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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회 시와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전 방극률
두 번째 만남:사랑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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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애주가와 연예인
어느 날 낭만논객 방송에서
A급 가수이자
예능에도 탁월하다고 보는 분이
떳떳하고 자신만만하게
노래 하나 잘하게 된 8할은
목회자이신 부친 덕분이라고 하셨다
노래 실력이라야
D급 쯤 된 나로서는
노래 부른 친구들 앞에서
맥주만 꼴짝꼴짝 마시고 있다
나의 애주가 별호는
나의 농부 아버지가 좋아하신
막걸리 그것 이유였기에
어디 가서나
떳떳하고 자신만만하게
9할은 아버지 덕분이라고
이렇게 써서 남겨두겠노라.
2014/08/17
2.먼동
어둑어둑한 새벽
먼데서 오려는 손님 한 분
기다리는 중이야
동녘 너머 산동네
천길 벼랑 끝에서
절뚝절뚝 발걸음을 떼어
고개를 겨우 들어 몸을 비틀어
대문을 곧 두드릴 것이야
농부 아버지는
여물통을 비워 낸
논갈이 황소를 끌어내시며
쟁기를 실은 지게를 지셨지
뜨거운 자식아!
아직 그렇게만 있어다오 기다려다오
첫닭 울음소리 들렸고
예배당 첫종 매일 울리나니
모내기가 끝나는 한 철만은
떠오르지만 말아다오
6월의 한 철만은
황홀함을 버티어다오.
2011/06/10
3.아내가 싸준 도시락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산행 중에 따뜻하게 먹는다
호텔식
3단,5단 반찬류는 아니어도
식성을 아는지라
갖가지가 같은 손맛이다
내가 좋아 하는
강낭콩을 넣은 밥
먹다 보니 모자랐다
빠르게 먹다 보니 비워진 것이다
아내가 곁에 있었으면
더 달라 했건만,
따뜻하게 먹었으니
사랑 듬뿍 담아 답하리라.
2014/08/02
4.가족 3
아내에게 전화하여 아들이랑 딸이랑
중보들에 나가 운동하라고 하였지
아들에게 전화하여 엄마랑 누나랑
중보들에 나가 운동하라고 하였지
딸에게 전화하여 엄마랑 동생이랑
중보들에 나가 운동하라고 하였지
중보들 그곳에 가면
우리 집에 없는
개쉬땅나무,조팝나무,화살나무
신기하게 많았지,반겨주었지
중보들 그곳에 가면
우리 집 보다 넓고,맑은 땅이어서
아픈 아내가 작은 걸음일망정
빨리 나아서
앞서가는 저 사람들처럼
새들처럼 높고 넓게 활보했으면...
2014/06/14
5.가족 4
공원에 나가보니
엊그제는 생각하지 못한
그림들 몇 점 보고있네요
오천 원 권 지폐 뒷면에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버금가는 자연의 신비들
쪼그려 앉아 살폈지요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아내에게 몇가지 알려줬지요
쓸쓸한 자태의 잡풀들을 돌멩이들을...
그때,꽃들은 저들끼리 질투하는 듯 보였고
나비들은 사랑 나누는 소리가
저쪽에선 아이들 공놀이가 보였지요
발 아래엔 작은 개미들
참 부지런히 기어가고 있더라고요
배가 고파왔어요
아내 발걸음으론 집에 빨리 못가겠네요.
2014/06/22
6.동반자 언니들
헐어져 가는 고택은 크고 텃밭은 넓다
십년 전 친정 오빠마져 세상 져 버리니
칠십 칠 세
어머님같은
어머님 눈물 난다
친정 집 옆 집으로 출가했다는 어머님은
텅 비워진 친정 집 마당에서 언니를 찾고
심어 둔
호박 모종을
떠 담으신다
죽어야 이 가슴이 아프지 않을거라고
어머님은 언니 찾고,다시 아버지도 부르고
결국은
이웃에 남은
동반자 언니들만!
