심空心佛道를 터득한 仰山이라는 存在라고 提示한다.

 

잠시 禪僧權威威嚴을 나타내는 법구法具佛子?杖子 얘기를 좀 해보자.

佛子는 원래 삼이나 짐승의 털로 만들어 파리, 모기 등을 쫓는 털이개 모양의 生活用具였다禪僧들은 이 生活用具煩惱를 털어낸다는 象徵的 意味附與, 禪僧權威를 나타내는 法句活用하면서 불진拂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렇게 돼 佛子眞理當體, 佛法, 象徵하는 法具로 자리를 굳혔다. 禪問答에서는 言說 대신 佛子를 세우기도 하고 세웠던 佛子를 내려놓거나 내던지기도 한다.

 

: 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을 가르쳐 주느냐?

: (百丈懷海는 대답으로 佛子를 세워 보였다.)


: 그것뿐인가, 아니면 다른 것이 또 있는가?

: (百丈佛子를 내던지고 나가 버렸다.)

 

百丈이 스승 馬祖의 물음에 佛子를 세워 보인 것은 眞理當體, 佛法을 가르쳤다는 象徵이다. 馬祖는 다시 佛法을 뛰어넘는 究極境地追窮한다. 이에 百丈佛子를 내던져 어떠한 形象에도 얽매이지 않는 究極解脫 境地임을 보여준다. 멋진 去量이다

馬祖는 여기에서 百丈法力欣快認定, 後繼者認可한다.


佛子대신 빗자루를 세우고 내던지기도 한다. ‘미치광이 중으로 有名한 천태산 국청사의 습득拾得에게 ?山靈祐禪師어떤 것이 너의 家風인가?”라고 물었을 때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세워 보였던 것도 역시 百丈佛子를 곧바로 세운 것과 같은 의미다.

즉 나, 습득은 이처럼 언제나 여여한 眞理當體存在한다는 당당함이 엿보이는 對答이다.

 

: 어떤 것이 祖師의 뜻입니까?

: (천룡화상은 佛子를 들어 보였다.)

 

大梅法常(752-839)의 제자인 천룡화상과 한 중의 禪問答이다.

 

: 佛法大義는 무엇입니까?

: (臨濟義玄禪師佛子를 세워 보였다.)

 

臨濟宗開倉臨濟義玄禪師(?-866)와 한 學人禪問答이다

천룡과 臨濟는 다같이 佛子를 세워 보이는 것으로 對答을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禪師들이 佛子를 즐겨 세우는 것은 言語說明할수 없는 眞理當體說明하기 한 경우가 大部分이다.


?杖子도 역시 禪僧權威象徵하는 法具의 하나다

원래는 산길 行脚을 하는 禪僧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였다

禪佛敎黃金 時代였던 나라 中期부터 ?杖子佛法, 佛道象徵하는 法具方丈들이 上堂法語를 할 때나 雲水衲子들과 法去量을 할 때 거의 必需品처럼 使用했다.

 

: 和尙病患에 좀 差度가 있으십니까?

: (나한계침선사는 ?杖子로 땅을 짚으면서

     그대는 이것도 아픔을 느낀다고 여기는가?


한 중이 나한 계침선사(867-928)問病禪話.

나한계침이 ?杖子도 아픔을 느끼느냐反問에서 使用?杖子무엇에도 執着하지 말라象徵이고 더 나아가서는 부처는 없다深奧禪理說破하고 있다.


生死를 완전히 떠나 存在할 수 있는 解脫의 부처나 道人이란 있을 수 없다

태어났다 죽어가는 自然大道를 순순히 따르는 것이 곧 道人이다.


나한선사의 ?杖子는 밥 먹고 잠자며 지내는 이 삶이 곧 涅槃이고 煩惱가 바로 보리인데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죽은 후의 적정 涅槃設定하는 것은 한낱 어리석은 妄想이라는 소식을 전해준다. 道人?杖子(나무막대기)처럼 나고 죽는 것을 超越한다는 象徵이다.

 

은 이처럼 털이개 하나, 지팡이 한 개에도 無限象徵性附與佛子를 세우고 내던지는 속에 84法問壓縮하는 獨特象徵體系를 가지고 있다.

