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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텔링 스크랩 (김금순) 천년고찰 부석사를 마주하며
산바라기 추천 0 조회 16 09.03.04 18: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년고찰 부석사를 마주하며

            선비촌  김금순

안녕하세요?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어르신들이라 한참 힘들게 올라가셔야 하는데 괜찮으시죠? 오시는 길목에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와 노랗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장관인 부석사,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부석사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수 있어서 반갑구요. 이렇게 먼 영주까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부석사를 소개할 문화관광해설사 김금순 입니다.

 권력도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조상들이 남겨놓고 간 문화유산은 시대가 바뀌어도 그 뿌리가 남아있는 법이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창건된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가만히 기대어 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인들의 숨결을 그대로 한번 느껴보십시다.

  여러분들이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힘겹게 산길을 오를 텐데 아마도 등에 한 줄기 땀이 흘러내릴 때쯤 일주문이 우리를 반겨 줄 겁니다.

  자! 출발...

  드디어 일주문이 보이기 시작하죠!

  일주문이란 두개의 기둥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진데서 또는 속세의 어지러운 생각을 떨치고 마음을 한데 모으라는 뜻에서 일주문이라 합니다.

  이어서 나타나는 당간지주는 사찰에 기도나 법회행사시 지주 사이에 장대를 꽂고 오방색 깃발이나 종파기를 매달던 당간을 고정해주던 지줏돌로 부석사당간지주는 끝을 공 굴려 상승감이 나타나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 간결미가 돋보입니다.

  이어서 나타나는 해탈의 관문 사천왕문,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 동, 서, 남, 북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사천왕은 속세의 어지러운 생각과 세상의 사악함을 쫓아 주려는 듯 악귀를 밟고 있죠? 와우! 어때요? 무섭지 않나요?

  여기서 잠깐!

  사천왕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요? 보시는 것처럼 부석사 사천왕은 동쪽은 지국천왕이 비파를 들고 봄이 오는 것을 노래하고 서쪽은 광목천왕이 왼손에는 여의주, 오른손에는 용을, 남쪽은 증장천왕이 칼을, 북쪽은 다문천왕이 왼손에는 보탑, 오른손엔 깃발이 휘날리는 창을 들고 사방을 지키고 있답니다.

  자 이제 정말 어르신들껜 좀 무리가 되겠지만 제일 높은 석단이 기다립니다. 조금만 힘을 냅시다.

 부석사는 일반적인 평지사찰과는 달리 산비탈을 깎아 평지를 만들었기에 석축을 쌓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 석축 역시 의상대사가 추구한 화엄세계를 엿볼 수 있는 완성된 예술품입니다. 크고 작은 제 멋대로의 돌들이 조화를 이루어 단단한 석축을 쌓아 올렸듯이 사바세계 이러 저런 인간 군상들이 자신을 낮추고 서로 맞추어 나갈 때 비로소 의상이 꿈꾸는 원융무애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숨이 턱에 차기 시작하죠? 대석단을 올라서면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그 자리에서 안양루와 무량수전 벽면사이에 인연이 닿아야만 만날 수 있는 신비의 공포불을 만날 수 있답니다. 천천히 올라서서 한숨 돌리시구요. 365일 어느 때 누구나 볼 수 있는 부처님이 아니구요. 한 여름날 오전에 가장 선명하게 잘 보이는데 어르신들은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가 봐요? 정말 오늘은 너무나 잘 보이는데요! 장엄한 무량수전 앞에서 마치 날아 갈 듯 앉아 있는 안양루 누각 처마 바로 밑 공포와 공포사이 빈 공간이  부처님 여러분이 앉아서 수행하는 구도자의 자세를 하고 있는 듯 하여 일명 공포불이라 한답니다. 어때요? 너무너무 신기하죠?  와우...감탄사 연발이시네. 정말 희한하다구요?

