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당진뉴스의 기사를 허락없이 퍼 왔어요.
용서해 주시고요.
다른 악의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요즘에 합덕방죽에 대한 기사가 많아서 살피던 중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있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저도 합덕방죽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만큼 연구위원님같은 지식은 없지만 연호를 사랑하는 마음은 뒤지 않습니다....
연호 날기를 바랍니다. 고통없이...................
그럼 양해해 주신줄 믿고 당진뉴스의 3꼭지 기사를 인용합니다.
특별기고 합덕경제=합덕방죽
합덕제 원형보존 … 국가지정 급선무[2006-03-21 오전 10:1
합덕 제일 연꽃 축제 관광지화
합덕랜드 건설로 합덕경제 되살리자
홍 석 표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
(사)내포문화연구원장)
당진군 합덕읍 성동리 옛 합덕제(合德堤:합덕방죽, 합덕지 合德池, 연호 蓮湖)는 후백제의 건국자 견훤(892∼935)이 고려 태조 왕건(918∼943) 군대와 전투시 군마(軍馬) 음용수(飮用水)로 쌉사리방죽(白米堤)과 같은 시기에 판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제언(저수지)이다.
옛부터 내포지방 사람들은 「합덕방죽」 또는 「연호」로 널리 불러왔고 가장 유명한 「용경(龍耕:용갈이)」현상으로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온 저수지였다. 아마도 700∼800년전 초근목피 草根木皮로 겨우겨우 생명을 이어가던 절대빈곤시대에 풍년과 흉년을 예보(豫報)하던 것이 용경으로, 음력 정원 보름날 저수지 제방에서 가까운 거리에 용경이 나타나면 흉년이고 먼 거리에 나타나면 풍년의 예보였는데 내포지방과 옛 공주목 관내 지방 사람들까지도 정월 보름 이후 장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합덕방죽 용경현상이 풍년이면 안심하고, 흉년이면 대경실색 근심스런 표정을 짓고 살던 저수지였다. 또한 그 넓은 저수지에 연꽃이 만발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였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면 반드시 염라대왕의 첫 질문이 「너 저 유명한 합덕방죽에 가 봤느냐?」고 묻는데 그때 「예 가 봤습니다」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못 가 봤습니다.」하면 「이 놈아 한평생 무엇하고 그 유명한 합덕방죽도 못 가 봤느냐?」고 크게 꾸지람을 했다는 제언(저수지)이 이 합덕방죽이었다. 저수지 면적 175정보(㏊), 제방길이 1,771m, 저수지 둘레 8∼9㎞, 관개(몽리)면적 726정보(㏊), 관개마을수 6동(洞), 수문 9로 이미 조선시대 전북 김제의 벽골제, 황해도 연안의 남대지와 함께 3대 제언(저수지)으로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우리 당진군의 자랑스런 문화유적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70호로 지정(1989.4.20)된 역사 깊은 문화유산이다.
그후 예당저수지 농업용수가 이 연호 관개지역까지 보급되므로 1964년 이 방죽은 폐지(廢池)되고 그 뒤 이 저수지는 모두 논으로 변하고 더구나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으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필자는 지난 3일 이 합덕방죽 제방을 가로지르는 4차선 도로공사 문제로 충남문화재위원회 회의가 합덕읍사무소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현지에 갔었다.
회의 끝나기를 무려 3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그 결과를 조금 알 수 있었다.
대기 중 읍장실에서 손인옥 읍장, 임홍빈 읍 개발위원장 등 성동리·대호리 주민 몇 명과 대화를 나눴는데 도로를 가로지르지 않고 대호리쪽으로 우회(迂廻)하여 신례원 방향으로 갈려고 했는데 주민들의 반발로 인하여 서해대교처럼 교량을 놓아 연호제방을 넘어가는식으로 요청한다하였고 그 다리 길이는 장거리일 것이라 하여 그런 것인가 했다.
그후 충남문화재 위원과 전화통화로 대략적 내용을 문의했더니 내용은 전혀 달랐다.