 

가령 비공鼻孔(고삐 뚫은 소 콧구멍)=本分? 인위人爲南山=妙用, 북수北水=空寂? 故鄕, 새끼고양이(猫兒)=?, 철안鐵眼(무쇠 눈)=一切를 내다보는 銳利見識, ()=靈妙한 마음자취. 당나귀=天地未分前空寂道理등은 이 가지고 있는 獨特象徵體系代表的 事例들이다. 佛子?杖子禪學 象徵體系에서 法身? 佛法? 眞如自性? 眞理本體 등을 뜻하는 象徵물이다.


龐居士仰山佛子를 세워 을 뛰어넘는 眞如佛法을 보이자 그에 同感, 肯定했다. 그러나 仰山그럴 듯하다龐居士의 말에 말려들어 佛子를 세운 게 올려다 보는거냐, 내려다 보는거냐라고 分別心을 내 對答을 채근한다.


이는 仰山佛子를 들어 提示自己 定立徹底한 것이 아니었음을 내 보인 虛點이기도 하다. ‘그럴 듯하다龐居士反應洽足肯定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마음에 걸려 다시 물은 仰山質問結局 스스로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龐居士 쪽에서는 이미 仰山反問敗着으로 看做했지만 仰山은 이를 自覺하지 못하고 佛子를 세운 게 이냐 이냐反問을 통해 龐居士檢證, 파탄破綻으로 몰아넣겠다는 計算이다.


저 돌기둥이 證言해 주리라.”


龐居士自信仰山勝敗判定審判으로 돌기둥[露柱]을 지정, 仰山을 묵사발 내버렸다.


中國 절은 목조木槽 전각殿閣이라도 외주外柱, 또는 內部 補助 기둥으로 석주石柱를 많이 사용한다. 露柱는 바로 이 돌기둥을 말하는데 절에선 흔하고 흔한 물건이다. 그러나 禪學에서는 露柱도 하나의 象徵物知覺과 정식情識을 완전히 벗어난 眞實을 밝게 꿰뚫어 보는 정법안장을 뜻한다.


절간의 돌기둥들은 몰아치는 風雨를 딛고 묵묵히 서 있으면서 온종일 절을 드나드는 사람을 지켜본다. 人生이라는 것도 어떤 意味에서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法身存在 양태樣態도 돌기둥과 같다

龐居士가 돌기둥을 證人으로 세우자고 한 이유는 돌기둥이 갖는 이러한 象徵性 때문이었다. 露柱禪語錄에 자주 登場한다.

 

: 達磨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 저 돌기둥에게 물어보렴.


: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 나는 더 모르겠는 걸.

 

石頭 希遷禪師(700-791)의 법제자인 흥국진랑이 沙彌時節 石頭에게 참문한 禪問答이다.


: , 부처란 무엇입니까?

: 돌기둥에 올라간 고양이다.


: 잘 모르겠는데요.

: 돌기둥한테 물어보렴.

 

藥山惟儼禪師(751-834)의 제자인 비수혜성화상과 한 學人去量禪話

두 개의 禪問答이 다 말로 說明할 수 없는 深奧佛法眞理를 돌기둥에 比喩한 것이다.


돌기둥은 말을 하지 못하는 無情物이지만 , 聖人凡夫分別하지 않고 절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묵묵히 지켜본다. 佛性, 佛法이란 것도 이처럼 分別世界를 넘어 萬人平等하게 包容하는 眞理

물론 돌기둥이 사람을 지켜본다는 것은 象徵的 表現일 뿐이다.

 

에서는 無情物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世俗的 思考體系로는 당나귀가 우물을 엿본다.”表現해야 맞지만 에서는 우물이 당나귀를 엿본다.”表現할 수도 있다. 조동종 開山祖의 한 사람인 조산본적선사(840-901)우물이 당나귀를 엿본다(정처려井?驢)”有名話頭를 남겼다.

 

龐居士仰山法去量은 돌기둥을 證人으로까지 세우자고 맞서는 가운데 더욱 강경해진다. 仰山그래 이경우를 천하 어느 禪師한테 가서 말해도 좋다反擊한다. 다시 말해 누구한테 물어봐도 패한 게임이 아니라는 자신만만한 말투다.

그러나 이미 게임은 돌기둥의 判定으로 끝나버린 것을


禪問答에 대한 後世平價龐居士가 기선을 잡는 主演이고 勝子라는 데 一致한다.

그러나 仰山禪氣도 대단한 것이었다.

