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매호동(梅湖洞),
소산 아래 넓은 매호들을 낀 풍요의 마을
개관
매호동은 수성구 고산3동의 법정동이다. 동쪽 들판 너머에 고산(95.3m)이 있으며, 서쪽에는 천을산에서 이어지는 우산(123.8m)이 있다. 매호동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흐르는 매호천변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매호천은 매호동 북쪽에서 남천과 합류해 금호강으로 유입된다. 인근에 있는 구천지와 모산지는 과거 매호들의 농업용수로 활용됐다. 이처럼 들이 넓고 물이 풍부해 예로부터 고산지역에는 ‘일가천, 이매호’란 말이 있었다.
매호동은 대구도시철도2호선과 달구벌대로가 남쪽 경계지를 통과하며, 그 외 고산로와 천을로가 각각 남북, 동서 방향으로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경산현읍지(1871)에는 위마리(爲麻里·매호동)에 서면(西面) 사창(司倉)90)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주요 공공시설로는 매호중학교, 매동초등학교, 매호초등학교, 시지초등학교, 매호공원, 시지근린공원 등이 있다. 주요 유적과 유물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주거유적, 삼국시대 주거유적 등이 발굴됐다.
90) 조선시대 각 고을에 환곡(還穀)을 쌓아 두던 창고.
지명 유래
매호동 북서쪽 매호천 너머에 암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의 산이 있는데, ‘우매’ 또는 ‘우산(牛山)’이라 부른다. 마을 한가운데는 삼덕동 당골(범안로 삼덕TG 인근)과 대흥동 심천 골짜기에서 시작해 시지동·매호동을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가는 매호천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매 마을(고산3동행정복지센터일대)과 인접한 우산(牛山) 마을(백년가약아파트일대)을 합쳐 매호동이라 했다. 지명조사철(1959)에도 매호동에 대해 “우산·우매 양 부락을 합하여 매호동이라고 칭하게 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외매와 우산에 대해서는 각각 “약 300년 전 지형이 매화 바깥 가지에서 매화가 떨어지는 모양이라 외매라 칭했는데 발음상 와전해 우매라 칭한다.”, “본 부락 뒤편 산록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므로 우산이라고 칭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호동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경산군 경계 및 명칭을 변경할 때 서호리(西湖里)와 위매리(爲梅里) 두 동리의 이름을 각각 한 글자씩 모아 만든 이름이다.91) 위매동은 서호동보다 먼저 형성되었던 마을로 경산현읍지(1785)에는 위마리(爲麻里)로, 1911년 지명 변경 당시에는 위매동(우매동)이었다. 위매동은 발음이 비슷한 ‘외매(外梅)’로도 불렸다. 위마리(爲麻里)는 ‘윗마을’의 차자 표기다. 매(梅)는 산지를 표기할 때 주로 사용된 지명어사이며, 동시에 마을의 준말인 ‘마’의 차자 표기다. 따라서 위매동(爲梅洞) 역시 ‘윗마을’의 차자 표기다. 각종 경산현지에 기록된 우산리(牛山里)는 매호천 서쪽 산기슭에 형성되었던 우산 마을로 조선 말 서호동(西湖洞)으로 동명을 바꿨다.92)
우산이란 산명은 산에 소나무가 무성했기 때문에 우리말 ‘소나무 산’, ‘솔산’을 ‘소산’으로 보고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외매는 발음이 소 울음소리인 ‘음매’와 비슷하다. 따라서 매호천 건너 북서쪽에 있는 우산 마을 뒷산을 소가 앉아있는 형태로 보고 우산으로 불렀을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예로부터 매호동에서는 우산 동쪽에 있는 고산(孤山)을 ‘소 여물통’이라 불렀다는 점이다.
91) 조선총독부경상북도고시 제24호(1911.9.21.)
92) 서호리는 매호동 북쪽 금호강 건너에 있는 마을로 경산군 북면의 마을이다. 따라서 서호리와 위매동을 합쳐서 매호동이 되었다는 부분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구천지(狗泉池)·개심못·개샘·매호지
구천지는 위매 남동쪽에 펼쳐져 있는 개심들(매호들)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못으로 ‘개심못’이라고도 불렀다. 구천지에는 두 가지 지명유래설이 전한다. 하나는 옛날 이곳 주민들이 개심들에 물을 댈만한 물줄기를 찾아다녔는데 수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함께 따라온 개가 땅에 주둥이를 대고 짖어대므로 이상하게 여겨 그곳을 파니 많은 양의 물이 솟아나 못을 만들었다는 전설이다.93) 다른 하나는 못을 팔 때 개가 지나가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개 구(狗)’, ‘샘 천(泉)’ 자를 따서 ‘구천지’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94) 따라서 구천지(狗泉池)는 개심들의 ‘개샘’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개샘을 다르게 풀이하는 설도 있다. 매호동이나 사월동 등 고산지역 들판은 대부분 선상지(扇狀地)95)로 형성되어 있다. 선상지 지형은 선정부에서 시작된 복류천(伏流川·땅 밑으로 흐르는 물)이 선앙부96)를 지나 하단인 선단부에 이르면 샘이 되어 지상으로 솟는 특성이 있다. 개심들은 매호천 범람으로 모래, 자갈, 진흙 등의 ‘개흙’이 쌓여 형성된 선단부 들판이다. 따라서 이 들판에 있는 샘을 개흙으로 된 땅에서 솟기 때문에 ‘개샘’이라 부르고 한자로 구천(狗泉)이라 했다는 설이다. ‘개샘’은 다시 발음이 변해 ‘개심’이 되었고, 개샘이 있는 들을 개심들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처럼 매호동이 고산지역 다른 들에 비해 수량이 풍부한 샘을 못으로 만든 것은 매호동의 선상지 지형 특성을 잘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천지는 약 3,000평 규모이며 지금도 둑 아래 여러 곳에서 물이 솟아오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못을 메워 논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2024년 ‘구천지’에서 ‘매호지’로 이름이 공식 변경됐다.
