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시국 선언 때문에 교육계가 혼란스럽습니다. 해임 10명에 정직 78명 그리고 선언에 참여한 교사 전원 17,000여명 에게 경고와 주의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전교조는 2차 시국선언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젊은 교사들이 당연히 그 시국선언에 동참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언이 아이들을 살리는 선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조나선 코졸이 쓴 책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젊은 교사 뿐 아니라 중견교사들도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금 교사들이 선택받고 있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 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시장화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한국정부에선도 미국과 같은 수순을 밟아 가고 있는 교육현실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책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그 아이는 질문이 있어 손을 든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자기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랐던 것이죠! -초등 1학년들은 자기의 존재를 이렇게 표시합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일년에 한번씩 교실에 와서 하루 종일 학생들을 대하면서 선생님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이지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혼돈과 무질서를 아이들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교사를 신뢰합니다.
⊙그저 제가 잘 알고 좋아하여 저 자신이 정말 신나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가르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무섭게 시작하고, 정해진 교육 과정에 충실히 따르라’
초임교사들이 흔히 이런 충고를 듣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최악의 충고입니다. 어린이와 교사 사이에 신뢰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교사에게 제공된 읽기 프로그램이나 사회 교과서의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교육과정과 규칙 규준목록과 외부에서 정한 교육 방법 등이 아무리 훌륭하고 현명해 보여도 교사와 학생 사이의 공감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교육 관료들이 흔히 하는 말
‘학부모가 교사를 뵈러 올라와야 합니다. 선생님이 학부모를 찾아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개별로 학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위신을 잃게 되는 일입니다. 라고 말하는 관리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학부모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 하는 말입니다.
⊙고민하는 교사를 위해 교장이 격려전화를 하는 것은 교육을 바로세우는 과정입니다. -이런 교장 있을까요?
⊙수업목표를 정한 일은 분명 오랫동안 존중되어온 관습입니다. 제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수많은 학교에고 문제가 되는 것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너무 혹독하고 가차 없이 목표 추구가 강요된다는 것과 주에서 수업목표가 지시되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목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아이는 그리고 와 하지만을 거듭 말해가며 처음에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잊어버린 채 끝도 없이 문장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아이에 관한 숨겨진 비밀 한 자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훌륭한 교사는 그 순간 알게 된 숨겨진 비밀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아이를 다시 학급활동으로 이끕니다.
⊙말을 잘 하지 않거나 주위의 어떤 일에도 무관심한 아이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에게 자신은 중요한 존재가 아니며 교사를 믿으면 배신감과 실망감만 맛보게 되리라는 뿌리 깊은 불신을 걷어내기 위해 우리가 시간을 투자하고 독창성을 발휘한다면 우리역시 많은 흥미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신뢰감과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면 아이들 대다수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줄 것입니다.
⊙교사는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투쟁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공식규정집에 뭐라고 적혔든 교육은 결코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말하거나 글로 써도 좋다는 가르칩니다.
⊙교육계의 은어공장은 아주 바쁜 곳이어서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본질적인 의미가 결여된 새로운 단어와 구를 계속 양산할 것입니다. (예 수행능력에 근거한,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전략을 짜다, 개조하다, 구안하다, 적용하다, 등)
⊙“저는 아이들을 많은 것들이 흥미롭고 새로운 그 나이에 서둘러 몰아내고 싶지 않아요.”
⊙예술적 감각과 창의성, 상상력 등이 심하게 공격을 받는 시기에 교사들이 이런 것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삼 년 전 미국 교육부의 어느 고위 관료는 정부의 목표는 ‘전국적인 읽기 교육의 골간을 예술에서 과학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책은 과학보다 예술과 더 깊은 연관이 있으며, 아이들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물리학이나 기하학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소 다른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믿는 선생님들에게 이 선언은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준비시키기 위한 추가 시간을 얻기 위해 몇몇 도시 지역들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아이들에게서 휴식 시간을 빼앗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사용합니다. 예컨대 애틀랜타에서는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에 학생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학교를 지을 때 계획적으로 운동장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중 몇몇 지역에서는 유치원 과정의 아이들에게 더는 낮잠시간을 주지 않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씁니다. 교사들은 이렇게 얻은 30분에서 1시간을 아이들에게 시험을 준비하게 하는 데 사용합니다.