 

즉 두 사람이 佛子라는 무정설법無情說法돌기둥이라는 無情說法으로 각각 對決하면서 다같이 이니 이니 하는 文字 명상名相否定한 점에서는 一致한다


龐居士仰山 다같이 淸淨한 자성自性本體本來올려다본다.’거나 내려다본다.’는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이러한 分別 以前'無分別을 그 本質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脈絡이다. 다만 仰山이 비꼬는 듯한 肯定(, 그렇군)疑心함으로써 敗着을 한 것뿐이다.


龐居士佛家 歸依決心하고 모든 財産을 버린 후 호북성 양번 녹산사로 移住하면서부터 그의 婦人11녀도 독실篤實在家佛子가 됐다. 특히 그의 婦人 龐老婆와 딸 靈照는 단순한 信徒次元佛子가 아니라 한 소식한 道人風貌를 보여 주었고 禪語錄話頭를 남기는 등 龐居士 못지않은 수준급의 禪僧’ 대열에 드는 法力發揮했다.

 

 

영조채람靈照菜藍 영조의 나물바구니

 

(龐居士와 가장 切親道伴인 단하천연선사가 어느 날 龐居士의 집을 訪問했다

대문 앞에 이르러 바구니를 옆에 끼고 나물 캐러 나가는 딸 靈照를 만났다.)

 

: 居士께서는 집에 계시는가?

: (바구니를 땅에 내던지고 두 손을 모은 채 섰다.)


: 居士께서 계시는가?

: (바구니를 집어 들고 아무 말 없이 나물을 캐러 나가 버렸다.)

 

단하도 여기서 발길을 돌려 되돌아 가버렸다. 얼마 후 龐居士外出에서 돌아왔다.

靈照로부터 단하선사가 왔다 갔다는 말을 듣고 龐居士가 물었다.

단하는 계시냐?”


靈照가 대답했다. “떠나가셨습니다.”


居士땅바닥에 우유가 끈적거리는구나!”라고 했다.

 

영조채람靈照菜藍이라는 話頭 내용이다

龐居士의 딸 靈照는 그 이름만큼이나 神靈스럽고 才氣 넘치며 상근기上根器禪氣가 번뜩이는 在家 선자禪者였다. 靈照禪林行脚하는 아버지 龐居士를 따라 다니며 侍奉했다. 대나무 조리를 저자에 내다 팔아 龐居士의 끼니를 마련해 올리고 온갖 수발을 했다.

靈照는 아버님 龐居士侍奉하면서 禪理를 익혀 오도悟道境地에 이르렀다

일정한 修行, 高僧至道도 전혀 받은바 없이 말하자면 獨學으로 大成을 한 셈이다.

 

단하천연선사(738-824)長安으로 科擧를 보러가다가 龐居士를 만나 함께 佛家入門한 친구고 道伴이다. 龐居士佛家 入門이후 가장 가깝게 지낸 禪師이고 서로가 수시로 집과 절을 찾아 法談을 나눈 道得伴侶者이다. 따라서 단하는 龐居士 家族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터였다. 俗家 因緣에 비유하자면 叔父같고 집안아저씨 같은 處地였다.


단하를 맞는 靈照禮意無禮한 듯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禪家禮法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주 如法하게 不在中인 아버지 龐居士를 대신해 주인으로서 손님을 맞는 禮儀를 갖추고 있다.

 

우선 靈照가 두 손을 얌전하게 모은 채 서 있는 것은 當時世俗 禮法에서도 正中하고 단정한 禮節勸?됐다. 問題는 바구니를 땅에 내던진 行動이다. 바구니를 내던진 것은 龐居士의 부재不在象徵한다. 禪理的으로 한발 더 나아가면 龐居士의 있고() 없음(不在)과 같은 形象에 얽매이지 않는 分別심의 超越意味한다.


여기서는 바구니를 見性, 解脫象徵으로 擴大 解析할 수 있고 涅槃이라는 佛法의 보금자리에도 安住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떨어버린 一切皆空境地象徵行動言語가 된다.

 

그러나 이때 靈照가 바구니를 내던진 것은 손님을 맞는 禮儀를 갖추기 위해 염수이립殮手而立하려고 행한 行爲쯤으로 보아 넘기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단하선사도 두 번째 물음을 통해 龐居士不在를 거듭 확인하고는 그냥 돌아갔다.


이 대목에 대해 일부 評釋은 단하가 靈照의 첫번째 對答에서 龐居士不在를 미처 못 알아차린 것처럼 解說하고 있다. 단하 정도의 1禪師를 그렇게 아둔하게만 볼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단하가 靈照境地를 떠보기 위해 알아채지 못한 척하고 다시 물어 보면서 

그녀의 다음 行動을 지켜본 것으로 풀이하고 싶다.