  조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보여 지는 신비하고 놀라운 이 현상도 누각 가까이 다가가 서까래가 드러나면서 공포와의 적당한 간격이 한여름의 빛의 굴절 효과와 산지형 가람에서 보이는 쳐다보는 각도 때문에 생겨나는 착시 현상임을 알아 차릴때면 우리 인간의 삶과 닮아 있지는 않는걸까요! 사람 간에도 어쩌면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처럼... 아무리 좋던 연인사이도 부부가 되어 너무 편해버리면 서로 단점만 보고 상대방을 탓하며 배려하는 맘이 줄잖아요. 그래서 가끔은 부부사이도 적당한 거리두기로 서로 존중하다보면 사랑이 더 두터워지겠죠! 안 그런가요?

  휴! 조금 숨 돌리셨으니까 다시 올라갑니다.

 범종루에서 만나는 법고, 목어, 운판, 범종각의 범종이 예불시간에 스님들이 두드릴 때마다 구천을 떠도는 모든 생물들의 영혼을 달래 준다는 건 많이들 아시죠? 범종루 누각 밑을 지나 막 계단이 시작되는 이 자리에서면 마치 네모액자에 담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풍경화를 볼 수 있죠.이 곳을 지나시는 여러분께는 한분도 빠짐없이 선물로 드립니다.

  어때요? 넘 근사하죠?

  자 저를 따라 범종앞에 잠깐 모일까요?

여기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는 용에 대해 잠깐 공부 좀하고 넘어가죠! 원래 구룡이 있었는데 첫째는 무거운 것을 지는 걸 좋아해서 주로 비석 밑에 있는데 거북이를 닮은 비희, 둘째는 글을 좋아하고 뿔이 없는 용인데 비석위에 있는 이문, 셋째는 울기를 좋아해서 종의 꼭지에 있는데 고래를 무서워한데서 종을 치는 당목이 고래모양이 많죠. 이름이 포뢰 랍니다. 넷째는 감옥문 지킴이 역할을 하는 폐안인데 형상은 사자모양이구요, 다섯째는 음식을 탐해서 솥뚜껑 손잡이로 도찬, 여섯째는 물을 좋아해 교각에 그려지는데 지네와 닮은 공부, 일곱째는 사람을 죽이는 걸 좋아하는 애자는 칼 손잡이에 새겨있고, 연기를 좋아해서 향로에 새긴 산예, 문 잠그는 열쇠에 그려지는 초도, 형상은 소라나 조개와 흡사하답니다. 너무 복잡하니까 다 기억은 말구요. 주로 범종에 있는 포뢰만 기억하세요. 아셨죠? 다시 복습 뭐라구요? 포뢰. 맞습니다. 맞구요.

  자! 이제 정말루 마지막 석단입니다요.

  속세의 때를 벗고 극락에 이르는 마지막 통로가 바로  안양문이거든요? 그런데 그 안양문을 향하여 곧게 뻗은 계단이 저기 보이시죠? 처음과 마지막 계단길이가 15,7cm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올라서는 마지막 석단 무량수전 앞마당-

 힘들게 올라온 거친 숨을 고를 겸 저 멀리 펼쳐진 산하를 한번 내려다보세요! 아마도 이 순간을 느껴보지 않는 이는 모르겠지요? 그 다지 높지 않은 봉황산 중턱 무량수전을 앞에 두고 끝없이 펼쳐진 크고 작은 봉우리의 장엄함과 소백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청량감을... 먼 산자락을 내려다보기에 시선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한 목수의 배려가 담긴 범종루의 지붕 선을 보면서 왜 한 건물에 앞쪽은 팔작지붕, 뒤쪽은 맞배지붕일까? 하는 의문이 말끔히 해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강릉 객사문과 더불어 배흘림기둥의 대표주자 무량수전으로 주의를 집중해 보입시다.