2013/10/14
7.멸치 대가리로 끓인 찻물
아파트 장터에서 사 온 짜지 않다는 멸치를
아내와 마주 앉아 내장을 발라내는 중에
멸치 대가리가 소복하게 쌓여가는 모습에
한 마디 말이 안 나올 수 없었지
유년기 고향 마을 마당에서 뉘 댁이나
이른바 구식 결혼식을 하던 날이면
멸치 국물에 국수 맛을 이미 알아버린
그 맛 말이야...
아내 말마따나
고깃국물이면 고깃국물이지
짠물이면 짠물이지
찻물이라 말하면 찻물인 것이지
멸치 대가리만 다시 골라 다듬고
나름 숙취엔 좋을라나
엉뚱한 발상을 해 놓고서
한 주먹을 넣어
실지 팔팔 끓여 마시기 편하도록
한참을 식혀지도록 기다렸지
끓인 멸치 대가리에서는
감귤 주스 버금가게 우려졌고
제법 많은 멸치 대가리 찻물을 마시는데
환상을 비껴간,참을 수 없는 비릿함에
다시는 못 마실 찻물이라 광고를 내리라 했었지.
2013/09/24
8.이리하여 하루를
토요일 아침에
한파가 심해 밖에도 나가질 못하고
연거푸 재채기 네번이 나올 때마다
옆에 있던 아내가
허허-허허-허허-허허 하면서
동네 병원 은내과
문 닫기 전에
다녀오라고
2만 원을 주었다
주섬주섬 속 옷을 갈아 입고
내의도 입고 코트를 입을 때까지
연거푸 재채기가 세번이 더 울렸다
재채기는 기침은
손으로 막고 하라고
아내는 누누히 말하고 있었다
방한대로 입을 봉하고
병원 문을 밀고 들어설 때도
재채기가 멈추질 못하고
더 힘차게 울렸다
약을 털어 넣고도 쉼없이 울렸다
이리하여 하루를 보냈다.
2013/01/25
9.언니가 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진짜 내 딸,내 아들과 결부 시켜서
주연과 조연의 역할에 깊은 상념으로
애틋하게 멀리서나마
가까이서나마 남매의 우애만을
점 치기라도 하며 끝까지 본다
하나 뿐인 남동생임을
하나 뿐인 누나임을
선한 순환작용 시켜서
제3자가 되어
TV앞에 바짝 앉아 측은하게 바라본다
우애가 사랑이 형체가 없어
쌈박하게 붙들 수야 없겠지만
늘 그리워하면서
둘이 주연이 되어 조연이 되어
지탱해 주는 끈이 되면서
세상 밖에서 훨훨 살아가거라
외동 딸 엄마는
병환 중,어느 날 병상에서
<언니가 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했단다.
2012/11/24
10.아직은 겨울 날
그 봄이란 날은 어디 멀리 있나요
봄이란 날은 어디 멀리 있나요
봄이란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해요
내일이면 봄이라고 외쳐보며
따스한 온기가
가슴으로 느껴지며
기지개도 켤 수 있는
몸동작을 해 보이는
그런 봄이란 날이
하루라도 빨리 당도했으면 해요
아내의 병환은
오늘로 구십 칠일째
내일 모레 글피면 백일인데
그러나 어쩌랴
겨울 날이 가야만 봄은 오는 일인데
아직은 겨울 날인데
봄이란 날은 어디 멀리 있나요.
2013/01/23
11.형 보다 낫다는 아우들 쌔부럿지
남원 본가(本家) 팔순의 어머니
지난 여름 유난한 폭염에도
치료를 받으시러
전주 대학병원에 다니셨는데
순천에 사는 막내 아우 제수씨가
수고를 하는 데는 거리가 가까워서라고
장남인 내가 구실을 붙여 말한다면
나는 불효한 아들일 뿐
수술을 해야만 하는 진단에
대학병원에 병문안만을 하고
수원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아픔
종횡무진 뛰고서
성남으로 가야만 하는 둘째 아우 제수씨나
전주에서 남원 본가로 순천으로
순천에서 남원 본가로 전주로
노모 뒷바라지를 하는 막내 아우 제수씨에게
나는 죄인이 된 아들일 뿐
세상엔,오랜 세월 변함 없는 말이 있지
<형만한 아우는 없다>라는 말
이젠 내 선(線)에서 지우고 싶은 진심
세상엔,형 보다 낫다는 아우들 쌔부럿지.