 

어쨌든 靈照는 극히 日常的이고 自然스러운 行動으로 을 갈파한 한편의 선연극禪演劇演出했다. 특히 그녀의 주도 綿密하고 圓熟禪的 擧動達人이라는 단하선사도 欣快認定水準級이었다.


또한 龐居士가 딸 靈照에게 말한 땅바닥에 우유가 끈적거린다原文적토우내赤土牛?.


龐居士의 이 말은 앞에 단하는 계시냐?”反問한 점등으로 미루어 보아 딸 靈照를 나무란 것으로 本來 境地大地(붉은 흙)牛乳의 흰색을 칠해 엉망진창이 됐다는 의미다. 일부 옛 禪宗 文獻龐居士의 이 말을 이년아, 우리 가문에 먹칠을 하다니!”라는 뜻이라고 註釋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서는 責望이 오히려 稱讚이다. 따라서 龐居士靈照에 대한 責望은 나물바구니를 던져 자신의 不在를 알린 禪的 行動言語괜찮았다肯定이라고 봐야 한다.

 

다음 禪話는 이를 證明해주는 명괘한 證據.

돌아갔던 단하가 아까는 자네를 한 대 먹였잖나!”라고 말했다.

바로 이 한마디가 조금 전에 靈照의 단하 接待에 대한 稱讚이다.

이때 단하는 아까는 내 입이 벙어리를 强要 당했거든!”이라고 應手, 역시 靈照禪氣肯定했다禪話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거사 : 자네야 본래부터 벙어리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벙어리로 만들 작정인가?

단하 : (佛子를 내던지고 나가 버렸다)


거사 : 이 보게 선사, 선사!

단하 : (돌아보지도 않았다)


거사 : 벙어리만 된 것이 아니라 귀머거리까지 돼버렸군!

 

靈照는 절집 風俗으로 따지자면 龐居士侍子였다. 龐居士 一家族이 녹문산으로 이사하면서부터 집안 식구가 모두가 在家僧으로 佛道를 따라 살았다. 居士靈照 父女禪房을 두루 찾아다니는 行脚을 했고 부인 龐老婆와 아들은 녹문사를 드나들며 道得境地를 넓혀나갔다. 靈照龐居士 一家中 거사 다음으로 오도의 境地가 높은 再家僧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龐居士가 딸 靈照와 함께 쌀 이는 조리를 팔아서 食生活解決하며 四方遊歷하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父女市場으로 조리를 팔러 나가던 중 龐居士가 구름다리를 내려가다 넘어졌다. 이를 본 딸 靈照가 재빨리 아버지 곁으로 가서 일부러 넘어졌다


龐居士너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묻자 

靈照넘어지신 아버지를 제가 副軸해 일으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龐居士多幸이 아무도 보지 않았으니 됐구나.” 했다.

 

무슨 演劇의 한 場面 같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면 서서해야 되는데 전혀 엉뚱하게도 옆에 와 넘어져 놓고 넘어진 사람이 일어나도록 거들어주겠다니 정말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퍼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禪話靈照禪氣가 번뜩이는 기막힌 逸話. 우리가 흔히 술 취한 사람을 副軸할 때 같이 취한 척 하라는 말을 한다. 靈照龐居士 옆에 넘어진 것을 이와 같은 論理說明하는 것은 語不成說이다. 다만 어려운 禪家話頭를 풀어나가는 緊張感을 풀기 위해 떠올려 본 客談일 뿐이다.


話頭로는 영조부변도靈照夫邊倒라 한다. 靈照가 이렇게 넘어진 것이 곧 아버님을 副軸하는 것이라고 한 對答이 바로 이 話頭核心處고 선리禪理閃光이다.


아버지는 땅에 넘어져 있고 딸은 서 있는 形象은 서로 反對대는 相對的 對立이며 넘어져 있음[]과 서 있음[]의 구분이다. 은 이 같은 相對的 分別을 곧 모든 煩惱根源으로 보기 때문에 단호히 거부한다. 앉아 있음과 서 있음. 凡夫聖人 등으로 나누는 二分法的이고 對立的分別心만 없애면 바로 佛道到達할 수 있다고 누누이 强調 한다.