⊙뉴욕시의 어느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이 제게 말씀하셨듯이 “오로지 중요한 것은 시험에 통과하는 것뿐”.....
⊙도심의 아이들은 생각 없이 묵종하도록 교육받습니다. 이미 1995년부터 뉴욕 같은 도시들에서 시행되어 왔던 이런 관행은 ‘한 아이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NCLB법)는 연방법 통과의 전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나 “모든 아이들이 성취할 수 있다!”등과 같은 이 모든 과대 선전과 슬로건, 그리고 마치 늦은 밤 TV에서 신비의 체중감량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사람들처럼 과장 광고를 해가며 기계적인 훈련을 통한 교수법을 부풀려 허풍을 떨며 몇 년을 지내고 보니 12학년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의 평균적 읽기 능력은 보통의 7학년 백인 학생 수준밖에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교육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시험을 통해서는 읽기나 쓰기나 그 외의 기본적인 기능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오로지 노력하는 좋은 교사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교사들에게 ‘전문가’의 어휘를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주체성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들의 지성을 존중할 때에만 교사는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교사는 이런 미친 짓에 반대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교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고부담시험(일제고사)은 기껏해야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고약한 게임일 뿐이며, 학생들의 지성과 인격, 그리고 잠재력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학생들을 만난적도 없고 교육자도 아닌 2천-4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험 성적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적표의 숫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러지 못한다면 교사는 교실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사가 무능력하고 불안정한 윗분들의 터무니없는 명령에 비굴하게 항복한다면 이런 태도는 아이들에게 전염될 테니까요. 이런 습관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도록 그냥 묵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투자 금융회사의 투자 분석가들이 공립학교의 민영화로 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설명해 놓았더군요. 이 분석가의 말에 따르면 “교육산업은, 한때 공적 통제를 받았으나 자발적으로 개방하거나 사기업에 문호를 개방하도록 강요된 여러 분야 가운데 마지막 남은 미개척 분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교육산업은 1970년대에 민영화된 의료 서비스 이래 가장 큰 투자 기회입니다.”
⊙그들은 교실에 몹시 필요하지만 부족한 교육 자금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이 ‘한 아이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NCLB)’는 지침을 지키기 위해 사설 기관을 고용하여 시험 준비를 시키는 데 유용된다고 비판합니다. 또 일부는 수많은 차터스쿨과 점점 많은 수의 도심부 공립학교들이 사기업에 의해 운영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이런 경향들이 공교육을 전부 민영화하기 위한 조직적이고 자금력 있는 장기 계획의 첫 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교사의 임무는 현재 교사들이 생각하듯 소명이 아니라 기업의 일개직원의 역할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학생들은 더는 ‘우리가 가르치고 잘 알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아닌 우리의 ‘고객’ 또는 ‘의뢰인’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자는 의견에 결국 입법부는 마지못해 이런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클래스 사이즈’ 라는 말의 의미를 교실당 학생수라기보다 그 교실의 학생 대 교사의 비율이라고 재정의 되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면 학교는 한 교실에 배치하는 교사의 수를 두 배 또는 세 배로 늘려서 한 교실에 소방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 인원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왜곡도 일삼고 있습니다. 서굿 마셜 맹세에는 “나는 주의를 기울여 듣고 지시에 잘 따를 것입니다.” “모든 일은 나한테 달렸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인종 분리 정책을 폐지하려고 노력한 것은 생략하고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정부를 원망하지 말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 합니다.
⊙한국 교과부가 추구하는 마이스터고와 관련하여 미국에서는 여러 도시의 직업학교에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은 이른바 ‘보건직업’ 훈련을 받습니다. 이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해 심장 전문의나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과 요양소에서 보수도 적고 낮은 수준의 직업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의 공고나 농고의 학교수를 보면 시골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마이스터교를 만들어 이름만 거창하게 바꿀 뿐 시골 학생들의 직업 선택을 제한하는 경우가 됩니다.
