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여름방학 때 광주문학아카데미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당시 저는 문학특기자 제도와 백일장에 대해선 전혀 몰랐습니다. 시작은 부모님의 권유와 호기심이었지만 학원에 다니면서 점점 욕심이 생겼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글로써 완벽히 표현해내고자 하는 욕구.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열등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그 열등감이 자양분이 돼서 제가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등록 첫날, 문지원 선생님이 원생들의 작품을 봐보라고 게시판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때 본 작품이 아마 한라언니(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 08학번)의 '달'과 저보다 한살 아래인 남동생이 쓴 '미성년자 관람불가'이었을 겁니다. 낙태한 언니를 소에 빗대는 상징성, 생일날 임대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슬픈 살인. 내 나이 또래가 썼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가독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써보고 싶어요. 이렇게 멋진 글 한편을 완성해 보고 싶어요."
몇 번을 읽고, 또 읽으면서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소설 80매를 썼습니다.
사실, 소설 한편을 쓴다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내가 즐겁게 상상하면서 썼던 것들이 말도 안 돼는 허풍이 돼버릴 수도 있고, 핀트가 약간만 어긋나도 처음 구성했던 것과 완연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이제까지 10편 남짓의 단편소설을 썼지만 수정이 불가한 작품이 돼버려 버리는 경우가 일쑤였고, 처음부터 지우고 다시 쓴 소설도 태반이었습니다. 처음이라서 더 자신감이 가득 차있던 때, 저는 좌절을 경험했고 소설 한편을 다시 쓰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이것밖에 못 되는가. 왜 이게 이렇게 잘못된 걸까. 난 창의력이 부족해. 곱씹고 곱씹은 생각들이 가지치기를 해나갈 때 저는 무릎 꿇고 싶었고 이대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열등감이 가득차서 포기하고 싶을 때, 오기란 놈이 생긴 건 참 다행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좌절을 경험했기에 그 이후에 있는 백일장과 공모전에 수없이 많이 떨어져도 저는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 다음 실패를 두려워하며 긴장해야하는 법. 문학특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터놓고 고백하자면 백일장이 가장 많다는 5월에 저는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한 달에 네 번 학교를 갔을 정도로 전국을 돌며 백일장을 다녔는데, 그 모든 고생들이 다 물거품이 돼버린 격이었죠. 주변에서는 저를 한심하게 바라보았고, 저도 제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즐겁게 글을 쓰고 왔는데, 제가 썼던 글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최금진, 문지원 선생님의 독려와 전국일주를 하며 함께 글을 쓰던 문우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게 기회를 주셨고, 함께 힘듦을 나눠가진 우리 이데아 문학인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 예로 새벽 2시까지 글을 쓰고 돌아오는 차 안. 두 분 선생님께서는 제 글에 대한 문제점과 고쳐야할 부분들을 상세히 알려주시면서 저를 친딸처럼 걱정해주셨습니다. 5월 마지막 주, 동국대학교 백일장이 끝나고 울 것 같았는데 같이 올라간 친구들이 잘 될거라고, 힘을 내라고,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어찌보면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딛고 올라간다는 건 지독히도 힘든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 광주문학아카데미에 들어온 것을 천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한다는 것.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글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것. 저는 광주문학아카데미에서 글 뿐만이 아닌 그보다 소중한,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자신합니다.
고3의 6월은 수능과 비슷하다는 평가원 모의고사가 있는 달입니다. 몇백일 남았다고 생각했던 수능도 100일 가까이로 떨어지고, 수험생이라는 꼬릿표가 목을 조르던 시기였죠. 초조했습니다. 학원에서 하루 한편씩 쓰는 꽁트는 약해져가는 제 자신을 다잡는 데 참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적을 받고, 글을 고치면서 내게 부족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 한계 너머의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건 순수한 기쁨이었습니다. 수시를 두 달 앞둔 6~7월에 저는 명지대학교 고교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고2 때를 빼면 고3 때 거의 처음으로 받은 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 달 뒤 명지대학교 수시에 최종합격했습니다. 자교상 하나로 붙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자교상이 큰 힘을 실어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참고 인내하는 자에겐 복이 돌아온다는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고자 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글을 좀 쓴다고 해서, 글짓기로 상을 좀 받았다고 해서 여러분이 꿈꾸는 목표를 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금진 선생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느끼는 열등감을 글로 표출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진정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 내 안에 잠재한 열등감. 대학에 붙고 나서도 선생님께서 마지막까지 강조하셨던 열등감. 그 열등감을 글로써 풀어낼 수 있는 귀인이 될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첫댓글 소설 80편? 80매 아니야?
80매! 수정이필요해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