目標하는 解脫成就分別意識消滅 없이는 전혀 不可能하다

따라서 見性出發點終着地도 하나같이 分別心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모든 修行歸結点도 바로 分別심의 消滅이다.


靈照는 이래서 자신도 龐居士 옆에 넘어짐으로서 아버지는 넘어져 있고, 딸은 서 있는 差別相對的 分別을 없애버린 것이다. 分別心으로부터 생겨난 差別相이야말로 人間의 마음을 汚染시키는 萬病原因이다. 이럴진대 分別心과 차별상差別相을 없앰으로써 넘어진 龐居士를 거들어 일으키겠다는 靈照行動 以上相扶相助는 있을 수 없다. 참으로 엄청난 소식이다.


에서는 이렇게 象徵的行動言語를 통해 禪理說破할 수 있는 才能을 상근기라 한다.

따라서 영조는 아버지 龐居士 못지 않는 상근기를 가진 智慧덩어리 禪知識이었다.


마지막 龐居士의 말 다행이 아무도 보지 않아서 됐구나!”그래,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구나! 됐다, 가자!” 라며 툭툭 털고 市場으로 조리를 팔러 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龐居士는 딸의 道得欣快認定하고 기뻐한 것이다.


참으로 이 話頭에 대한 日本 禪學者 이리야 요시다카의 解說을 보자

그는 靈照가 넘어진 것을 중생이 앓기 때문에 나도 앓는다.”는 동병상린이 보여주는 유마거사의 대자비심에 비유했다. [선문염송집]에 나오는 묘지광의 偈頌 龐公이 땅에 넘어지자 딸은 걱정을 나누었다.”를 인용 부주열반不住涅槃菩薩行實踐한 대비천제大悲闡提慈悲行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靈照가 아버지 龐居士를 능가하는 菩薩이었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무리고 그저 귀염둥이 딸다운 擧動에 지나지 않음을 看過해서는 안된다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靈照의 재롱 같은 動作菩薩行妙用이 부드럽고 自然스럽게 간직돼 있다는 점도 認定은 했다.


靈照龐居士 옆으로 가 넘어진 이 禪話에 대한 두 가지 解說중 어느 것이 더 그럴듯한 지는 讀者들의 趣向에 따를 일이다. 禪家話頭解說하는데 敎學經典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祖師禪話頭를 다루는 데는 祖師禪 本領獨創的禪學 理論可能한 한 動員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龐居士婦人 龐老婆도 딸 靈照 못지않은 境地를 보여주고 있다

龐居士 家族父傳 女傳이고, 夫唱婦隨佛道를 닦은 선가禪家였다.

 

龐居士初期 佛敎에 가장 有名居士였던 부대사傅大士(일명 무주선혜 497-569)와 함께 中國 佛敎史兩大 居士이고 서농의 最高 居士이다. 副大師[심왕명心王銘] 등의 著述을 통해 후일 祖師禪基本 禪思想이 된 즉심즉불卽心卽佛說破함으로서 中國 禪佛敎胚胎시킨 禪杖이다.


이렇게 볼 때 두 사람은 中國 禪佛敎兩大 居士로서 禪宗獨特家風居士佛敎確立在家禪宗開山祖.

 

龐居士의 또 다른 特技할 만한 행장行狀儒敎에서 佛敎轉換한 유입불료儒入佛了代表的事例라는 점이다. 나라 때는 佛敎興盛, 이런 예가 적지 않았다. 반대로 , 원나라 때는 僧侶儒學者變身하는 불입유료佛入儒了가 나타난다代表的인 예의 하나가 30년 동안 佛門에 있다가 나가서 儒敎 상리학像理學大家가 된 장재長載.


, 宋代佛敎儒敎는 상호 對立裏面에서는 幕後 交流活潑했다.

주이, 정호, 정이 같은 大儒學者들도 佛敎硏究가 깊었다


주희의 경우는 현 복건성 복주 용천사에서 주희 記念亭子(水雲亭)建立돼 지금까지 保存돼오고 있을 정도로 禪宗 寺刹들을 유력遊歷하면서 禪理에 깊이 천착穿鑿하기도 했다.


龐居士와 그의 家族은 많은 詩人墨客들로부터 傳記的 特徵에 어울리는 尊敬憧憬對象이었고 그림, 演劇 등의 素材가 돼 , , 明代는 물론 오늘에 까지 그 名聲이 이어지고 있다. 唐末 抒情詩人 이군옥은 뒷날 구름 봉우리 사이로, 다시 와서 龐居士를 찾으리라고 읊조렸다.