⊙그 학교들의 이름은 미국에서는 국회의원 존 루이스가 말했듯이 ‘유색인종을 위한 직업학교’ 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교사가 용납할 수 없는 관행을 분명하고 직접적인 말로 비난 할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그 결과 해고되거나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면, 교사는 이런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을 기회로 잡아 분별 있는 미국인이라면 충격과 분노를 느낄 파괴적인 교육방침을 지적하고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상황에 처한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교사들은 교직에 들어서기 전에는 예기치 못했던 책임을 떠안아야 합니다. 이 책임들 가운데 하나는 , 제 생각입니다만,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교사로서 직업윤리’로 간주되는 것들을 기꺼이 버리고, 아무리 수줍고 자기주장에 서투르더라도 정의를 위해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투사로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교육의 영혼을 지키려는 싸움은 시작되었고, 이들은 마지막까지 그것을 지켜내야 할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젊은 교사들이나 교직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만 한다면 그것은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즐겁게 채울 수 있는 권리를 지켜내려고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어렵고 큰 과제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희망에 부푼 젊은 교사들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다정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으십시오.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비록 어리석은 짓처럼 보이더라도 아름답고 신나는 추억을 많이 만드십시오. 아이들에게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애벌레, 달팽이 같은 흥미로운 생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아이들을 독서용 깔개에 모여 앉게 한 후 책속의 보물을 아이들에게 느긋하게 펼쳐 주시고 고학년이 되어 쓸데없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아이들이 문장 반복 연습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고, 하루에 적어도 몇 시간은 아이들의 의자에 앉아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필요할 때에는 정당한 화와 힘찬 비난을 마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은 거의 모른 채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교육체제에서 무엇이 효율적인지 안다고 자신하는 전문가들의 용어는 쓰지 말도록 하시고, 영혼을 파괴하는 교육관행에 초연하도록 하십시오.
전교조 시국 선언 때문에 교육계가 혼란스럽습니다. 해임 10명에 정직 78명 그리고 선언에 참여한 교사 전원 17,000여명 에게 경고와 주의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전교조는 2차 시국선언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젊은 교사들이 당연히 그 시국선언에 동참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언이 아이들을 살리는 선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조나선 코졸이 쓴 책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젊은 교사 뿐 아니라 중견교사들도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금 교사들이 선택받고 있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 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시장화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한국정부에선도 미국과 같은 수순을 밟아 가고 있는 교육현실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책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그 아이는 질문이 있어 손을 든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자기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랐던 것이죠! -초등 1학년들은 자기의 존재를 이렇게 표시합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일년에 한번씩 교실에 와서 하루 종일 학생들을 대하면서 선생님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이지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혼돈과 무질서를 아이들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교사를 신뢰합니다.
⊙그저 제가 잘 알고 좋아하여 저 자신이 정말 신나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가르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무섭게 시작하고, 정해진 교육 과정에 충실히 따르라’
초임교사들이 흔히 이런 충고를 듣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최악의 충고입니다. 어린이와 교사 사이에 신뢰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교사에게 제공된 읽기 프로그램이나 사회 교과서의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교육과정과 규칙 규준목록과 외부에서 정한 교육 방법 등이 아무리 훌륭하고 현명해 보여도 교사와 학생 사이의 공감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교육 관료들이 흔히 하는 말
‘학부모가 교사를 뵈러 올라와야 합니다. 선생님이 학부모를 찾아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개별로 학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위신을 잃게 되는 일입니다. 라고 말하는 관리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학부모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 하는 말입니다.
⊙고민하는 교사를 위해 교장이 격려전화를 하는 것은 교육을 바로세우는 과정입니다. -이런 교장 있을까요?
