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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갈 4:1-7 하나님의 상속자로 입양하심 찬송: 2, 10, 548장 교독문: 요 1:1-13
성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독생자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아담의 타락을 이어받은 모든 후손 가운데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속하심을 받았다. 이 구속하심은 택함 받은 자들을 죄 없다 하시고, 또 의롭다 선언하심으로 그 신분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되었으며, 또 그들을 죽음 가운데에서 건져내셔서 새 생명을 허락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귀한 신분을 얻게 하셨다. 이 과정들이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나타난 사실들이다. 그렇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와 능력과 은혜로 된 일이다.
이 모든 역사하심은 삼위 하나님께서 계획을 세우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이 계획이 창조 된 시간 안에서 성취되어 우리에게 적용됨으로써,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예수를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리까지 나아오게 된 것이다. 이 고백은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가능한 것이며, 그렇기에 이 고백을 하는 성도들에게는 참으로 삼위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가장 복된 과정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러한 우리의 신분의 변화는 단순히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전 15:20을 보면 바울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그 이후 선택하심을 받은 모든 인생에게 이 부활이 적용됨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의 열매들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부활의 열매를 얻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열매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한다. 이 고백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 거듭나게 하심, 믿음을 갖게 하시고, 의롭다 하시는 모든 은혜에 대한 고백이 바로 이 부활의 고백 가운데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고백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이 놀라운 부활의 은총에 참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이 고백을 배우고 아는 것을 통하여 더욱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존하며 다스리는 역할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 피조세계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다스리심을 보여야 하는 사명이었다. 그러나 타락하여 이 사명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유이다. 그렇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로 천국에 들여보내시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창조의 목적을 다시 수행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요, 이 회복의 끝에 창조의 완성이 있으며, 그 완성의 자리에서 우리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담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창 2:17의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명령을 반대로 생각하면, 순종할 때 영생을 얻게 된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는 아담의 타락에서 회복되어 다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귀한 존재가 되었으며, 이 사명을 수행하는 끝에서 우리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됨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신분을 변화시켜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아들됨의 은총을 주시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상속자로 우리를 양자로 들이신다는 것이다.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양자로 입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본문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우리가 예수를 알기 전에는 율법 아래에 있었으며, 초등학문 아래에서 종 노릇하는 자였지만, 때가 차매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복음의 진리이다. 그렇다. 우리가 전에는 종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며, 이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할 수 있는 신분을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자리는 참으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자리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변화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죄인에서 아들 됨이라는 신분의 변화도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하는 귀한 존재로의 변화가 담겨 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하나님의 의롭게 하심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지막에 우리의 아들 됨에 대한 선언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 되시고, 이제 우리는 많은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것을 상속하는 자가 된 것이다. 이것을 ‘양자 됨’이라고 부른다.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법적 지위상의 변화로, 혈육의 아들과 동일한 명분을 갖는다. 즉 양자라 할지라도 상속에서 제외되지 않으며, 다른 혈육의 형제들과 같은 조건으로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 받게 된다. 이처럼 예수께서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형제가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함께 상속하여 함께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서로 함께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양자로 입양을 받은 성도가 누리는 특권이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입양을 받아 독생자와 함께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이 소망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렇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어 이 귀한 모든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성도의 현실의 삶은 어떠한가? 항상 듣는 바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한 그 어떤 특권도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삶을 평안하게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할지라도 이 삶에서 평안은 없으며, 오히려 어려운 일들이 더 일어나는 것만 같다. 이런 때 하나님의 상속자, 즉 양자로 입양이 된다는 것의 특권을 배운다 한들, 이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때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바르게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늘 물어야 할 질문이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알고 있어야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확하게 유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자.
롬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분명히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이다. 왜냐하면 이미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양자의 영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 상속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가 배운 바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야 비로소 이 상속은 완성이 될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서 철마다 열리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생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직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은 앞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현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현재의 삶에서 성도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이다.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을 상속하지 않았으며, 이제 곧 상속할 날을 소망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성도가 현실의 삶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분명한 삶의 태도이다.
다시 말하면 ‘소망함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루어질 약속을 소망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이길 힘을 허락하는 것이요, 마지막에 완성 될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인내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은 그저 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이 고백을 인정하며 따라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롬 5:3-6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환난 가운데 즐거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환난 자체는 즐거운 것이 아니다. 어느 때는 비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힘겹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비참함에도 환난 그 자체에 놓여 있다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환난이 우리로 인내하게 만들고, 이 인내는 우리를 연단케 하며 결국에는 소망으로 이어지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환난은 현실에 소망을 두도록 우리를 놓아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에 소망을 두도록 만들어 준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이 소망으로 인하여 즐거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상속자로 입양을 받은 성도의 특권인 것이다. 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은총인가!
따라서 하나님의 상속자로 입양을 받은 성도의 삶의 모습은 결국 이 소망을 꼭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상속자로 삼으셔서 하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하실 것이며, 이 누림을 위하여 현재 나의 모든 상황과 처지에서 나를 붙드셔서 나로 실족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죄와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유로이 살아가게 하셨음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할 것이며, 이러한 감사와 찬송이 우리를 상속자로 입양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드러내는 표현이 될 것이다. 이것이 성도로 부름을 받은 후, 양자로 입양이 된 이후의 삶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권면한 바울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