明末 靑初文人 탁발지는 그의 長男에게 보낸 편지에 龐居士 家庭安貧樂道를 본받아야 할 거울로 提示했다.

 

大家族이 단란하게 무생無生을 이야기하는 立場이 된다면 이것이 千古에 으뜸가는 家庭의 즐거움이니라.”

 

龐老波가 남긴 이런 禪話가 있다.

 

龐老婆를 올리려고 어느 날 녹문사를 찾아갔다. 擔當 僧侶는 무슨 回向이냐고 물었다. 龐老婆는 머리에 꽂은 빗을 뽑아서 쪽머리 뒤쪽으로 꽂고는 이것으로 回向은 끝났소.”라며 되돌아 나가버렸다.

 

話頭로는 방노파회향龐老婆回向이라 한다.

녹문사는 바로 龐居士 一家族隱居해 사는 녹문산에 있는 절이다. 녹문산은 後漢의 방덕공이라는 사람이 隱居한 곳으로 有名하다. 現在는 절은 없다. 원래 龐居士가 자리 잡은 양번(옛날 양양과 번양을 통합한 시)三國志舞臺로 은사隱士들의 傳說과 또 그들이 隱居했던 동굴, 산 등이 많다. 龐居士 一家族이 살았던 녹문산과 말년 2년여 동안 隱居龐居洞도 예부터 전해오는 有名隱居處 였다.


回向이란 부처님께 供養을 올려 얻은 功德을 남에게 돌려주는 것을 말하는데 現在는 절집에서 竣工式과 같은 意味로도 使用된다


龐老婆 回向이라는 話頭의 포인트는 빗을 옮겨 꽂은 行動言語

진정한 慈悲行에서는 베푸는 자(주는 자)와 받는 자가 따로 없다

이른바 무주상無住相 보시다


龐老波는 이와 같은 慈悲行을 행하는 回向에는 누구를 위한다는 功利主義的 打算이나 自律, 他律次元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빗의 方向만 바꾸어 꽂음으로서 慈悲行이란 단지 方向을 바꾸는 회향回向일 뿐이라고 說破한 것이다.


그는 빗의 方向만 바꾸어 꽂음으로써 回向이라는 文字意味를 멋지게 풀어 보였다

즉 어떠한 因緣도 남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무연無緣慈悲行이야말로 진짜 大慈大悲心이 라는 얘기다.


산뜻하고 감칠 맛 나는 無緣回向이다

은 이처럼 빗 한번 옮겨 꽂는 行動에도 엄청난 法問含蓄시킨다

結果的으로 世俗的齋供養 장사나 하고 있는 녹문사 중한테 따끔한 한 소식을 가르쳐준 것이다.


龐居士 家族은 집안에서의 日常生活 中에도 서로 법거량을 하며 살았다. 말하자면 家庭生活 自體가 한 마음으로 佛道를 닦는 화기애애和氣靄靄參禪이요 修行이었다고 할까.

 

龐居士가 하루는 禪靜에 들어 있다가 말했다

, 어렵구나 어려워! 열섬이나 되는 참깨를 나무 위에다 널어놓듯이!” 


아내 龐老波가 이 말을 듣고는 ! 쉽구나 쉬워! 寢臺를 내려서서 땅을 밟듯이!” 


옆에 있던 靈照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려울 것도 없고, 쉬울 것도 없구나. 마치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는 것 같을 뿐이네.” 


禪話話頭로는 행로난行路難이라 한다

원래 行路難6祖時代 이래로 널리 불려온 民謠의 하나다.

 

龐居士의 말은 佛法光明一切 存在(개개인)에 비추어 道人이 되도록 하는 衆生諸道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龐老婆는 그렇게 놓은 觀念的 以上에만 기울지 말고 땅이 받쳐주는 大地 위에서 살고 있는 衆生이 바로 부처니 本來의 마음자리만 찾으면 衆生佛性은 쉽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靈照衆生과 부처를 區分하는 分別心撲殺 냄으로서 龐居士 夫婦의 쉽고 어렵다는 二分法的對立一擧에 떨쳐버린다. 가장 禪理에 맞는 말이다.


[禪門念頌]은 세 사람을 將棋板比喩하며 龐居士를 졸, 龐老婆는 마상馬象, 靈照는 차포車包라고 평했다. 靈照가 가장 優秀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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