 무량수전 처마 밑에 걸린 현판 글씨는 홍건적 난을 피해 몽진 온 공민왕의 친필 이라는 걸 먼저 소개하구요. 이 법당은 큰 규모에 비해 넓지도 길지도 않아 안정감이 있고 단청을 칠하지 않아 고풍스러움을 나타냅니다. 676년 신라 문무왕의 명을 받고 의상대사께서 창건한 건물은 불타 없어지고 1376년 고려우왕 2년에 원응국사가 중건했으며 연대가 밝혀진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되고 고려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건물입니다. 팔작지붕으로 정면5칸, 측면3칸 기둥과 처마사이 장식인 공포가 기둥위에 하나씩 있어 주심포 양식이며 기둥과 포 사이에 굽받침이 있어 이채롭죠.  착시현상을 보완하기 위해 위, 아래보다 가운데를 볼록하게 해서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의 대표적 건물이며 무거운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기에 손색이 없고 건물의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하답니다. 어칸에서 시작된 문설주가 가장자리 퇴칸으로 가면서 점점 높아지고 안쪽에 있는 기둥인 평주보다 가장 바깥기둥인 우주를 높임으로 자칫 쳐져 보일 수 있는 건물을 한껏 기품있게 바꾸었구요. 날아오르는 새 날개 같은 지붕선은 육중한 건물의 홀가분한 상승감을 주어 건물의 조형미를 맞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은 진입하는 맞은편에 부처가 모셔지나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양산 통도사 영산전과 더불어 이 곳 부처도 서쪽에 모셔져 있는 것이 특이 하죠. 그 연유를 요약하면 첫째 부처님은 서방정토에 있으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죠. 둘째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왜구를 막아 보겠다는 호국의지의 발로에서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세 째로 건축 구조 학 상 긴 직사각형의 터가 나오기에 부처님을 정면에 모시기보다 한쪽으로 모시게 되면 빈 공간이 적어지기 때문에 공간 활용 측면에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불상위로는 닻집이 세워져 있어 화려한 장엄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상은 무량수전입니다.

  이 부석사는 원래 화엄종의 종찰로 세상을 두루 밝힌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을 세워야 했으나 삼국통일을 이룬 시기에 고구려, 백제의 유민을 통합하려는 의미와 극락을 염원하는 대중을 쉽게 인도하려는 뜻이 함께 담겨 있어 극락을 주지하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무량수전을 세웠다고 볼 수 있죠.

 법당 옆으로 조그마한 선묘각이 부석사의 창건설화를 전해주고 있는데, 바닷길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의상대사가 어느 호장집에 머물게 되면서 긴 뱃길로 지친 심신을 달래던 중 준엄하게 생긴 대사에게 맘을 빼앗긴 선묘낭자가 사랑을 고백했으나 이미 출가한 몸이라 제자로 삼기로 하였답니다. 의상의 사람됨을 알고 세세생생 단월보살로서 스님에게 소용되는 일체의 물건을 공양하기로 맹세하였고 10년을 수학하고 귀국길에 오르는 의상의 뱃길을 지켜주고자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되었다합니다. 부석사 창건 시 법당 옆에 큰 바위를 공중회전하자 터를 내어 주지 않던 이교도 인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면서 절을 짓게 되었고 뜰 부(浮),돌 석(石) 부석사라 명명하게 되었구요. 지금도 바위용이 되어 법당 마당 소조여래 좌상 밑에서 석등까지 13,7cm 길이로 부석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누워있는데 자 여기 당시 사진으로 잘 보시죠?

  마당 중앙에 소롯이 서 있는 석등은 전형적인 신라양식인 팔각기본형으로 경쾌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신라 석등의 일등으로 꼽고 있죠. 기단부의 복련은 세속의 더러움을 덮고 간주석의 팔각기둥은 스님들이 닦아야할 덕목 팔정도를 뜻하며 활짝 피어난 앙련은 부처의 세계를 바라보고 활짝 피어나 있구요. 화사창사이로 새어 나온 불빛은 극락세계를 밝혀 주는데 이 또한 모든 고통이 모여 소멸할 때 도로 통한다는 고(苦)집(集)멸(滅)도(道) 사(四)성(聖)제(蹄)를 뜻한답니다.