⊙수업목표를 정한 일은 분명 오랫동안 존중되어온 관습입니다. 제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수많은 학교에고 문제가 되는 것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너무 혹독하고 가차 없이 목표 추구가 강요된다는 것과 주에서 수업목표가 지시되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목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아이는 그리고 와 하지만을 거듭 말해가며 처음에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잊어버린 채 끝도 없이 문장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아이에 관한 숨겨진 비밀 한 자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훌륭한 교사는 그 순간 알게 된 숨겨진 비밀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아이를 다시 학급활동으로 이끕니다.
⊙말을 잘 하지 않거나 주위의 어떤 일에도 무관심한 아이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에게 자신은 중요한 존재가 아니며 교사를 믿으면 배신감과 실망감만 맛보게 되리라는 뿌리 깊은 불신을 걷어내기 위해 우리가 시간을 투자하고 독창성을 발휘한다면 우리역시 많은 흥미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신뢰감과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면 아이들 대다수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줄 것입니다.
⊙교사는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투쟁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공식규정집에 뭐라고 적혔든 교육은 결코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말하거나 글로 써도 좋다는 가르칩니다.
⊙교육계의 은어공장은 아주 바쁜 곳이어서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본질적인 의미가 결여된 새로운 단어와 구를 계속 양산할 것입니다. (예 수행능력에 근거한,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전략을 짜다, 개조하다, 구안하다, 적용하다, 등)
⊙“저는 아이들을 많은 것들이 흥미롭고 새로운 그 나이에 서둘러 몰아내고 싶지 않아요.”
⊙예술적 감각과 창의성, 상상력 등이 심하게 공격을 받는 시기에 교사들이 이런 것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삼 년 전 미국 교육부의 어느 고위 관료는 정부의 목표는 ‘전국적인 읽기 교육의 골간을 예술에서 과학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책은 과학보다 예술과 더 깊은 연관이 있으며, 아이들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물리학이나 기하학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소 다른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믿는 선생님들에게 이 선언은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준비시키기 위한 추가 시간을 얻기 위해 몇몇 도시 지역들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아이들에게서 휴식 시간을 빼앗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사용합니다. 예컨대 애틀랜타에서는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에 학생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학교를 지을 때 계획적으로 운동장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중 몇몇 지역에서는 유치원 과정의 아이들에게 더는 낮잠시간을 주지 않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씁니다. 교사들은 이렇게 얻은 30분에서 1시간을 아이들에게 시험을 준비하게 하는 데 사용합니다.
⊙뉴욕시의 어느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이 제게 말씀하셨듯이 “오로지 중요한 것은 시험에 통과하는 것뿐”.....
⊙도심의 아이들은 생각 없이 묵종하도록 교육받습니다. 이미 1995년부터 뉴욕 같은 도시들에서 시행되어 왔던 이런 관행은 ‘한 아이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NCLB법)는 연방법 통과의 전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나 “모든 아이들이 성취할 수 있다!”등과 같은 이 모든 과대 선전과 슬로건, 그리고 마치 늦은 밤 TV에서 신비의 체중감량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사람들처럼 과장 광고를 해가며 기계적인 훈련을 통한 교수법을 부풀려 허풍을 떨며 몇 년을 지내고 보니 12학년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의 평균적 읽기 능력은 보통의 7학년 백인 학생 수준밖에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교육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시험을 통해서는 읽기나 쓰기나 그 외의 기본적인 기능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오로지 노력하는 좋은 교사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교사들에게 ‘전문가’의 어휘를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주체성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들의 지성을 존중할 때에만 교사는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교사는 이런 미친 짓에 반대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교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고부담시험(일제고사)은 기껏해야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고약한 게임일 뿐이며, 학생들의 지성과 인격, 그리고 잠재력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학생들을 만난적도 없고 교육자도 아닌 2천-4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험 성적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적표의 숫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러지 못한다면 교사는 교실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사가 무능력하고 불안정한 윗분들의 터무니없는 명령에 비굴하게 항복한다면 이런 태도는 아이들에게 전염될 테니까요. 이런 습관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도록 그냥 묵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투자 금융회사의 투자 분석가들이 공립학교의 민영화로 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설명해 놓았더군요. 이 분석가의 말에 따르면 “교육산업은, 한때 공적 통제를 받았으나 자발적으로 개방하거나 사기업에 문호를 개방하도록 강요된 여러 분야 가운데 마지막 남은 미개척 분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교육산업은 1970년대에 민영화된 의료 서비스 이래 가장 큰 투자 기회입니다.”
