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군위 엄흥도 묘소, ‘A·B·C’묘 및 진묘·가묘 요약 정리
글·사진 : 대구선비 송선비 송은석
(3169179@hanmail.net / 010-9417-8280)
‘이제는 군위 엄흥도 묘, 진묘·가묘에 대해 이야기해야’
오랜 세월 엄흥도 묘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영월·청주·군위’, 근래에는 ‘영월·군위’, 영화 ‘왕사남’ 이후에는 다시 ‘울산’이 추가돼 지금은 엄흥도의 묘가 ‘영월·군위·울산’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참 기막힌 일이다. 사람은 한 명인데 묘는 세 곳이다. 그것도 서로 간의 거리도 멀다. 여하튼 지금까지는 엄흥도의 묘가 어느 지역에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타 지역 엄흥도의 묘나 엄흥도의 행적에는 별 관심이 없다.(필자는 영월, 울산 묘도 몇 번씩 다녀왔다) 오직 대구·군위의 엄흥도만 생각할 뿐이다. 여태껏 필자가 연구한 향토사 분야도 오직 대구요, 유교문화도 오직 대구유교문화를 공부했듯이 엄흥도도 대구·군위의 엄흥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타 지역 영월 엄씨 문중이나 관련자들과 논쟁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오직 대구·군위 지역에서 발굴된 문헌자료나 구전자료를 바탕으로 대구·군위의 엄흥도를 알고 싶을 뿐이다.
‘군위 엄흥도 묘소 꿈을 꾸고 발견한 미스터리 묘, ‘C묘’’
어쨌든 신기한 일이었다. 2026년 3월 5일을 시작으로 석 달 동안 42번이나 다녀온 군위 엄흥도 묘였다. 그런데 꿈을 꾸고 찾아간 2026년 7월 13일, 43번째 답사에서 ‘C묘’ 발견했다. 그런데 필자가 ‘C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C묘’는 물론, ‘C묘’로 가는 길을 벌목해 놓았기에 가능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거진 잡목 속에 있는 ‘C묘’의 존재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잡목 숲속에 있는 ‘C묘’를 벌목해 정비 했을까?(아직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그간의 정황을 바탕으로 그가 누구인지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C묘’의 발견은 결국 그분 덕이다’
‘C묘’ 벌목과 정비를 했던 이는 ‘C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이였을 것이다. 그가 ‘C묘’를 알리고 싶었던 이유는 ‘C묘’가 평범한 묘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C묘’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오던 엄흥도의 진묘였음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영화 ‘왕사남’ 이후 각종 매체를 통해 군위 엄흥도 묘소에 대한 부정확한 내용이 확산됐다. 이때 그는 부정확한 내용을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꼈거나 아니면 이제는 ‘C묘’가 세상에 알려져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중을 통한 비공식적인 정보에 의하면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고 한다. ‘C묘’의 존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고령의 문중원이라고 한다. 여기에도 세상에 밝히기 힘든 또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아무튼 필자의 ‘C묘’ 발견은 결국 미지의 그분 덕이었다.
‘C묘(진묘)와 B묘(가묘1)에서 출발해 A묘(가묘2)까지’
지금으로부터 552년 전, 1474년 음력 2월 26일. 엄흥도가 71세를 일기로 군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지 17년 뒤요, 세조가 죽은 지 불과 6년 후였으며, 당시 임금은 세조의 손자 성종이었다. 엄흥도의 장남 엄광순은 자신들의 은거지였던 분토골 인근 월등 기슭에 아버지 묘(C묘)를 조성했다. 그리고 위쪽으로 20여m 떨어진 곳에 가묘(B묘)를 조성했다. 가묘는 진묘를 숨기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렇게 되니 결국 묘제도 진묘가 아닌 가묘에서 모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묘에서 엄흥도의 혼과 백을 불러 모신 뒤, 다시 가묘로 모셔서 제사를 지내는 ‘인향(引香)’이란 문화가 생겨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일 것이다.
‘신도비·유허비가 땅에 묻히고 망주석은 잘리고 동자석은 사라지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1960년대에 군위 문중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다. ‘C묘’ 인근에 있었던 신도비와 유허비 등이 땅에 묻히고, 망주석은 깨뜨려 졌고, 문인석 혹은 동자석으로 보이는 작은 석물은 사라졌다. 사실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일대에서 신도비(2품관 이상만 세울 수 있었음)를 세울 수 있는 인물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증 공조 판서 충의공 엄흥도뿐이다. 어쨌든 이때를 시작으로 ‘C묘의 묵묘시대’가 시작된 것 같다. 이는 현재 ‘C묘’ 봉분에 남아 있는 참나무·소나무 그루터기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C묘’는 잡목 숲속 묵묘가 됐던 것 같다.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로 남아야...’
며칠에 걸친 필자의 글은 결국 추론일 뿐이다. 엄흥도의 묘가 군위에 있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군위 엄흥도 묘 중 어느 것이 진묘, 가묘인지에 대해서는 100%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정황 증거상 ‘C묘’가 진묘, ‘B묘’가 첫 번째 가묘, ‘A묘’가 두 번째 가묘라고 추론할 뿐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오랜 세월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답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 생각으로는 서로 간에 도가 넘는 다툼만 없다면 엄흥도 묘 미스터리는 그냥 미스터리로 남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스토리텔러 입장에서 보면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스토리가 풍성하면 풍성할수록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게 학자와 스토리텔러의 차이다. 필자는 스토리텔러다.
‘그런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누적관객수 1,691만명을 돌파한 영화 ‘왕사남’ 마지막 자막에 ‘엄흥도의 묘는 영월에 있다’고 나간 건 좀 아닌 것 같다’
(다음에 계속)
2026년 7월 31일 금요일 새벽
대구선비 송선비 송은석 拜
첫댓글 정말 미스테리네요 ㅎ ㅎ
청산님^^
552년 내력에 그것도 200년간 대역죄인 신분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관심 가져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도 무탈하시고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송은석 拜
대구경북 kbs 뉴스에
이번에 제가 발견한 '엄흥도 추정 진묘'가 보도될 예정입니다..
2주 넘게 고생한 보람이... 비로소...
휴~~~~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오늘도 무탈하시고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송은석 拜
2026년 8월 3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 /오전 9시 45분
저녁 7시 / 밤 9시 30분
다음 시간에는 충의공 엄흥도가 왜 대구 군위로 내려와 은거하고 생을 마쳤는지에 대해 연재할 생각입니다. 계속된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무탈하시고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송은석拜