2012/09/15
12.아내와 딸
수다를 떨다가는 침묵
침묵이 흐르다가 웃음
웃음이 끊기니 다시 수다
영원한 친구 같은 모녀
영원한 자매 같은 모녀
영원한 연인 같은 아내와 딸
아내를 딸에게 뺏길까 봐
노심초사 아내 걱정
딸을 아내에게 뺏길까 봐
노심초사 딸 걱정
두 여인이여,
근심 걱정없이 살아가소
정을 담아 살아가소
둘 중 한 사람만 없다면
두 마음 휑하지 않겠소
둘 다 외동딸이니 외로워하지 마소.
2010/07/25
13.빈 들
춥겠다 텅 비워 낸 빈 들
온 몸을
털어 낸 공복
배탈 없이도 사는 2월
진실을 내 주고도
진실을 채우려는 따뜻한 그릇
야망도 허위도 없는 빈 그릇
바보같이
너른 마음만 열어 놓은 빈 들
배를 곯으면
더 추운 것이라던 어머니
춥겠다 텅 비워 낸 빈 들이.
2011/02/22
14.여름 밤에 꿈을 꿨는 데...
마을 어귀 신씨 열녀문(烈女門)이 보였고
반쯤 썩어 파인 정자고목에 여름 매미 자지러진
울음소리며 햇살 마저 등살을 쿡쿡 찌르는 날
당산 고개 힘들어 넘는
남원읍내 5일장 다녀 오신
마을 아주머니 아저씨, 어무이 네 분
땟국물이 흐른 어린 아들 손 잡고 앞 세우고
이고 지고 오신 마른 여름 날
'아이고 허리야...' 가픈 한숨 길게 토하시며
부엌 마루에 풀어 보인 어무이 장보따리에
낼 모레 글피 모내기 때 쓰시려는
비릿한 생갈치 세 마리,마른 명태 다섯 마리
검정 운동화 한 켤레에 동생들 검정 고무신
졸라 댄 빨강 표지 필승(必勝) 중학 참고서들
<고마워요 어무이,40년이 흐른 이 날까지 어무이>.
2012/07/30
15.죽순국을 먹다
나는 지금 식탁에 놓인 한 사발의 죽순국을 먹는 중이야.
최고급 요리임을 광고 하시며 들깻가루 넣어 끓여 주신
어머님 정성에 고깃국 먹는 시늉 내며 먹는 중이야. 세 끼
밥 먹는 일이며 매일 약술 마시는 습관에 비하면 죽순과의
만남이 가히 천재일우인 셈이야. 열 살 때쯤,윗뜸에 사는
태팔이네 대밭에서 도둑처럼 뽑아다가 먹어 본 뒤론, 친구
집 식사 접대에 먹어 본 기억과 뷔페 음식 몇 번 먹어 본
기억일 뿐, 이렇게 맛이 나는 죽순국이 어디 있겠냐며 퍼
먹는 중이야.무시무시한 대나무 통에 곧은 절개로 살 테지만
도대체 뼈다귀도 아닌 이것이,뿌리도 아닌 이것이 고기맛을
내는 데는 어쩌면 부처님이 주신 부드러운 살점들일거야
대나무들 전생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법이야.