⊙그들은 교실에 몹시 필요하지만 부족한 교육 자금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이 ‘한 아이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NCLB)’는 지침을 지키기 위해 사설 기관을 고용하여 시험 준비를 시키는 데 유용된다고 비판합니다. 또 일부는 수많은 차터스쿨과 점점 많은 수의 도심부 공립학교들이 사기업에 의해 운영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이런 경향들이 공교육을 전부 민영화하기 위한 조직적이고 자금력 있는 장기 계획의 첫 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교사의 임무는 현재 교사들이 생각하듯 소명이 아니라 기업의 일개직원의 역할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학생들은 더는 ‘우리가 가르치고 잘 알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아닌 우리의 ‘고객’ 또는 ‘의뢰인’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자는 의견에 결국 입법부는 마지못해 이런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클래스 사이즈’ 라는 말의 의미를 교실당 학생수라기보다 그 교실의 학생 대 교사의 비율이라고 재정의 되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면 학교는 한 교실에 배치하는 교사의 수를 두 배 또는 세 배로 늘려서 한 교실에 소방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 인원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왜곡도 일삼고 있습니다. 서굿 마셜 맹세에는 “나는 주의를 기울여 듣고 지시에 잘 따를 것입니다.” “모든 일은 나한테 달렸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인종 분리 정책을 폐지하려고 노력한 것은 생략하고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정부를 원망하지 말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 합니다.
⊙한국 교과부가 추구하는 마이스터고와 관련하여 미국에서는 여러 도시의 직업학교에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은 이른바 ‘보건직업’ 훈련을 받습니다. 이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해 심장 전문의나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과 요양소에서 보수도 적고 낮은 수준의 직업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의 공고나 농고의 학교수를 보면 시골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마이스터교를 만들어 이름만 거창하게 바꿀 뿐 시골 학생들의 직업 선택을 제한하는 경우가 됩니다.
⊙그 학교들의 이름은 미국에서는 국회의원 존 루이스가 말했듯이 ‘유색인종을 위한 직업학교’ 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교사가 용납할 수 없는 관행을 분명하고 직접적인 말로 비난 할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그 결과 해고되거나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면, 교사는 이런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을 기회로 잡아 분별 있는 미국인이라면 충격과 분노를 느낄 파괴적인 교육방침을 지적하고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상황에 처한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교사들은 교직에 들어서기 전에는 예기치 못했던 책임을 떠안아야 합니다. 이 책임들 가운데 하나는 , 제 생각입니다만,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교사로서 직업윤리’로 간주되는 것들을 기꺼이 버리고, 아무리 수줍고 자기주장에 서투르더라도 정의를 위해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투사로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교육의 영혼을 지키려는 싸움은 시작되었고, 이들은 마지막까지 그것을 지켜내야 할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젊은 교사들이나 교직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만 한다면 그것은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즐겁게 채울 수 있는 권리를 지켜내려고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어렵고 큰 과제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희망에 부푼 젊은 교사들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다정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으십시오.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비록 어리석은 짓처럼 보이더라도 아름답고 신나는 추억을 많이 만드십시오. 아이들에게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애벌레, 달팽이 같은 흥미로운 생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아이들을 독서용 깔개에 모여 앉게 한 후 책속의 보물을 아이들에게 느긋하게 펼쳐 주시고 고학년이 되어 쓸데없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아이들이 문장 반복 연습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고, 하루에 적어도 몇 시간은 아이들의 의자에 앉아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필요할 때에는 정당한 화와 힘찬 비난을 마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은 거의 모른 채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교육체제에서 무엇이 효율적인지 안다고 자신하는 전문가들의 용어는 쓰지 말도록 하시고, 영혼을 파괴하는 교육관행에 초연하도록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