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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에세이 ③
아흔아 홉 명의 사람들
홍일표
최문자 시인
팔순의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최문자 시인이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와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을 동시에 출간한 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대부분 환갑만 지나도 뒷방 노인으로 물러나 과거의 삶이나 반추하면서 사는 것이 고작인데 최문자 시인은 아예 늙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365일 젊다. 그의 시를 보라. 갈수록 더 깊고, 더 넓어지고 있어 젊은 시인들도 긴장하게 한다. 어느 한 편도 허투루 발표하지 않는다. 감각의 탄력과 사유의 장력, 외연과 내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시적 긴장감이 놀랍다. 그에게는 잠언 투의 시를 중언부언하면서 잔명을 이어가는 노추가 없다. 후배들에게 문학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좋은 전범으로 보여주고 있다.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도 오랜 문단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펴내는 책이다. 글만 모이면 서둘러 책을 찍어내어 종이 쓰레기를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문자 시인은 그동안 한 권의 산문집도 내지 않았다. 문학에 대한 염결성과 엄정함의 결과인 것 같다. 이 또한 후배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 같다.
몇 해 전 잡지 일을 할 때 최문자 시인이 인사동에 나오셔서 밥을 사주며 격려를 해주신 적이 있다. 그 후 모 문학상 심사 자리에서 뵌 후 한동안 뵙지 못했다.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매번 좋은 시를 발표하시는 최문자 시인을 조만간 찾아뵈어야겠다.
탐조인
중랑천에서 그를 만났다.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듣고 무언가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꽃이나 나무를 촬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에게 가까이 가서 물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찍으세요?”
그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새를 찍고 있어요.”
“새요?”
꽃이나 다른 풍경을 찍는 사람은 자주 봤으나 새를 찍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을 탐조인이라고 소개했다. 새의 서식지를 찾아다니며 조류의 생태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주위에서 탐조 활동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같이 걸으면서 탐조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낮고 느린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새들은 다 예뻐요. 어치, 물떼새, 꾀꼬리, 청머리오리, 곤줄박이, 박새, 직박구리, 바위종다리, 팔색조, 세계에서 가장 예쁜 새라고 하는 흰머리오목눈이 등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관심을 갖고 보면 서울에도 굉장히 많은 새들이 살아요. 그런데 요즘에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특히 고층건물의 통유리는 새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살생 도구 같아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가뭄이 심할 때 마실 물이 없어 탈진하여 죽는 새들도 많고, 발가락이 잘려서 절뚝거리며 목숨을 이어가는 비둘기, 폭염이 계속될 때는 둥지에 있던 새끼들이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지거나 차에 치여 죽은 경우도 많아요. 겨울에는 자다가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새들도 많구요. 참새만 한 새가 겨울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야 해요. 이밖에도 새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겪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새와 인간의 경계를 좁히면 도심의 생태 환경도 좋아지고 새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것 같아요. 경계를 넘으면 세상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변한다는 메리 올리버의 말처럼요.”
그는 탐조인답게 새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은 사람이었다. 무심히 보아왔던 새들을 눈 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 저것 좀 봐요.”
월릉교를 지날 때 그가 물가 쪽을 가리켰다.
“원앙 아닌가요?”
“맞아요. 원앙입니다. 특히 왼쪽에 있는 수컷을 보면 몸 색깔이 매우 아름답죠. 중랑천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새입니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카메라에 담는 새들의 아름다움은 그가 꿈꾸는 미래 같았다. 탐조인들은 지상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굴하는 미학자일지도 모르겠다. 남산에서 팔색조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일주일 동안 찾아다닌 적도 있다는 그는 탐조의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결과보다 탐조의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도 싶었다.
“숨죽이며 새들을 관찰할 때는 아무도 본 적 없는 신비를 나 혼자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희열을 느껴요. 탐조인 만이 경험하는 행복이죠.”
박세현 시인
박세현은 우리 시단의 ‘평균적 합의’와 과도한 질서정연함을 마뜩잖게 생각하는 시인이다. 그는 끝없이 우리 시의 현재를 회의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변방의 자유인으로 어떤 범주나 부류에도 속하지 않고, 이름과 얼굴을 감추고 잠행하면서 시에 대한 나름의 진단을 화두를 던지듯 한다. 주장이나 강요가 아니고, 우리가 외면하고 살았던 부분에 대해 무심한 얼굴로 슬쩍 한 마디하고 돌아선다. 말들의 욕망이 강하면 말들이 튀기 마련이지만 그 위험을 용케 피해 가면서 써 내려간 그의 탁월한 산문집들에 담긴 깊고 노회한 사유의 흔적들을 살펴보라. 아웃파이터의 시선에 잡힌 문학의 적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근간 산문집 『시를 쓰는 일』 도 예외가 아니다. 변방의 유랑인 같은 그의 글 속에는 자칭 ‘비존재’가 끌어안고 사는 재즈풍의 고적과 ‘희비극의 행인 배역’으로서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변방에서 더욱 예리하게 빛나는 시선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들을 정확히 읽어내고 발언한다. 그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고 별 것 아니라며 겸허의 발걸음으로 슬그머니 돌아서서 저만치 혼자 걸어가고 있지만 그가 거느리고 있는 그늘의 무게는 수만 톤에 이르러 내심 놀라게 된다. 우리 시의 터무니없는 진지함과 손가락 재주로 만들어내는 기교와 난삽성을 멀리하고, 칠층석탑의 높이보다 그 주변의 공터를 추구하는 사람. 지금쯤 그는 원주의 어느 골목 주막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재즈를 옆에 앉혀놓고, 박세현스럽게 제행무상을 중얼거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북디자이너 D
그는 혼자 산다. 이혼한 아내는 일찌감치 재혼하여 잘살고 있지만 그는 10년 넘게 홀아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역술인의 점괘에 따르면 그는 스님이 될 팔자라고 했단다. 혼자 사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재혼에 대한 꿈도 접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혼자 놀기를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혼밥, 혼술이 편하여 단체 회식 등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다. 직업 또한 디자이너라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인데 출판사에서 의뢰가 오면 여러 시안을 만들어 비교 검토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출판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할 때가 많지만 한 번도 자신의 고집을 꺾은 적이 없다.