2012/08/20
16.고향 마당에서
- 콩알
콩알 세 알이
외양간 여물통 앞 흙마당에
싹을 틔우며 자라고 있었어요
쏘옥 뽑아 올려 보았더니
메주콩이었어요
어머니가 마당에서
콩타작을 끝내시면
흝어진 콩알들을
주워 모으셨을 텐데
어찌 이 놈들이
콩-콩-콩 튀어서 여기까지
도망왔을까,픽픽 웃어주었지요
마당을 비잉-비잉 돌며
또 없나 살펴 보았더니
두엄 더미 뒤에
세 알이 붙어서 제법 성숙하게
자라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놔두기로 했지요
행여 어머니도 이 놈들을 보시면
가꾸신 정이 있어
웃음이 터져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2014/09/20
17.엽서
10월 9일 한글날을
국경일로 재 지정한 기념 엽서가
집으로 배달 되었다
우표며 엽서를 모으는 취미여서
기념이 될 편지글을
아내에게 100자 정도 써봤다
쑥스럽지만,손편지 쓰는 일이
또 하나의 오랜 습성인지라
집에 홀로 사관생도 훈련받는
아들 소식 기다리기
무료한 시간 보낼까 봐
남편인 내가
고맙고 수고했고 건강하라며
엽서 한 장 회사 우체통에 넣었다
개봉이 된 엽서라
행여 우체부 아저씨가 훔쳐 볼 세라
괜한 염려로 하루를 보냈다
말미에는 쓸데 없이 이렇게 써 넣었다
- 영원한 여인에게 남편이 -
2013/10/20
18.어머니와 유모차
허리가 많이 굽으신
이웃에 깐돌이네 할머니가
유모차를 앞으로 미시며
비좁은 고삿길에 나오셨다
순간,사흘 전 뵙고 온
어머니 그 모습이었다
이 길 따라 살아오신 어머니들 할머니들
심심찮게 보아 온
이 시대 유물로 변모 한
할머니들 몸을 지탱해 준 유모차가
귀한 효도용품이 되었다는 것
짧은 순간에 할머니는
고삿길을 빠져나가셨다
깐돌이네 할머니가 나의 어머니요
나의 어머니는 누구에겐 할머니요.
2014/08/19
19.고향 6
가도 가도 멀다는 고향
총각시절엔 힘이 발산되니
먼 곳을 멀다라고 말하진 않았겠지
이순이 다가 올 나이
힘 떨어지고
팔 다리가 배배 꼬이고
허리가 삐어질 일이고
조치원 쯤,왼쪽으로 보인
저 묏등 아래 마을은 누구네 고향인고
논산 쯤,저 양철지붕 기와지붕은
누구네 고향인고
늦어 봐야 세 시간 반
나의 고향 천혜의 바람 불고
조용하고 맑은 마을
선산에 파랑새 보러,꿩 보러가자
노산에 진달래 보러가자
뚝방길 따라 자운영꽃 보러가자
어서 가자,어서 가
어머니 뵈러가자.
2014/08/19
20.어머니
고향에 가면 어머니는
비계가 많은 돼지고기 국에
밥상을 다 차려주시고는
허리 굽으신 몸으로
냉장고 문을 여신다
자식이 즐겨 마시는 술이
맥주임을 아신 터라 한 병을 꺼내셨다
병 따개로 따 주시며
한 잔 따라주시기까지 하신다
얼른 마시고는
어머니께 한 잔 드리려고 하니
맥주 냄새는 싫다시며
두 잔째를 따라주셨다
집안 용무를 마치고 돌아설 때
노인정 어르신들과 막걸리 사 드시라고
오만 원을 꺼내 드렸다
어머니는 흐뭇하셨겠지만
나는 부족했음을 충분히 알고 왔다.
2014/08/11
21.아기 울음 소리
이웃 주택 집에서
아기 울음 소리 들렸다
아기 울음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세상의 말인지라 더 우렁차게 들렸다
남아인 지,여아인 지 모르나
지어 준 아기 이름도 모르나
몇 달,몇 살 아기인 지도 모르나
도심의 골목길을 지나며
들리는 아기 울음 소리는
청량음료 한 잔 마신 후의 기분이다
아내와 딸과 셋이 걷는 데
아내가 딸에게 말했다
"너도 칭얼 칭얼 많이 울었단다"
"아빠 내일 아침 출근에 지장 줄까 봐
밖에 나가 몇 달을 달랬단다"
딸이 막 웃어 제켰다
울음 소리는 골목을 빠져나와도 가깝게 들렸다
아기들은 말은 못하니
울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표현을 한 것이다.
