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제명여왕, 백제에 신라 도발 경고
신라인, 백제인, 고구려인이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통역은 누가 했을까?
영화 <황산벌>이야기가 아니다. 작가는 그 역할을 백제 사람이 했다고 한다.
고구려와 신라의 말은 안 통해도 고구려와 백제, 백제와 신라의 말은 통했기 때문인데 그 확신의 근거가 바로 <만엽집>이라고 한다.
<만엽집>은 7세기 후반~8세기 전반에 각 지방에서 사용한 우리말의 견본시장과 같아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은 전라도 사투리 비슷하게, 신라 사람은 영락없는 경상도 사투리로, 고구려인들은 평안도 사투리를 방불케 하는 사투리로 노래를 읊고 있는데 1200년 전 말이 어떻게 이렇게 요즘 사투리와 비슷할까 오히려 의아하게 여겨진단다.
오늘 이야기는 제명(齊明)여왕이 전라도 사투리로 노래한 내용이다.
제명(齊明)은 왕위에 두 번 오른 여왕이다.
첫 번째 왕위는 황극(皇極)이라는 이름으로 641-645년에, 두 번째는 제명(齊明)이라는 이름으로 655-661년까지 왕위에 있었다고 「일본서기」는 전한다.
「일본서기」 에 따르면 의자왕의 어머니가 죽자, 교기 왕자를 비롯한 여자 4명의 왕족, 고관 40여 명이 섬(일본)으로 추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교기 왕자의 어머니가 바로 제명여왕이라고 작가는 추정한다.
그녀는 즉위하자마자 백제사(百濟寺)를 짓기로 한 것으로 보아 백제계가 틀림없다.
<만엽집>에는 그녀가 액전왕(그 당시에는 시녀)을 시켜 짓게 한 노래(口述歌)가 있다.
액전왕이 자신의 노래는 경상도 사투리로 읊지만, 이 구술가에는 전라도 사투리를 내비치고 있다고 하며 이두식으로 풀은 우리말 해독은 아래와 같다.
쇠벌(쇠부루)네 : 쇠벌네-서벌네-서라벌네(경주)-신라
무쇠 칼(갈이) 붓기: 무쇠 칼 쇳물 붓기
옥죄지 말지 : 괴롭히지 말지
우치네 도읍은 (또는 우치네 활쏘기 병사는) : 兎道(일본 훈독 ‘우치’ - 우리 옛말 우치(윗분)
칼(갈이)이 잇따라 온게 터 여미게나 : 칼이 잇따라 오니 진지를 단단히 여미시오
→ 신라가 부지런히 칼을 만들어 전쟁 준비를 하고 있으니 백제는 방비하라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는 648년으로 신라의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명으로 당 태종를 찾아가 백제를 칠 지원군을 요청하여 나당연합의 터전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제명여왕은 일본으로 추방되었지만, 조국을 향한 복합된 한을 노래하며 ‘옥죄지 말지’라고 신라에게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여기 마지막 구절의 ‘온게’가 바로 요즘 말로 전라도 사투리 ‘온께’임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이 설레였다고 한다.
이렇게 전쟁 준비를 당부하며 황급한 마음으로 한 노래를 일본학자들은 옛 추억의 노래로 풀이해놓았다고 한다.
가을 들판의 아름다운 풀로 지붕을 이어서 머문
우지라는 도읍의 가옥이 생각나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무산 위기
기사를 검색해보니 시민단체의 반대로 결국 공연이 무산되었다가 ‘96년도에 성사되었단다.
’89년에도 공연 계약까지 하고 한복 입은 사진까지 찍었지만, 공연료 문제로 무산되었단다.
기사 내용으로 보아 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아동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가수를 수십억 원의 외화를 낭비하면서 초청 공연하는 것은 국민 정서를 해치는 행위"
라고 하며 기독교단체의 격렬한 반대(주최 측에 항의 전화, 후원사에 협찬 취소 요구, 예매처인 은행 예금 인출 압력을 넣어 예매 대행 업무 중단 등)가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날카롭게 각이 선 채, 나를 내세워 남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무리의 목소리가 더 크다.
우리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뿐이었는데....
결국 1996년의 월드투어 하면서 10월 11일, 13일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총 2회 공연했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은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고, 199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을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기도 했다.
‘93년도 개런티 제시액은 2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6억원), ’96년도에는 220만 달러(약 18억원)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