  소조여래좌상 시야 맞은편에 위치한 삼층석탑을 돌아 오르면 의상대사진영을 모신 조사당이 사뿐히 앉아 있죠. 조사당 처마에는 의상대사께서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고 가셨는데 비 한 방울 이슬 한 모금 안 맞고 잘 자라고 있는 신비의 나무 비선화수가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답니다. 조사당 지붕 선은 앞쪽이 겹처마, 뒤쪽은 홑처마로 되어 있고 내부에서 특이한 점은 항아리 보가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은 신라시대에는 스님들이 당나라에 공부하러 가는 일이 많았는데 그들 중 한분인 의상께서 지엄대사를 찾아 가기 전 간밤 꿈에 큰 나무가 해동에서 나서 그 지엽이 온 땅을 뒤덮고 그늘이 중국까지 뻗쳐오는 것을 보고 큰 스님이 오실 줄 알고 있었답니다. 지엄대사가 입적하기 석 달 전 선제동자가 꿈속에 나타나 혼자만 공부하지 말고 포교하라는 꿈을 세 번이나 꾸셔서 의상이 법령이 더 높으니  10년간 수학한 화엄종을 책으로 엮어보라 명했다합니다. 몇날 며칠을 써서 대승장 10권으로 엮었으나 뜻은 아름다우나 말은 오히려 옹색하다하여 활활 타는 불길 속에 넣고 부처님 뜻에 합당함이 있다면 타지 않을 것이라 기도하고 나니 7언30구 210자만 남아 바로 화엄종의 진수 화엄일승법계도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구절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두 구절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바로20, 21구절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내용을 풀어보면 이 우주공간에 비처럼 많은 보배로운 복이 내리지만 중생들은 자기의 그릇에 따라 복을 받기도 하고 못 받기도 한다는 뜻이죠. 즉 마음그릇에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그 복을 받지 못할 것이고 마음을 비운 이는 그 복을 가득 받을 것이라는 뜻으로 마음깊이 새겨 볼 말이죠?

 마무리 하는 의미로 평생을 삿갓 쓰며 방랑했던 김삿갓 시인이 머리가 백발이 되어 부석사 무량수전마당에 올라 먼 산자락을 내려다보며 읊은 시를 한 수 옮겨 보겠습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 난 곳 못 왔더니   (平生未暇畓名區)

 백발이 된 지금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白首今登安養樓)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江山似畵東南列)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있구나.      (天地如萍日夜浮)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風塵萬事忽忽馬)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 치네 (宇宙一身泛泛鳧)

 인간백세에 몇 번인가 이런 경관 보겠는가 (百年畿得看勝景)

 세월은 무정 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歲月無情老丈夫)


 우리의 인생은 잠시 왔다 가지만 삶의 자취는 오래 남는 법, 다리에 힘 있고 건강할 때 여행을 많이 다니 시구요. 저는 영주 부석사만 소개하기 아쉬워 안동의 열부 이응태 부인이 남긴 남편에게 보낸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되는 편지 몇 구절을 알려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568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뱃속에 아이를 잉태 중에 느닷없이 남편을 여의고 황망 중에 써내려간 이 편지글은 400여년의 시공을 초월하며 애잔함을 더합니다.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이 아이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 시는 건지요. 제발 꿈속에 나타나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는 애절한 편지를 보면서 부부간의 애뜻한 사랑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물질만능, 초스피드시대에 나날이 엷어지고 있는 현대사회 부부와 가족간에 사랑의 참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몇 백 년을 거슬러 올라 이런 애잔한 사랑을 꿈꾸면서 한 평생을  살아온 노부부가 다정스럽게 유유자적하며 살포시 여행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특히 남자어르신들은 평생을 가족부양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앞만 보고 달려오셨는데 남은 생을 꼭 부인과 다정히 손잡고 많은 시간 여행을 다니면 좋을 것 같네요.

장시간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내를 천천히 돌아 보시구 사진도 찍으시고 안녕히 돌아가십시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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