93) 수성구립 고산도서관, 고산, 비밀의 성산(城山), 2022, 62쪽.
94) 대구직할시 교육위원회, 우리고장대구, 1988, 352쪽.
95) 강이 산지에서 평지로 흐를 때, 흐름이 갑자기 느려지면서 물과 함께 쓸려 온 토사가 부채 모양으로 쌓여 생긴 지형.
96) 扇央部. 선상지는 형성되는 위치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선정, 선앙, 선단으로 구분된다. 선정부에서 발원한 물은 선앙부에서 땅속으로 흐른 뒤 선단부에서 다시 지표로 올라온다.
매호들·고산들·개심들
매호들은 매호동 앞들을 말하는데 다른 말로 고산들·개심들이라고도 한다. 매호들은 본래 논농사를 하다가 과수 농사로 변모했고, 지금은 도시화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과거에는 논농사 관련해 모심는 소리, 논매기 소리, 타작 소리 등 농요가 유행했지만 지금은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현재 매호동에서는 ‘모심는 소리’만 일부 전승되고 있다. 또한 매호동에서는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를 매호들에서 했다고 한다.97) 1980년대 초 매호들은 대부분 논이었고 들 남쪽과 서쪽에 양계장과 섬유공장이 많이 있었다.
97) 수성구청,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무형문화유산, 2021, 294쪽.
매호숲·당산나무숲·조산걸·당산나무
과거 지금의 매호동 우방 유쉘, 청구 하이츠빌 아파트 사이 매호천변에 있었던 숲이다. 약 50m 길이 제방에 50여 그루 나무가 있었던 숲이었는데 지역개발로 사라졌다. 이곳은 예전에 우산 마을로 불렸던 곳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매호천 범람에 따른 수해가 잦았다. 그래서 약 300년 전 주민들이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쌓아 매호천 물길을 돌리고, 제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제방 위에 나무를 심은 것이 매호숲이었다. 매호숲은 마을주민들의 쉼터이자 수해방지와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호동이 개발되면서 매호숲은 사라졌다.
1954년 항공사진에는 매호천변에 조성된 매호숲이 보인다. 참고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기에는 주민들이 흙과 돌을 담은 가마니로 매호천 범람을 막았으며, 가뭄에는 마을 아낙들이 바가지를 머리에 이고 매호천을 건너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98) 1983년 지도에는 현 우방 유쉘 아파트 자리에 활엽수종 독립수 두 그루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98) 수성구청,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무형문화유산, 2021, 287-288쪽.
새매당·해매당·영동할매당·영등할매당
과거 매호동에서 우산(牛山)을 끼고 가천동으로 가는 산허리 길모퉁이에 ‘새매당·해매당’ 또는 ‘영동(영등)할매당’이라고 부른 당집이 있었다. 지금의 ‘생각을 담는 정원’이 자리한 곳으로 추정된다. 영동할매 신화는 전국적으로 전하는 신화다. 영동할매는 음력 2월 1일이면 딸 혹은 며느리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20일간 머물렀다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딸, 며느리 중 누구와 함께 내려오는가에 따라 2월 한 달간 비바람에 차이가 있고, 한 해 농사의 길흉이 결정된다고 한다. 영동할매 신화는 주로 바닷가나 큰 강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잘 나타난다. 매호들 북쪽에는 금호강, 남천, 매호천이 만나는 세물머리가 있다. 제방이 없던 시절에는 여름철이면 강물의 범람이 있었다. 그래서 매호동에서는 특별히 서낭신으로 영동할매를 모셨던 것 같다. 매호동 들 중 ‘새적개들’, ‘큰개들’은 금호강·남천·매호천 범람 지역에 있는 들로 ‘갯벌’이라고도 불렀다.
애꼬재들·새적개들·큰개들·큰갯들·갯벌
우산과 고산 사이 매호동에 있었던 들이다. 경부선을 기준으로 남쪽을 매호들, 북쪽을 애꼬재들이라 불렀다. 또 애꼬재들 북쪽 남천변에 ‘새적개들’이 있었고, 남천과 금호강 사이에 ‘큰개들’이 있었다. 큰개들은 1970-80년대엔 주로 과수 농사가 행해졌고, 지금은 시설 원예작물이 주를 이룬다. 새적개들과 큰개들을 통칭해 ‘갯벌’이라고도 불렀다.
조산걸 당산나무99)
과거 매호동에서는 지금의 우방 유쉘 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당산나무에서 동제를 지냈다. 큰 나무 두 그루와 바위가 있었던 이곳을 ‘조산걸’이라 불렀다. 매호동 동제는 풍물패와 대잡이(대나무를 잡는 사람)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대나무가 멈추는 집의 남자를 제관으로 선정하고, 음력 정월 14일 동제를 지냈다. 동제는 1970년대에 중단되었고, 아파트가 건설된 현재는 큰 나무 한 그루만 남아 있다. 지역민들은 남은 나무 한 그루를 보호수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83년 지도에는 현 우방 유쉘 아파트 자리에 활엽수종 독립수 두 그루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과거 이 일대 매호천변에 길이 약 50m 제방이 있었고, 제방 위에 약 50그루 나무로 이뤄진 ‘매호숲’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매호숲’ 사진 참조)
99) 수성구청,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무형문화유산, 2021, 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