즉 이미 4차선 도로가 합덕제를 횡단하게 되는 문제를 놓고 지난해 11월 27일 충청남도 문화재위원회에 부의되어 4차선 도로는 합덕읍 서쪽 대호리·성동리 방향으로 우회하여 건설하기로 위원회 의결로 완결되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현장을 관찰하고 3일 합덕읍사무소에서 충남문화재위원회 회의를 열어 이미 4개월전에 결정된 것을 뒤엎고 재심의 했는데 재심의 요청은 국토관리청에서 한 것이고 이날 대다수 위원들은 횡단교량 건설로 의견이 180도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내용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위원 자신들이 심의 의결한 것을 어떤 기관에서 재심 요청한다고 결정된 것을 번복한다면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원칙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며 주민들이 반발한다는 이른바 교통사고 다발(多發)이란 이유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면 간단히 해결될 것이고 또한 마을이 갈라진다는 것도 역시 해소방안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 반드시 교통사고 다발 시설, 마을 분할방안만 있는 것인가?
필자는 이미 1993년 「내포문화(內浦文化)」제5호(당진향토문화 연구소발간)에 「합덕방죽에 대한 종합적 고찰」이란 논문을 통하여 그간 600여년 동안의 모든 문헌 특히 독립운동가 홍병철 선생의 「반도사화와 낙토만주」(1943년)에 게재된 논문 「후백제왕 견훤과 합덕연호」, 국립부여박물관장 홍사준 선생의 「삼국시대의 관개용지(用池)에 대하여」란 논문내용 모두를 소개하였다.
필자는 이미 1993년부터 현재까지 이 「한국 3대 저수지」의 하나인 이 유명한 문화유적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염라대왕까지 알게 됐다는 이 연호를 한국의 관광지 나아가서는 세계의 관광지로 조성할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서면으로, 강의 때마다 구두로 주장해 왔었다.
그리하여 1995년 김낙성 군수에게 충남도비 100억원을 끌어 올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 결과 30억원을 가져왔고 군비는 자동으로 30억이 서게되어 현재 60억원의 복원예산이 매년 서서히 집행되어 오고 있다.
현재 제방호안(護岸)공사로 내벽 석축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목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이 GNP 15000$이상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를 초월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굴뚝없는 산업 즉 관광사업으로 풍요를 누려야 할 것이다.
이미 4년전 내포문화권 특정사업으로 당진군을 통하여 합덕방죽 복원예산 300억원을 요청하여 그 예산이 많이 감액되었으나 10개년 계획에 이미 포함되었음이 신문지상에 발표된지 오래다.
삽교천방조제 준공과 서해대교 개통으로 합덕경제가 불황이므로 필자는 이미 13년전부터 그 해결책으로 합덕방죽을 복원(물론 175㏊ 전체면적을 복원하자는 것은 아니고 우선 수만평 정도)하여 연꽃이 만발하게 하고 대전리 쌉사리방죽(백미제)과 함께 국내외에 홍보하여 우수한 관광지로 개발할 것을 군·도와 주민 모두에게 제의하며 주장하는 바이다.
이미 작년 10월 26일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이 개관되어 바로 합덕방죽 옆에 많은 관람객이 쇄도할 것이고 그 앞에 옛날같이 연꽃이 몇만평을 뒤덮게 하고 대호리·성동리·합덕리 등 이 연호 주위 10만∼20만평 부지에 에버랜드나 서울랜드처럼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그러한 머물고 가는 관광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부정관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뜬구름 잡는 헛소리냐?고도 할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군비, 도비, 국비 모두 총력 투자해야하고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민자(民資)를 유치해도 가능한 사업이다. 더구나 이미 합덕산업단지 조성을 당진군에서 발표했으며 합덕·우강은 천주교 성지의 지역이므로 국내외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로서도, 해나루쌀의 근원지(본거지)임도 크게 부각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근시안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합덕방죽을 국가지정 사적(史蹟) 제○○호로 지정 받고 거군적 거도적 관광지로 조성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도로를 우회하면 예산이 200∼300억이 추가 소요되더라도 합덕경제를 살려내야 하고 그 대책은 이 천혜의 여건을 살리는데 있으니 합덕읍민, 나아가서는 당진군민과 충남 문화재위원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바이다.