2014/08/03
22.친구 완수
서울서 하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전주에서 첫버스 타고 와서
남부터미널에서
전철 갈아타고 와서
길다면 긴 시간
짧다면 짧은 동창회 자리
다정한 어투로 내 어머니 안부 여쭈고
내 동생들은 잘 있느냐고
나는 묻지 못한 말
완수 친구는 해마다 묻곤 했었다
성정(性情)이 고운 이 친구가
동창회 마치고 돌아설 때
내 아내 병환을 위로 하고는
흰봉투를 옆구리에 찔러주며
손 한 번 흔들어 주며
남부터미널에 막차 타야 한다며
도망 가듯,택시 타 버린 친구
세월이 쇠잔해 가도
나이 먹어가면서 너의 모습
긴 여운으로 남겨 놓을 것이네...
2013/11/03
23.가문의 영광
한 시절에 TV드라마
<가문의 영광>을 한 회도 놓치지 않고
시청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지금도 내가 그 드라마를
집필할 만큼 머릿속에 담고 산다
수 년 후에
아들과 소줏잔을 기울며
교훈도 아닌 말을 꺼낸 얘깃거리는 이럿다
김지하 시인님이 남겼던
그 유명한 <오적>이란 시에 등장한
인물만은 되지말라 했다
뭐든 선구자가 되라 했다
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아버지는
남길 일,하나도 둘도 셋도 없으니
너부터 너 자식과 너 손자까지
3대가 선구자로 사는 비석을 남겨라 했다
인생을 빈손으로 살지 말라 했다.
2012/08/20
24.외양간 구경
외양간에 소 한마리 없다고
텅 빈 집이네
텅 빈 여물통엔
작두로 생풀과 짚을 썰어
옥수수 가루 후하게 넣어 끓여
고봉으로 쇠죽을 퍼 주시던
아버지 인정(人情)이 기억되는데
먹는 건 달랐어도 식구라며
암소 워낭소리 딸랑딸랑
정을 뗄 수 없어 소리로 들리는데
까대기로 지은 외양간 네 벽면엔
부서진 쟁기 성에와 보습
녹슨 괭이 삽 호미 낫들
닳고 닳은 갈퀴들, 짚덕석 소쿠리 꼴망태
마치 민속품 전시장을 보는 듯
어머니는 토란잎을 걸어 말리셨고
엮어 놓은 파씨와 마늘이 줄줄이네
아궁이 잿불용 부삽도 굴러다닌 외양간 구경
와! 이 좁은 곳이 꽉 찼으니 우주(宇宙)같구려.
2012/08/25
25.마늘을 찧으며 1
마늘 마르기를 처음부터 소홀히 해
실패를 거듭 하는 사연에
아내는 썩고 쪼그라 든
밤톨만한 귀한 것들을
며칠 전 부터 까대기를 하더니만
이젠 때깔 마저 변질되어 간다며
푸념만 늘어 찧어 달라고 특명을 주더군요
팔뚝은 기계는 아니지만
잘만 작동해 준다면
세 바가지 깐마늘 쯤이야
소일거리도 안 되더구먼요
튕겨 나가거나 뒹굴지 않도록
쿡-쿡-쿡 찧어 댄 것이지요
살면서 몇 번 찧어 준 일이지만
익숙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수양 정진하는 스릴도 넘쳐나더군요
어머니는 부엌에서 요리 하실 때
급하신 대로 칼 손잡이 밑동으로
톡-톡-톡 몇 알을 찧으시며
소실이 될까봐, 왼손으로 감싸시던
그 요령을 어깨 너머로 살짝 보았을 뿐이지요
아내는 잘게 잘게 양호하게 찧어줬다며
냉동고에 조용히 넣어 두더라고요.
2014/09/14
26.마늘을 찧으며 2
미니 절구통에
깐 마늘을 한 줌 집어 넣고
일격을 가할 때
팍~마늘이 쪼개지는
소리는 사실 1차 폭행이다
쪼개졌으니
터지고 더 찢어지는 아픔
도망 나가지도 못하니
어서 빨리 승부를 내고 싶다
독한 놈도 어쩔수 없이 당하고
그래도 쓸모 있게 찧어 놓으니
용서가 되어 향내 나고
아내는 커피도 타 준다.