단행본 디자인을 부탁하기 위해 그를 만난 것은 지난 금요일 오후였다.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서 대동세무고로 가는 길옆에 그의 작업실이 있다. 지하인데 비교적 깔끔하고 단정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일을 끝내고 안국역 부근의 커피숍 보헤미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여지껏 어느 단체에도 가입해 본 적이 없고, 지연, 학연 등으로 엮여 있는 모임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모임에 가면 남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아 몹시 거북하다고 했다.
-그런 모임이나 단체에 가면 내가 아닌 무엇에 종속되어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저는 친인척 행사에도 아예 가지 않아요. 가족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구요.
-단체나 모임에는 각각의 규약과 절차가 있잖아요. 특히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에 맞추어 따라와야 한다는 식의 논리에는 동의할 수가 없어요. 강제하는 도덕, 윤리의식의 과잉 등도 견딜 수가 없구요. 더 이상한 것은 윤리를 강조하던 사람들이 더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우에요. 부도덕한 방식을 오히려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그들의 논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혼자 지내는 게 편해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살면 되니까요. 타인에게 제 생각을 강요할 필요도 없구요. 아까 저보고 혼자 사는 게 외롭지 않느냐고 하셨는데 저는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해요.
그와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왔다. 구레나룻을 기르고, 장발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오래 인상에 남았다. 이제 여름에 긴 머리가 덥지 않느냐는 식의 질문은 하지 말아야겠다. 배롱나무의 선홍색 꽃이 유난히 곱고 산뜻해 보였다.
일용노동자
인생, 뭐 별거 있나요. 다 거기서 거기죠. 저기 바다를 보세요. 오징어잡이 배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나요? 여기 봉포항에 올 때마다 매번 같은 생각을 해요. 살다가 가는 것도 저렇겠구나 하구요. 저같이 막일하며 사는 사람들은 크게 기대하는 게 없어요. 세 끼 밥 잘 먹고, 잘 자면 그것으로 족해요. 남들처럼 돈 많이 벌겠다는 욕심도 없고, 출세해서 유명해지겠다는 마음도 없어요. 어차피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초장에 다 접은 거죠. 지금은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편해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출타하는 시아버지 모기에게 며느리 모기가 저녁을 차려놓을까요라고 여쭈었대요. 그랬더니 시아버지 모기가 비장하게 대답하기를 “냅둬라. 좋은 놈 만나면 한 끼 배부르게 먹을 것이고, 독한 놈 만나면 비명횡사할 테니.”라고 했대요. 우리 앞날이 늘 그래요. 특히 공사장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아침에 죽어 나가는 동료들을 봐요. 우리 목숨이 모기 목숨과 다를 게 없지요. 하긴 저희만 그렇겠어요. 다른 사람들 사는 것도 비슷하겠지요. 어느 한순간 생사가 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니, 이제 그러려니 하고 살아요. 때가 되면 가는 거죠. 삶에 큰 미련이 없어요.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니었고 죽을 때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는 게 우리 인생이잖아요. 공사판에서만 30년을 굴러먹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요. 이제 이 짓도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요. 병원 들락거리는 일이 잦아지고, 공사판 인부로 불려 다니는 일도 점점 줄어드네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요. 늙으니까 슬픔도 점점 말라가요. 크게 기쁜 일도, 크게 슬픈 일도 없어요. 이파리 다 떨군 나무처럼 빈 몸으로 서 있는 것 같아요. 봉포항 쪽에 짓고 있는 아파트 공사가 끝나면 여기도 떠나야 돼요.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계속 여기 있을 테니 몇 번 더 볼 수 있겠네요. 쌍둥이네 집에서요. 그나저나 이 동네에 사는 분 맞아요?
황정산 평론가
나는 그를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평론가 황정산식 능청과 천연의 웃음이 좋다. 경직되거나 획일화되지 않은 그의 삶의 방식은 신라 와당의 미소만큼 값지다. 주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그의 유머는 난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자칭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는 그의 넉살은 얼핏 백제의 미소를 닮은 것도 같다. 나로서는 언감생심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삶의 경지다. 그는 결코 주장하거나 단언하지 않는다. 판관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뿐 어떤 기준을 세워서 미리 삶을 재단하여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자유롭고 열린 삶의 자세를 존중한다. 그는 백제인의 천연의 웃음과 여유를 가지고 몇 발자국 떨어져서 세계를 관망하며 사는 것 같다. 혹자는 희떠운 농에 반감을 갖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세계를 주유하며 현실을 향해 날리는 그의 펀치가 경쾌하여 좋다. 그의 가벼운 농과 흰 웃음은 엄숙하고 무거운 세계를 훨훨 날게 하는 힘이 있다. 그를 만나 긴 얘기를 나누어본 적 없는 내가 페이스북 토막글만 보고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조만간 ‘황정산 대흥사’를 찾아가 그의 근황을 물어봐야겠다.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 『조금 전의 심장』, 청소년 시집 『우리는 어딨지?』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 『사물어 사전』 등을 펴냈다. 제8회 지리산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시상」, 매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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