※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주간 당진뉴스운영자
합덕제, 우회도로 결정 번복! [2006-03-15 오전 10:48
향토사학자들 반발로 대립 양상
지난 3일 합덕읍사무소 읍장실에서 열린 충청남도 문화재 심의위원회의 합덕제 직선화 결정에 대해 향토사학자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또 문화재 심의위원회 또한 비 공개로 진행돼 향토사학자들이 참관할 수 없는 가운데 결정한 것은 석연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날 문화재 심의위원으로 참석했던 한밭대 심정보 교수는 " 읍사무소 밖에서 합덕주민들이 시위를 하는 분위기속에서 문화재위원들의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심의위원들은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다고 생각해 결국 문화재 보존 가치보다는 주민들의 반대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도로공사측에서 지난 심의위원회의 결론을 지키지 않고 합덕제를 관통시키기 위해 도로를 높여야 한다고 억지를 펴고 사고가 다발한다느니, 마을이 버리느니 하며 주민들을 부추긴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또한 "현재 공사업체 현장소장이 합덕읍 성동리 출신으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마을 사람들을 동원 직선화를 주장하며 사업을 진행시키려는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 교수는 "합덕제는 벽골제, 남대지 등과 같이 우리나라 3대 저수지로 현재 완벽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며 국가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지로 국가사적으로 지정 된다면 수백억씩 국가에서 예산이 지원되어 면천읍성과 왜목 등지와 연계된 관광산업 벨트로 묶어 체험 학습 등 합덕 아니 당진에 엄청난 유익과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반면 주민들은 심의의원회의 의결을 크게 반기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2006-03-21 오전 10:0
합덕방죽 관통도로 직선화 ‘향토사학자들 반발’
향토사학자-한번 훼손된 문화재 되돌릴 수 없어
지역주민-문화재 훼손 최소화 새로운 명소 될 것
충남도문화재위원회의 합덕방죽 관통도로 직선화 결정에 대해 향토사학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민속지리학박사 이인화씨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합덕방죽을 관통시키기 위해 사고가 다발한다느니, 마을을 버리느니 하며 공사업체 함모 소장을 통해 주민들을 부추기며 마을 사람들을 동원 직선화를 주장해 결국 문화재를 훼손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현재 공사업체 현장소장이 합덕읍 성동리 출신으로 사업을 진행시키려고 주민들을 회유하는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인화 박사는 또 “심정보 교수의 주장처럼 현재 완벽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인 합덕방죽은 국가사적으로 지정 된다면 정부예산 지원과 함께 합덕수리 박물관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 면천읍성 등지와 연계된 관광산업을 통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덕방죽은 주민들의 것도 아니며 당진군과 충남도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가 향유해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한번 훼손된 문화 유산은 되돌릴 수 없어 이번 결정은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박사는 끝으로 “행정의 관계자 또한 문화재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개발 방식을 택해야 한다."며 “상황논리만 내세우는 행정 편의주의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합덕읍 개발위원회 임홍빈위원장은 “이번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 했을 뿐 아니라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다."며 “공사관계자의 로비의혹설과 주민 동원설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 무근이며 공사관계자의 의견에 대해 주민들이 합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합덕방죽을 관통하는 도로는 교각을 세워 방죽 위로 지나가게 설계 됐으며 합덕방죽과 조화롭게 설계하고 인근을 담수해 공원을 조성한다면 새로운 관광의 명소로 자리 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다 끝난 일을 자꾸 공론화 한다는 것은 행정력의 낭비를 가져 올수 있으며 합덕방죽 수키로미터 전방부터 우회도로를 설계한다 해도 대호리 마을이 둘로 나뉘는 것은 물론 200억원이 넘는 예산낭비만을 초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충남도청 문화재예술과 관계자는 “마을 주민과 문화제 훼손을 최소화 하기 위한 고심끝에 여러가지 조건을 붙여 결국 직선화 결정을 내렸다"면서 “문화재위원 대부분이 도로로서의 기능과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중점을 둔 결정으로 국토관리청에 최소한의 2가지 안의 설계도를 요구 했으며 소위원회를 열어 다시 심의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