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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7:1-28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 찬송: 4, 35, 453장 교독문: 시 110:1-7
지금까지 히 1-6장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저자의 권면과 경고의 말씀을 들었다. 저자가 말한 권면의 핵심은 우리의 신앙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그것은 우리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현실의 삶에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사모하며 살라는 것이었다. 이 권면이 주어진 이유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현실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현실에서 예수를 믿는 믿음의 결과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다시금 이전에 가지고 있던 유대교의 신앙으로, 즉 율법을 지킴으로 복을 얻고자 하는 잘못된 관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이것을 염려하여,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면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래서 이 편지는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구원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천사보다 우월하신 제2위격의 성자 하나님으로,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낮아지셔서 우리의 구원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백한 믿음의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 약속으로 주어졌고, 성도는 현실의 삶에서 약속으로 받은 이 미래의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귀한 존재라는 보상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이 보상이 이루어질 날을 소망하며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권면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아는 것은 부족하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삼위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 가진 무게이다. 우리 구원의 모든 계획의 중심에 제2위격의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가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하여, 그리고 구원의 기쁨을 통해 바른 신앙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사실이다.
이미 앞에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2:17-18을 보면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란 설명이 나온다. 4:14-16에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는 설명이, 5:10을 보면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상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는 설명이 나오며, 마지막으로 6:20의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는 설명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삼중 사역 가운데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말하였다. 이러한 설명들을 잠깐씩 말한 것은 성도의 구원의 근거를 바로 설명하기 위하여 한 것이다. 이제 7장으로 들어와서 대제사장의 직분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5:11의 말씀 때문이다.
히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왜 멜기세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저자가 말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이 갖는 의미가 멜기세덱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멜기세덱으로부터 시작하여 저자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직분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예수님은 아론의 계열 가운데에서 나지 아니하신 대제사장이요, 둘째는 그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이 어떻게 주어졌는가에 집중하며, 히 8:1-10:18은 대제사장으로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심으로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하셨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이렇게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 믿음의 확신과 그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하여, 우리의 신앙하는 모습에서 믿는 대상이신 예수님을 밝히 알아 신앙의 부지런함과 성숙, 그리고 이 성숙함을 통해 연단을 받아 지각 있는 신앙의 삶을 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저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방식과 내용을 밝히 알게 되면 우리가 만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더욱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자가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히브리서는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상황으로 인해 믿음을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하고자 했던 안타까움에서 저자의 권면과 경고를 듣고 그 믿음을 더욱 지키도록 의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온 자리에서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고 이 믿음을 어떻게 하면 더욱 지킬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이다. 나의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가를 밝히 아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삼중 직분을 알고 있다. 이 직분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구약 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은 직분과 관련이 있다. 그 직분들은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직분이다. 왕의 직분은 십자가의 사역으로 아버지께 받은 백성들을 불러 모아 다스리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당신의 백성을 통치하신다. 선지자의 직분은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이들에게 주신 가르침과 승천하신 후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당신의 백성을 가르치시는 사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직분은 속죄와 중보의 두 가지 사역과 관련한다. 속죄 사역은 당신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친히 희생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성도들을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중보하신다.
여기에서 왕으로서, 선지자로서의 사역에 대하여는 복음서와 다른 서신서들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대제사장의 직분과 관련한 사역은 오직 히브리서에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성도는 이 편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의 직분을 통한 중보자로서의 사역에 대한 의미와 내용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신앙하는 삶에 적용하여 그 신앙을 바르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히브리서를 통해 배워야 할 내용들이다.
히브리서 7장은 멜기세덱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멜기세덱은 성경에 단 두 번 언급되어 있는데, 창 14:17-20과 시 110:4이다.
창 14:17-20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왜 히브리서 저자가 멜기세덱과 예수님을 비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멜기세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멜기세덱은 전쟁을 마친 후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영접하였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그가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히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것이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분명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영접한 사람이었지만, 우리는 멜기세덱의 삶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 그의 시작과 끝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저자는 그의 부모도, 족보도, 시작과 끝도 없이 언제나 제사장으로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렇게 언급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4-10절에서 저자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은 것에 대해 언급하며,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는 레위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다고 9절에서 말한다. 이 십일조는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십일조를 구분하여 레위인의 몫으로 주고, 또 레위인들은 그들의 십일조를 구분하여 제사장에게 돌려야 하는 의무였다(민 18:21-32). 그런데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던 레위도 그의 십일조를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에게 주었으며,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축복하였고,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제공한 것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보다 높은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는가? 먼저 생각할 것은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가 아니었다. 그는 족보가 없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럼에도 레위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았다. 이 사실은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아니한 다른 한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11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분명히 제사장은 레위 지파 아론 계열에서 나오며, 특히 대제사장은 일반적으로 아론의 장자에게로 계속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이 레위 지파에게 십일조를 받는 다른 제사장이었다. 이것은 레위 지파 계통의 제사장들의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23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히 7: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그들의 연약함과 죽음으로 인해 제사장의 수효가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유다 지파에 입양이 되셨고, 이는 율법적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없는 지파의 계보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멜기세덱과 같이 레위 지파의 계보가 아닌 다른 계보를 따라 제사장이 되셨다. 그래서 14절에서 저자는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라고 말한 것이고, 아브라함 때에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라고 15절에서 한 번 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렇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연약함에 따라 그들의 제사장 직분을 온전히, 그리고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레위 지파의 계보가 아닌 다른 계보를 따라 오신 제사장은 이러한 연약함이 없으시고 또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16) 되신 제사장으로서, 시 110:4의 말씀을 히 7:17에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받으셨음을 알려주고 있다.
더욱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계보를 따라 자연적으로 제사장으로 임명이 된다. 하지만 20-22절을 보면 예수님은 여호와의 맹세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 이는 분명히 인간이 세운 제자상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성자 하나님으로 하여금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이 땅에 보내셨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영원토록 계시며, 그 제사장 직분은 갈리지 아니한다(24). 그리고 이렇게 갈리지 아니하는 제사장 직분은 오직 한 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유일한 제사장, 즉 대제사장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중보하시는 분이 되신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여기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를 통해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는 말씀을 통해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아버지께 그의 백성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심, 즉 중보하고 계심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이 두 가지임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구원 사역이요, 또 하나는 중보 사역이다. 구원 사역에 대해서는 7:26-28에서 간략하게 말한 후에 8:1-10:18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다음주에 배우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7장은 삼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성도의 구원 사역 가운데 예수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멜기세덱을 예로 들어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성도의 구원의 확신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이제는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의 확신과 관련하여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받은 구원을 소멸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통해 삼위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믿음의 퇴보가 아니라 성숙과 진보가 있을 것이며, 이러한 진보가 주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이런 귀한 신앙의 경험들이 성도들에게 더욱 많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