2014/9/20
27.소년 나뭇꾼
밥을 지어야 하니까
쇠죽을 쑤어야 하니까
메주콩도 삶아야 하고
겨울엔 군불도 지펴야 하니
나무 가득한 그 집안은
부유 척도로 한몫을 하는 시절이 있었다
소년 나뭇꾼은
4계절 따라 나무 하던 시절을
으뜸의 추억으로 꼽는다
봄철에 나무하러 다닐 땐
흥에 어깨가 들썩였다
내 영혼의 한 줌을 쥐고 놓지 못한
단편의 그림을 품고 있는 탓이다
노씨네 산으로
김씨네 산으로
할미꽃,진달래꽃 광활한 낙원을 보았다
꿩 알,새 알을 찾던 날
덤으로 오는 흥미로운 기억들
긴 세월을 무겁지 않게 지고 살아 왔다.
2014/09/05
28.고향 사과를 베어 먹습니다
사과 한 입 베어 먹습니다
달디단 내음에 시원한 과즙이 튕깁니다
오기를 부려 꽉 차 부풀었지요
45년 전을 기억합니다
초등시절 사회 과목에
대구 하면 사과요
사과 하면 대구라고 했던
그 공부는 이젠
새빨간 거짓 공부입니다
남원 하면 성춘향이요
성춘향 하면 남원이요 했던
내 고향 오석거리 과수원 댁
붉은 사과 다 따 내면
일 천 박스는 나올 것입니다
전문가 말씀에
온난화가 정복된 지 오래 전입니다
그린볼 사과가
겉과 속이 붉은 사과가
이렇게 달린 것이 신기한 일이지요.
2014/09/05
29.병실에서 출근을 합니다
아픈 아내를 병실에 홀로 두고
씻는 둥, 마는 둥
머리만 긁적이다
905호 병실을 나섭니다
병원과 회사가 멀어진 상황입니다
바람은 차고
낙엽들 흩날리는 05시 20분
현관을 빠져 나와 9층 병실을 올려다 봅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뽀얀 팔뚝에
약물만 3개를 꽂고 있는 아내가
미치도록 측은 했습니다
다리엔 힘도 빠졌지
얼굴은 백지장에 목소리는 어눌하지
약물로 버텨가는 한 생명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일
참말로 없었습니다
몸 아파서 찾아 왔던 곳
아픔의 척도를 내가 따진다면
절대 아니됩니다,그래야 여명이 오는 거지요.
2012/10/15
30.우군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고향 본가(本家) 홀로 계신
어머니께 기대며 삽니다
어머니가 기둥이며 집이며
일생의 우군(友軍)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내 자녀들의
우군은 내가 되고
아내가 되겠지요
등불 밝혀주고
날개 펴도록 하며
오늘도 역시
굶지 않았을까, 다치지 않았을까
춥지 않았을까,비 맞고 다니지 않았을까
세상살이에 무거운 짐 지고 살지는 않았을까
무사히로 기원(祈願) 해줍니다.
2014/08/28
31.태양초를 바라보며
씨앗 뿌리던 사랑으로
모종을 심던 기도로
한 해 만은 거목으로
거목이 분질러지는 날까지
이슬 맞고 풀벌레 족속 퇴치하며
풋풋하도록 통통하도록 커줬어
정염(情炎)의 빨간 입술로
생(生)의 종착지로 내리 커줬어
이목구비는 갖추지 못한
매력 포인트 정열의 몸매들
어울리는 곳
볏짚 멍석에서
태양 아래 옥상 기어 올라서
납작 엎드린 채
오합지졸 춤추는 일이야
분 바르지 않은 몸매
달면 열근 쯤 나갈 몸매들
배를 가르고 탈탈 씨마져 터는
가슴이 늘 시려운 아낙네.
201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